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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139화 (1,896/2,000)

2139화. 새로운 임무

*

방으로 들어가 탁자에 둘러앉은 한립은 청년이 줄곧 대놓고 자신을 아래위로 훑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교삼 수사, 이분은?”

의아한 마음에 한립이 소개를 부탁했다.

“윤회전의 부전주님들 중 한 분인 무양 수사십니다.”

무양이라는 이름에 한립도 안색이 달라졌다.

“역시 나를 알고 있었군요.”

침묵하던 청년이 입을 열었다.

“진언문 유적에서 당신의 초상화를 보았었고, 열화수사에게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열화라면……. 그놈의 제자가 아닙니까?”

무양이 열화라는 말에 분노를 드러냈다.

“괜히 화내실 것 없습니다. 열화수사는 기마자와 함께 사문을 배반하지도 않았고, 이미 회계에서 목숨을 잃었으니까요.”

“구진이 말하기를 기마자도 수사의 손에 죽을 뻔했다지요?”

한립은 감구진이라는 이름을 정말 오랜만에 들어 조금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대오행환세결>도 수사가 지니고 있겠군요?”

무양은 거침없이 물었고, 그 말에 방 안 분위기가 딱딱해졌다.

“……원하신다면 내드리지요.”

무양은 그의 반응에 놀라 진심인지 의심스러웠다.

“<대오행환세결>은 원래 진언문의 것이었고, 저도 반쯤은 미라노조의 제자와 비슷한 신분이라서요. 진언문의 의발(衣鉢)을 당신에게 전하면 노조의 은혜에 어느 정도 보답할 수 있을 듯싶군요.”

한립은 담백하게 말했다.

그 소리를 듣자 무양이 오히려 가책을 느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대오행환세결>은 수사가 잘 가지고 있으세요. 실전되지만 않게 신경 써 주면 됩니다.”

“왜 그런 말씀을.”

“배신자 말고 다른 사형제들은 전부 생명을 불살라 종문을 지켰습니다. 나 혼자 남아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데, 배신자와 다를 게 무어란 말입니까. 오랜 세월 기마자 그 짐승만도 못한 놈이 날뛰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도 사문을 대신해 처단하지 못한 주제에. <대오행환세결>만 받아 챙길 자격이 있겠습니까.”

무양이 쓴웃음을 지었다.

한립이 더 설득하려는데 무양이 손을 저었다.

“결정을 내렸으니 더는 말할 것 없습니다.”

“그러시다면 공법은 일단 제가 지니고 있을 테니 언제라도 진언문을 재건할 마음이 생기시면 받아 가시지요.”

무양은 한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에 찬사가 어렸다.

“이제 임무에 관해 이야기하실까요?”

교삼이 먼저 입을 뗐다.

“일단 금동의 소식에 대해 말해주시지요. 아는 게 있으시겠지요?”

“당장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금동 수사가 안전하다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어디에 갇혀 있는지도 알아 왔으니, 수사가 임무만 성공적으로 완수해 주시면 갇힌 장소도 알려드리고 구출도 돕죠.”

“금동의 위치를 알고 싶으면 임무를 완수하란 소리군요.”

“수사를 곤란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수사가 성공해야 다음 작전들을 펼칠 수 있어서 그런 겁니다. 계획된 일을 전부 마쳤을 때 비로소 금동 수사를 구할 기회가 생길 테고요.”

한립이 미간을 좁히자 교삼이 담담히 말했다.

“제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천정의 선사가 구원성에 도착했어요. 곧 선발대회가 열리겠죠. 그 대회에 참가해서 보제연 참석 자격을 얻어주셨으면 합니다.”

“참석 자격을 쟁취하라……. 어떤 식으로 선발을 하는 겁니까?”

“대금원선역 전체에서 총 백 명을 뽑는데. 구원관, 백조산, 금원선역 및 일월맹에서 각각 다른 비율로 참석 자격을 선점하고 남은 건 12자리입니다. 대금원선역의 다른 종문들이 그걸 두고 겨루게 되니, 선발대회에 나가 전투에서 이기면 참가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양이 답했다.

