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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142화 (1,899/2,000)

2142화. 격전

*

“초종 장로에 대해 아십니까?”

조원래가 무대 위 노인을 보고 물었다.

“무상문과는 거의 왕래가 없어 초종 장로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조 산주께서는 아시나 봅니다?”

“오래전에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는데, 그리 유쾌한 만남은 아니었습니다. 하하, 다 죽어 가는 늙은이는 아니라고만 말씀드리지요. 제가 볼 때 이번에 사공건을 제외하고 가장 실력이 뛰어난 이들 중 한 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원래의 말에 주현양이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오늘 왜 나왔나 했더니만…….

“상 사제가 대전 운이 안 좋습니다. 어제는 운 좋게 귀 종의 조백로 수사를 이겼다지만 오늘 또 강적을 만나다니요. 오늘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해야겠어요.”

주현양의 말뜻은 어제는 제대로 실력 발휘를 안 했다는 거였다.

조원래는 열이 받아 얼굴을 붉히다 한마디 했다.

“어디 상 수사의 화려한 솜씨, 기대해 보겠습니다.”

어제 조백로를 깨워 물어보니 그도 어떻게 졌는지 몰랐고, 그냥 상척의 몸에서 돌연 엄청난 힘이 튀어나와 한 방 맞고 나가떨어진 것만 기억했다.

무대 위.

초종에게 공수를 하고 어제처럼 기다리지 않고 몸에 현규를 밝힌 채 백발노인 뒤로 이동했다.

힘차게 뻗는 주먹에서 하얀빛이 벼락처럼 터지는데 구경이나 하고자 나온 조원래가 그걸 보고 흠칫 놀랐다.

과연 어제와는 다른 속도에 다른 위력이었다.

초종은 한립의 돌발 공격에 놀란 듯 우두커니 서 있었지만, 주먹이 등에 닿기 전에 지면에서 검은 비석이 올라와 길을 막았다.

워낙 시기가 절묘해서 공격을 막는 동시에 한립을 반으로 쪼갤 것 같은 수였다.

도중에 주먹을 거둔 한립이 공중에서 몸을 가누지 못할 때 초종이 그를 따라붙어 주먹을 내리쳤다.

검은빛이 웅웅 흘러나와 한립을 묵직하게 내리눌렀다.

특수한 진법이 펼쳐진 무대가 쿵, 흔들리면서 한립의 두 다리가 바닥에 박혀 균열이 일었다. 초종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산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한립은 형언할 수 없는 압력과 자신을 감싼 괴이한 검은 파동에 움찔했다.

힘을 쥐어짜듯 괴성을 터트린 한립이 구백여 개의 현규를 동시에 밝히면서 두 팔을 위로 뻗었다. 대력금강결 공법이 체내의 성신지력을 끌어모았다.

두 손바닥에서 하얀빛이 퍼져 별빛 장막으로 떨어지는 초종을 막았다.

검은빛과 하얀빛이 교전하며 눈부시게 폭발해 그 파랑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관중들은 폭발에 놀라 ‘축(丑)’자 무대를 돌아보았지만 이미 흑백으로 뒤덮인 무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반원형 관중석에서 조원래가 입을 뻐끔거리고 주현양은 불안한지 몰래 중앙쪽을 살폈다. 순균진인 등이 뭔가 눈치챈 것은 아닌지 걱정이었다.

서로 대화를 나누는 데만 집중하던 순균진인 등의 시선이 한립이 있는 쪽으로 가 있기는 했다.

“금원선역은 와호장룡(卧虎藏龍)의 땅인가 봅니다. 축(丑) 비무대의 두 출전자 다 실력이 괜찮군요.”

원래도 말수가 적은 봉천선사가 드물게 칭찬을 했다. 금원선궁 궁주 육천풍이 웃고만 있는데 순균진인이 입을 열었다.

“한 명은 중력 법칙에, 다른 한 명은 현수라. 보기 드문 전투이기는 합니다.”

졸고 있던 천성존자마저 눈을 뜨고 한립과 초종을 보며 그들이 속한 종문을 일월맹으로 끌어들여야 하나 생각했다.

무대 위.

검은빛과 하얀빛이 서로를 소모하며 잠잠해졌다.

한립과 초종은 모습을 드러냈다가 금방 번득 사라져 관중들은 그들을 찾기 바빴다.

쾅!

한립이 고공에서 뚝 떨어지며 주먹의 하얀빛을 거의 빛기둥처럼 내리꽂았다.

