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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127화 (1,884/2,000)

2127화. 곤란

*

한립도 영역의 변화를 감지하고 공중으로 뛰어올라 가부좌를 틀었다.

전력으로 <대오행환세결>을 운용해 부쩍 늘어난 시간법칙과 선령력을 일으켰다.

그가 지닌 시간법칙의 힘이 퍼지면서 모든 시간법칙 물건들이 융합되어 영역 안의 모든 것이 극히 느릿하게 움직였다.

아직 광음천선대진만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막대한 변화였는데, 진법을 펼치는데 드는 대량의 선원석까지 고려하면 기껏해야 백 년을 버틸 수 있으니 바깥과의 시간의 차를 생각하면 총 만년의 시간이 있는 셈이었다.

대라경에 이르기 위해 수련한 2천 년을 제외하면 겨우 8천 년밖에 남지 않았다.

8천 년 동안 영역을 조물경 경지로 안정시킨다고 말하면 다들 헛꿈 꾸지 말라고 욕을 할 터였다.

“시간이 부족하구나……. 이번에 완벽히 마무리를 짓는 것은 무리이니 이 중에 하나라도 융합을 마쳐봐야겠어.”

결정을 내린 한립은 수결을 맺은 두 손을 동을신목이 변한 수풀로 뻗었다.

눈에 보일 듯한 진한 시간법칙의 힘과 선령력이 동을신목으로 흘러들었다.

다른 네 가지 보물의 융합이 느려졌으나 동을신목 허상은 찬란하게 빛나며 단단해졌다.

“됐다!”

동을신목은 이 방법이 잘 통할지 확신이 없어서 가장 익숙한 진언보륜보다는 나을 것 같아 택한 것이었다.

빠르게 화지공간 안에서 2천 년이 지나갔다.

바깥 세계에서는 겨우 20년이 지났을 뿐이었다.

한립이 폐관에 성공해 대라의 모습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흰둥이는 불만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진작 성공하셨으면서 왜 안 나오시지?”

“아……. 답답해 죽겠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또 무슨 기연이라도 만나신 걸까? 하지만 시간이 없는데…….”

흰둥이는 동동 발을 구르면서 정염불새를 향해 물었다.

의식 감응을 통해 한립이 무사한 것은 알겠는데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다 금동을 구하지도 못하고 만황으로 돌아가야 할까 걱정이었다.

정염불새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고개만 저었다.

* * *

동천 안에서 눈을 감고 있는 한립 아래로 금색 수목들이 아주 실해져서 농염한 시간법칙을 머금고 있었다.

한립의 영역도 이미 조물경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하하, 겨우 2천 년 만에…….”

흡족한 결과였다.

다른 수사들은 기초적인 수준이라도 조물경 영역에 다다르려면 수만 년 심지어 수십 만년이 걸리곤 했다.

추측이지만 이렇게 신속히 영역이 조물경에 이른 건 이미 시간공법을 높은 수준으로 익혔고, 다섯 개의 시간법칙 물건들이 서로 오행속성을 통해 보조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음양와 오행의 원리를 품은 공법은 무언가를 창조하는 ‘조물’의 영역에서 독보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시간이 없지만 곧 하나씩 해결해 주마.”

펑!

영역을 회수하려던 그는 화지공간 안쪽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약재원에서 푸른빛이 날아들어 영역 공간 안의 금색 숲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금색 수풀 속에 박힌 물건을 보니 잎이 무성한 이상하게 생긴 나무였다.

“양생수?”

한립은 진언문 유적에서 얻은 양생수 뿌리가 나무로 자랐음을 알아보았다.

기억 속의 양생수는 성장 속도가 극히 느렸는데 벌써 나무가 되다니.

의아한 와중에 양생수의 뿌리가 스스로 자라나 푸른빛을 퍼트렸다.

푸른 나무와 금색 나무 허상들이 중첩되어 융합하려는 조짐이었다.

“법칙 물건과 영역이 융합된다고? 천인경 영역이 되어서야 이런 기현상이 벌어질 텐데, 어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천인경 영역은 조물경과 화령경 보다 더 높은 경지로 자신의 법칙의 힘과 속성이 같은 물건을 영역에 두고 실체화시킬 수 있었다.

영역이 일단 실체화되면 위력이 증폭되는 것은 물론 다른 조물경, 화령경 영역을 압도할 수 있었다.

자신만의 천인경 영역은 작은 요새가 되어 필승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걸 본 한립은 급히 영역을 거두고 양생수와 동을신목 숲이 철저히 융합되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화지공간에 설치한 광음천선대진이 진동하면서 더욱 밝은 빛을 내뿜어 그의 영역을 감싼 것이다.

