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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161화 (1,918/2,000)

2161화. 거의

*

“맞습니다. 저와 적몽 수사는 윤회전 것들이 잠입하는 것을 발견하고, 구원관과의 인연을 생각해 막으려 뒤따라 온 겁니다.”

곽연도 정색을 하고 헛소리를 했다.

순균진인은 당연히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시비를 가릴 때가 아니라 따지지 않았다.

적몽은 천정의 요직에 있는 데다 등 뒤에 적융도조가 버티고 있었고, 곽연은 당대 백조산 산주였다.

“좋습니다. 두 분이 윤회전과 무관하다면 한쪽으로 빠져 계시기를 권해드리지요. 윤회전 도적들을 처리한 후에 두 분을 내보내 드리겠습니다.”

순균진인의 태도에 적몽과 곽연이 암암리에 안심하고 대전 한쪽 구석으로 물러섰다.

둘 다 배경이 만만치 않다고 해도 구원관 안에서 사달이 났다가는 누가 도울 새도 없이 당할 수 있었다.

“곽연산주, 저 오색 병은 초대 백조산 산주인 백련선존이 제련한 물건이 맞습니까?”

적몽이 입술을 달싹여 전음을 보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선 그들은 서로에게 적의가 없어 보였다.

“백조산의 손길이 묻어난 물건은 맞습니다. 다만 백련선존께서는 원형을 만들었을 뿐이고 구원관에서 오랜 세월 가공을 해서 초기의 모양은 찾아볼 수 없군요.”

“구원관이 뭘 하려고 저런 보물을 만든 걸까요?”

“순균 저 여우 같은 늙은이가 무슨 생각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곽연의 말에 적몽은 윤회전 수사들을 보며 무언가를 생각했다.

한립은 순균진인이 말 몇 마디로 적몽과 곽연을 떼어놓는 것을 보고 대단하다고 여겼다.

그도 어서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시공간초월을 이용하면 어떻게든 이곳을 떠날 수는 있겠지만 남궁완이 어쩐 일인지 그를 잊어 적대하니 그와 함께 가려 들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무양, 교삼 등도 그것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한립은 서늘하게 무양을 보았다.

무양은 냉랭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수시로 입술이 달싹였다. 교삼, 육천풍 등과 상의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석공묵도 그들에게 집중하며 대화에 끼어 있었다.

그걸 본 한립은 머리가 뜨끈해졌다.

자신도 윤회전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 석공묵 같은 외부인과는 상의하면서 그를 배척한 것이다.

순균진인이 무양 등을 향해 무어라 말하려는데, 그가 입을 떼기 전에 윤회전 쪽에서 움직였다.

석공묵과 육천풍이 검은색과 남색 빛줄기로 변해 구원관 무리를 향해 쇄도했다.

“한 수사, 제게 곤경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으니 도움을 주세요.”

거의 동시에 교삼의 목소리가 한립의 귓가에 들렸다.

눈을 반짝인 한립은 교삼 등과 함께 대전 벽 쪽으로 접근했고, 멀리 양균자가 그걸 보고 손을 뻗었다.

벽의 금빛이 쉭쉭 소리를 내며 수많은 금색 촉수를 만들어냈다.

“우리 셋이 촉수를 막아 교삼에게 시간을 벌어줘야겠다!”

이렇게 소리친 무양이 먼저 날아가 손을 뻗었다.

챙!

한쪽 면에는 산수화가, 다른 쪽 면에는 별이 가득한 하늘이 새겨진 금색 거검이 그의 손에 들려 공간을 갈랐다.

찬란한 검빛들이 빠져나와 열댓 개의 촉수를 갈랐는데 절반을 베어내기 전에 검빛이 흐릿해졌다.

“영력과 법칙의 힘을 흡수하는 능력을 지닌 촉수이니 조심하는 것이 좋겠네!”

석공묵과 육천풍은 구원관 수사들을 상대하고, 교삼이 대전을 뚫을 방법을 시행하는 동안 흑의 여인은 뱀 모양의 장검 두 자루를 불러내 무양과 함께 촉수를 상대했다.

초승달 모양의 암홍색 검빛이 금색 촉수 몇 개를 갈랐지만, 확실히 흡수하지 못하는 힘이 없는지 윤회법칙을 함유한 검빛도 금방 어두워지다 흡수당했다.

그걸 본 한립은 두 팔에 힘을 주어 현규를 개방했다.

두 팔이 근육질로 변해 부풀어 오르고 열 손가락도 길고 두툼해져 강기와 같은 것을 금색 촉수에게 날려 보냈다.

부부북!

천을 찢어내는 것처럼 금색 촉수들이 뜯겨나가 정리가 되었다.