“가장 관건은 신분을 들키지 않고 선발대회에서 승리해, 보제연 참가 자격을 증명할 보제령을 확보하는 거예요.”

옆에서 교삼이 덧붙이듯 말했다.

“가능하겠습니까? 제가 금원선역에서는 보낸 시간이 길지 않다지만, 그래도 저를 알아볼 사람이 많을 겁니다. 게다가 저와 싸운 적이 있는 대라급의 적몽, 묘법선존이 성안에 있던데, 그들에게 정체를 들키면 금동을 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제 목숨까지 위험해질 거예요.”

한립은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세요. 일전에 검은 가면을 드린 게 이번 일을 위해서니까요.”

교삼이 말했다.

“가면으로 기운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일단 싸우기 시작하면 공법신통 그리고 선령력 기운이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검은 가면이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셨다면, 잘못 생각하신 거예요.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의 선령력과 기운을 흡수해 융합시키면 거의 흡사한 기운을 발산할 수 있습니다. 수사가 시간법칙만 사용하지 않는다면 대라 후기 수사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거고요.”

“그렇다 한들, 대금원선역 사람도 아닌 제가 무슨 자격으로 선발대회에 참가하겠습니까?”

“그것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선발대회에 참가할 신분도 준비해 두었으니까요. 현산종(顯山宗) 장로의 이름으로 출전하게 될 겁니다.”

이번에는 무양이 답했다.

현산종에 대해서는 한립도 들어보았다.

대금원선역에서 구원관 같은 초대형 종문을 제외하고, 일월맹이 가담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중급 종문이었다. 꽤 규모가 있는 종문인데 윤회전과 왕래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현산문도 윤회전이 대금원선역에 심어둔 거점인 겁니까?”

“그렇다고도 볼 수 있어요. 이 일은 현산문 안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고요. 이번에 현산문 종주 주현양이 직접 참가자들을 데리고 성으로 와 이미 서성(西城) 별원에 머물고 있고요. 수사가 신물을 들고 찾아가기만 하면 그들이 알아서 할 겁니다.”

교삼은 하얀 옥간을 꺼내 한립에게 건넸다.

“대체 무엇을 위한 작전인 겁니까?”

옥간을 받아 손끝으로 쓸어본 한립이 물었다.

“그건 알려 하지 마세요. 이번 일이 끝나면 금동의 위치와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을지 알려드리겠습니다.”

교삼의 말에 한립은 곰곰이 생각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교삼은 구원성에 대한 중요한 소식들을 알려주고 무양과 함께 떠났다.

“자네는 <대오행환세결> 공법을 익혔고, 또 나와 진언문을 대신해 배신자 기마자에게 중상을 입혔으니 반쯤 진언문 사람이라 할 수 있겠지. 큼, 그럼 내가 사형이 되는 것이니 주는 선물일세.”

떠나기 전 무양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며 금색 벼루를 꺼내 한립에게 날려 보냈다.

거절하기도 전에 두 사람이 가버려 거처에는 그만 남았다.

손바닥 위에 금색 벼루를 두고 살펴보니 엎드려 있는 황소가 보였는데 우직한 생김새가 아주 자연스러웠다.

선령력을 조금 일으켜 발동하자 황소 벼루에서 흙 속성 법칙의 힘을 품은 금색 파문이 퍼져 나갔다. 최소한 5품 선기는 되는 듯했다.

한립이 기뻐하며 벼루에 특별한 표식 같은 것이 없는지 확인한 다음 저물탁에 넣어두었다.

그러고 화지동천으로 들어가자 누각 2층 침상에서 창백한 얼굴을 하고 앉아있는 제혼을 발견했다.

그 옆 창가에 서 있던 남안이 돌아보며 인사했다.

“한 수사.”

“어떻습니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라버니의 혼백을 몽담화(夢曇花)에 심어 한동안 배양을 한다고 해요. 의식을 치르느라 기운을 많이 허비해 제혼 낭자는 쉬고 있고요.”

남안은 미안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립이 제혼을 살피고 방 안 탁자의 검은 색깔 둥근 화분으로 시선을 돌렸다.

