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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129화 (1,886/2,000)

2129화. 경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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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나가고 한립이 소매를 펄럭여 푸른 보호막으로 방안을 둘렀다.

“제혼, 너는 왜 계속 말이 없느냐?”

“주인님이 그 아가씨랑 살갑게 대화를 하시는데 제가 낄 틈이 있어야죠.”

제혼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딱딱하게 말했다.

“살갑기는. 경매회에 관한 정보를 구하려던 것뿐인걸.”

그걸 본 한립이 실소를 금치 못했지만 제혼은 더욱 뾰로통해져서 작게 콧방귀까지 뀌었다.

“곧 경매가 시작되니 그만 심통 부리고 앉거라. 그리 옥간만 쳐다보고 있는다고 보물이 거저 얻어진다더냐?”

“이 두 개가 마음에 드는데 가격이 비싸서 낙찰받으려면 선원석이 많이 들 것 같아요.”

제혼은 목록 중 두 가지 선기를 짚었다.

“흠, 네게 잘 어울리겠구나. 선원석이라면 걱정할 것 없다.”

한립도 두 선기의 가격을 보고 미간을 좁혔지만 금방 웃으며 말했다.

광음천선대진을 발동해 수련하느라 거의 선원석 2천 만개를 써버려 이제 5천 만개 밖에는 남지 않았지만, 함유한 법칙의 힘이 널리 쓰이지 않는 것이라 두 보물의 경매가가 그리 높지 않을 거라 예상해서였다.

이제 막 대라경에 이르러 한동안 경지를 돌파할 일도 없으니 일단 선원석을 쓰고 나중에 더 모으면 되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제혼이 놀라며 기뻐했다.

이때 한립의 머릿속에서 누군가 시끄럽게 재잘거렸다. 화지동천의 정염동자였다.

말은 하지 못해도 한립은 정염동자의 뜻을 알아들었다. 원기를 보충하려면 불의 힘을 지닌 게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너도 걱정하지 말거라.”

한립은 의식연계로 정염동자를 안심시켰다. 목록에 불의 힘을 지닌 재료가 꽤 많아서 사 모으면 그만이었다.

흰둥이도 화지공간 안에서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는데 뭘 사달라는 게 아니라 자기도 경매를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한립은 의식 한 줄기를 화지공간으로 흘려보내 그가 보고 있는 바깥의 풍경을 투영시켰다.

댕, 댕, 댕.

그동안 종소리가 세 번 울리고 경매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광장 중앙에 붉은빛이 번쩍인 후 귓불이 넓은 뚱보 노인이 나타났다.

외관이야 어찌 되었든 대라 중기의 실력자라 경매회를 이끌기에 손색이 없는 수행이었다.

“대금원선역에서 만년에 한 번 열리는 만보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일월각으로 걸음해 주신 수사분들께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긴말할 것 없이 노부가 첫 번째 물건을 보여드리지요.”

공수를 한 뚱보 노인이 하늘색 갑옷을 입은 역사(力士)에게서 옥으로 만든 상자를 받아 무대에 올려두었다.

상자를 열자 맷돌 크기의 노란 수정돌이 진한 흙 속성 법칙 파동을 방출했다.

“무토선역(戊土仙域)에서 가져온 이 토황정(土皇晶)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땅속 아주 깊은 곳에서 억만년 동안 대지의 정화를 모아 형성된 것으로 원자중력법칙까지 지녀 4품 흙 속성 선기를 제련하고도 남을 겁니다. 시작가 선원석 5백만 개. 10만 개 단위로 값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뚱보 노인은 격앙되지 않은 어조로 보물을 차분하게 설명해서 더 믿음이 갔다. 노인의 말에 광장 안이 들썩이며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한립이 무대 위 토황정을 보고 눈을 빛냈다.

첫 경매품부터 4품 선기를 제련할 만한 재료라니 과연 만보절 경매다웠다.

물론 아무리 물건이 좋아도 필요하지 않을 걸 두고 경쟁을 할 생각은 없었다.

토황정이 필요한 사람들이 속속들이 나서 가격을 올렸고, 첫 번째 경매품은 금방 일천 만 개가 넘는 가격에 귀빈실의 누군가에게 낙찰되었다.

“다음 보물은 불의 도단입니다. 5품으로…….”

뚱보 노인은 지체 없이 두 번째 물품을 소개했다.

만보절은 정말 절세의 보물들이 넘쳐났다. 새로운 물건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광장의 사람들은 물결이라도 치듯 격동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났지만 한립은 단정히 앉아 있기만 했다.

