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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144화 (1,901/2,000)

2144화. 적몽의 초대

*

이미 사공건에게 충분히 접근한 한립은 거인을 상대할 생각이 없었지만, 공격을 피할 수 없어 세차게 흑룡검을 휘둘렀다.

카착!

녹색 거검이 둘로 갈리고 흑룡검에도 균열이 생겼다.

그러나 한립은 물러나지 않고, 녹색 거인 머리 앞까지 이르러 흑룡검으로 베었다.

서걱!

녹색 거인의 머리가 날아가자 한립은 거인의 어깨를 박차 사공건을 향해 달려들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녹색 거인이 펑 터지며 수많은 나무줄기와 뿌리가 그를 둘둘 감았다. 빼곡하게 주술문자가 새겨진 나무줄기와 뿌리가 너무 질겼고 그의 선령력까지 뽑아가고 있었다.

한립은 뜨끔했다.

방대한 자신의 선령력을 빼앗기는 것이면 이대로 시간이 흘러도 상관없지만 상척의 선령력을 빼앗기고 있어 그게 동나면 원래 기운을 노출해야만 했다.

더는 육신의 힘을 숨길 수 없게 된 것이다.

괴성을 터트린 그의 몸에서 천 7백여 개의 현규가 동시에 눈이 멀 것 같은 별빛을 방출했고, 그의 두 팔이 나무줄기와 뿌리들을 북 뜯어버렸다.

“허, 상척의 힘이 저리 강할 줄은 몰랐습니다.”

순균진인이 천 7백여 개의 별빛을 보고 놀라워했다.

“저 정도 현수는 정말 드물지요. 우리 천정도 비밀리에 현수들을 키워봤는데, 현규를 늘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천 개 이상의 현규를 갖은 이도 거의 없어요. 저자는 어찌 수련한 것인지.”

봉천선사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천성존자가 놀랍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져 곽연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나 얼굴을 굳힌 곽연은 말이 없었다.

한편 주현양 등도 놀라 멍해져 있었지만 비무대 위의 사공건보다 기겁할 수는 없었다.

사공건은 급히 영역을 전력으로 운용해 더 많은 주술문자로 한립을 막으려 했지만, 한립은 전부 북북 뜯어내고 그들은 더욱 가까워졌다.

고민하던 사공건이 이를 갈며 전신에서 태양처럼 밝은 녹색 빛을 밝혔다.

방대한 위압감은 그가 평소 보이던 기운을 월등히 넘어섰다.

“벌써 대라경 중기에 이르렀단 말인가!”

주현양이 얼굴 근육이 떨며 중얼거렸다. 한립이 강력한 힘을 발휘해 신이 났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대라경 초기 최고봉이면 한립이 현수공법만으로 상대할 수 있어도 중기는 격차가 너무 심했다.

현선종 사람들 외에 조원래 등도 안색이 확 변했는데, 관중석의 순균진인 등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 표정 변화가 없었다.

사공건의 손가락에서 녹색 수정실들이 줄줄 흘러나와 고리를 이끌고 한립 주변 나무뿌리로 흘러 들어갔다.

나무뿌리들이 급격히 굵어져 수정빛을 뿜으며 한립의 괴력에 맞섰다.

한립도 놀라 진옥후를 한 번 떠 쓰려는데, 불현듯 녹색 빛이 그를 감싸고 언덕 크기의 나무 고치로 변해 방대한 나무법칙을 드러냈다.

이때 사공건의 손에는 청록색 나무 자가 하나 들려있었다. 붉은 문양이 들어간 나무 자는 나무법칙과 함께 불의 법칙을 품고 있었다.

그가 주문을 욀 때마다 녹색 수정고리들이 몸에서 떠올라 나무 자로 흡수되었고, 녹색과 붉은색이 섞인 기이한 법칙 파동이 퍼졌다.

“가라!”

나무 자에서 붉은 화염 덩어리를 품은 녹색 빛구슬이 나타나 커다랗게 부풀더니 녹색 나무 고치 속으로 스며들어 종적을 감추었다.

강렬한 불의 법칙 파동이 고치 안에서 흘러나왔다.

“목신벽력자(木神霹靂子)!”

관중석의 적몽이 둥근 나무 고치를 보고 눈을 빛냈다.

“목신벽력자요? 천목도조의 도조사자인 목왕선존의 신통 아닙니까?”

순균진인이 적몽을 바라보았다.

