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6화. 다른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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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른 곡린의 등에 빼곡하게 금빛들이 나타나더니 날카로운 가시로 변해 한립이 손을 대기 어렵게 만들었다.
한립도 더는 주먹을 내지르지 않고 청죽봉운검 9자루를 불러내 하나로 합치고 산만한 거검을 곡린의 등에 내리꽂았다.
쿠아앙!
금빛과 굉음이 폭발했다.
나가떨어지는 곡린은 금색 가시 대부분이 부러져 피를 흘리며 주변 영역에 부딪혀야 했다.
가시가 부러졌을 뿐 몸은 멀쩡해 보였지만 도천신뢰를 머금은 청죽봉운검의 힘에 속이 온전할 리 없었다.
대라경 서금선의 껍데기는 거의 부술 방법이 없을 정도로 단단했지만 일단 속살로 충격이 전달되기만 하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신뢰의 힘이 몸속으로 파고들어 내장을 진탕으로 만들고 있었다.
안 그래도 내상이 있던 몸에 도천신뢰의 힘이 더해져 영역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령력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는 절망스러운 눈빛이 스쳤지만 애써 힘을 내 반격을 시도하려 했다.
그때 금색 빛덩이가 고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도저히 피할 수 없어 눈을 부릅뜬 곡린은 두 줄기 기다란 금빛에 갈려 금색 피를 쏟았다.
곡린을 세 동강으로 잘라낸 금비의 정체는 아주 조그만 서금충들이었다.
대신 금동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한립은 어찌된 일인지 눈치챘다.
무수히 많은 꼬마 서금충들이 곡린의 갈라진 잔해에 달라붙어 미친 듯이 포식하고 있었다.
곡린의 잔해가 줄어가는 와중에도 그 역시 수많은 작은 서금충으로 변해 사방팔방으로 달아나려 했다.
그걸 본 한립이 가만있지 않고 영역 안의 금빛으로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어 곡린이 흩어져 만들어낸 작은 서금충들을 휘감고 달아나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달아날 길이 막힌 곡린은 돌아서서 금동이 변한 작은 서금충들과 맞붙는 수밖에 없었다.
한립은 그 모습을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 처음 서금충을 손에 넣었을 때 서로 달려들어 잡아먹기 바쁘던 그 조그만 녀석들이 떠올랐다.
곡린은 한립에게 중상을 입은 데다 금동에게 기습을 당해 수행이 높으면서도 잡아먹히고 있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한립은 마무리가 되어 가는 것을 보고 수결을 맺어 시간영역의 빛을 강화했다.
그러자 곡린이 변한 서금충들의 속도가 훨씬 느릿해졌다.
“고마워요, 아저씨!”
금동의 목소리가 곤충 떼 속에서 웅웅 들리다 사라졌다.
곡린이 변한 서금충들은 시끄럽게 울면서 어떻게든 한데 모여 하나가 되려고 하고 있었다.
“당신 말대로 어차피 하나였으면, 금동의 일부가 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한립이 지켜보다 손을 저어 곡린의 서금충들에게 금색 뇌전을 뿌렸다.
그렇게 정신을 잃고 튕겨 나가는 곡린의 서금충들을 향해 금동 서금충들이 달라붙어 열심히 갉아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 서금충 무리가 고요해지고 금빛을 내뿜으며 뭉쳐 여인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금동은 말없이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육백여 개의 금빛을 반짝였다.
한립은 곡린을 잡아먹어 원기가 크게 늘어난 금동이 힘을 연화시킬 수 있게 푸른 깃발을 날려 보호막을 치고 지켜주었다.
휘몰아치는 금빛 속에서 금동의 몸에는 금빛이 하나씩 늘어 별안간 칠백여 개가 되었다.
기운이 부쩍 강해진 그녀를 보고 한립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가 강해질수록 그에게 큰 도움이 될 터였다.
한립이 단약을 삼키고 공법을 운용하는 동안 금동의 선규는 더욱 많아져서 이제 팔백여 개가 되었다.
거의 대라 초기의 극한이라 볼 수 있었다.
이대로 대라 중기에 이르는 걸까?
금동은 선규가 839개까지 이르렀을 때 금빛을 거두고 눈을 떴다.
대라 중기에 이르려면 선규의 수가 충분해야 함은 물로 악시까지 참해야 해서 여기서 멈춘 듯했다.
“금동, 네가 무사한 것을 보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한립이 금동 곁의 금제를 거두고 그녀를 살폈다.
“아저씨, 정말 너무너무 오랜만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여기 있어요?”
금동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당연히 너를 구하러 왔지, 뭐 하러 왔겠느냐. 나뿐 아니라 흰둥이도 왔단다.”