“다음 보물은 5품 선기 유명귀조(幽冥鬼爪)입니다. 명해선역(溟海仙域) 대라급 요수 유명귀수(幽冥鬼獸)의 발톱이라 수많은 잔혼들과 열여덟 종류의 귀혈(鬼血), 서른여섯 가지의 귀기(鬼氣)를 품고 있어 강력한 힘과 부식 능력을 지닙니다.”

무대에 다음으로 오른 것은 사람 키만 한 검은 짐승의 발이었다.

기다란 발톱이 달린 발가락이 9개에 주변에 감도는 검은 기운 안에서 귀곡성이 흘러나와 악귀의 손처럼 보이기도 했다.

검은 발을 본 한립이 눈을 빛내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옆에서 제혼이 유명귀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원하던 두 선기 중 하나가 이거였다.

광장의 다른 사람들도 찬탄하며 이론이 분분했다.

뚱보 노인이 수결을 맺어 법결을 날리자 검은 거대 발에서 새까만 주술문자들이 수도 없이 흘러나와 광장 중심에 음산한 돌풍을 일으켰다.

무대에 금제가 펼쳐져 있는데도 뼈를 찌르는 음산한 한기가 관중석까지 몰아쳐 수행이 낮은 이들은 사시나무 떨듯 몰을 떨었다.

노인의 주문 소리에 검은 발이 점점 커져서 경매 무대 옆에 놓인 거대한 금속성 바위를 잡았다.

일월각은 통상적으로 공격성 선기가 경매품으로 나오면 시연을 보였기 때문에 그걸 위해 준비해 둔 특수한 바위였다.

이전에도 여러 공격형 선기들이 위력을 보여 검은 바위는 표면이 울퉁불퉁해져 있었다.

뜨겁게 달군 칼로 소기름을 가르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검은 바위가 십여 조각으로 잘려 떨어지면서 푸른 연기를 솔솔 뿜고 있었다.

몇몇 관중들이 놀라 헛바람을 들이켰고, 제혼은 그 광경에 빨려들기라도 할 것처럼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한립은 유명귀조의 너무 강한 위력에 미간을 좁혔다. 이전 선기들의 경매가를 보면 유명귀조의 낙찰가는 천정부지로 솟을 게 분명했다.

“노부는 음귀 류 법칙을 익히지 않아 이 보물의 위력을 1할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유명귀조는 상성이 잘 맞는 법칙의 힘을 사용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발휘하겠지요. 자, 찬사는 여기까지 늘어놓고 바로 경매로 들어가겠습니다. 시작가 선원석 8백만 개. 50만 개 단위로 가격을 제시해 주세요.”

뚱보 노인이 경매 시작을 선포했다.

“8백6십만 개!”

“9백2십만 개!”

“천만!”

방금 유명귀조의 시연을 본 터라 음귀법칙을 익힌 적잖은 이들이 나서 한립이 입도 뻥끗하기 전에 선원석 천만 개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제혼이 그런 한립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1천5백만 개까지 가격이 오르자 확연히 경쟁자가 줄었다.

“1천6백만 개!”

한립이 탁자의 남색 옥패를 들어 가격을 제시했다.

그가 있는 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귀빈실에서 연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1천6백5십만 개!”

고개를 돌린 한립은 눈동자에 어두운 보랏빛을 일으켰다. 상대도 고명한 금제를 펼쳐두었으나 구유마동을 막을 수는 없었다.

수라혈문에서 현규의 수를 부쩍 늘리자 <천살진옥공> 수행과 구유마동 신통도 따라서 강해졌다.

그럴수록 눈동자의 보랏빛이 짙고 또렷해졌다.

귀빈실에는 음산한 기운을 품은 대라 초기 회포 노인이 앉아 있었고, 손에 사람의 뼈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하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회포 노인은 구유마동으로 자신이 관찰당하는 줄도 모르고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부른 가격이 그의 마지노선이었다.

“주인님, 상대의 의식 파동이 무척 조급해하고 있어요. 더는 선원석이 없나 봐요.”

제혼도 눈을 감고 그윽한 검은 빛을 내뿜더니 입을 열었다.

한립은 그런 제혼을 보고 가격을 높였다.

“1천8백만 개!”

그는 단번에 1백5십만 개나 가격을 높였다.

얼굴을 씰룩인 회포 노인은 한숨을 내쉬며 포기한 듯싶었다.

광장의 다른 사람들도 침묵했다.

한립이 미소를 머금었고 옆의 제혼도 활짝 웃음 짓고 있었다. 고가이기는 해도 한립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였다.

“1천9백만 개!”

그때 서늘한 목소리가 멀리 또 다른 귀빈실에서 들려왔다.

제혼이 얼굴을 굳히고 이를 악물었다.

