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5화. 서금선 쟁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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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찾았더냐?”
한립이 흰둥이와 남안을 보았다.
“보물을 잔뜩 찾았어요! 귀령자 그놈이 많이도 모아놨더라고요!”
흰둥이는 두 주먹을 붕붕 돌리면서 흥분해 말했다.
남안도 무척 기뻐 보였지만 얼른 감정을 가라앉히고 저물법기를 꺼내 두 손으로 한립에게 바쳤다.
“제가 수색한 세 곳의 물건입니다.”
“10분의 1은 가져가세요. 수색한 보수라 생각하면 될 겁니다.”
“고맙습니다.”
저물법기 안의 보물들의 가치를 생각하면 10분의 1만 챙겨도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흰둥이 너는…….”
“주인님, 이건 제가 찾은 거라고요. 빼앗아 가시면 안 돼요!”
한립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흰둥이가 손목의 팔찌를 쥐고 고개를 저었다.
“안다. 허나 내 근래 들어 선원석이 부족하니 절반은 네가 가지고 나머지는 내게 주었으면 좋겠구나.”
한립은 쓴웃음을 흘렸다.
무려 절반이란 말에 환호성을 내지른 흰둥이가 또 다른 저물법기를 꺼내 물건들을 옮겨 담았다.
“주인님, 도움을 청할 일이 있어요.”
제혼이 옆에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저기로 같이 가주세요.”
제혼을 따라가 보니 석실 진법 중앙의 검은 수정관 옆이었다.
수정관 안에는 검은 부적들이 덕지덕지 붙은 백골 유해가 놓여 있었다. 백골의 눈알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핏빛 화염이 지글지글 끓었다.
“괴이한 물건이구나.”
“아마 만악해(万惡骸)일 거예요! 악한 천성을 타고난 시체와 혼백 만구를 모아 비술로 제련해 악시를 베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그런 물건이…….”
“이 만악해가 있으면 주인님, 저 그리고 흰둥이와 금동이 악시를 베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다만 수정관이 고정되어 있어 만악해를 손상시키지 않고 옮기려면 진법을 풀어야 할 것 같은데, 저의 힘만으로는 힘들 것 같아요.”
“걱정 말거라. 내가 진법을 파훼하는 것을 도와주겠다.”
“감사합니다. 도천신뢰를 지니신 주인님이라면 진법을 뚫는 게 어렵지 않으실 거예요.”
제혼은 기뻐하며 바로 술법을 펼쳤다.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온 검은 기운이 지면의 진법으로 흘러 들어갔다.
진법이 자극을 받아 웅웅 울며 수정관 주위로 여덟 개의 검은 사슬들을 내뿜어 음산한 한기를 내뿜었다.
“주인님, 지금이에요!”
제혼이 소리쳤다.
한립은 무표정하게 손가락을 까딱해 청죽봉운검 8자루를 날려 보냈다.
퍼퍼펑…….
사슬이 터져나가는 것을 본 제혼이 얼른 손을 뻗어 검은 거대 손으로 수정관을 잡아챘다.
그녀의 또 다른 손에서 한립이 내주었던 세발솥, 염라정을 불러내 암홍색 빛으로 관을 감싸 빨아들였다.
“성공했어요! 감사합니다, 주인님.”
“내게도 필요한 물건이니 고마워할 것 없다.”
흰둥이와 남안이 날아들어 저물법기를 하나씩 한립에게 건넸다.
보물이며 영초, 재료 등 수량이 상당했지만 한립이 가장 필요로 하는 선원석은 얼마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선원석은 보통 지니고 다니고 동부에는 평소에 잘 안 쓰는 물건들을 쌓아두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 물건들만 팔아도 선원석 7, 8만 개는 거뜬히 바꿀 수 있어서였다.
“더 늦기 전에 곡린을 쫓자꾸나.”
한립이 먼저 출발하고 다른 이들이 뒤따랐다.
그는 구유마동으로 통로를 살피고 있었다.
“주인님, 곡린의 행적을 찾으신 건가요?”
“그래, 날 따라오거라.”
제혼이 묻자 고개를 끄덕인 한립이 구유마동으로 발견한 극히 희미한 금빛을 따라갔다.
한참을 이리저리 이동하던 그들은 서늘한 공기가 느껴지지 않는, 귀곡 범위 바깥으로 나온 듯했다.
오는 동안 금제나 장애물이 있기는 했지만 한립 일행을 막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남안 수사, 이곳에 이렇게 긴 지하 통로가 존재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이상하게 생각한 한립이 남안에게 물었다.
