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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132화 (1,889/2,000)
  • 2132화. 물리치다

    *

    “남안, 너도 와서 돕거라.”

    머리를 굴린 적몽이 아직 제자리에 서 있는 남안을 불렀다. 그 말을 듣고도 남안은 어쩔 줄 모르고 망설였다.

    “내게 와 빌었던 일을 잊은 것이냐!”

    적몽이 서늘하게 소리치자 남안도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날아들었다.

    그걸 보고 한립이 미간을 좁혔을 때 이변이 발생했다.

    현란한 하얀빛이 번뜩여 흰둥이는 눈을 찌르는 날카로운 빛에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한립의 영역 공간압력 아래에서 적몽의 호리호리한 몸이 더는 구속을 받지 않고 순식간에 날아들었다.

    쫙 펼친 그녀의 손에서 반투명한 장막이 나타나 한립과 흰둥이를 가두려 했다.

    적몽은 계책이 성공한 것에 기뻐하며 재빨리 수결을 맺어 반투명한 장막에 9마리 적홍색 수정용들을 일으켰다. 수정용들이 뿜은 불길이 두 사람을 사로잡았다.

    으악!

    비명소리가 터지고 적몽은 서둘러 구룡신화조의 위력을 거두었다. 그 장막 안에는 한립과 흰둥이가 아니라 나머지 흑의인 두 명이 갇혀 괴로워하고 있었다.

    “어딜 간 것이야!”

    “같은 수에 또 당할 줄 아셨습니까?”

    조롱기 어린 한립의 목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금빛을 머금은 한립은 한 걸음 만에 적몽 앞으로 도달해 손에 들고 있던 청죽봉운검에서 뇌전을 방출했다.

    “빨라…….”

    적몽이 눈이 어지럽다고 느꼈을 때, 한립의 검 끝이 그녀의 목을 찔러 들어오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손을 들어서 막았지만 그녀는 충격에 튕겨 나갔다.

    몸이 저릿해진 적몽은 손등이 불에 덴 것처럼 아팠다.

    곧이어 그녀가 숨을 고를 시간도 주지 않고 고공의 불빛들이 맷돌만 한 유성우를 떨구었다.

    긴장한 적몽이 피하려는데 어디선가 푸른 덩굴이 발목을 감고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덩굴을 벗어나고 싶어도 어느새 움직임이 극히 느려져 무엇을 하든 늦을 것 같았다.

    위기의 순간 기합을 넣은 그녀는 전신에 엄청난 열기의 화염을 일으켰다. 원영 진화를 바깥으로 분출해 자신의 화염 영역과 감응을 한 것이다.

    도처의 용암 폭포가 한데 뭉쳐 하늘로 치솟아 떨어지는 불꽃 유성우들과 충돌했다.

    그녀를 휘감은 발목의 덩굴도 원영 진화를 이기지 못하고 밀려났다.

    이제야 한립의 시간영역이 단순히 조물경이 아닌 일부지만 천인경 영역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녀는 폭풍우 속 뒤집힌 배 꼴이 나고 말 터였다.

    “너희는 멍하니 뭐 하고 있는 것이야! 어서 영역을 방출해 저 녀석의 영역의 힘에 대항하란 말이다!”

    적몽은 구룡신화조를 거두고 그 안의 두 사람에게 소리 질렀다.

    시선을 마주친 흑의인들은 두 손을 맞잡고 영역을 연합해 방출했다.

    밝은 검은 빛이 두 사람 몸에서 흘러나와 새까만 영역으로 변해 시간과 화염영역에 중첩되었다.

    검은 영역이 도래한 곳에 강산이 내리눌리고 지면도 열 장은 가라앉고 있었다.

    한립도 어쩔 수 없이 일 장 정도 아래로 추락했고, 흰둥이는 압도적인 중력의 힘에 바다로 떨어졌다.

    저 멀리 제혼이 계당 장로와 맞붙어 싸우는데 전신에 암홍색 빛이 용솟음치는 게 무시무시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의 상대인 계당 장로는 얼굴이 백골로 뒤덮여 그 스스로 한 마리 악귀가 된 것 같았고, 새까만 피리에서 사악한 음률을 끊임없이 풀어놓았다.

    안 그래도 전투로 인해 갈라졌던 대지에서 칠흑 같은 안개들이 스며 나와 바닥을 채우고 있었다.

    그 검은 안개 속에 어렴풋이 나타난 뾰족뾰족한 가시와 사람의 해골뼈가 가득한 성에는 ‘저승’이란 글씨가 적혀 요사스러운 핏빛을 방출했다.

    계당 장로가 성 위에 서서 손에 든 검은 피리를 더욱 세차게 불어댔다.

    피리 소리가 듣기 고역스러워질수록 저승이라 적힌 귀성(鬼城)의 문이 열리고 흉측하게 생긴 음혼과 귀물들이 쏟아져나와 제혼을 향해 달려들었다.

