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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160화 (1,917/2,000)
  • 2160화. 꿈속의 여인

    *

    극한의 냉기가 대전에 드리워 다들 이가 딱딱 부딪쳤다.

    양균자 쪽으로는 무양이 나타나 양손을 휘둘렀다.

    금색 주먹 허상들이 양균자의 머리로 떨어졌다.

    석공묵은 전력으로 영역을 발동해 순균진인을 연달아 뒤로 물러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순간, 교삼이 귀신처럼 제단 옆으로 이동해 무언가를 집어 던졌다.

    ‘저건!’

    대전 바깥에서 한립이 눈을 반짝였다.

    세월선부에서 교삼이 얻은 검은 철패였다.

    “현원흑령(玄元黑令)! 그걸 어떻게 네가!”

    삽시간에 냉소가 가신 순균진인이 급히 아래쪽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하하, 도사야. 나와 승부를 내지도 않고 상대를 바꾸려는 것이냐? 자자자, 아직 3백 합은 더 겨뤄야 할 것이야!”

    석공묵이 크게 웃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순균진인 전방에 거의 실체화된 악귀의 손이 불쑥 튀어나와 그를 멈추게 했다.

    육천풍과 무양도 최선을 다해 뇌균진인과 양균자를 막고 있었다.

    정혈을 뱉어 검은 철패에 흡수시킨 교삼이 양손으로 복잡한 수결을 맺었다.

    철패에서 검은 화염이 솟아 교삼의 조종에 따라 불의 검으로 바뀌더니 현천암광조를 갈랐다.

    난공불락인 것처럼 보이던 현천암광조가 검은 불의 검 공격에는 슥, 갈라져 길게 구멍이 생겼고 교삼이 그 틈으로 손을 뻗었다.

    제단 위로 암홍색 거대 손이 나타나 붉은색으로 변하고 있는 구름덩어리를 쥐려 했다.

    구원관 무리들이 그걸 보고 대노해 소리쳤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붉은 구름이 갑자기 부풀어 올라 암홍색 거대 손에 다 잡히지 않았다.

    얼굴을 굳힌 교삼이 입에서 백여 가닥의 윤회법칙정사를 품은 암홍색 빛덩이를 뿜어 거대 손으로 날려 보냈다.

    암홍색 거대 손도 크기와 기운이 무척 강해져서 제단 주변 공간이 웅웅 울렸다.

    거대 손이 빛을 강하게 발산하면서 붉은 구름을 잡았다.

    교삼이 미소를 짓기 전 압박을 받은 구름이 반짝거리면서 동시에 녹색, 남색, 노란색, 금색 네 가지 빛을 더 뿜었다.

    원래의 붉은 빛까지 다섯 가지 힘이 공명하고 있었다.

    꼭 다섯 개의 작은 태양이 떠서 현천암광조 공간 안을 가득 채운 듯했다.

    “안 돼! 구진아, 피하거라!”

    보호막 바깥에서 무양이 소리쳤다.

    교삼이 놀라 서둘러 뒤로 물러서면서 두 손에 검은 깃발과 은색 자를 불러내 두 겹의 보호막을 이루었다.

    그녀가 준비를 마쳤을 때 날카로운 칼날과 같은 오색 빛들이 두겹으로 된 보호막에 떨어졌다.

    챙강! 챙!

    보호막은 맑은 소리를 내며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깨졌지만 그 덕에 교삼은 현천암광조 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가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오색 빛이 내부에서 현천암광조를 완전히 부수고 바깥으로 뻗어 나왔다.

    현천암광조를 부수느라 힘을 거의 다 소모했음에도 석공묵, 순균진인, 무양 등 대전 내부의 수사들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운석처럼 쿵쿵 대전 벽에 떨어졌다.

    가장 가까이 있던 교삼은 벽에 구멍을 뚫고 박혔다 떨어지며 피를 토해야 했다.

    그나마 제단과 비교적 멀리 있던 흑의 여인이 영향을 덜 받아 튕겨 날아가다가 간신히 몸을 가누었다.

    한립은 멀리서 눈을 크게 뜨고 흑의 여인을 주시하고 있었다. 오색 파동이 흩어지고 폐허가 된 제단 위로는 오색구름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댕그랑 하며 오색 병이 바닥을 구르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화려한 문양과 얇은 목병, 그리고 동그란 몸을 지닌 병은 퍽 신비로워 보였다.

    ‘저 병은…….’

    한립은 몸을 바르르 떨 만큼 놀랐다.

    오색 병은 색깔을 제외하면 장천병과 똑같이 생겼던 것이다.

    또 다른 모조품이란 말인가?

