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9화. 혼전
*
돌연 몸을 떤 묘법선존이 입에서 왈칵 피를 쏟아내고 아래쪽 연꽃 왕좌로 떨어져 내렸다.
고공의 남색 검기들과 안개가 흩어지고 있었다.
묘법선존이 몸을 가누기 전에 연꽃 왕좌에서 은색 불길이 솟아 거대한 꽃잎을 오므리듯 그녀를 감싸려 했다.
다행히 묘법선존의 반응이 빨랐기에 화염을 피할 수 있었다.
은빛 연꽃이 공격에 실패하자 불새로 변해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묘법선존은 서둘러 손을 뻗어 남색 선검을 불러들이려 했지만 고공에서 내려온 것은 선검이 아닌 화사한 얼굴의 소녀, 금동이었다.
금동은 남색 빛을 번쩍이는 선검을 단단히 손에 쥐고 있었다.
“네가 어떻게?”
묘법선존이 놀랄 때 뒤에서 한립의 신영이 귀신처럼 나타나 검으로 등을 찔렀다.
치지직!
강렬한 뇌전 실들이 등을 타고 가슴까지 흘러들어 묘법선존은 어쩔 수 없이 비명을 질렀다.
“금동이 지하에 숨어 있는 줄 알고 연꽃 왕좌를 내려놓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금동은 위쪽에 있었습니다.”
한립이 느긋하게 말했다.
“내 현상선검(玄霜仙劍)을 조종할 수 있을 리 없어!”
입가에 흐르는 피도 닦지 못하고 묘법선존이 소리쳤다.
“누가 이따위 얼음 덩어리를 탐을 낸다고! 무겁기는 돌덩이 같고 손만 시린 거 줘도 안 갖는다!”
금동이 그 말에 어이없다는 듯 말하며 선검을 묘법선존 발밑으로 던져버렸다.
묘법선존은 돌아온 검을 보고 속이 쓰렸다.
매끈하던 검신이 누군가 물어뜯기라도 한 것처럼 뜯겨나가 있었다.
“손 시려 죽는 줄 알았네!”
차갑게 식어 파랗게 변한 손을 비비면서 금동은 묘법선존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오늘은 방심해 당했지만 후에 백 배, 천 배로 갚아줄 것이다.”
이를 악문 묘법선존이 분노를 표했다.
이에 금동이 눈을 부릅뜨고 맞받아쳐 주려다 묘법선존의 몸이 순식간에 얼음 결정으로 변하더니 한립과 가슴에 박힌 청죽봉운검까지 얼려버린 것을 보았다.
이어서 현란한 남색 빛이 얼음 조각에서 번쩍이다 주위로 퍼져나갔다.
터져나간 남색 얼음 알갱이들이 눈보라를 만들어 주변 천 리를 휩쓸었다. 오래지 않아 눈이 소복하게 덮인 겨울이 도래한 것 같았다.
한립과 금동이 그 속에서 나타나 사방을 살폈지만 묘법선존과 그녀의 연꽃 왕좌 그리고 현상선검이 보이지 않았다.
“놓쳐버렸어요!”
“우리도 여기서 싸우고 있을 시간이 없었으니 괜찮다. 묘법을 빨리 쫓아 보낸 데는 네 공이 크고.”
한립은 짜증을 내는 금동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려다 지금의 그녀는 예전의 꼬마가 아니라는 생각에 손을 거두었다.
금동은 그가 곤란해하는 것을 보고 씩 웃음 지었다.
“전속력을 다해 교삼 일행을 쫓을 것이다. 넌 화지동천에 들어가 쉬고 있거라.”
“묘법선존 때문에 시간을 지체해서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데요?”
“일단 사라진 방향으로 쫓아가면서 흔적을 찾아볼 요량이다.”
한립은 금동을 화지동천 안으로 들여보내고 홀로 날아갔다.
검은 가면으로 은신 신통을 펼치면서 교삼 일행의 흔적을 따라갔는데, 그들이 전혀 행적을 감추려 하지 않아 추격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잠시 후, 어느 대전 인근에 이른 그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굉음을 들었다.
금제 때문에 구원관 내부에서는 의식으로 탐색이 힘들어서 한립은 직접 대전 정문으로 다가가 살펴보았다.
구유마동을 운용한 그는 바위 뒤에 숨어 기둥 위에 서 있는 홍의인과 흑의인을 발견했는데 적몽과 곽연이었다.
두 사람 다 대전 안쪽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어 그가 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물론 한립의 검은 가면이 그만큼 은신효과가 뛰어나기도 했다.
한립은 두 사람을 놔두고 소리 없이 지하로 스며들어 정문 방향으로 서서히 이동했다.
이제는 건물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온갖 선기들이 날아다니고 영기의 빛이 폭발해 뿌연 와중에 열 명이 싸우고 있었다.
윤회전 쪽에서는 토끼 머리 가면, 무양, 육천풍, 교삼, 흑의 여인 다섯이 있었고, 구원관 쪽에서는 순균진인과 한립도 본적이 있는 부관주 양균자와 뇌균진인 세 명이 있었다.
