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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130화 (1,887/2,000)

2130화. 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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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마음이 어지러운 것 같으신데 무슨 일이세요?”

제혼이 이상하게 생각해 그를 돌아보았다.

“제혼, 저기 귀빈실의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낼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다. 이곳에 온 목적도.”

한립은 전음으로 답했다.

이때, 방 바깥에서 청록색 도포를 입은 여도사가 남미를 데리고 들어왔다.

대라급인 여도사는 상당히 젊어 보였고 풍기는 은은한 향기와 분위기가 인족 수사가 아닌 초목 정령 등이 변신을 한 수사인 것 같았다.

“석 수사, 제가 일월각 집사 장로입니다. 하화 수사라 불러주시면 됩니다.”

여도사는 들어오며 경뇌석을 훑고는 얼굴이 밝아져서 한립을 향해 가볍게 미소를 보였다.

“하화 선자, 이 경뇌석을 전부 일월각에서 처분할 수 있겠습니까?”

“후웃. 열댓 개가 아니라 천여 개를 가져오셔도 저희 일월각에서 매입해드리지요.”

한립의 물음에 하화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웃음 지었다.

“과연 일월각다운 재력입니다. 그럼 가격을 제시해 주시지요.”

“품질이 좋은 편이고 중량도 꽤 나가니, 개당 백5십만 선원석으로 치고. 열세 개니까 총 1950만 선원석인데, 올림을 해서 2천만 선원석으로 내드리겠습니다. 어떠십니까?”

눈길로 경뇌석들을 살핀 하화 선자가 호쾌하게 답했다.

한립은 대충 경뇌석 가격을 알아놔서 천5백만 선원석만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했기에, 가격에 만족했다.

“일 처리가 시원시원하시군요. 제게 다른 재료들도 있는데 함께 내놓을까 합니다.”

상대의 태도가 마음에 든 한립은 손을 저어 한 무더기의 다른 재료들을 더 꺼내 놓았다. 처분하기 어려운 물건들을 제외하고 화지공간에서 정리를 해두었던 재료들이었다.

원래 윤회전을 통해서 팔려고 올려놓았는데, 그간 사겠다는 사람이 얼마 없어 오늘까지 지니고 다녔다.

“품목이 다양하기는 한데 몇 개 쓸 만한 물건이 보이는군요. 이렇게 하죠, 전부 다 합해서 4백만 선원석에 사드리겠습니다.”

하화 선자는 또 금방 훑고는 가격을 알려주었다.

한립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무더기로 처리해서 약간 손해를 볼지는 몰라도 신경 쓸 거리가 줄어드니 좋은 일이었다.

이번 거래를 통해 2천4백만 선원석이 더 생긴 한립은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하화 선자는 거래를 마치고 바로 남미와 함께 물러났다.

“주인님.”

하화 선자와 남미가 떠나고 제혼이 다가섰다.

“뭔가 알아내었더냐?”

한립은 전음으로 물었다.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아 다른 건 알아내지 못했지만, 6명 중 1명의 신분을 확인했습니다.”

“그래, 누구더냐?”

“세월선부에서 마주쳤던 남안이었습니다.”

“남안? 확실한 것이냐?”

한립이 멈칫하며 다시 물었다.

“확실합니다. 아까는 경매에 나선 사람의 의식파동에 집중하느라 다른 이들은 자세히 살피지 못했는데, 한 명씩 찬찬히 살피니 그중 한 명의 의식파동이 남안의 것과 같았습니다.”

제혼은 확신하고 있었다.

한립도 그녀가 의식파동에 얼마나 민감한지 알아 고개를 끄덕였다.

남안은 구원관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저들은 구원관 수사들일 가능성이 크단 말인데, 왜 여기에 나타난 걸까?

“계속 신경을 쓰고 있다가, 무엇이든 새로 알아낸 게 있으면 내게 알려주거라.”

“네, 걱정 마세요! 저쪽 금제로는 제 의식감응은 막지 못하니까요.”

한립은 그쪽 귀빈실 일은 제혼에게 맡기고 경매를 살폈다.

금방 열댓 개의 새로운 경매물품들이 낙찰되었다.

“다음 보물은 태을 최고봉 삼족금오(三足金烏)의 요핵입니다. 무궁무진한 화염의 힘을 품고 있어 이걸로 선기를 제련할 수도, 불 속성 원기의 수련을 도울 수도 있지요. 시작가 선원석 3백만 개. 10만 개 단위로 가격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뚱보 노인이 사발 크기의 커다란 금홍색 요색을 꺼내 놓았다. 햇살처럼 뜨거운 빛을 내뿜는 요핵이었다.

한립은 정염동자에게 주어 회복을 도울 물건의 등장에 눈이 밝아졌다.

삼족금오 요핵이 귀하기는 해도 다른 선기나 보물에 비해 급이 떨어져서 귀빈실 쪽에서는 아무도 나서지 않고 광장 안 수사들만 경쟁하고 있었다.

