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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164화 (1,921/2,000)

2164화. 혈투(血鬪)

*

순찰선사들이 숨을 고르기 전에 한립은 거울 표면으로 뇌전을 날렸다.

금색 뇌전이 거울을 튕겨 나와 기다란 채찍처럼 사방의 순찰선사들에게 날아갔다.

순찰선사들은 피하지 못하고 구슬프게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갔다.

조종하는 사람이 사라진 은색 거울이 빛을 잃고 떨어지자 한립은 그것을 받을 생각도 않고 소리쳤다.

“지금이다!”

말을 마친 그가 고공으로 치솟고, 금동과 흰둥이는 둔광을 연결해 다른 방향으로 튀어 나갔다.

“어딜 가려고?”

이미 고공에 있던 악청이 쿵, 하고 허공을 내리찍었다.

한립은 육중한 무게감에 눌려 옥호봉으로 돌아가야 했고, 그가 떨어지는 힘에 산봉우리가 다 흔들거렸다.

눈치 있게 진작 초여선궁 궁주와 멀찍이 물러나 있던 제호산 노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옥호봉 정상,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고개를 든 한립은 금동과 흰둥이가 나머지 두 감찰선사에게 가로막힌 것을 보았다.

셋 중에 누구도 달아나지 못한 것이다.

악청의 신형이 내려와 그와 멀지 않은 곳에 내려섰다. 그의 발이 땅에 닿을 때 옥호봉이 또 맹렬히 휘청거렸다.

“현수 공법이 제법이구나.”

“과찬입니다.”

“이것도 견뎌낼지 모르겠는데?”

씩 웃은 악청은 다시 발로 땅을 찍었다. 황토색 먼지가 뿌옇게 일며 노란 영역이 옥호봉 절반을 감쌌다.

흙 속성 법칙의 힘 때문에 먼지마저 무거워져서 한립은 두 발이 벽돌 바닥 깊숙이 가라앉았다.

“어휴, 남의 종문에서 이게 무슨 일인지. ……모두 물러난다!”

제호산 노조가 끙, 앓고는 산문을 보전할 수 없겠다는 판단에 장로와 제자들을 물리기 시작했다. 초여선궁 사람들도 그들을 따라 제호산 영역에서 신속히 빠져나갔다.

이제 제호산 영역에 남은 것은 한립 일행 셋과 금원선궁 사람들뿐이었다.

열 명의 순찰선사들도 멀리 달아나 전투에는 참전하지 않고, 나머지 일은 악청과 두 감찰선사에게 맡겨두고 있었다.

금동은 무회란 노인과 싸우는데 둘 다 잘 싸워서 승부가 어떻게 날지 알 수 없었고, 흰둥이는 여인과 싸우면서 진땀을 빼고 있었다.

흰둥이의 수행이 크게 늘었다지만 다 혈맥의 힘을 전승했기 때문이고, 고수들끼리의 싸움에 능숙하지 않아 기교가 떨어졌다.

“나를 상대하며 다른 사람을 걱정할 시간이 있더냐?”

악청이 그런 그를 보고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립은 불길한 느낌에 금빛 시간영역을 일으켜 옥호봉 전체를 감쌌다.

시간영역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기 전 누군가 그의 등 뒤에 나타나 어깨에 손을 댔다.

신음을 삼킨 한립의 몸에서 뼈와 살이 폭죽처럼 터지는 소리를 냈지만 무릎이 꺾이지는 않았다.

그대로 꼿꼿하게 선 채 하반신이 땅에 묻혔다는 게 문제였지만.

지면에서 느껴지는 노란 광채가 그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마음이 급해진 한립은 천살진옥공을 전력으로 운용해 현규를 밝혀 성신지력으로 땅속 힘에 대항했다.

콰쾅!

노란빛 속에서 한립의 뛰쳐 올라와 손에 쥔 청죽봉운검을 휘둘렀다.

검에서 빠져나온 금색 뇌전들이 그물을 이루어 떨어지는데 악청은 가소롭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노란 강기가 솟아올라 금색 그물을 찢고 다른 손에 푸른 거검이 나타나 한립의 머리를 내리쳤다.

한립은 중압감에 피하지 못하고 천살진옥공과 진령혈맥을 동시에 격발해 삼두육비 마신으로 변신하려 했다.

쩡!

노란 검빛이 거검에서 퍼져 나와 아래와 위 양쪽으로 뻗어 나갔다.

고공의 구름이 검기에 절반으로 갈리면서 하늘이 두 쪽 난 것처럼 보였다.

다른 검기는 옥호봉을 둘로 가르며 깊은 협곡을 만들었고, 한립은 그 틈에 가장 깊은 술 창고 속에 쓰러져 있었다.

얼마나 오랜 세월 숙성 중이었을지 모를 술 단지들이 깨지면서 여러 가지 술향기가 진하게 퍼졌고, 한립은 그 안에 누워 술에 흠뻑 젖어 있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면서 한립은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실력으로 악청과 같은 대라 후기 급과 싸우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달아나고 싶어도 병령은 대답이 없고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겨우 몸을 일으켜 앉은 그를 향해 노란 광채가 덮쳐왔다.