순균진인은 공중에서 토끼 머리 가면을 쓴 자를 막는 중이었고, 양균자와 뇌균진인은 거대한 진법 안에 앉아 그 안의 금색 제단과 제단 주위 금인(金人)들을 조종했다.
갑옷을 입고 커다란 도검을 든 금속 인간들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진법을 보조해 기다랗게 금빛을 날렸다.
강력한 금속성 법칙의 힘을 지닌 금빛에 무양, 육천풍, 교삼 그리고 흑의여인 넷이 덤벼드는데도 쉽게 밀리지 않았다.
금색 제단 위에는 눈부신 금빛을 뿜어내는 보물 같은 게 떠 있었는데, 너무 밝아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서 놀라운 영력 파동이 느껴지고 주변의 금색 구름이 번쩍일 때마다 황토색으로 바뀌어서 육중한 흙 속 법칙의 힘을 드러냈다.
더 기겁할 일은 구름덩어리가 황토색에서 녹색으로 변하면 나무 법칙 파동이, 붉은색이나 남색 등으로 변하면 다른 법칙 파동들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5명의 윤회전 수사들은 제단 위 구름에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사방팔방에서 어떻게든 접근하려 했고, 구원관 쪽 세 사람은 그걸 막으려고 분투하고 있었다.
“구름 속에 무슨 보물이 있기에 오행 법칙의 힘을 품고 있단 말인가!”
한립도 구름의 현묘한 변화를 보며 깜짝 놀랐다.
품계가 높은 선기 일수록 품고 있는 법칙의 힘은 정순한 편이었는데, 저건 세월신등 이상의 힘을 내보이면서 다섯 가지 법칙을 품고 있었다.
“금동, 제혼, 흰둥아 저것이 뭔지 알아보겠느냐?”
그는 보고 있는 상황을 화지공간 안에 투영해 전음을 보냈다.
금동과 제혼은 놀라면서도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는데 흰둥이가 뭐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흰둥이가 아는 것이 있는 것이냐?”
“아버지의 혈맥의 힘을 계승하면서 생전 기억 일부도 또 함께 따라왔는데 백택 전하와 다른 사람들이 각기 다른 법칙의 힘을 지닌 선기를 제련하려다 실패했던 기억이 있어요. 어떤 선기였는지는 자세히 떠오르지 않고요.”
흰둥이의 답변에 한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구름 덩어리에서 눈길을 떼고 흑의 여인과 토끼 가면을 쓴 사람을 쳐다보았다.
전력을 다하고 있는 흑의 여인의 수행은 이미 대라 초기에 이르러 암홍색 빛을 두르고 있었다.
그 암홍색 빛은 어둡고 밝은 면이 여섯 겹으로 나뉘어서 무지개 같기도 했다.
흑의 여인이 네다섯 명의 금인들과 싸우기 위해 들고 있는 암홍색 거대 거울은 무슨 보물인지 위력이 굉장해서 거기서 나오는 암홍색 수정빛이 금인들의 금빛을 녹여버렸다.
“윤회법칙!”
흑의 여인이 발산하는 윤회법칙은 교삼의 것과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교삼의 윤회법칙이 매섭다면 흑의 여인의 윤회법칙은 그보다는 변화무쌍했다.
무양, 육천풍, 교삼도 각자의 신통을 발휘해 금인들과 싸우면서 점점 승기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저 제단 주위의 금색 진법이 고명했고, 구원궁과 연계되어 끊임없이 금속성 법칙의 힘을 공급받았기에 금인들을 무찌르지 못할 뿐이었다.
* * *
대전 안의 쌍방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래도 가장 격렬하게 싸우는 것은 토끼 가면과 순균진인이었다.
엄숙한 얼굴로 금빛 보호막을 두른 순균진인이 손발을 움직일 때마다 수천수만의 검 그림자들이 날아가 공간을 갈랐다.
토끼 가면은 검은 그림자를 겹겹이 두르고 만화경(萬華鏡)처럼 각종 환영을 만들어 순균진인의 무시무시한 검기들을 잡아먹었다.
눈을 깜박인 한립은 태세선부에서 본 적이 있는 광경이라는 생각을 했다.
“석공묵, 윤회전에 들어가 구원관을 적으로 돌리다니! 구원관과 마역 간의 전쟁이라도 다시 치를 셈입니까!”
“구원관을 적으로 돌렸다고? 난 내 아내와 자식을 찾으러 온 것이다. 도사 놈이 예전에는 괜찮게 봐줬더니만 나이가 들수록 성격이 영 별로가 되었구만. 어서 쓰러지란 말이다!”
순균진인의 노호성에 토끼 가면이 하하 웃으며 두 손을 저었다.
환영들이 열 배는 진해져서 열 장 규모의 환영영역을 이루고 순균진인을 압박했다.
“당신…….”