“전 구원관에서 지위가 그리 높지 않아 내원에 들어와 본 것도 손에 꼽혀요. 이곳에 이런 비밀 통로가 있는 줄도 몰랐고요.”
씁쓸하게 답하는 남안을 향해 알겠다고 답한 한립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통로 끝에서 금빛이 혼잡하게 얽히고 있었다.
“드디어 바깥으로 통하는 걸까요?”
눈을 번득인 한립이 멈춰서고 제혼 등도 그의 뒤에 섰다.
“그건 모르겠다만, 변화가 있는 것은 분명하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너희들은 화지공간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 낫겠어. 무슨 일이 생기면 바깥 상황을 투영해 보여주마.”
잠시 생각하던 한립이 화지공간 입구를 열었다.
제혼이 조심하라 당부하고 들어가고 남안도 따라갔는데, 흰둥이만 내키지 않는다는 듯 한립을 보다 마지못해 날아 들어갔다.
그제야 한립은 검은 가면을 발동해 은신한 채로 통로의 끝에 이르렀다.
앞을 가로막은 황금으로 만든 것 같은 장벽에서 금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강렬한 금속 속성 법칙의 기운이 느껴지는 벽이었다.
“천절금암(天絶金巖)!”
천금첩보다는 못해도 무척 귀한 금속 속성 법칙 재료로 이렇게 많은 양이면 엄청난 양의 선원석과 거래가 가능할 터였다.
그러나 곧 한립은 실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최근 선원석이 부족해 그쪽으로 정신이 빠진 것인지 허튼 생각을 했다고 여겨서였다. 뭐든 보기만 하면 선원석으로 바꿀 생각만 하니 말이다.
고개를 젓던 한립의 시선에 금색 벽 한쪽 구석에 갉아먹은 자국이 들어왔다.
침음하던 한립이 두 손가락을 세워 벽의 뚫린 부분을 훑다 눈을 크게 떴다.
이건 금동의 기운이었다.
안쪽으로 곡린의 기운이 느껴지는 게 여기로 도망친 금동을 그가 쫓고 있는 게 확실했다.
중얼중얼 주문을 외워 허상화한 그는 흡사 뱀처럼 구멍을 지나 장벽 반대편으로 빠져나갔다.
네모난 대전 안은 온통 황금색이라 천절금암 천지였고, 당연히 강렬한 금속 속성 법칙 기운이 진동했다.
“궁전 전체를 천절금암으로 짓다니, 돈도 많구나.”
“한 수사, 생각난 게 있어요. 구원관 내에 성전 구원궁(九元宮)에 대한 소문이 있었는데, 구원도조가 거대한 금속 속성 법칙 재료를 이용해 지었다고 해요. 이곳이 그 구원궁일 가능성이 커요.”
남안의 목소리가 한립의 머릿속에 울렸다.
“구원궁! 무슨 용도로 쓰이는 곳인지도 알고 있습니까?”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구원관의 성지로, 아마 폐관 수련을 위해 존재하지 않을까요? 구원관에 금속 속성 법칙을 수련하는 이들이 많으니까요. 어찌 되었든 신중하게 움직이셔야 할 거예요.”
남안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한립이 구유마동을 운용해 곡린의 흔적을 쫓았다.
법칙의 힘이 너무 강해서 간섭이 심하기는 했지만 구유마동을 극성으로 펼치니 아주 희미하게 흔적이 보이기는 했다.
쪽문으로 향한 한립은 그 문을 열고 바깥의 화원을 보았다.
화원 바닥도 천절금암으로 깔아놓고 영토며 화원에 심어진 영초들도 죄다 금속속성이었다.
한립은 그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흔적을 쫓는 데만 집중했다. 내부가 워낙 넓고 의식을 멀리까지 퍼트릴 수도 없는 처지라 추적이 쉽지 않았다.
그는 연달아 화원 2개와 5개의 대전을 지났지만 금동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 금동과 곡린이 어디로 갔든 금방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미간을 좁히고 있던 한립이 다른 대전에 들어서더니 속도를 높였다.
그때 앞에서 강렬한 두 기운이 충돌하는 게 느껴졌다.
격렬하게 싸우는 두 기운은 금동과 곡린의 것이었다.
회랑을 지나 거대한 광장으로 빠져나온 한립은 금제 진법이 새겨진 거대한 금색 돌기둥들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거대한 딱정벌레 두 마리가 금빛을 만발하면서 충돌하는 것을 목격했다.