한립은 슬쩍 가격을 높여 다른 경쟁자를 제치고 5백만 선원석에 요핵을 낙찰받아 화지공간에 넣어 주었다.

정염동자가 불새로 변신해 꿀꺽 요핵을 받아 삼키더니 즐겁게 지저귀며 화지공간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다음으로 무대에 올라온 것은 검은 옥으로 만든 장방형의 상자였다. 부적을 꼼꼼하게 붙여 봉인해두었는데도 안에서 음산한 귀기가 새어 나왔다.

한립이 자세를 바로 하고, 제혼도 반색하며 상자를 보았다.

뚱보 노인의 주문에 상자의 봉인이 풀리고 새까만 색의 짧은 피리가 나타났다. 굵기가 균일하지 않은 뭉툭한 피리는 무언가의 다리뼈로 만든 것 같았는데 위쪽에 해골 머리까지 달려있어서 사악한 기운이 느껴졌다.

피리에서 폭발적으로 흘러나오는 귀기에 처량한 귀곡성이 실려 듣는 사람들을 괴롭게 했다.

뚱보 노인은 재빨리 소매를 펄럭여 하얀빛으로 새까만 피리를 감싸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을 막았다.

“이 산혼귀적(散魂鬼笛)은, 귀도(鬼道)를 수련하는 수사들에게 높은 가치를 지니는 보물입니다. 원래 명해선역 만귀종(万鬼宗) 조사 니리상인이 직접 제련한 4품 선기였는데, 유명해(幽冥海) 전투에서 니리상인이 태백검종(太白劍宗) 모용선자에게 지면서 이 산혼귀적도 손상을 입어 5품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일반적인 5품 선기보다 월등한 위력을 발휘하는 보물입니다. 모두 보셨다시피 주요 능력은 의식 공격이라 이 자리에서 시연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시작가 1천만 선원석에 5십만 단위로 가격을 부르실 수 있습니다.”

소개를 마친 뚱보 노인은 경매를 시작했다.

피리를 보고 반가워하던 한립은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제혼이 골라놓은 보물 중 하나라 낙착을 받아주려 했는데, 의식 공격을 할 수 있는 4품에 가까운 선기일 줄은 몰랐다.

앞서 유명귀조보다 값이 훨씬 더 나갈 테니 4천만 개 정도의 선원석으로 낙찰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한립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벌써 가격이 2천만 개까지 올라있었다.

“2천 5백만!”

어중이떠중이들을 포기시키려 한립은 단번에 가격을 높였다.

과연 한 번에 5백만 개가 가격을 높이자 많은 이들이 조용해졌다.

“2천8백만!”

낯익은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유명귀조를 두고 경쟁하던 귀빈실 쪽이었다.

“3천만 개!”

인상을 찡그린 한립이 가격을 높이려는데 또 다른 귀빈실에서 거만한 느낌을 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립이 돌아보니 귀빈실에 남색 장삼을 입은 기도가 남다른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3천3백만!”

한립이 가격을 불렀다.

“3천4백만!”

얼굴을 굳힌 남색 장삼 사내가 그가 있는 쪽을 힐끗 보고 바로 따라붙었다.

“3천6백만!”

서늘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물러서지 않을 기세였다.

남색 장삼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4천만!”

한립이 과감히 소리쳤다.

광장 수사들이 놀라 한립이 앉은 귀빈실을 올려다보며 떠들어댔다.

3천만 선원석으로 유명귀조를 가져가더니 이제는 또 다른 보물에 4천만 선원석을 부른 것이다.

한립은 광장 수사들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남안 등이 앉은 귀빈실을 살폈다.

“……4천5백만!”

조용하던 상대가 냉랭히 외쳤다.

숨을 훅 내쉬니 한립은 쓴웃음을 지으며 제혼을 돌아보았다.

“제혼, 상대의 재력이 날 넘어서서 산혼귀적은 손에 넣을 수 없겠구나.”

그런데 제혼이 눈을 감고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한립은 이상하게 여겼으나 방해하지 않았고 더는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없어 산혼귀적의 귀속이 정해졌다.

곧 눈을 뜬 제혼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님, 방금 저들의 대화를 통해 중요한 소식을 알아냈습니다.”

“무엇이지?”

“저들이 뭐라고 했는지 직접 들려드릴게요.”

한립의 물음에 제혼은 수결을 맺은 손에서 검은빛을 뿜어 그의 미간에 불어넣어 주었다.

의식세계에 검은 빛덩이가 들어와 화면으로 변하더니 다른 귀빈실의 모습이 보였다.

“금 선배님의 재력이 상당하십니다. 이런 거액을 쓰시고요.”

흑의인 중 한 명이 공손히 말했다.

“이 정도 선원석이야 뭐.”

마른 신영이 거만히 답했다.

“물건을 구했으니 더는 시간을 끌어선 안 될 겁니다. 그 서금선을 놓쳤다가는 우리도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거예요.”

체구가 작은 여인이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가 불분명했다.

“예, 그래야지요.”

다른 흑의인들이 그녀를 두려워하며 급히 답했다.

