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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135화 (1,892/2,000)

2135화. 시간차공간

*

의식을 거둔 한립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옆방 사람들의 하는 짓이 흥미로운 것이 가는 길에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그는 수결을 맺어 방에 몇 겹의 금제 보호막을 펼쳐두었다.

일월신주가 웅웅 떨리면서 떠올라 작은 창문을 통해 점점 높이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월신주의 속도가 불가사의할 정도로 빨라 유금성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일월신주의 비행 속도가 그가 직접 둔술을 쓰는 것보다 느리지 않으니 이대로면 구원성에 30년 내로 도착할 수 있었다.

시선을 거둔 한립은 금색 도병 다섯 마리를 불러내 방을 지키게 하고 화지공간으로 들어섰다.

“주인님, 구원성으로 출발한 건가요?”

제혼이 한립이 들어온 것을 보고 다가왔다. 흰둥이는 이미 수련을 시작했는지 오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한립이 간략히 일월신주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계당 장로의 기억에서 봐서 주인님이 구원성으로 가는데 일월신주가 가장 적당할 줄 알았어요.”

“곡린과 남안은?”

“곡린은 화지공간 주위를 뒤지고 다니기에 방심했을 때 비술을 써서 재워버렸고, 남안은 얌전하기는 하나 그래도 사람 속은 모르는 거라 같이 재웠어요.”

제혼이 손을 뻗어 누각을 가리켰다.

“잘했구나. 수고했다.”

가는 동안 시간차공간(時間差空間)을 이용해 수련할 계획이라 제혼이 손을 쓰지 않았어도 곡린과 남안의 오감과 의식을 봉인해두려고 했었다.

한립은 금빛을 날려 곡린과 남안이 있는 누각 주위에 따로 겹겹이 금제를 펼쳐두고서야 안심했다.

그러고 광음천선대진을 살피는데 한 귀퉁이가 망가져서 빛이 암담했다. 저번에 영역 공간에서 빠져나오느라 어쩔 수 없이 진법을 부숴야 했다.

다행히 이것도 그가 직접 펼쳐둔 진법이고 재료도 남아 있어 고치면 되었다.

* * *

반나절을 바삐 움직인 한립은 선원석을 잔뜩 꺼내 옆의 보조 진법에 쌓아두었다.

작업을 마친 그는 그 옆에 앉아 작게 영역을 펼쳤다. 그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선 제혼도 영역에 둘러싸였다.

갑자기 그가 영역을 펼친 이유는 몰랐지만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그런 제혼을 힐끗 본 한립은 주문을 외워 진언보륜, 단시횃불 등 다섯 가지 시간보물들을 불러냈다.

진언보륜과 단시횃불이 하늘로 날아올라 금색 달과 금색 태양이 되고, 환진사루가 땅으로 떨어져 금색 모래사막을 만들었고 동을신목이 그 위에 뿌리를 내려 무성한 수풀을 이루었다.

또한 광음정병의 빛이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금색 강이 되어 콸콸 흘러내렸다.

한립이 방출한 영역은 삽시간에 하나의 세계가 되어 바닥의 모래와 금색 강만 환영처럼 보였다.

이때 진언보륜이 변한 둥근 달이 하늘에서 내려와 광음천선대진 위에 자리잡았다.

빛을 크게 머금은 광음천선대진이 급속도로 운용되면서 진언보륜도 몇 배의 광채를 휘날리며 빠르게 역전했다. 둘이 호응하는 게 틀림없었다.

영역 안에 바람이 불어 금색 모래가 날리고 강물이 물결치며 바닥의 무성한 숲이 흔들렸다. 다섯 가지 시간법칙의 힘이 요동치고 있었다.

한립은 영역이 또다시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운용되기 시작한 것을 알고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이전의 경험이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영역과 광음천선대진이 공명을 하게 두었다.

쿠쿠쿵…….

강렬한 시간파동이 일어나 영역 안에서 충돌하던 다섯 개의 시간법칙들이 평화를 되찾고, 시간 유속만 급속도로 빨라져 바깥과 만 배는 차이가 나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제혼은 얼떨떨할 뿐이었다.

민감한 그녀는 영역 안의 시간 유속의 변화를 감지하고 탄복했다는 얼굴로 한립을 바라보았다.