    음산한 안개와 흉살기가 섞여 일대가 뿌옇게 변했다.

    제혼은 그걸 보고 두려워하기는커녕 혀로 입술을 핥으며 입맛을 다셨다.

    그대로 만귀대군(万鬼袋軍) 속으로 뛰어든 제혼이 유명귀조를 휘두를 때마다 애처로운 귀곡성이 터져 나오고, 수많은 음혼과 귀물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잘려나간 음혼들이 귀기로 흩어져 사라지기 전에 제혼이 숨을 훅 들이켜 체내로 흡수해 버리니 만귀대군을 그녀 홀로 몰살시키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곡린이 검구 장로 앞으로 달려들자 상대가 검을 횡으로 휘둘러 그의 목을 자르려 했다.

    곡린은 고개를 숙여 분명 품계가 있는 듯한 선기를 덥석 이빨로 깨물었다.

    카캉!

    놀랍게도 금색 장검이 부서지면서 곡린의 이빨 자국대로 뜯겨 나왔다.

    “네 이놈! 죽고 싶더냐!”

    검구 장로가 아까움에 속이 쓰려 대노했다.

    그러나 곡린은 냉철하게 물러나 으적으적 입에 문 검 잔해를 씹어 삼키고 있었다.

    그는 곁눈질로 한립 쪽을 살폈다.

    곤란에 빠진 그를 구하기 위해 나타난 게 저 녀석이라니?

    한립도 열심히 싸우는 중이었다. 흑의인 두 명이 힘을 합쳐 펼친 중력영역이 그의 시간영역의 힘을 어느 정도 상쇄해서 적몽도 한숨을 돌리고 수결을 맺을 수 있었다.

    영역 안 여덟 줄기의 용암 폭포가 그녀의 의지에 따라 거대한 용암 소용돌이로 변해 한립을 집어삼키려 들었다.

    용암 소용돌이는 작열하는 열기 외에도 강력한 흡인력을 지녀서 한립도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한립은 걱정하는 기색도 없이 손을 휘저었다. 그의 영역 안 만물이 요동치며 구불구불한 산맥들이 떠올라 그의 아래로 몰려들었다.

    산맥들이 몰려든 곳에 시간 파문이 겹겹이 퍼지며 화염 소용돌이를 대부분 몰아내고 두 흑의인까지 산맥으로 둘러싸였다.

    흑의인들은 의식 흐름이 느려져서 상황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산맥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산맥은 허상이라 그리 무겁지 않았지만 거기서 자라는 동일신목은 진작 실체화되어 산맥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흑포인들을 옭아매었다.

    잔뿌리들이 흑포인들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 혈관으로 파고들자 그들은 참혹한 비명을 지르다 조용해졌다.

    그들이 펼친 영역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적몽은 난색을 표했다.

    그녀는 검구와 계당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을 보고 악에 받쳐 소리쳤다.

    “겨우 대라 초기 따위에게 이리 당해줄 순 없지! 오늘 네 놈을 죽이지 못하면 천정에서 앞으로 어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느냐.”

    두 팔을 쭉 뻗은 그녀의 주위로 불빛이 성대하게 퍼지고 천지원기마저 연소가 되어 진공 지대가 형성되었다.

    전신이 새빨간 불길로 둘러싸인 적몽의 머리카락이 화염으로 변해 치솟고 두 눈에는 금빛 화염이 넘쳐흘렀다. 원고시대 불의 신이 강림한 것처럼 무시무시한 파동이 넘실거렸다.

    그녀의 손길에 꽃잎처럼 금색 화염이 허공을 갈라 한립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에 한립은 천살진옥공을 운용해 주먹을 날려 거대한 주먹 허상으로 화염 꽃잎을 막으려 했다.

    쿠앙!

    금색 불꽃 꽃잎은 주먹 허상을 태워 구멍을 뚫고 여전히 한립을 향해 다가왔다.

    인상을 굳힌 한립이 청죽봉운검을 이용해 날린 금색 뇌전빛이 금색 꽃잎을 갈랐다.

    그가 기뻐하기도 전에 전방 허공에 이상한 파문이 일고, 적몽의 뒤로 거대한 금색 꽃봉오리가 피어났다. 마치 공작새가 꽁지를 펴는 것 같기도 하고 천수관음이 천 개의 손을 펼친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분천염지(焚天炎地)까지 쓰게 만들다니, 자랑스럽게 여기며 죽어도 좋다.”

    적몽의 두 눈이 눈부신 붉은 색으로 바뀌어 무궁무진한 불길이 흘러나왔다.

    다음 순간 등 뒤의 거대한 불꽃 꽃봉오리가 수많은 금색 꽃잎을 피웠다.

    그곳을 중심으로 반경 만 리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해 땅이 거북 등딱지처럼 쩍쩍 갈라지고 온 세상이 불꽃으로 가득 차 지옥도가 펼쳐졌다.

    한립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천 리 가까이 퍼트려 놓았던 영역을 축소해 수십 리 범위를 압축적으로 장악했다.