“네, 나무 법칙과 불의 법칙을 익힌 목왕선존이 두 가지 법칙을 완벽하게 조합해 만들어낸 절기(絶技)죠. 목왕선존이 이 기술로 대라 중기 때 홀로 대라 후기 수사와 두 명의 대라 중기 수사를 대패시킨 일이 있고요. 그러다 현화도조의 눈 밖에 나서 손짓 한 번에 중상을 입고 행방불명되었지만요. 저 나무 자가 목왕선존의 본명선기였던 목왕자(木王尺)에요. 사공건이 저걸 손에 넣은 걸 보면 목왕선존의 신통도 전승했을 테죠. 물론 목신벽력자를 따라 했을 뿐 진짜 목신벽력자의 위력을 내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요.”

“이번 비무를 잘 봐두어야겠습니다.”

순균진인의 차분한 말에 뒤이어 쩌렁쩌렁하게 폭음이 들려왔다.

목신벽락자가 맹렬히 터지면서 붉은빛과 녹색 빛 덩어리가 공간을 무너트렸다. 그게 터지며 바닥에 거대한 검은 구멍을 만들어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무대가 그 강대한 힘에 삐걱거리며 흔들렸다.

순균진인이 무대와 진법에 미리 손을 써두지 않았으면 벌써 전부 붕괴되었을 것이다.

한립도 검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사공건은 방심하지 않고 목왕자를 흔들었다.

쿠르르.

영역 내의 녹색 나무들이 결집해 또 두 개의 나무 고치를 만들었고, 목왕자에서 불꽃을 품은 녹색 빛 두 개가 그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렇게 완성된 목신벽력자 두 개가 검은 구멍으로 떨어졌다.

쿵! 쿵!

검은 구멍 안에서 굉음이 들리며 파급력이 무대 위로 전해졌다.

얼굴이 창백해진 사공건은 기력을 거의 소모했는지 몸의 녹색 빛도 어두워져 있었다.

그가 급히 단약을 꺼내 먹으려는데 검은 동굴 안에서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동굴 안에서 붉은빛이 번득인 후, 사공건이 막 던져 넣었던 목신벽력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사공건은 어떻게 자신이 한 공격을 상대가 튕겨낸 줄도 모르고 다급히 영역의 나무들로 앞을 막으면서 물러나려 했다.

이때 귓가에 서늘한 코웃음 소리가 들리고 머리에 강철 바늘이 박힌 듯 머리가 아파 비명을 삼켜야 했다.

그의 움직임이 느려진 찰나 목신벽력자가 영역의 나무들을 부수고 별안간 들이닥쳤다.

쿠아앙-

목신벽력자가 터지며 눈부신 녹색 빛과 붉은빛을 터트려 공간을 찢어놓았다.

사공건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는 목신벽력자의 위력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목왕자가 녹색 빛을 잔뜩 뿜어 보호막을 만들었다.

쾅!

사공건은 마치 포탄처럼 튀어 나갔지만 그를 둘러싼 녹색 보호막은 흔들리기만 하고 버텨주었다.

그 안의 사공건이 보호막 너머로 전해진 폭발의 여파에 몸 절반의 뼈가 으스러지며 울컥 피를 쏟았다.

환영처럼 검은 공간에서 빠져나온 한립이 득달같이 그를 쫓아 몸통 박치기를 했다.

둘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튕겨 나가 무대의 금제에 부딪혔는데, 한립은 옷이 형편없이 찢기고 진극막 아래 피부도 검게 그을리고 갈라져 피가 나고 있었다.

호되게 부딪힌 사공건이 다시 피를 토하며 마대 자루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우위를 점하던 사공건이 갑작스럽게 지자 관중들은 탄성을 터트렸다.

“그렇지!”

눈도 깜짝이지 않고 지켜보던 주현양도 심판의 승리 선포에 벌떡 일어나 주먹을 높이 치켜들었다.

옆의 조원래가 표정이 시시각각 달라지다 흥, 콧김을 내뿜었다.

관중석 중앙의 사람들도 놀란 얼굴이었다.

현수 수행의 한립이 지친 사공건을 때려눕힌 건 그럴 수 있지만 어떻게 목신벽력자를 튕겨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가 상척을 너무 얕잡아 보았나 봅니다. 몸이 단단한 것 외에 숨겨둔 한 수가 있었던 거예요. 하하, 작디작은 현산종에서 저런 걸출한 인물이 나오다니.”

육천풍이 의미심장하게 하는 말에 순균진인 등도 눈빛이 달라졌다.

한립은 다들 보고 있기에 회복 단약을 먹고도 공법을 운용해 녹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전력을 다해 검은 가면만 발동했다.