놀랍게도 초종은 피하지 않고 등을 말았다가 높이 튀어 올라 하얀빛을 향해 쇄도했다. 그의 미간에서 특이한 주술문자가 금색 광택과 검은빛을 품고 솟아올랐다.

쿠쿠쿠…….

폭음이 연달아 터지며 초종의 몸에도 수백 개의 하얀 빛들이 생겨났다.

‘상대도 현수였어…….’

눈살을 찌푸린 한립은 거침없이 떨어져 초종과 충돌했다.

쿠앙!

경천동지할 굉음이 들린 뒤 두 사람이 떨어져 나가자 주변에 자욱하게 먼지가 꼈다.

먼지가 가라앉기 전 검은 장막이 펼쳐져 무대를 가리고 먹을 듬뿍 품은 산수화처럼 고공이 흐릿해졌다.

쿠쿵!

이어서 무대 위로 검은 광선이 솟아올라 엄청난 압박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한립도 몸이 앞으로 기울어질 듯한 중력이어서 무대가 내려앉아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다.

“초종 장로가 현수에다 강력한 조물경 영역을 수련하고 있었군요. 상 수사가 이번에는 딱하게 되었습니다.”

조원래가 그걸 보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말했다.

“아직 판단을 내리기는 이르니 지켜보시지요.”

주현양이 말했다.

한립의 실력을 정확히는 몰라도 절대 약하지는 않을 테지만, 신분을 노출하지 않으면서 초종을 이기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다른 무대도 치열하게 싸웠는데, 반원형 관중석 사람들은 대부분 ‘축(丑)’자 비무대에 집중했다.

“상 수사, 지금이라도 영력을 방출해 내 영역과 대항하지 않는다면 승산이 없을 겁니다.”

공중의 초종이 두 팔을 앞으로 늘어트리고 충고했다.

“충고 감사합니다, 초 수사. 연체술을 수련하느라 영역 쪽으로는 깊게 발을 들여놓지 못해서요.”

고개를 든 한립이 답했다.

“그렇다면 그만 패배를 인정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초종이 수결을 맺어 어둑한 고공에 수묵 풍경 같은 산봉우리 십여 개를 아래로 내리꽂았다.

압력이 10배로 강해져 한립이 신음을 흘렸고,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듯했다.

카카칵.

관절과 뼈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를 악문 한립은 기합을 넣으며 구백여 개의 현규를 밝혀 진극막으로 덮었다.

진극막의 성신지력이 그의 피부에서 손가락 몇 마디 거리의 공간을 만들어 검은 광선을 밀어냈고, 찬란하게 별빛을 빛낸 두 다리가 엄청난 힘으로 바닥을 밀었다.

한립은 중력을 거슬러 뛰어올라 초종을 향해 접근했다. 하지만 그 속도가 무척 느려 초종의 비웃음을 샀을 뿐이었다.

“아직도 포기를 안 한 겁니까?”

초종의 원숭이 같은 긴 팔이 빠르게 수결을 맺고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공중의 수묵 산봉우리들이 진동하며 검은 돌과 나무들을 비처럼 쏟아부었다.

쿠쾅쾅쾅!

검은 바위와 나무들 사이로 한립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러나 안에서 들려오는 폭음으로 볼 때 한립은 떨어지는 물체에 맞아 떨어지지 않고 안에서 그것들을 가루로 만들며 더 높이 올라가는 중이었다.

쿵!

커다란 바위를 주먹으로 부순 한립을 향해 현규에서 검은빛을 반짝이는 팔이 날아들어 가슴을 쳤다.

한립이 두 팔을 교차해 막은 순간, 초종의 검은빛에 둘러싸인 주먹이 날아들었다.

그 순간, 한립이 체내의 현무혈맥을 폭발적으로 일으켜 팔을 거북이 등껍질 문양으로 감쌌다.

퍼퍼퍼퍽!

한립이 운석처럼 추락하며 수많은 바위와 나무들을 부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안 그래도 엉망이던 무대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다른 비무대에 있던 이들도 놀라 이쪽을 힐끔거렸다.

구원관 수사 몇이 ‘축(丑)’자 비무대로 가서 충격이 다른 곳으로 퍼지는 것을 막았다.

“우와!”

박소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격렬하고 화려한 전투에 관중들이 즐거워하고 있었다.

반원형 관중석에서 주현양이 긴장해 ‘축(丑)’자 무대에 뚫린 구멍을 지켜보았다.