‘역시 영력과 법칙의 힘만 흡수할 뿐 물리적인 힘에는 속수무책이었었어!’

한립이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영력을 함유하지 않은 하얀 강기가 날아가 금색 촉수들을 궁지로 몰았다.

나머지 세 사람이 그걸 보고 놀란 얼굴을 했다.

그 모습에 교삼이 얼른 시선을 거두고 보라색 구슬을 소매에서 꺼내 두 손을 교차했다.

차칵!

보라색 구슬이 폭발하면서 진득한 액체를 내뿜어 벽에 달라붙었다.

교삼이 진지한 얼굴로 수결을 맺은 손을 내밀자 보라색 액체가 그녀의 체내로 들어가며 벽의 금빛을 흡수했다.

보라색 액체도 영력을 흡수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금빛을 잃는 구간이 넓어지는 가운데 벽에 홀연히 옅은 보랏빛이 떠올랐다.

“만독도조의 흡원독주(吸元毒珠)”

멀리서 순균진인이 그걸 보고 놀라 소리쳤다.

“하하, 우리가 구원관에 쳐들어오며 이만한 대비도 안 한 줄 아셨습니까?”

육천풍은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뇌균진인과 눈빛을 교환한 양균자가 흐릿하게 사라져 교삼이 있는 곳으로 향하려 했다.

“그쪽으로는 못 갑니다!”

남색 빛을 성대하게 일으킨 육천풍이 두 손을 양쪽으로 펼쳐 거대한 얼음벽을 만들어 대전 가운데를 가로막았다.

윤회전 쪽 사람들이 벽의 뒤쪽에 순균진인 등 구원관 세 사람과 적몽, 곽연이 벽의 앞쪽에 있었다.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변한 육천풍은 이 한 수로 상당한 기력을 소모한 듯했다.

쿵!

양균자가 빙벽을 때려보았지만 깨지지 않았고, 순균진인과 뇌균진인도 앞다투어 공격을 퍼부었다.

교삼은 보라색 액체를 조종하면서 금빛 못 모양의 선기를 날려 독액으로 물든 벽에 꽂아 넣고 있었다.

푸욱.

커다란 못이 한 뼘 정도 박히기는 했지만 구원궁 전체가 거대한 천절금암으로 지어져서 쉽게 뚫지 못했다.

그때 무양이 금색 못으로 날아들어 주먹을 내질렀고, 육천풍이 그의 자리를 메꾸며 금색 촉수들을 막았다.

벽이 울리고 금색 못이 다시 한 뼘 더 파고 들었지만 벽을 완전히 뚫지는 못했다.

“이런!”

무양이 눈을 크게 떴다.

“비켜 보시죠!”

누군가 그의 말을 끊으면서 날아왔다.

전신에 빛을 발한 한립이 1,700개의 현규를 모두 밝히고 금색 못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멀리 적몽이 눈을 번득였고, 곁의 곽연이 헛바람을 삼켰다.

그들은 처음 보는 광경이 아니었다.

“상척! 아니, 저자는 한립이로구나!”

적몽이 안색이 변하며 말하자 곽연과 순균진인이 한립을 쪽을 보았다.

한립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찬란한 주먹으로 금색 못의 머리를 내리쳤다.

땅!

* * *

그 시각, 구원궁의 어느 방 안.

대나무로 만든 탁자와 의자가 놓인 소박한 공간에 회색 장포를 입은 노인이 나타났다.

맑은 눈에 얼굴을 갸름했고 그리 덩치가 크지 않은 굽은 몸에 구원관 도포가 아닌 삼베옷을 걸치고 있는 노인이었다.

“명균전(明鈞殿) 벽을 부수다니.”

눈에서 기이한 빛을 번득인 회포 노인이 놀라워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조용히 시켜야 하겠구나.”

* * *

대전 안.

“어서 가죠!”

교삼은 벽이 뚫린 것을 보고 암홍색 빛줄기로 변해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벽에 퍼트려둔 독액을 거둘 틈도 없었다.

무양, 육천풍, 석공묵도 그 뒤를 따랐다.

구멍이 뚫린 곳에서 약간 거리가 있는 곳에 서 있던 흑의 여인도 그러려는데 느닷없이 열댓 개의 수정 사슬이 나타나 그녀를 감았다.

의식 사슬의 다른 쪽 끝에는 한립이 서서 두 손으로 수결을 맺고 있었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분노한 흑의 소녀가 외쳤다.

교삼 등도 깜짝 놀라 둔광을 돌리려 했지만 전력으로 출발한 터라 제때 멈출 수 없었다.

“완이, 미안하오. 무슨 이유로 날 잊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저들과 떠나게 둘 수는 없소!”