    마량의 손에 있던 장천병 모조품을 생각하면 구원관의 실력에 또 다른 모조품을 만들지 못할 것도 없었다.

    대전 입구 쪽으로 튕겨 나갔던 흑의 여인은 마침 그쪽으로 굴러온 병을 보고 기뻐하며 달려들었다.

    동시에 소매를 저어 오색 빛으로 오색 병을 잡으려는데 보라색 뇌전과 붉은 화염이 대전 바깥에서 날아들어 동시에 흑의 여인의 암홍색 빛을 타격했다.

    펑!

    암홍색 빛을 터트린 공격 뒤로 곽연과 적몽이 날아들었다.

    곽연은 보라색 뇌전 구렁이 두 마리를 뿜어, 한 마리는 흑의 여인을 공격하게 하고 다른 한 마리는 붉은 화염을 향해 보냈다.

    붉은 화염을 감은 뇌전 구렁이가 입을 벌려 뇌전 빛으로 오색 병을 챙기려 하고 있었다.

    “꿈 깨시지요!”

    적몽이 입을 벌려 불어낸 붉은 화염으로 불 그물을 이루고 보라색 뇌전 구렁이를 포박했다.

    그물과 구렁이가 겨루는 동안 적몽이 손을 뻗어 아홉 마리 화룡이 감고 있는 구룡신화조 신통을 이용해 곽연을 가두었다.

    표정이 어두워진 곽연이 자신의 이마를 쳐서 복잡한 뇌전 문양을 드러냈다.

    방대한 뇌전 빛이 뇌전 문양에서 흘러나와 구룡신화조와 충돌했다.

    곽연과 적몽이 싸우는 동안 흑의 여인이 암홍색 고대 거울을 발동해 보라색 구렁이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은신을 했다고 내가 모를 줄 압니까!”

    적몽이 홱 고개를 돌려 수결을 맺었다.

    화룡신화조의 화룡들 중 두 마리가 입을 벌려 흑의 여인을 향해 불길을 날렸다.

    곽연도 손가락을 뻗어 흑의 여인이 있는 곳으로 열댓 줄기의 굵직한 보라색 뇌전을 쏘아 보내는 중이었다.

    흑의 여인의 은신술이 간파된 것이다.

    무시무시한 공격이 날아드는데도 흑의 여인은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웅!

    그녀는 정혈을 암홍색 거울에 뱉어 이전보다 10배는 밝은 수정빛으로 두 줄기 화염과 열댓 줄기 뇌전들을 막게 했다.

    수정빛은 색깔이 균일하지 않은 층들로 겹겹이 쌓여 있어 마치 미궁처럼 화염과 뇌전들을 멈춰 세웠다.

    이제 흑의 여인은 팔만 뻗으면 오색 병에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그걸 본 적몽이 구룡신화조로 더는 곽연을 상대하지 않고 붉은빛으로 변해 흑의 여인에게 드리웠다.

    아홉 마리 화룡들이 떨어져 나와 여인을 향해 화염을 분출해 고대 거울의 수정빛을 때렸다.

    곽연도 더는 적몽과 싸우지 않고 뇌전을 비처럼 떨구어 고대 거울의 수정빛을 깨려 하고 있었다.

    파삭.

    고대 거울에 금이 간 순간, 뺨이 붉어진 흑의 여인이 피를 토했다. 그러나 그녀는 고대 거울을 돌볼 틈도 없이 오른손으로 병을 잡으려 했다.

    아홉 마리 화룡과 백여 줄기의 뇌전이 사방팔방에서 달려들어 그녀의 보호막 주변으로 막대한 압박감을 발휘하고 있었다.

    중상을 입은 흑의 여인은 털썩 바닥으로 떨어지면서도 오른손으로 굳세게 병을 잡았다.

    세 사람의 싸움은 복잡해 보였지만 찰나의 순간 지나갔다.

    벽으로 나가떨어진 순균진인, 석공묵, 무양 등이 몸을 가눴을 때는 벌써 이런 상황이었다.

    위기에 빠진 흑의 여인을 보고 무양, 교삼의 안색이 급변했다.

    그들은 자신의 부상도 살피지 않고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흑의 여인을 구하려는 듯 쾌속으로 둔광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멀리 있었다.

    흑의 여인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삿갓이 날아가 결국 소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살짝 고개를 든 그녀는 사방팔방에서 다가오는 공격들을 보고 절망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팟!

    그 순간 그녀 옆에 파문이 일고 누군가 나타났다.

    바로 한립이었다!

    그는 소매 속에서 거의 실체화된 금빛을 뿜어 흑의 여인의 머리를 감쌌다.

    불경소리가 들리고 짙은 금빛 구름에 수많은 주술문자가 반짝이면서 한립과 흑의 여인을 감쌌다.