협곡 깊은 곳에서 고개를 든 한립은 노란 안개가 자욱하게 퍼지는 것을 보고 청죽봉운검 36개를 불러내 주위를 맴돌게 했다.

쿠르릉.

고공의 노란 구름이 회오리치다 굵직한 빛기둥을 떨구었다.

이를 악문 한립은 수결을 맺어 청죽봉운검들이 몸을 지키게 했다.

“가라!”

강렬한 빛을 머금은 청죽봉운검들이 수많은 뇌전을 반짝이며 거대한 교룡을 만들어 고공으로 날아올랐다.

한립도 금색 뇌전 교룡의 체내에서 검빛이 휩싸여 노란 빛기둥과 충돌했다.

쿠콰콰콰…….

노란 빛기둥과 금색 뇌전 교룡이 충돌해 끊임없이 서로를 멸했다.

그 와중에도 한립은 계속해서 고공으로 오르고 있었고, 노란 구름 위의 악청은 거검을 쥐고 천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서 그걸 내려다보았다.

한편 거대한 금색 딱정벌레로 돌아간 금동은 무회의 불진에서 뻗어 나온 은색 실에 감겨 몸을 빼내지 못했다.

흰둥이는 드디어 혈맥의 힘에 조금 적응이 되었는지 점점 용맹하게 싸우며 파풍의 병기가 일으킨 바람의 칼날을 집어삼켰다 내뱉었다.

금동과 흰둥이는 그나마 안전했지만 한립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삼시 중 두 개를 참한 대라 후기 수사는 그와 엄청난 차이가 났다.

한립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병령을 불러 시공간초월을 할 수 있다고 해도 금동과 흰둥이를 내버려 두고 혼자 떠날 수는 없었다.

이렇게 된 것 죽기 살기로 싸워보는 수밖에 없었다.

눈빛이 신중해진 그가 시간법칙의 힘을 무럭무럭 끌어올려 깨져나갔던 옥호봉 위로 수려한 비취색 산맥과 무성한 나무들을 그리고 옥대처럼 그 주위를 두르는 강을 만들어냈다.

“짧은 시간 안에 대라 초기에 이른 것도 신기한데, 영역마저 벌써 천인경의 경지에 이르렀단 말이냐?”

악청이 놀라 입을 열었다.

수련과 영역은 둘 다 수행을 높이려면 시간과 노력이 어마어마하게 들었는데 두 가지를 모두 고루 익혀 지금의 경지에 이른 것은 희귀한 일이었다.

운해 속에 균천일귀와 진언보륜이 융합되어 밝은 달과 눈부신 은빛이 드리웠다.

은색 광선이 악청을 둘러싸자 그의 수행이 유실되는 듯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방심했구나.”

이런 생각을 했을 때는 그의 사고마저 느릿해지려 했다.

서둘러 의식을 보호하고 공법을 운용해 황토색 비닐 갑옷에서 광채를 뿜어 은색 실에 대항하자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어도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있었다.

양손으로 수결을 맺은 한립은 발끝으로 땅을 박차고 고공으로 돌아와 악청과 마주 보았다.

36자루의 청죽봉운검이 그의 주변에 가지런히 배열되어 상공을 향해 굵직한 금색 뇌전 줄기들을 내뿜었다.

바람이 일고 뇌전 줄기들이 모여 만들어진 뇌운(雷雲) 속에서 금색 대문이 나타나더니 한립이 그 바깥에 서서 금빛을 받으며 손을 합장했다.

쿠쿵.

천문(天門)이 조금 열리고 주먹 크기의 뇌전 구슬들이 응결되어 한립의 손으로 흘러 들어갔다.

일고여덟 개의 뇌전 구슬이 사라졌을 때 한립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손바닥에서 농염한 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통천검진……. 이건 뭐 가면 갈수록.”

악청은 한립이 펼치는 검진을 알아보고 의혹을 드러냈다.

다음 순간 기이한 마음이 든 그는 비늘 갑옷에서 금색 주술문자들을 일으켜 은색 광선을 밀어내고 손에 든 검을 느릿하게 올렸다.

시간영역 안에서 한 걸음을 옮긴 그는 두 손으로 거검을 쥐고 한립을 향해 뻗었다.

7개의 산봉우리가 새겨진 검 위로 노란 구름이 끼더니 그 안의 봉우리들도 살아나는 것 같았다.

일촉즉발의 순간, 두 눈에서 금빛을 반짝인 한립은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베어라!”

두 손바닥 가운데 모인 금색 뇌전이 드디어 길게 자라나 장검이 되더니 악청을 향해 떨어졌다.

거대 검 그림자가 공간을 찢으며 악청 위로 떨어졌다.

그 순간 악청의 손에 들린 거검에서도 들불처럼 기운이 번지고 있었다.

쿠쿠쿠쿵!

거대한 산봉우리 허상들이 하나씩 나타나 금색 검 그림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릉!