인상을 찌푸린 한립도 구유마동을 통해 그 귀빈실을 살펴보았다. 총 6명이 검은 장포를 입고 삿갓을 써 얼굴을 가린 채 엄숙하게 모여 있었다.

그들의 도포에서 물결처럼 퍼지는 검은 빛이 뜻밖에도 한립의 구유마동마저 차단했다.

6명 모두 좌석에 앉아 있어 누가 값을 부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흠…….”

그때 6명 중 작은 체구의 누군가가 고개를 들더니 한립의 시선을 알았는지 손을 저었다.

귀빈실 전체가 짙은 핏빛 안개로 둘러싸여 완전히 내부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2천만!”

한립은 금방 평정을 되찾고 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제혼에게 눈짓을 하는 걸 잊지 않았다.

“안 되겠어요. 저쪽도 의식류 법칙을 익혀서 의식파동이 감지가 안 돼요.”

감지를 해보려던 제혼이 풀이 죽어 눈을 떴다.

“2천2백만!”

서늘한 목소리는 성가시다는 듯 2백만 개나 가격을 높였다.

“……주인님, 너무 비싸요. 그냥 포기해요.”

제혼이 망설이다 한립을 말렸다.

하지만 아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2천5백만 개!”

한립은 안심하라는 듯 제혼을 한 번 봐주고 가격을 올렸다.

광장이 소란스러워지고 많은 이들이 한립이 앉아 있는 귀빈실을 올려다보았다.

진작 금제를 쳐놓아 얼굴이 노출되지는 않았다.

“……2천7백만!”

서늘한 목소리가 또 가격을 올렸다.

“3천만!”

한립은 무표정하게 광장 모두가 놀랄만할 가격을 제시했다.

그도 속이 너무 쓰려왔다. 선원석을 3천만 개나 들여 유명귀조를 사는 것은 너무 비싼 감이 있었지만 이미 제혼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해놓아 어떻게든 두 선기를 낙찰받아줄 생각이었다.

게다가 유명귀조는 정말 구하기 힘든 좋은 선기였고, 제혼의 법칙과도 상성이 잘 맞아서 그리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상대편 귀빈실에서 마르고 키 큰 누군가가 고개를 들어 매와 같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립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눈빛만 사나울 뿐 콧방귀를 뀌고 더 가격을 부르지는 않았다.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한립은 이제 쓸 수 있는 선원석이 2천만 개밖에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미간을 좁혔다.

제혼이 마음에 든다고 한 다른 선기도 유명귀조 못지않은 보물이라 경매가가 낮지 않을 텐데, 정염불새가 원하는 물건까지 구해주려면 확실히 선원석이 모자랐다.

금방 경매회 쪽에서 사람을 보내 유명귀조를 보내왔다. 바로 남미였다.

한립이 선원석을 지불하고 물건을 받아다 주자 제혼이 기쁨에 겨워 검은빛으로 유명귀조를 몸속에 넣어두고 제련을 시작했다.

“남미, 일월각에서 보물도 매입하느냐?”

“물론입니다. 어떤 물건을 파시려 하시는지요?”

남미가 눈을 빛내고 물었다.

한립이 손을 저어 주먹 크기의 남색 수정돌 열댓 개를 꺼내 놓았다.

간담이 서늘해질 만큼 강렬한 뇌전빛이 번들거리는 수정돌에서 뇌전법칙이 폭발적으로 흘러나와 몸을 덜덜 떤 남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걸 보고 한립이 금빛 뇌전을 따로 방출해 뇌전법칙 대부분을 가려주었다.

“경뇌석(驚雷石)이군요!”

그제야 몸을 가눈 남미가 서둘러 다가와 남색 수정돌들을 자세히 살폈다.

“안목이 좋군. 그래, 경뇌석이다. 이거면 얼마를 받을 수 있겠느냐?”

오광뇌역에서 청죽봉운검들을 제련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것들인데 값어치가 꽤 되었다.

“품질이 이렇게 좋으면, 어림잡아도 개당 백만 개 이상의 선원석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거액의 거래는 제가 결정할 수 없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실 수 있으신지요? 바로 집사 장로를 청해오겠습니다.”

남미는 양해를 구하고 급히 바깥으로 나갔다. 한립은 급할 것이 없어 다시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다음 경매품이 올라와 한창 설명 중이었는데, 그가 원하는 물건은 아니었다.

그보다 여섯 명이 음흉하게 모습을 감추고 숨어 있는 귀빈실이 신경이 쓰였다.

산수들이라면 저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구원관, 백조산 혹은 금원선궁 사람은 아닐지 의심되었다.

그들이 유금성에는 무엇을 하러 나타난 걸까?

자신과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자연히 표정이 안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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