한립은 순간 긴장했다.

진법을 위해 준비해 놓은 선원석을 다 써서 광음천선대진이 무너지려 하는 건가?

진법 중앙에서 눈부신 금빛이 치솟아 그가 있는 곳으로 날아들었다.

표면의 문양을 번쩍이는 원반은 광음천선대진에 배치해둔 균천일귀였다.

행여나 영역에 영향을 미칠까 걱정되어 푸른빛을 날려 균천일귀를 거두려는데, 균천일귀가 호선을 그리며 방향을 틀어 고공의 진언보륜을 향해 돌진했다.

쿠앙!

균천일귀는 진언보륜 인근에서 스스로 터져 기이하게도 그대로 흩어지지 않고 안에 품고 있던 금속 속성 법칙을 진언보륜에 녹아들게 했다.

금속 속성 법칙이 금빛이 되어 진언보륜을 휘감으니 허상이었던 둥근 달이 더욱 선명해졌다.

양생수가 영역에 융합되는 것을 보았던 한립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짐작하고는 기뻐했다.

대라경 돌파를 위한 폐관에서 이런 뜻밖의 수확을 얻다니!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동을신목이 변한 숲은 조물경 경지를 이룬 다음에 양생수와 합쳐졌지만 진언보륜은 아직 조물경 경지에 이르지 못했는데 균천일귀와 합쳐지려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럴 수가 있는 것일까?

역시 머지않아 영역이 진동하면서 쿵,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 위 진언보륜이 강렬한 흡입력을 발동하고 있었다.

“이런…….”

놀란 한립은 균천일귀와 진언보륜의 융합을 중단하려 했다.

이미 융합이 진행 중이라 균천일귀가 붕괴되고 진언보륜에 손상이 갈지도 몰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융합에는 대량의 시간법칙의 힘이 들었는데 아직 조물경에 이르지 못한 진언보륜은 그걸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그 자신의 시간법칙의 힘은 양생수와 동을신목 융합을 보조하느라 거의 다 써버려서 진언보륜까지는 무리였다.

진언보륜과 균천일귀가 융합하려고 부족한 법칙의 힘을 시간영역에서 끌어다 써 화를 부를까 걱정이 되었다.

웅-

벌써부터 영역 바깥 공간이 가뭄이 든 것처럼 말라가고 자욱하던 물안개가 증발하고 있었다.

그 순간, 한립은 머리 위 진언보륜과 균천일귀가 내뿜던 괴이한 흡입력이 문득 사라진 것에 이유를 찾으려 했는데 놀랍게도 영역이 통제를 벗어나 흩어버릴 수조차 없어졌다.

화지공간을 떠나야 하는 그조차 영역이 붙들어 두고 있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거 곤란하게 되었는데…….”

* * *

세월이 덧없이 흘러 수천 년 뒤.

한립의 영영 안에 시간법칙의 기운이 자욱하게 뭉쳐 있었다.

푸른 장포와 머리카락이 다 흐트러진 한립은 가부좌를 틀고 땅에 앉아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하늘의 금색 달을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분명 이제 안정이 되었고 진언보륜도 천인경 경지에 이르렀는데, 왜 아직도…….”

여전히 봉쇄된 영역을 둘러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안간힘을 써가며 공법을 발동해 균천일귀와 진언보륜 융합을 도왔는데도 아직도 영역 공간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아직 뭔가 부족한가?”

* * *

또 수천 년이 지나갔다.

선원석을 다 쓴 광음천선대진이 멈추었고, 진언보륜은 실체화되어 영역 공간도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한립은 아직도 그 안에 갇혀 있었다.

수천 년 동안 쉬지 않고 수행을 하고 영역을 돌보아 그냥 불룩 솟은 땅은 우아한 곡선을 지닌 산맥이 되고 금색 모래의 바닥도 단단해졌으며 푸른 숲도 거의 진짜 숲을 보는 것 같았는데 은빛 강줄기만 허상으로 남아 있었다.

“왜! 어째서!”

머리를 산발한 한립은 속이 터질 것 같아 괴성을 내질렀다.

참다못해 훌쩍 뛰어오른 그는 자신의 영역 공간을 향해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댔다.

금색 빛의 장막은 격렬히 흔들리다 파문이 일더니 원래대로 돌아왔다. 한바탕 몸을 썼더니 울적함이 좀 풀린 그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설마 시간법칙 물건들이 전부 조물경에 이르러야 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 * *

세월이 흐르고 흘러 9만여 년 후.