한립은 미안한 얼굴로 수결을 바꾸어 의식 사슬을 흑의소녀의 의식에 주입해 혼백을 감쌌다.

눈빛이 몽롱해진 소녀가 저항하지 않자, 그는 그녀를 화지공간 안으로 들여보내려 했다.

그때 눈부신 수정빛이 흑의소녀에게서 터져 나와 한립의 의식의 힘을 산산 조각내어버렸다.

한립이 미처 반응하기 전에 거대한 힘이 밀려들어 피를 토하며 바람에 휩쓸린 잡초처럼 튕겨 나가야 했다.

흑의 소녀가 정신을 차리고 수정빛이 사라졌다.

“여상, 괜찮은 겁니까?”

교삼과 무양이 그녀의 곁으로 돌아와 물었다.

두 사람도 놀란 얼굴인 게 방금 나타난 수정빛의 출처를 모르는 표정이었다.

“괜찮아요.”

“그럼 다행입니다, 갑시다!”

무양이 소녀를 잡아 바깥으로 끌었다.

나가떨어진 한립을 보는 교삼의 눈빛에는 망설임이 감돌았지만 벌써 금색 촉수들이 속속들이 날아들고 있었다.

순균진인 등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남색 빙벽에 막혀 어쩌지를 못하고 있었다.

“구원관 물건을 지니고 어디로 가려 하느냐?”

그때 노쇠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언할 수 없는 위엄이 서린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와 함께 금빛이 대전을 감싸 모든 사람을 가두었다.

교삼, 무양, 석공묵 그리고 순균진인까지 모두가 호박에 갇힌 파리라도 된 듯 움직이지 못했다.

금빛 속에서 한립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시간법칙의 힘으로 저항해 보려고 했지만 결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교삼 무리도 석공묵만이 검은빛을 약하게 반짝일 뿐 전부 거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을 구금한 금빛 속에서 회포 노인이 떠올랐다.

“노조!”

순균진인 등은 그를 보고 크게 기뻐했고, 나머지는 머리에 찬물을 들이부은 기분이 되었다.

저들이 노조라 부를 사람은 구원관에 구원도조 밖에 없었다.

회포 노인은 순균진인의 부름에 답하지 않고 손을 저어 흑의 소녀의 저물반지에서 강제로 오색 병을 불러들였다.

그런데 작은 병이 날아오르던 도중에 허공이 갈라지더니 암홍색 거대 손이 번개처럼 나타나 그걸 채갔다.

회포 노인은 덤덤히 소매를 저어 금색 거대 손으로 암홍색 거대 손을 상대했다.

기괴한 수결을 맺은 암홍색 거대 손에 여섯 개의 신비로운 주술문자가 떠올라 금색 거대 손을 막았다.

“흠…….”

주술문자들을 본 회포 노인이 동공을 수축했다.

암홍색 거대 손은 흑의 소녀, 교삼, 무양, 육천풍 그리고 석공묵 다섯 사람을 잡아 손바닥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아들이고 한립에게 다가왔다.

드디어 얼굴에 노한 기색이 스친 회포 노인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골동품 같은 금색 철 채찍이 나타나 암홍색 거대 손을 짝! 내리쳤다.

펑!

암홍색 거대 손은 채찍에 맞아 붉은 안개를 흩날리면서 손등을 맞아 아픈 듯 빠져나왔던 공간의 틈으로 돌아 들어가 버렸다.

이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 수행이 가장 높은 순균진인도 겨우 눈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회포 노인은 암홍색 거대 손이 나타났던 허공을 보며 말없이 서 있다가 손을 저어 남색 빙벽을 깨버렸다.

금빛이 사라져 순균진인, 적몽 등은 자유를 찾았는데 한립은 여전히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노조를 뵙습니다!”

순균진인 등이 금제가 가시자마자 허리를 숙여 예를 올렸다.

평소 오만한 적몽과 곽연도 회포 노인 앞에서는 마음이 불안해져서 서둘러 인사를 했다.

“순균, 구원관을 잘 돌보라고 맡겨 두었건만 이게 제대로 관리를 한 것이더냐?”

담담한 노인의 질문에 엄한 질책의 뜻이 담겨 있었다.

“제자가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습니다! 윤회전이 대규모로 침공할 것을 예상치 못하고 이런 사태를 일으켰으니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몸을 바르르 떤 순균진인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양균자와 뇌균진인도 황공한 얼굴로 벌을 청했다.

“됐다. 보는 눈이 많으니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너희들은 물러가서 구원관에 들어온 윤회전 인물들을 깨끗이 제거하거라.”

“예!”

순균진인 등이 당장 바깥쪽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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