한립은 손을 저어 비휴 형태의 흰둥이를 불러주었다.
“누님! 나 보고 싶었죠!”
흰둥이는 화지공간을 빠져나오자마자 네 발로 뛰어 금동을 향해 달려들었는데, 눈물 콧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거기 서 있지 못해!”
금동은 긴 다리로 흰둥이의 머리를 밀어 오물이 자신의 몸에 묻는 것을 막았다.
“아저씨, 내가 칠칠치 못하게 구원관 놈에게 잡혀서 걱정을 끼쳤죠.”
금동이 흰둥이와 한립을 보며 눈빛이 가라앉았다.
“우리가 한두 해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고, 그런 말 할 것 없다.”
한립은 손을 내저었다.
“그 말도 맞네요!”
금동이 화사하게 웃는데 꽃이 만발한 것처럼 주변이 밝아졌다.
그걸 본 한립도 내심 금동의 용모를 칭찬했다.
자신이 만났던 여인 중 지금의 금동과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혔다. 아직 이르지만 자령과도 경쟁할 만했다.
“누님이 무사해서 너무 다행이에요!”
안간힘을 써서 발끝에서 벗어난 흰둥이가 복슬복슬한 머리통을 금동에게 비비며 낑낑거렸다.
“금동, 구원관 귀곡에 잡혀 있는 줄 알았는데 넌 어찌 여기 있던 것이냐?”
“귀령자 그놈이 날 비옥뢰롱(翡玉牢籠)에 가두고 무슨 보제연 선물로 보내려고 했어요! 며칠 전에 갑자기 사라졌기에 원기를 상하는 것도 감수하면서 우리를 물어뜯어 탈출했는데, 여기 길을 몰라서 무작정 가다가 보니 여기까지 온 거예요.”
한립의 질문을 들은 금동이 씩씩대며 답했다.
“그랬구나. 일단 너를 찾기는 했다만 안전하게 구원관을 떠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 * *
구원궁은 구원관의 핵심과 다름없는 곳으로 종문 내 금제의 중추와 조사당이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그런 곳이 윤회전의 맹렬한 공격을 받고 있었기에 구원궁 도처에 시간금제가 개방되어 금색 결계가 펼쳐졌고, 바깥은 수천 명의 장로와 핵심 제자들이 지키고 있었다.
가면을 쓰고 미친 듯이 달려드는 윤회전 수사들을 상대로 처음에는 구원궁 장로와 제자들도 결계 바깥에서 전면전을 펼쳤지만, 사상자가 많이 나오다 보니 결계 안으로 들어와 다른 장로와 제자들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윤회전도 만전을 기하고 쳐들어 왔기에 구원궁 공격 전에 다수의 구원관 수사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해 각지에 매복해둔 인원으로 시간을 끌고 있는 터라 구원궁은 궁지에 몰렸다고 볼 수 있었다.
* * *
“시간이 없으니 어서 방어막을 뚫어야 이번 임무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고공에서 천성존자가 나타나 평소의 나른한 표정이 아닌 진중한 표정으로 명했다.
그의 손에 쥔 수백 개의 수정돌이 박힌 은색 장창에서 붉은빛이 빠져나와 하늘을 가르는데, 하얀 구름을 뚫고 붉은 매 떼가 날아가는 듯했다.
하늘에서 붉은 비처럼 공격이 쏟아졌다.
쿠쿠쿠!
“이 비열한 배신자 새끼!”
공격을 받는 결계 안쪽에서 구원관 장로의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천성존자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 * *
바깥에서 함성이 들려오는 동안, 섬세하게 꾸며진 어느 구원궁 화원 안에 은색 진법이 나타나 다섯 사람을 토해냈다.
그중 세 명이 윤회전 검은 가면을 쓰고 있었고, 각각 교룡, 원숭이, 검은 토끼 모양이었다.
“하하, 예상대로입니다. 이 용담호혈 깊은 곳이 반대로 가장 평온하군요.”
원숭이 가면을 쓴 철탑 같은 거구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구원궁은 구원관에서도 매우 중요한 곳이라 평소에도 드나드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요. 다만 이곳에서 마주칠 인물들은 하나 같이 대단한 신분을 지녔다는 소리니 신중하게 움직여야 할 거예요. 괜히 들켜서 싸우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일 없게 말입니다.”
교룡 가면을 쓴 여인이 당부하며 안심이 되지 않는다는 듯 검은 토끼 가면을 쓴 일행을 쳐다보았다.
그는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정신없이 뭐라 궁시렁거리고 있었다.