백 배의 시간차공간을 선보였을 때도 무척 놀랐는데 만 배 시간차공간에는 두 손 두 발을 다들 정도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주인님께서는 하늘의 뜻을 타고 나셨나 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제혼은 이렇게 생각하며 그 자리에 앉아 공법을 운용해 유명귀조와 산혼귀적을 연화시켰다.

두 선기의 힘은 막강했다.

특히 산혼귀적을 철저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이름 그대로 적의 혼백을 흩어버리는 것도 간단한 일이 될 것이다.

계당 장로는 산혼귀적을 얻자마자 싸우느라 제대로 연화할 시간을 갖지 못해 그 위력을 제대로 내지 못한 것이다.

* * *

5, 6백 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눈을 뜬 한립의 시선에 기쁨이 어려있었다.

이제 시간차공간의 형성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간차공간은 균천일귀의 힘 덕분에 형성 가능한 것이었다. 균천일귀 자체는 사라졌지만 그 힘은 흩어지지 않고 진언보륜과 일체화되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진언보륜이 광음천선대진과 공명해 시간차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대오행환세결>과 광음천선대진도 모종의 기묘한 반응을 해서 시간 가속효과를 만 배까지 이를 수 있게 도왔다.

새로운 시간차공간에서 균천일귀는 진언보륜에 융합되었고 세월신등은 단시횃불에 융합되어 신통을 펼치는데 드는 법칙의 힘을 영역 안에서 자체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영역 안에 양생수까지 있어 광음천선대진을 작동할 충분한 법칙의 힘이 준비된 셈이었다.

영역의 시간법칙의 힘은 다 쓰더라도 한립이 시간을 들여 회복할 수 있었기에 더는 그 문제로 고민할 것이 없었다.

한계는 시간 보물의 시간도문이 모두 꺼지면 영역이 자연적으로 해체된다는 것이었는데, 시간차공간을 풀 방법은 찾은 셈이지만 너무 불편했다.

긴박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시간도문이 다 꺼지기를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5, 6백 년간의 관찰을 통해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르기는 했다.

한립은 손에서 금빛을 뻗어 광음천선대진 옆에 쌓아둔 선원석들을 전부 회수했다.

그리고 양손으로 수결을 맺어 체내의 선령력과 시간법칙을 최대한 체내로 불러들여 영역과의 연계를 끊으려 시도했다.

그의 이런 행동에 인근 영역이 흔들거리면서 닫히려는 조짐을 보였다.

‘그렇지!’

하지만 기쁨도 잠시, 방대한 힘이 영역 안에서 흘러나와 한립의 몸 안에 가둬둔 선령력을 강제로 뽑아갔다.

흔들거리던 영역이 안정적으로 유지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선원석 공급이 끊긴 광음천선대진은 영역의 선령력을 미친 듯이 빨아들여 이중 압박에 한립은 체내 선령력이 빠르게 고갈되어 갔다.

눈을 가늘게 뜬 한립은 이대로 버텨볼 작정이었다.

체내의 선령력이 고갈되면 영역이 어떻게 유지되나 볼 생각이었다.

대라경에 이른 그는 선령력이 많아져서 영역과 광음천선대진 양쪽에서 뽑아가는 데도 거의 반나절이 지나서야 바닥을 보였다.

그러나 선령력을 빨아들이는 힘은 줄어들지 않고 그의 기혈의 힘까지 짜내려고 난리였다.

‘안 돼!’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선원석들을 그냥 광음천선대진 옆으로 돌려놓으려는데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영역이 맹렬히 진동하더니 빨아들이는 힘이 몇 배로 강해져 그의 경맥으로 침투하려 한 것이다.

몸이 뻣뻣하게 마비된 한립은 순식간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되었다.

깜짝 놀란 그가 전력으로 힘을 주었지만 소용이 없었고, 기혈의 힘이 빨려 나가 무력해지면서 의식도 불분명해졌다.

제혼이 그걸 보고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아차렸다.

“주인님!”

제혼이 소리치며 달려가려는데, 강렬한 금빛이 파도처럼 한립의 몸에서 뻗어 나와 그녀를 튕겨냈다.

눈을 감은 한립은 가수면 상태에 빠진 듯했다.

휙!

퍼져나가던 금빛이 급격히 방향을 틀어 커다란 구슬로 변해 그를 감싸고 영역의 힘에 저항했다.

기혈의 힘이 유실되지 않자 기력을 차린 한립이 눈을 뜨고 이상하다는 눈으로 금색 구슬을 보았다.