“이래도 판단을 내리기 아직 일렀다고 하실 겁니까?”

옆에서 조원래가 실소했다.

관중석 중앙, 금원선궁 궁주 육천풍이 의심을 드러냈다.

“다들 저 현산종 장로의 몸에 진령현무의 혈맥이 느껴지지 않으셨습니까?”

“있기는 해도 정순하지는 않은 것 같군요. 한 방에 나가떨어진 것을 보면.”

천성존자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때 고공의 산수화 산봉우리들이 수축해 일시에 구덩이로 떨어졌다.

쿠쿠쿠쿠!

무대 바깥으로 엄청난 진동이 퍼져나갔다.

‘축(丑)’자 무대는 완전히 무너졌고, 초종이 산봉우리 위에 서서 두 팔을 앞으로 늘어트렸다.

승부가 났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초종을 향해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때 이변이 발생했다.

수묵 산봉우리가 흔들리더니 하얀빛이 바닥 틈을 뚫고 새어 나온 것이다. 산봉우리가 떨어질 때보다 광장이 더 격렬하게 흔들렸다.

다들 눈을 가늘게 뜨고 무슨 일인지 쳐다보니, 두 손을 하늘 높이 치켜뜬 한립이 천여 개의 현규를 밝히고 산봉우리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천 개가 넘어?”

조원래는 입이 떡 벌어졌다.

주현양도 놀랐지만 마치 자신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담담한 척을 해야 했다.

엄청난 반전에, 우레와 같은 관중들의 환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색이 달라진 초종 장로는 쪼그리고 앉아 두 손을 수묵 산봉우리에 대고 선령력과 법칙의 힘을 주입했다.

벌써 천근만근이던 산봉우리의 검은 빛이 짙어지며 더욱 주변 중력이 강해졌다.

산봉우리 아래 한립이 그럴 걸 알고 대력금강결을 운용해 한발 앞서 좌측 허공을 강타했다.

강대한 성신지력에 혈맥의 힘이 합쳐져 중력 법칙의 힘이 수평으로 뚫리면서 진공 통로가 만들어졌다.

그 사이를 쾌속으로 지나 고공으로 방향을 튼 한립은 초종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콰쾅!

땅을 울리는 굉음이 지나고 초종의 영역이 흩어지면서 수묵 산봉우리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관중들은 폐허 속에 초종이 서 있고, 그 앞에 둥실 뜬 한립의 두 손가락이 상대의 미간에 닿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졌습니다…….”

초종은 조용히 패배를 인정했다.

“좋은 비무였습니다, 초 수사.”

재빨리 손을 거둔 한립이 빙글 돌아 바닥에 착지하더니 포권을 해보였다.

“어떻습니까, 조 산주? 이제 제대로 판단이 서십니까?”

관중석의 주현양이 옆에 울적한 얼굴로 앉아있는 조원래를 향해 웃음 지었다.

“이제 한 경기만 더 이기면 보제령은 현산종 것이군요. 다시없을 영광입니다. 상 수사가 다음 경기도 이겨야 할 텐데요.”

조원래도 더는 질투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경기를 마친 한립은 이번에는 현산종 별원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반원형 관중석 가장자리로 와서 다른 경기들을 살폈다.

초종과 싸워보니 오직 현수의 신분으로만 싸워야 하는 그는 다른 사람들의 법칙 특성을 더 세심하게 파악해 둬야만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구양봉 봉주 사공건이 싸운 해(亥)자 무대는 벌써 비어 있었지만, 다른 연무대도 비무가 막바지라 현란하게 빛줄기가 날아다니고 폭음이 끊이지 않았다.

한립이 인상 깊게 본 사람 중에 청회림 낙원산과 용천문(聳天門) 문장천, 천유호 자락선자가 있었다.

그 중 문장천의 수행이 가장 높아 대라 초기 막바지였다. 삼시 중 하나만 베면 바로 중기에 들 수 있는 수사였다.

자락 수사의 법칙의 힘은 보기 드문 자정(紫晶) 법칙으로 흙 속성 법칙 기반에 수정빛으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힘까지 지니고 있었다.

세 사람 중 얼굴에 푸른 반점이 있는 낙원산을 주목한 것은 그 신통이나 수행 때문이 아닌 전투 과정의 악랄함에 있었다.

주관장로가 나서서 말리지 않았으면 상대 수사들은 전부 잔혹하게 살해당했을 터였다.

한립은 마지막 전투까지 보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현산문 별원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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