화면은 그렇게 잠깐의 상황을 보여주고 사라졌다.

구원관 사람들이 서금선을 잡으려 한다고? 금동이 구원관에서 이미 달아나기라도 했단 말인가?

“주인님, 저들이 말하는 서금선이 금동일까요?”

제혼이 물었다.

“뭐라고요? 누님을 찾은 건가요?”

화지공간 안의 흰둥이가 그 소리를 듣고 놀라 소리쳤다.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 금동이 머리가 있는 아이라 스스로 구원관에서 탈출했을 수도 있을 것이야.”

한립은 일단 흰둥이를 상대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금동이 근처에 있다면 어째서 의식 감응이 전혀 되지 않은 것일까?

이미 대라경에 이르러서 의식의 힘이 강해진 금동이 그가 체내에 심어 놓은 의식표식을 연화시켜버렸을 수도 있었다.

“주인님, 저들이 떠나려 합니다.”

제혼이 눈을 번득였다.

귀빈실의 수사들이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가자. 저들을 쫓아간다.”

한립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경매가 한참 남아 후에 더 많은 귀한 보물들이 나오겠지만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여섯 흑의인들은 일월각을 떠나 어딘가로 향했는데 다양한 복색과 외모의 수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있는 성안에서 그리 튀지 않았다.

제혼을 데리고 멀리서 뒤따르던 한립은 흰둥이가 화지공간 안에서 어찌나 난리를 치는지 어쩔 수 없이 바깥으로 꺼내주었다.

흑의인들은 유금성 외곽에서 잠시 멈추었다.

번화가와 멀리 떨어진 이곳에는 저계 수사들과 범인들이 살고 있었다.

흑의인 중 한 명이 남색 수정구슬을 꺼내 빛의 소용돌이를 일으켰고, 그 안에서 희미하게 금빛이 반짝였다.

“인근에 있는 게 확실합니다.”

남색 수정구슬을 꺼내든 여인의 목소리는 남안의 것이었다.

“드디어 찾았구나!”

작은 체구의 또 다른 여인이 기뻐하며 수결을 맺었다.

소매 속에서 은빛 진법 깃발들이 우수수 날아가 허공에 스며들어 반구형의 대규모 진법을 펼쳤다. 복잡한 문양들이 떠다니는 진법은 일반적인 금제가 아니었다.

반투명한 빛의 장막은 즉시 투명하게 은신해 다른 저계 수사들의 주의를 끌지 않았다.

“건곤일기대진(乾坤一氣大陣)이 있으니 서금선도 달아나지 못할 겁니다.”

또 다른 흑의인이 웃음 지었다.

“허튼소리 그만하고, 그 녀석을 잡아 오거라!”

작은 체구의 여인이 코웃음을 친 뒤 전방 허공으로 녹아들었다.

공간이 물결친 다음 여인이 사라졌다. 이어서 다섯 사람이 그녀의 뒤를 쫓았다.

여섯 명이 사라지고 또 다른 세 명이 나타났는데 한립 무리였다. 그들은 보일 듯 말 듯한 푸른빛으로 몸을 감싸고 있어서 꼭 반투명한 푸른 외투를 걸친 것 같았다.

수결을 맺은 한립은 손끝에서 금빛을 쏘아 전방 허공으로 날려 보냈는데 주술문자들이 몰려들어 그걸 막았다.

“강력한 공간 금제로구나. 뚫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우리의 종적을 들킬 것이다.”

“공간 금제라면, 제게 맡겨주세요! 주인님이랑 제혼 누님은 제 뱃속에 숨고요.”

흰둥이가 웃더니 하얀빛을 반짝이며 비휴로 변신했다.

입을 쩍 벌려 한립과 제혼을 뱃속에 삼킨 그는 주문을 외워 표면에 물빛과 같은 하얀빛을 입혔다.

흰둥이는 그 상태로 서서히 허공에 녹아들어 전방의 금제로 다가갔다. 주술문자들이 몰려들어 막으려 하자 흰둥이의 신형이 구름처럼 흩어졌다가 금제 뒤에서 다시 제 모습을 되찾았다.

그는 입을 벌려 한립과 제혼을 다시 뱉어냈다.

“이런 신통을 지녔는지 몰랐구나. 공간 금제를 그냥 통과하다니.”

한립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후후, 우리 묵안비휴들은 체내에 따로 공간이 있는 만큼 혈맥에 공간의 힘이 섞여 있거든요.”

소년으로 돌아간 흰둥이가 뿌듯하게 답했다.

미소를 짓던 한립은 여섯 명의 흑의인들이 사라진 곳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저들이 저쪽으로 가고 있기는 한데, 흰둥이의 둔천부를 이용해 은신술을 사용하더라도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들킬지도 몰라요.”

눈동자 위로 어둑한 빛이 덮였다가 사라진 제혼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한립도 묵묵히 구유마동을 발동해 여섯 명이 어느 구석진 골목의 사합원을 포위하고 있는 곳을 보았다.

“가자.”

한립이 그쪽으로 날아가고 제혼과 흰둥이가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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