화지공간 안의 풍경은 고정이 된 것처럼 굳어 있었다.

그 안에 앉은 한립은 얼굴에 검은 수염이 가득 자라고 두 눈은 바닥 모를 우물처럼 황량했다.

영역 공간내 구금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한 일이라 2만 년 전에 시간법칙 다섯 개를 전부 조물경 경지로 끌어들여 완전한 조물경 영역으로 만들었음에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중에 진언보륜과 동을신목은 더욱 실체에 가까워져 천인경 경지였다. 그게 오히려 불균형을 만들었는지 영역 공간은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제 너밖에 믿을 게 없구나.”

천천히 고개를 든 한립이 신중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손에서 연꽃 등잔이 날아올라 진언보륜 너머 영역 공간 최상단으로 날아올랐다.

천신만고 끝에 세월탑에서 가지고 나온 세월신등이었다.

화르르.

신등에서 은하수처럼 단시류화가 줄줄 흘러나와 하늘에 별빛처럼 불을 밝히고 수많은 주술문자가 흘러나왔다.

불길을 타고 주술문자들이 고공으로 올라가 영역 빛의 장막 속으로 사라졌다.

반딧불이들이 잔뜩 달라붙은 것처럼 빛의 장막이 반짝반짝했다.

한립은 <대오행환세결>을 극성으로 발동해 영역과 소통하며 영역 안의 모든 변화를 감지했다.

나중에 물 속성, 흙 속성 시간법칙 물건까지 찾아 영역 공간에 융합시키면 오행이 통해 서로 공생하는 경지에 이르게 될 터였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천인경이었다.

“그래, 어디 얼마나 튼튼한지 보자!”

가슴 밑바닥에 깔린 분노를 터트린 한립의 외침에 머리 위의 둥근 달이 강렬한 빛을 터트리고 동을신목 숲에서 덩굴이 자라나 바닥을 덮었다.

양생수 뿌리도 영역 깊숙이 침투했다가 영력이 부족해 말라붙었다.

강대한 시간법칙의 힘이 담긴 공격으로도 영역 공간의 금제를 풀 수 없다면 영역과 융합된 다섯 시간법칙 물건을 이용해 영역 자체의 힘으로 빠져나가 볼 생각이었다.

진언보륜과 원래 동을신목은 공격형이 아니라 따로 시간을 쏟아 세월신등의 힘을 융합해 단시횃불을 움직인 것이다.

“가라!”

영역 장막을 뒤덮은 불길이 떨어져 거대한 불 구슬 비를 이루었다.

쿠쿠쿠쿠쿠!

엄청난 폭음에 몸을 가눌 수 없는 진동으로 한립의 영역 공간이 난장판이 되어갔다.

환천사가 응결한 산맥의 바위가 부서지고 산사태가 나며 영역 공간 바닥이 부서져 대량의 토양이 죽루 방향으로 흘러넘쳤다.

그쪽에 펼쳐 둔 광음천선대진이 화를 입어 번득 빛을 잃어버렸고, 머리 위 달의 모습을 하고 있던 진언보륜에서 균천일귀에 속하는 빛이 훅, 꺼져 시간법칙의 힘이 급속도로 감퇴되었다.

영역이 번득 사라지고 그 여파로 엉망이 된 화지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간신히 빠져나온 한립은 긴장이 풀리면서도 후회가 밀려들었다.

욕심을 부려 영역 공간을 억지로 조물경으로 이끌려다가 그 안에 갇혀 금동을 구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가!

“흰둥이도 백택에게 소환되어갔겠지…….”

한숨을 내쉰 그는 영역을 거두고 죽루 쪽으로 걸어가 광음천선대진 재료들을 정리한 다음, 보조 진법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아 있다고?”

그런데 진작 고갈된 줄 알았던 선원석에 희미하게 빛이 남아 있었다.

한립이 멍해져 있는데 죽루 대문이 벌컥 열리고 흰둥이가 쏜살같이 뛰쳐나왔다.

“주인님, 대체 뭐 하시는 거예요! 화지공간 안에서 나오시지는 않고 문은 또 잠가 두시고, 저는 어떻게 하라고요?”

흰둥이가 한립을 보며 버럭 성을 냈다.

“네가 어떻게……. 아직, 만황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이냐?”

한립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몇 년이나 지났다고 벌써 만황으로 가겠어요? 그보다 주인님은 괜찮으신 거예요? 화지공간 문은 왜 잠가 놓으시고요?”

흰둥이가 그런 상대의 이상을 알아차리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한립이 폐관 수련을 하다 무리해서 주화입마에라도 빠진 것은 아닌지 살피는 눈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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