금색 구슬 속에서 오묘한 법칙의 의미가 흘러들었다.

한립은 의식세계에 수많은 벼락이 내리치는 것처럼 <대오행환세결> 공법의 한 글자 한 글자와 미라노조가 지도해 주었던 말들과 <대오행환세결>에 대한 깨달음들을 떠올렸다.

모든 것이 하나로 모여 무언가를 이뤄가고 있었다.

“오행은 돌고 돌아 절대 끊이지 않고…….”

반쯤 눈을 감은 그가 오른손으로 허공을 짚어 시간법칙 정사들 분출했다.

각종 재료에서 뽑아낸 법칙정사의 수가 대라경에 이르면서 더 늘어 이제는 3백 3십여 가닥 정도 되었다.

시간정사를 품은 금빛이 빙글빙글 모여 사람 머리통만 한 동그란 구체로 변하더니 무궁무진한 시간법칙 파동을 발산했다.

그 구슬이 날아올라 주위의 영역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콰르릉!

영역 전체의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쨍강!

거울처럼 모든 게 깨져나가고 광음천선대진이 운용을 멈추었다.

눈을 뜬 한립은 화지공간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를 감싼 금색 구슬도 사라지고 바닥으로 떨어진 그는 크게 가슴을 들썩였다.

창백한 얼굴과 달리 눈에는 희열이 가득했다.

드디어 공간 안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시간법칙으로 만들어낸 금색 구슬은 말로만 듣던 법칙의 힘이 발전한 최종 형태의 법칙 구슬 같았다.

미라노조는 지도를 해주면서 법칙의 힘이 법칙정사, 법칙고리 그리고 최종 형태인 법칙구슬로 변할 수 있다고 일러주었었다.

진정으로 더 심도 있는 경지에 이르려면 법칙구슬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죽을 위기에서 빠져나오면서 법칙구슬까지 깨우치게 될 줄은 몰랐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놀라 죽을 뻔했잖아요!”

제혼이 날아들어 그런 그를 부축했다.

고개를 끄덕여 괜찮다는 표시를 한 한립은 서둘러 회복용 단약 두 알을 삼켰다.

제혼은 한립의 기운이 허약해진 것을 보고 수련을 멈추고 옆에 앉아 그를 보호했다.

화지공간의 천지원기가 한립을 향해 몰려들었고, 동시에 바깥에서도 공간을 넘어 천지원기가 흘러들어왔다.

대라경에 이른 수사들은 천지원기를 다루는 수준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져 있었다.

오래지 않아 눈을 뜬 한립은 이전의 혈색을 되찾았다.

대라경에 이르러서 원기 회복이 빨라지기도 했고, 동을신목과 양생수를 융합해 실체화시키면서 양생수의 효능 덕에 육체적인 부상에서 더 빨리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주인님, 아까는 어떻게 된 거예요? 괜찮으신 거죠?”

제혼이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다. 시간차공간에 능숙하지 않아 사고가 있었지만, 원기를 소모한 것뿐이라 이제 괜찮아졌다.”

시간차공간의 원리를 완전히 파악한 게 아니라서 한립은 간략히 답했다.

“그럼 다행이에요.”

제혼이 숨을 내쉬는 것을 보고 한립이 웃으며 손을 뻗었다. 멀리서 수련하던 흰둥이와 정염 동자가 그가 있는 쪽으로 끌려왔다.

힘의 조종이 정교해져서 둘은 위치가 달라진 것도 모르고 수련을 하고 있었다.

한립은 시간영역을 퍼트리고 광음천선대진과 영역을 결합해서 다시 만 배 시간차공간을 형성했다.

영역에 둘러싸이고서야 눈을 뜬 흰둥이가 주변을 돌아보고 입을 쩍 벌렸다.

정염동자는 삼족금오 요핵을 녹이느라 딴 데는 아무 관심도 없어서 눈도 뜨지 않고 있었다.

“새로 펼친 시간차공간이 바깥과 시간유속이 만 배는 차이가 나니 앞으로는 이곳에서 수련하거라.”

“만 배요? 여기서 만 년을 수련하는 게 바깥에서는 1년이라는 소리예요?”

흰둥이가 기겁해 물었다.

“주인님께서도 얼마 전에 깨우친 신통이셔. 우리는 저쪽 가서 수련하자. 괜히 주인님 수련에 방해 가지 않게.”

제혼이 흰둥이를 데리고 옆으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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