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1화. 첫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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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들의 등장에 광장에서도 열화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순균진인이 한 걸음 나서서 허공에 손을 얹어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하자, 구원관 산문이 금방 고요해졌다.
그는 천정 선사와 몇 마디를 나누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보제성연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천정의 은혜를 수사들과 나누기 위해 특별히 12개의 보제령을 걸고 대회를 여니, 모두 최선을 다해 임하기를 바랍니다.”
순균진인이 광장 사람들을 향해 낭랑히 외쳤다.
그 말에 광장 사람들은 자신들이 천정의 은혜를 입기라도 한 듯 기쁨을 표했다.
“천정의 은혜가 창생을 보우한다…….”
“천정의 은혜가 창생을 보우한다…….”
누가 처음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두 따라 외치니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천정 선사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벌써 꾸벅꾸벅 졸고 있는 배불뚝이 천성존자 말고 다른 이들도 미소를 지었다.
이때, 대회 진행을 맡은 구원관 장로가 나섰다.
“금원선역의 수많은 종문 중 누가 12개의 보제령을 차지하게 될지는 오직 실력에 따라 결정이 될 것입니다.”
“천정의 은혜를 생각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96개 종문 종주들이 일어나 포권을 했다.
“참가자 명단을 받아두었기에 바로 1회전 상대를 결정하는 뽑기를 진행하겠습니다.”
대회를 주관하는 장로의 말에 한립이 주현양과 시선을 마주치고 걸어 나갔다.
조원래 뒤의 조백로가 뒤따라 앞으로 나섰다.
주현양이 주의해야 한다고 언급했던 이들은 기본적으로 다 나와 있었다.
청회림 낙원산과 천유호 자락선자 등이 보였고, 사공건처럼 직접 나선 장문인들도 있었다.
관중들이 그걸 보고 누가 수치심도 모른다고 중얼거리자 곳곳에서 야유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공건은 그럼에도 빙긋 웃으며 부채를 펴들고 서 있었다.
남들이 뭐라고 떠들던지 보제령만 얻으면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컸다.
“주 종주, 귀종의 상 수사가 사공건 저 녀석을 상대로 뽑아 코를 납작하게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고양봉 명성을 땅에 떨어뜨려 이전 일에 관한 앙갚음도 할 수 있을 테고요.”
조원래가 웃음 지었다.
“뽑기로 상대를 정하는데, 그리되려고요?”
주현양도 같이 웃고는 있었지만 속으로 냉소했다. 너네 조백로나 사공건을 뽑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사공건은 한 종문의 종주로 실력으로 치면 뛰어난 자였다. 아무리 원한이 있어도 이런 대회에서 상대로 마주치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96개의 번호가 적힌 구슬을 하나씩 뽑으시면 됩니다. 1번을 뽑은 사람은 96번과 상대하게 되고, 2번은 95번……. 이런 식으로 대결 상대가 결정됩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주관 장로가 추첨 방식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이해했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다들 알았다는 말에 주관 장로가 허공으로 손을 저었다. 96개의 반짝이는 구슬들이 고공으로 날아올라 대회 참가자들 위로 떨어졌다.
각자가 손을 뻗어 구슬을 하나씩 받아들었고, 한립은 91번이라 적힌 구슬을 받았다.
“91번…….”
다들 구슬을 들고 자신의 번호를 확인하느라 바빴고, 그중에서도 사공건 등이 무엇을 뽑았는지는 모두의 관심사였다.
자신을 살피는 다른 수사들을 보고 사공건은 구슬을 높이 들어 올려 90번이라고 적힌 걸 보였다.
“아, 하필!”
누군가 탄식했다.
머리에 뿔이 나고 뺨이 불룩한 푸른 피부 사내가 자신의 구슬과 사공건의 번호를 번갈아 보며 절망하고 있었다.
다들 자기가 아닌 것에 안심하며 운도 없는 놈이라고 혀를 찼다.
“저자가 운이 없게 되었습니다. 상 수사는 몇 번을 뽑으셨습니까?”
조백로가 한립에게 다가와 웃으며 물었다.
한립이 구슬을 보이자 얼굴을 굳힌 상대가 자신의 것을 보여주었는데, 6번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것 참, 인연이라고 해야 할지…….”
조백로가 쓴웃음을 지었다. 안타깝다는 얼굴이었지만 입술 끝이 작게 실룩이는 게 다행이라는 표정을 완전히 감추지 못했다.