“구원궁 안에서는 의식으로 탐색을 할 수 없으니 육 수사께 안내를 부탁드려야겠습니다.”
원숭이 가면을 쓴 무양이 등 뒤의 사내에게 말했다.
뒤에는 평범한 체격에 평범한 용모를 지닌, 봉천선사를 죽였던 육천풍이 서 있었다.
“휴, 저도 구원궁은 몇 번 와본 적이 없어서 여기 궁 수사에게 의지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안심하세요. 물건이 감응 범위로만 들어오면 반드시 위치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온화한 여인의 목소리가 측면에서 들려왔다.
검은색 치마를 입고 검은 천을 드리운 여인은 살짝살짝 드러나는 목 피부가 백옥처럼 고왔다.
교삼도 여인의 신분은 몰랐지만 그녀가 기이한 공간에서 윤회전 전주를 보았을 때, 다리 밑에 있던 여인이라는 것은 알아보았다.
“어서 갑시다.”
무양의 말에 육천풍이 고개를 끄덕이고 앞장섰다.
그들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덤불 뒤에 기이한 빛이 어리고 두 사람이 나타났다.
새까만 머리카락을 높게 올려 묶고 이마 앞으로 흰머리 한줄기를 남긴 준수하게 생긴 사내는 백조산 산주 곽연이었고, 그와 동행한 새빨간 치마를 입은 여인은 적몽이었다.
“저 윤회전 것들이 무슨 생각일까요? 아니 갑자기 미쳐서 구원관에 쳐들어온 건 아닐 것 아닙니까.”
적몽은 교삼 무리가 떠난 방향을 보며 소곤거렸다.
“구원관이 그렇게 허약했으면 천만년 동안 우리 백조산이 넘어서지 못할 리 있겠습니까? 저들의 목적은 점령이 아니라 아무래도 우리가 이곳에 온 것과 같은 걸 겁니다.”
“그걸 찾으러 왔다고요?”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원할 물건이 그것 말고 또 있을까 싶군요.”
“곽 산주, 백조산에서 만든 물건이라던데 정말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모르시나요?”
“백조산 전대 산주께서 수십만 년 전에 만든 겁니다. 거의 얼굴을 보이시지 않는 구원관 노조가 천문학적인 대가를 치르고 제련을 부탁했다고 하고요. 용기류의 물건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그 용도는 알아낼 방도가 없었습니다.”
곽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노조가 직접 나서 제련을 부탁하고 전대 백조산 산주가 직접 제련을 했다면 비범한 물건이기는 할 텐데, 이미 수십만 년 전 물건이라면서 이제와 천정에 조사를 부탁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적몽은 더 이해가 가지 않는지 캐물었다.
“전대 산주께서도 자신이 제련한 물건이 대체 무엇에 쓰이는지 몰라 답을 구하다 결국에는 그것 때문에 심마가 발작하고 말았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곽연은 말을 멈추고 독한 눈빛으로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전대 백조산 산주는 그의 스승으로 그에게 베푼 은혜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컸는데, 삼시를 베어내다 심마 때문에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그 일이 없었으면 지금쯤 백조산도 도조가 떡 버티고 앉아 선계에서의 지위가 천지차이였을 것이다.
“당시 산주께서 구원관이 도모하는 바가 크다면서 제게 한 시도 눈을 떼지 말고 지켜보라 하셨습니다. 구원관이 그 물건을 제련해 선기를 만들려 하면 반드시 내막을 알아내라고요.”
“다시 제련한다고요? 그게 무슨 뜻이죠?”
“백조산에서 만든 건 절반의 공정밖에 끝내지 않은 용기입니다. 그 안에서 무엇을 담을지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요. 구원관에서 비밀리에 제련을 해왔었는데 아마 얼마 전에 성공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구원관의 힘을 동원해서도 수십만 년이 걸려 완성한 보물이란 소리 아닙니까?”
적몽이 깜짝 놀라워했다.
“제련 막바지에 대단한 천기 이상이 발생했는데, 구원관이 감추기는 했어도 천정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을 겁니다. 그러니 제가 조사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바로 회신이 온 거고요. 원래는 봉천선사와 내가 그 일을 맡아 조사하고 있었는데. 윤회전의 계책에 당해 이 꼴이 나고 만 겁니다.”
“저들을 바로 쫓지 않을 건가요?”
“서두르지 맙시다. 저들도 이곳에서 의식을 퍼트릴 수 없겠으나 저기 검은 삿갓을 쓴 여인의 기운이 괴이한 게 가까이 따라붙으면 발각될 것 같아요.”
곽연은 십여 초를 더 기다린 후 적몽과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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