광장 바닥도 천절금암이 깔려 있었지만 두 서금충의 위력적인 공격에 구덩이들이 깊게 파이고 주변 기둥도 몇 개나 부러져 있었다.
못 본 사이 금동은 수행이 늘어 대라 초기 최고봉에 가까워져 있었다.
곡린이 이미 대라 초기 최고봉에 이르러 중기를 한 걸음 앞두고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하하하! 널 집어삼키면 대라 중기, 아니 대라 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얌전히 내 일부가 되거라, 어차피 우린 하나였으니!”
우위를 점한 곡린이 웃음을 터트렸다.
“헛소리 마!”
이를 악문 금동은 포기하지 않고 힘껏 반격했다.
곡린이 돌연 금빛을 키워 거의 실체화된 금색 영역으로 드넓은 광장 절반을 뒤덮었다.
거대한 금색 도검들이 숲을 이룬 무시무시한 세계였다.
수많은 검이 우리를 형성해 금동을 갈겼고 금속성의 충돌음이 들려왔다.
비할 데 없이 단단한 서금선의 몸을 지닌 금동의 껍질에도 하얀 흔적들이 남고 있었다.
이에 눈빛이 매서워진 금동도 금빛을 일으켜 금색 영역을 만들었다.
그녀의 영역에서는 수많은 금색 딱정벌레들이 윙윙 날아올라 날카로운 이빨로 금색 도검들을 갉아댔다.
주변의 도검들이 부서지면서 금동이 도검 우리에서 탈출하려는 찰나 곡린의 신형이 나타나 앞발로 허공을 갈랐다.
곡린의 영역 안에서도 금색 도검들이 몰려들어 거대한 금색 거검 두 자루를 이루었다.
“베어라!”
금동이 떨어져 내리는 거검에 약간 당황해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금색 벌레들이 앞다투어 날아들어 거검들 앞을 막아섰다가 검기에 사라지기 일쑤였다.
금색 거검 두 자루가 머리 지척에 이르렀을 때 금동이 결연한 눈빛으로 무언가 강력한 비술을 준비했다.
그 순간, 금빛 파동이 더없이 빠르게 퍼져 금동과 곡린을 감싸고 충만한 시간의 힘을 드러냈다.
거검들의 속도가 시간영역 안에서 열 배는 느려졌다.
쿠쿠쿵!
금색 거대 손이 허공에서 나타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금색 문양을 번쩍이며 두 거검을 사로잡았다.
“뭐냐!”
곡린이 안색이 변해 양손으로 수결을 맺었다.
그러나 그도 동작이 열 배로 느려진 탓에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펑!
두 거검이 거대 손에 으깨져 터져버리고, 금동은 머리 위로 튀는 금색 불똥 속에서 한립을 발견했다.
“아저씨!”
금동의 눈에 반가움이 차올랐다.
“네 놈! 어떻게 귀령자에게서 빠져나온 것이냐!”
곡린도 한립을 보고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흥!”
한립은 그 소리를 듣고 눈에서 불똥이 튀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안색이 달라진 곡린은 금동을 노려보다 거대한 몸을 수축해 환영으로 변해 달아나 버렸다.
금동과 한립이 한 패인 것을 눈치챈 것이다.
금동도 상대하기 쉽지 않은데 한립까지 나섰으니 그가 꺾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곡린이 얼마 달아나지 못해 한립이 귀신처럼 앞을 막아서고 나타났다.
기겁한 곡린은 앞발을 휘둘러 한립의 머리를 갈겼다.
코웃음을 친 한립은 그 자리에서 사라져 곡린 옆에 나타나더니 금색 뇌전을 두른 오른 주먹으로 허리를 펑, 쳐버렸다.
시간영역 안에서 역전진륜 신통을 펼친 한립의 속도를 곡린이 따라잡을 리 없었다.
튕겨 나가는 곡린의 옆구리에 주먹 자국이 남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껍데기가 부서지지는 않았다.
“껍질이 정말 단단합니다?”
한립은 다시 한번 사라져 곡린의 다른 쪽 측면에서 나타나 주먹을 뻗었다.
펑!
곡린이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또 한 번 한립이 측면에서 나타나 주먹질을 했다.
퍽! 퍽! 퍽! 퍽!
곡린은 정신없이 왼쪽으로 날아갔다 오른쪽으로 날아갔다 하며 입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몸만큼 마음도 정신이 없었다.
그의 몸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단단했는데 한립의 주먹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단단해 이대로 계속 두들겨 맞다가는 언제고 껍데기가 버티지 못할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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