조원래와 전음을 주고받아 상척의 수행이 별 볼 일 없다는 내용을 들은 그는 1회전은 거저먹게 생겼다고 좋아했다.
“이런. 조 형, 잘 부탁드립니다.”
한립이 연기로는 그보다 위라 일부러 풀이 죽은 듯 말했다.
“저야 말로요.”
“상대가 결정되었습니다. 1번부터 12까지의 참가자들과 그 대결 상대는 연무대로 올라 비무를 진행하고, 나머지는 차례를 기다리십시오.”
주관 장로가 외쳤다.
한립과 조백로가 여섯 번째 연무대인 사(巳)자가 적힌 단으로 올라갔고, 사공건은 오(午)자가 적힌 단에 올랐다.
그들은 백여 장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관중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12명이 연무대에 올라섰다.
“이런 일이 다 있습니다.”
그걸 본 조원래와 주현양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각자 의외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 웃고 있었지만.
“주 종주, 우리 두 종문이 평소 친분이 두터운데 오늘 결과가 어찌 나오든 서로 마음 상하지 맙시다.”
조원래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그야 물론입니다.”
주현양도 따라 웃었다.
한립이 대신 나서지 않고 진짜 사제인 상척이 대결을 하는 것이어도 이번 판은 이걸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반원형 관중석 중앙에 앉은 이들은 비무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다른 이들이 듣지 못하게 결계까지 쳐놓아서 인근에 앉았다고 해도 따로 앉은 것과 진배없었다.
“봉천 선사, 요즘 진선계 각지가 혼란스럽다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윤회전이 가만히 있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회계도 난리라고요?”
순균진인이 물었다.
“북한선역, 청망선역 그리고 흑산선역에서 회계 생물들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허나 큰일은 아니니 괜찮습니다.”
봉천선사가 조소했으나 순균진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천정에서 회계에 손을 쓴다 들었는데, 그러다 변고가 생긴 겁니까?”
“변수가 생기기는 했습니다. 중립을 지키던 흑승역이 윤회전과 손을 잡기 시작했고, 구유역도 압박에 못 이겨 천정과의 관계도 끊었으니까요. 아무래도 선계 침입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듯합니다.”
순균진인이 계속 묻자 망설이던 봉천선사가 전음으로 사정을 들려주었다.
이미 알고 있던 소문이었으나 봉천선사를 통해 사실이라 확인한 순균진인은 약간 놀라고 말았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 주관 장로의 선언으로 연무대의 비무가 시작되었다.
“송구스럽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백로 형.”
한립은 사(巳)자 무대 위에서 조백로를 향해 공수했다.
“마음껏 공격하세요.”
조백로도 공수를 하고 먼저 하얀 장막을 만들어 무대를 뒤덮었다. 눈꽃 모양의 문양이 들어간 장막은 치명적이지만 아름다워 보였다.
“얼음 속성 법칙의 힘이 참으로 농후하십니다.”
“상 수사는 현수 연체술에 능하다 들었는데 가르침을 주시지요.”
조백로는 대꾸는 예의 바르게 하면서 손을 쓰는 데는 거침이 없었다.
그의 손짓에 남색 냉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와 바닥을 얼리고 연무대를 남색 얼음 결정으로 뒤덮었다.
바닥을 쿵, 찍은 한립이 하얀 기운으로 그걸 산산조각 내려 했다.
입꼬리를 끌어올린 조백로는 냉기를 더욱 풍성하게 일으켜 바닥에서 들썩들썩 기다란 창 같은 얼음 가시를 만들어냈다.
한립이 수백 개의 현규를 밝히고 고공으로 튀어 오르는데, 조백로가 얼음 장창을 손에 쥐고 따라붙었다.
한립이 이런 공격을 피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었지만 상척의 신분으로 참가한 터라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장창에 어깨를 내주고 못 이기듯 바닥의 가시 위로 발을 디딘 한립의 팔에 남색 얼음 결정이 퍼지려 하고 있었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조백로는 웃음을 겨우 감추며 말했다.
그가 장창에 선령력을 불어 넣어 한립을 꽁꽁 얼려버리려는데, 한립이 툭툭 팔을 털어 남색 알갱이들을 날려버렸다.
“어떻게?”
조백로가 멀쩡해진 한립의 팔을 보고 난색을 표했다.
“백로 형, 현수들에 대해 잘 모르시나 봅니다. 몸을 단련하는 현수들은 극한의 냉기에도 잘 견뎌서요.”