곧 대부분 시선이 아직 경기 중인 다른 무대로 향했는데, 적몽의 눈에 의혹이 어렸다.

한립은 걸어 내려왔고, 공양봉 수사들이 부축해 일어난 사공건도 금방 움직일 수 있었다.

“내 목신벽력자를 어떻게 빼앗은 겁니까?”

사공건은 아픈 몸으로 그의 앞을 막아선 채 노려보았다.

“미안합니다만, 그건 말해 드릴 수가 없군요.”

한립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그를 지나쳤다.

대라경 초기와 중기는 천지차이였다.

사공건을 현수공법 만으로 이길 수 없자 일부러 검은 공간에 빠져 몸을 숨기고 들킬 위험을 감수하면서 현천호리병박을 꺼내 반격을 했다.

멀어지는 한립의 등을 보는 사공건의 눈빛이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가자!”

그가 돌아서고 고양봉 수사들이 뒤따랐다. 관중석으로 돌아가니 현산종 사람들이 환영했다.

“상 사제, 정말 고맙네!”

그의 손을 꼭 잡은 주현양은 감격한 눈빛이었다.

“고맙기는요, 종문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한립은 가볍게 웃으며 조용히 기운을 다스렸다.

그와 사공건의 싸움은 다른 비무에 비해서 빨리 끝난 편이라 아직 다른 참가자들은 전투가 한창이었다.

* * *

반 시진이 지나 승부가 모두 결정되고 한립을 포함한 12명의 수사들이 한 무대에 올라 수많은 관중 앞에 섰다.

청회림의 낙원산, 용천문의 문장천 그리고 천유호의 자락선자 등도 승리해 한데 서 있었다.

“사흘간의 비무로 승자들이 결정되었습니다. 여기 12개의 보제령은 각각의 종문으로 귀속될 것입니다.”

미소를 띤 순균진인의 말이 광장을 울렸다.

현산종 등 12개 종문의 우두머리가 일어나 주변 수사들의 축하를 받았다.

“천정의 중요한 보물인 보제령은 7일 후에 구원각에서 수여식이 진행될 테니 그때도 모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순균진인의 말에 다들 대답을 하고 곧 선발대회가 종료되었다.

모였던 사람들이 흩어지면서 한립과 현산종 사람들도 산문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립의 얼굴에 티 나지 않게 구김이 갔다 펴졌다. 저 앞에 붉은 옷을 입은 적몽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현산종 주현양이, 적몽 선자를 뵙습니다.”

주현양이 서둘러 적몽을 향해 예를 올렸고 나머지 사람들도 인사를 했다.

담담히 인사를 받은 적몽은 주현양 말고 한립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주현양은 그걸 보고 심장이 덜컹했으나 웃으며 물었다.

“일은요. 상척 수사가 위용을 떨치는 모습을 보고 친분을 쌓고 싶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실례가 되지는 않겠지요?”

“적몽 선자 같은 천정의 높은 분이 이렇게 아름답기까지 하시니, 친분을 쌓을 수 있다면 영광일 겁니다.”

한립은 밝게 웃으며 답했다.

“듣기 좋은 말을 잘하시네요.”

적몽의 입가에도 웃음이 번졌다.

“사형, 먼저 가 계시면 저는 잠시 후에 따라가겠습니다.”

한립은 주현양에게 보고했다.

“그러게, 사제.”

주현양이 고개를 끄덕이고 가자 이제 한립과 적몽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저쪽에 구원관에서 경치 좋기로 유명한 금풍림(金楓林)이 있다네요. 저랑 같이 가주실 수 있나요?”

적몽이 빙긋 웃으며 제안했다.

한립은 그 말에 잠시 옛일을 떠올렸다. 아주 오래전 인계에 있을 때 어떤 여인이 함께 풍경을 보자며 청했던 일이 있었다.

당시 황풍곡 동문이었던 진교천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진선계에 올라 대라의 경지에 이른 그는 변고를 당하지 않으면 억만년이 지나도 죽지 않겠지만 진교천은 한 줌 흙이 되어 몇 번이고 윤회를 돌고 있을지 모른다.

“하하, 미인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일이라면 언제든 좋지요. 적몽 낭자, 가시지요.”

한립은 즐겁게 답했다.

그의 신중한 성격에 적몽과 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꺼려졌지만, 그가 분장한 상척은 본래 성격이 활발하고 미색도 밝혔다.

이런 상황을 피할 리 없는 인물이었다.

적몽이 눈을 깜빡이다 미소를 지으며 먼저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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