암홍색 토양에 기괴하게 생긴 검은 꽃대가 올라와 7개의 검은 이파리가 주먹 크기의 하얀 꽃봉오리를 감싸고 은빛을 깜빡거렸다.

의식으로 훑으니 그 안에서 남원자의 기운이 느껴졌다.

“혼백에 관한 일은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선 안 되니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세요.”

“한 수사와 제혼 수사가 여기까지 해주신 것만으로도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더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앞으로 저도 수사에게 도움이 될 일이 있기만을 바라겠습니다.”

남안의 공손한 태도에 한립은 몇 마디 위로를 건네고 자리를 떠났다.

* * *

구원성 서쪽, 현산종 별원.

눈처럼 고운 장포를 걸친 잘생긴 소년이 문 앞에 이르렀다.

문지기가 상대의 당당한 태도와 헤아릴 수 없는 수행을 보고 고분고분 안으로 소식을 전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문 안에서 보라색 장포를 입고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걸어 나왔다.

무슨 대단한 손님이 납셨다기에 서둘러 왔건만 문밖에 금선 중기밖에 안 되는 소년이 서 있자 짜증이 치밀었다.

“수사가 우리 종주님을 뵙고자 했다고요? 이런, 종주님이 안 계신데 어쩐답니다. 제게 용건을 말해주시면 종주께서 돌아오는 대로 전하겠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감정을 다스리는데 능한지 아무렇지 않게 문간에 이르러 이렇게 말했다.

미간에 주름이 잡힌 소년은 손에 든 옥패를 만지작거렸다.

“네가 종주도 아닌데, 왜 종주에게 할 말을 네게 해야 하지? 종주더러 나오라 하거라.”

잘생긴 소년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한립이었다.

수염이 긴 노인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내가 수행이 너무 낮아 너희 종주를 만날 자격이 안 된다 이것이냐?”

인상을 찡그린 한립은 노인이 대답하기도 전에 태을 중기의 기운을 발산했다. 안색이 달라진 수염 긴 노인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기운을 숨기는 일은 흔했지만 눈앞의 상대처럼 아무런 티도 나지 않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선배님께서 찾아주신 줄도 모르고, 제가 눈이 삐었나 봅니다.”

수염 긴 노인은 서둘러 포권을 하고 따로 안쪽에 전음을 보내 준비를 시켰다. 원수라도 찾아온 것이면 대비를 해야 했다.

“악의를 가지고 찾아온 것이 아니니 걱정할 것 없다. 여기 종주가 별원에 온 것을 알고 만나러 온 것이니 이 신물을 전하거라.”

한숨을 내쉰 한립이 옥패를 던져주었다.

“예! 바로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수염 긴 노인이 꾸벅 인사를 하고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곧 하얀빛이 별원 안에서 날아들어 건장한 체구의 철탑 같은 거한으로 변했다. 거한의 각진 얼굴에 반가운 웃음이 가득했다.

“한 수사. 이게 얼마 만입니까! 하하하.”

철탑 거한의 우렁찬 목소리에 문이 다 흔들거렸다.

한립은 눈썹이 진하고 호방하게 생긴 거한이 대라 중기 수사인 것을 알아보았다. 상대는 친한 척하고 있었지만 오늘 처음 본 사이였다.

재빨리 무슨 일인지 알아챈 한립도 살갑게 다가가 웃음을 터트렸다.

“주 수사, 못 본 사이에 아주 위풍당당해 지셨습니다!”

두 사람은 가까이 서서 한담을 나누기 시작했고, 한립을 맞이했던 수염 긴 장로는 자신이 뭣 모르고 함부로 대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면서 긴장을 풀었다.

주현양과 한립은 나란히 정당으로 걸어갔다.

“주 장로, 가서 술상을 준비하라 이르거라. 내 한 수사를 대접해야겠으니 만 년 동안 따지 않은 청람옥로(靑嵐玉露)를 내 오거라.”

“존명!”

기분이 좋아 보이는 주현양의 명에 수염 긴 노인이 대답하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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