온화하게 미소를 지은 한립은 팔의 현규들을 분분히 밝혀 주먹을 날렸다. 상척의 공법을 따라서 하자 뼛속에서부터 하얀빛이 스며 나왔고 별빛으로 목욕을 하는 듯했다.
깜짝 놀란 조백로가 뒤로 물러섰지만 한립의 주먹이 가슴을 뚫어버렸다.
펑!
생각지 못하게 가슴이 터진 자리에 피 대신 물보라가 튀어나왔다.
미간을 좁힌 한립이 주먹을 거두려 했으나 물길이 그의 팔을 잡아 강하게 끌었다.
가슴이 뚫린 조백로도 투명한 물로 변해 그를 옭아맸다.
동시에 빙판이 깔린 무대에서 남색빛이 반짝이고 또 다른 조백로가 나타났다.
“제가 역령을 상대하고 있었군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하하, 미안하게 되었습니다만 그대로 무대 밖으로 나가주세요!”
한립의 중얼거림에 조백로가 손을 저었다.
주변의 영역들이 수많은 눈꽃 칼날로 한립을 공격했다.
반원형 관중석에서 주현양이 놀라 어쩔 줄 몰라 했고, 조원래는 흐뭇한 얼굴이었다. 나머지는 다들 대부분 자기 종문 사람이나 사공건의 비무를 보고 있었다.
“아휴, 경쟁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승부를 보아야 하지 않습니까. 주 종주께서 실망하실까 봐 마음이 쓰이는군요.”
조원래는 끝났다고 여기고 주현양을 향해 말했다.
‘겨우 이 정도 실력이라고?’
겉모습과 달리 주현양은 의아해하고 있었다.
퍼퍼펑!
그가 대답하기 전 ‘사(巳)’자 무대에 눈부신 하얀빛이 폭발했다.
몰아치던 눈꽃 얼음들이 터져나가 무대를 뒤덮은 얼음 영역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이들은 급격히 내려간 온도에 덜덜 떨며 급히 보호구를 불러내었다.
눈보라가 사라진 무대에는 조백로가 죽은 듯 기절해 누워있고 현산종 상척이 그 옆에 서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입술이 파랗게 변한 그도 양손 소매가 다 뜯어져서 그리 좋은 꼴은 못되었다.
주현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원래를 돌아보았다. 얼굴이 파랗게 질린 조원래는 더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경쟁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승부는 내야지요. 마음 상하지 마세요.”
주현양은 공수를 하고 아까 들은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얼굴을 씰룩이던 조원래가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사(巳)’자 무대에서 돌연 승부가 났을 때, ‘오(午)’자 무대도 사공건만 서 있고 상대는 몸 절반이 너덜너덜하게 변해 무대 바깥에 떨어졌다.
사공건이 한립과 수백 장 거리를 두고 도발하듯 눈을 치켜떴다.
당연히 일부러 힘든 척하고 있던 한립은 그런 사공건의 시선을 서늘하게 받아내 상대를 흠칫 놀라게 했다.
1회전이 끝나고 2회전은 하루 뒤라 한립은 별원으로 돌아왔다.
거처에서 화지동천을 열고 안을 살피니, 제혼은 여전히 남원자 혼백이 요양하는 것을 돕고 있었고, 곡린은 폐관수련 중인지 그와의 약속을 지켜 약재원 옆 죽루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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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한립은 무상문(無傷門) 장로인 초종을 상대자로 뽑았다.
하산해서 실력을 보인 일이 거의 없어 현산종도 알아낸 정보가 거의 없는 인물이었다.
흙 속성 법칙의 힘을 수련했고, 수행이 조백로보다 높은 대라 초기 수사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게 없었다.
한립이 축(丑) 자 무대에 오르고 한참이 지나서야 초종 장로가 나타났다.
백발에 피부가 까만 편인 상대는 작은 체구에 짧은 소매의 장삼을 입고 있어 마부 같아 보였지만, 자세가 특이해 등은 꼿꼿이 펴고 두 팔을 앞으로 늘어트려 늙은 원숭이처럼 서 있었다.
한립은 상대의 눈동자에 희미하게 금색 광택이 어린 것을 보고 상대에 대한 평가를 제고했다.
주현양은 오늘도 반원형 관람석에 앉아 있었고, 보제령을 얻을 기회를 놓친 무극산 조원래도 어제 일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옆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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