    그의 손짓에 머리 위 둥근 달이 빙글빙글 돌면서 수많은 금색 광선을 산맥과 바닥의 금색 모래로 내려 보내주었다.

    마치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처럼 산맥의 숲들이 사사삭,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달빛을 품은 물결은 유유히 흘러 시간영역 안의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금색 꽃잎들이 빠르게 공간을 불사르는데 한립의 시간영역 안에서만큼은 그 속도가 느려져 점점 작은 불씨로 흩어져갔다.

    수십 장을 가지 못해 거대한 금색 꽃잎이 거대한 성벽 크기에서 작은 불똥으로 변해갔다.

    힘겹게 한립 앞까지 이른 불똥들은 반딧불이 같은 작은 점에 불과했다.

    “이, 이건……. 이럴 수는 없어.”

    적몽은 경악했다.

    한립의 영역공간이 그녀의 화염 위력을 제거시키는 것을 본 것이다.

    사실 위력을 제거시킨 게 아니라 한립이 대오행환세결의 힘으로 거대한 화염을 아주 오래전 보잘것없던 상태로 되돌린 것이었지만 말이다.

    “당신이 졌습니다.”

    피식 웃은 한립은 한걸음에 적몽 앞으로 이동했다.

    적몽도 시간법칙이 3대 지존법칙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상대가 영역 경지로 자신을 압도한다면 그녀도 싸울 생각이 없었다.

    주변 화염을 거둔 적몽은 달아나려 했다.

    “어딜 가려 하십니까?”

    냉소를 흘린 한립은 영역을 다시 만 리로 퍼트려 하늘에 뜬 달이 적몽을 쫓게 했다.

    진언보륜이 변한 둥근 달이 가까워질수록 속박의 힘이 강해져 적몽의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그녀도 이제 다른 걸 신경 쓸 틈이 없어 미간에 손을 대고 주문을 외웠다.

    “터져라.”

    한립의 영역 안 산맥에 눌려있던 두 흑포인의 미간에서 불꽃 표식이 터지면서 강렬한 화염의 힘이 용솟음쳤다.

    콰르르.

    그 폭발의 위력에 영역 안 산맥이 금색 모래로 갈라져 흩날리고 동을신목 수풀도 한쪽이 허물어져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영역과 긴밀하게 의식연계가 되어 있던 한립은 가슴을 부여잡았고, 입가로 피가 흘러내렸다.

    그 찰나의 틈에 적몽은 붉은빛이 되어 하늘 끝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한편 곡린은 전투를 마치고 서금충 본체로 변해 검구라는 수사를 꿀꺽 삼키고 있었고, 계당 장로는 제혼에게 잡혀 단전과 미간에 유명귀조가 박혀 있었다.

    희귀한 음혼법칙으로 대라의 경지까지 이른 계당 장로는 영역에 ‘저승’ 귀성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동급 수사에 비할 수 없이 강했다.

    하필 천적이나 마찬가지인 대라 제혼을 만난 것이 운이 없었을 뿐이었다.

    “죽이지 마세요! 제발 계당 장로를 죽이지 마세요…….”

    누군가 다급히 소리치는데, 남안이었다.

    “제혼, 일단 살려두거라. 천정의 소식을 알아내야겠다.”

    그 소리를 들은 한립은 미간을 좁히고 말했다.

    제혼이 고개를 끄덕이고 미간의 수직으로 갈라진 틈에서 암홍색 빛을 뿜었다. 계당 장로의 의식을 비술을 이용해 구금해 두려는 것 같았다.

    “노부에게선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계당 장로는 성격이 강직해서 가타부타 말도 없이 전신에서 괴이한 검은빛을 일으켜 눈알까지 새까맣게 물들어 버렸다.

    그의 몸속에서 흉악한 귀물이 상반신을 내밀고 핏빛 아가리를 벌려 계당의 머리를 잡아 뜯어 버렸다.

    동시에 계당 장로의 단전이 검은빛을 머금고 자폭하려 했다.

    “조심…….”

    한립이 놀라 경고했다.

    제혼은 그걸 보고 제3의 눈에서 붉은빛을 번득이며 폭발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곧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검은 빛기둥이 하늘을 꿰뚫었다.

    삽시간에 먹구름이 몰려들고 강력한 바람이 몰아쳐 무형의 힘이 사방으로 갈리며 모든 걸 쓸어버리고 있었다.

    대라경 수사가 단전과 원영을 자폭했으니 그 위력이 이런 천기현상을 일으킨 것이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한립은 극성으로 속도를 높여 흰둥이, 제혼, 남안 그리고 곡린까지 선령력을 밧줄 삼아 한 곳으로 끌어당겼다.

    공중에서 굉음과 함께 은색 뇌전이 강림해 빛의 진법을 이루고 그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아득한 천지간에 난폭한 기류와 혼란스러운 공간파동만이 한참을 휘몰아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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