순균진인은 급히 수결을 맺어 검 그림자들을 몇 배로 밀집시켜 금색 영역을 이루었지만 그 규모는 8장밖에 되지 않았다.
쿠르르.
‘역시 그 늙은이였어…….’
대전 밖, 한립은 속으로 생각했다.
교삼이 석공묵을 데려가더니 무슨 소리를 했는지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다.
“그런데 저들이 영역을 협소하게 펼치는 이유가 뭘까?”
한립은 이상하게 여기면서 이유를 짐작했다.
“하하. 속이 시원하구나! 이렇게 통쾌한 게 얼마 만인지!”
석공묵은 좋아하면서 환영영역 안에서 검은 손톱이 자라난 열댓 개의 검은 짐승 발들을 만들어 순균진인을 가르려 했다.
그러자 안색이 달라진 순균진인이 수결을 맺은 손을 뻗었다.
그의 영역 안에서 금색 검 그림자들이 날아가 검은 발을 막으려 했지만, 환영처럼 스쳐 지나가 막지 못했다.
쉬쉬쉬!
피가 사방으로 튀고 뼈가 드러날 만한 깊은 자상을 입은 순균진인이 비틀비틀 물러섰다.
“맥빠지게 왜 이렇게 힘이 없는 것이야!”
석공묵은 지루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관주!”
양균자와 뇌균진인이 그걸 보고 놀라 소리쳤고, 그들이 조종하던 진법이 느슨해졌다!
“교삼!”
눈을 빛낸 무양이 두 손을 풍차처럼 돌려 수결을 맺고 큰 소리로 교삼을 불렀다.
작열하는 금빛 속에 금색 고리가 떠올라 진언보륜을 응결했다.
교삼도 무양이 왜 부르는지 아는 듯 양손으로 수결을 맺어 겹겹이 암홍색 빛을 반짝이며 영역을 이루었다.
두 사람의 영역이 융합되어 공명하고 있었다.
퍼펑!
교삼에게서 6개의 구멍이 뚫린 집채만 한 암홍색 고리가 떠올라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웅장한 기운을 내뿜었다.
무양이 그런 그녀 옆으로 와서 등뒤의 진언보륜을 암홍색 고리와 중첩시켰다.
쿠쿠쿠…….
진언보륜을 품은 암홍색 고리가 두 배로 커지고 금색 문양들이 생겨나 시간법칙의 힘과 윤회법칙의 힘을 발산했다.
대전 바깥의 한립은 놀라면서도 미미하게 실망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교삼과 함께 시간법칙과 윤회법칙이 공명하게 했는데 무양도 가능했던 것이다.
“가라!”
교삼과 무양은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암홍색 고리가 데굴데굴 굴러 산을 쓰러트리고 바다를 뒤집을 기세로 금색 제단을 향해 다가갔다.
펑! 펑! 펑!
전방의 금인들이 썩은 나무토막처럼 부러져 암홍색 고리를 막지 못했다.
양균자와 뇌균진인은 안색이 달라졌지만 주의력이 분산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서둘러 수결을 바꾸었다.
사실 대라 후기의 경지에 이른 그들이 정말 주의력이 분산되는 경우는 얼마 없었지만 석공묵이 수련한 심마법칙의 영향을 받아 이런 일이 생긴 것이었다.
교삼과 무양 등은 석공묵의 신통에 대비해 방어용 보물을 몸에 지니고 있었지만 양균자와 뇌균진인은 모르고 당한 것이다.
진법 안 금인들은 몸에 금색 문양이 생기고 크기가 커지더니 파도 소리를 내며 도검을 휘둘러 거대한 금빛 그물망을 형성해 암홍색 고리 앞을 막으려 했다.
쿠르릉!
충돌로 금빛과 붉은빛이 터져 나와 뿌연 공간 폭풍을 일으켰다.
휘이잉.
회전하는 암홍색 고리는 맷돌처럼 금빛 그물망을 뜯어버렸고, 양균자와 뇌균진인은 마음이 급해졌다.
교삼과 무양이 미리 합을 맞춰온 법칙 공명의 위력을 막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크게 당황한 얼굴은 아니었다.
암홍색 고리가 번득 제단에 도달하려는데 주위에 파동과 검은빛이 몰려들어 새까만 원형 보호막을 이루고 제단을 보호했다.
암홍색 고리도 검은 보호막에 부딪혀 댕! 소리를 냈다.
보호막은 움푹 들어갔으나 깨지지는 않았다.
“윤회전이 대군으로 구원관 곳곳을 공격해 인원을 분산시키고 진짜 고수들은 암암리에 구원궁을 공격하다니! 허나 현원암광조(玄元暗光罩)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조사께서 현원도조를 청해 설치한 것이라 너희 실력으로 부수는 것은 어림도 없을 것이야!”
공중에서 뒤로 물러서며 붉은 단약을 삼킨 순균진인은 전신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가며 냉소했다.
그때 뇌균진인 앞에 육천풍이 전광석화처럼 나타나 어떤 동작도 하지 않았는데 수많은 남색 빛이 분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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