    “저건!”

    무양이 금색 구름을 보고 멈칫했고, 순균진인도 표정이 달라졌다.

    화룡, 뇌전들이 금색 구름 위로 떨어졌다.

    쿠쿠쿵!

    금색 구름은 한 겹이 벗겨진 듯했지만 여전히 요란한 금빛을 반짝이면서 갈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적몽과 곽연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평범한 공격이 아닌 전력을 다한 두 사람의 공격을 얇은 금색 구름이 막은 것이다.

    이때 쉬쉭, 하고 두 줄기 금빛이 적몽과 곽연을 갈랐다.

    적몽과 곽연이 서둘러 피하자 금빛은 뒤쫓지 않고 돌아가 무양의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

    무양이 제일 먼저 금색 구름 옆에 도달하고, 교삼, 육천풍 심지어 석공묵까지 날아들어 구름을 중심에 두고 보호하는 자세를 취했다.

    한립이 금색 구름을 거둬 다른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흑의 여인을 향해 다가섰다.

    “완이…….”

    늘 고요하던 눈빛이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변해있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입술이 잘게 떨렸다.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었던 여인이 눈앞에 있었다.

    “완이? 저를 부른 건가요?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는 감사하지만, 저는 여상이란 이름을 씁니다.”

    흑의 여인이 고운 미간을 찌푸리고 일어나 냉담히 말했다.

    붉은 단약을 꺼내 삼키니 얼굴의 붉은 기가 가라앉고 기운이 안정되고 있었다.

    “여상?”

    그제야 정신을 차린 한립이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수사, 여상 수사를 구해주신 것은 정말 감사해요.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시죠?”

    교삼이 한립의 행동을 보고 눈에 이채를 띠며 물었다.

    한립은 그런 교삼을 힐끗 보고 대답할 생각이 없는지 다시 흑의 소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흑의 소녀는 코웃음을 치며 무양의 뒤로 가 그의 시선을 피했고, 한립은 마음이 쓰려 무양을 보는 시선이 서늘해졌다.

    남궁완이 어째서 이곳에 나타났고 어째서 윤회전 사람이 되었는지, 또 어째서 벌써 대라경에 이른 것인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지만 한립은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지금은 다른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닙니다. 물건을 손에 넣었으니 철수합시다!”

    무양이 그런 한립의 시선에 미간을 좁히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대전 문이 닫혀 내부가 봉쇄되었다.

    다들 표정이 어두워졌고 문에서 가장 가까이 서 있던 적몽이 검의 형태를 한 불길을 날렸지만 금빛을 두른 문은 뚫리지 않았다.

    “대문에는 조사께서 친히 펼쳐두신 금제가 펼쳐져 있습니다. 발동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당신들이 떠나버리기 전에 성공했군요.”

    순균진인이 천천히 걸어와 무표정하게 모인 사람들을 눈에 담았다.

    양균자와 뇌균진인이 그 뒤에 서서 각각 금색 영패를 들고 술법을 펼치고 있었다.

    웅!

    대전 위쪽으로 유리와 같은 금빛이 번져 건물을 감쌌다.

    한립은 지붕을 올려다보고 인상을 굳혔다.

    불후금운으로 남궁완을 구하며 느낀 것인데 대전 내부에 무형의 힘이 작용해서 법칙의 힘을 운용하기가 곤란했다.

    무양 등 대라경 수사들이 싸우면서도 영역을 몇 장까지 밖에 방출하지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순균진인은 윤회전 인물들을 쭉 둘러보다 한립과 육천풍에게 시선을 옮겼다.

    “육천풍, 윤회전에서 무엇을 받아먹고 천정을 배반한 것입니까? 봉천선사까지 살해하고 말입니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회유된 것이 아니라 저는 원래 윤회전 사람이었습니다.”

    육천풍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생각지도 못했건만……. 윤회전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단 말이군요. 잘 되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누구도 살아서 빠져나갈 수 없을 테니!”

    “하하, 그럴 능력이 된다면 그러시지요!”

    순균진인의 말에 육천풍이 웃음을 터트렸다.

    순균진인은 더는 그와 대화를 나누지 않고 적몽과 곽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적몽 수사, 곽연 산주. 두 분이 구원관 심처까지 숨어들어 본관의 보물을 훔치려 할 줄이야. 설마 두 분도 윤회전과 작당을 한 것입니까?”

    “오해 마세요. 윤회전과 저희는 어떤 관계도 아닙니다. 그저 병이 윤회전 수중에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막으려던 것이지 보물을 훔칠 마음은 아니었어요.”

    눈을 데구루루 굴리던 적몽이 웃으면서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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