첫 번째 산봉우리 허상은 붕괴되어 터져나갔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도 가루가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어서 다섯 번째 산봉우리는 둘로 갈라지기만 했고, 여섯 번째는 산 중턱에서 갈라지다 말고 금색 검 그림자를 막아냈다.

마지막 일곱 번째 허상이 나타나 충돌했을 때 결국 금색 검 그림자는 부서지고 말았다.

한립이 윽, 소리를 내려 고꾸라져 천문에 부딪혔다.

뇌전 장검을 들고 있던 두 손은 살점이 다 문드러져 하얀 뼈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악청은 그저 두 팔이 뻐근하다고 생각하며 거검을 회수했지만 검신의 산봉우리 문양 중 두 개가 완전히 부서지고 나머지도 흐릿해져 있었다.

“통천검진의 위력을 제대로 냈구나.”

악청은 처음과 달리 한립을 멸시하지 않고 칭찬하는 눈빛이었다.

“절세의 검진이라, 수행이 미비한 저는 10분의 1밖에는 위력을 내지 못한 겁니다. 제 위력을 냈다면 당신이 거기 서서 칭찬을 하고 있지는 못했을 텐데요.”

피를 토해낸 한립은 꾸역꾸역 허리를 펴고 섰다.

빼가 드러난 두 손에 하얀 안개가 어리며 피와 살을 재생하고 있었다.

악청은 이상하다는 생각에 급히 한립을 공격하지 않았다. 궁지로 몰아넣은 것 같은데 어떻게 저런 태도를 보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 자랑을 하는 것 같지만, 당신이 조금만 늦게 통제에서 벗어나 검진의 힘을 더 모을 수 있었다면 이번 공격은 성공했을 겁니다.”

한립은 과도하게 힘을 쓴 청죽봉운검들을 거두면서 말했다.

금색 뇌운과 천문도 연기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하하, 내가 칭찬 한마디를 해주었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놓는구나? 방금 그게 필살기였을 텐데, 지금이라도 얌전히 잡혀가는 것이 어떻겠느냐?”

“글쎄요. 제게 다른 검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도 받아볼 생각이 있으십니까?”

악청이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열려다 주위를 살폈다.

한립의 영역이 흩어지지 않고 은색 보름달이 그의 뒤쪽 고공에 떠서 선명하게 시간영역 파동을 발산하고 있었다.

“네 미숙한 천인경 영역이 질기기는 엄청 질기구나. 허나 상관없다. 내 수행이 백만 년 뒤로 퇴보한다고 해도 넌 내 상대가 될 수 없을 테니.”

“시간을 더 끌 생각이었는데 벌써 알아채셨군요.”

“마지막 기회다. 투항하지 않으면 오늘 넌 내 손에 죽을 것이다.”

악청은 확실히 처음에는 한립을 죽이기보다는 그냥 잡아갈 생각이었다.

“이것부터 받아보시고 이야기하시죠.”

한립이 입꼬리를 슥 끌어올렸다.

진작 엉망이 되어버린 옥호봉 폐허 속에서 금빛이 만발해 36개의 금색 뇌전 기둥이 하늘 높이 솟더니, 금색 뇌운을 이루고 그 안에서 위풍당당한 천문을 다시 불러냈다.

악청도 이번에는 놀란 기색이 스쳤다.

한립은 진작 옥호봉 밑바닥에 청죽봉운검 36자루를 남겨두고 날아올라 다른 36자루의 청죽봉운검으로 통천검진을 펼친 것이었다.

원래는 첫 번째 검진의 힘이 다했을 때 바로 두 번째 검진을 발동해 악청에게 불시에 중상을 입히려 했으나, 악청의 실력이 생각보다 강해서 그럴 기회가 없었다.

한립은 금색 천문 앞에 서서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콰르릉.

천문의 문틈이 서서히 열리고, 그 안의 뇌해(雷海)에서 알알이 금색 구슬들이 빠져나와 그의 손으로 몰려들었다.

아까의 행동을 다시 반복하는 한립을 보고 악청이 얼굴을 굳혔다.

앞에서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그는 한립의 통천검진을 상당히 경계하고 있었다.

한립의 육신만 버텨주면 뇌해(雷海) 속에서 거의 무한한 뇌전의 힘을 흡수해 공격할 수 있는 신통이었다.

당연히 그럴 기회를 주지 말아야 했다.

“허튼짓은!”

악청은 냉소하며 양손으로 거검을 쥐고 허공답보를 해 한립을 향해 달려들었다.

눈을 번득인 한립이 의식을 움직였다.

허공에서 쿠쿠쿵, 하는 소리가 들리고 고공에서 금색 불 구슬들이 별똥별처럼 떨어졌다.

펑!

악청이 첫 번째 불구슬을 검으로 갈랐을 때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불구슬들이 뒤따랐다.

하나하나는 검의 힘을 막을 수 없지만 세월신등의 화염과 단시류화의 시간법칙을 지닌 불구슬의 수량은 어마어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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