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2118화 (1,875/2,000)

2118화. 승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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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그의 육신을 손에 넣었는데 못할 게 무엇이지? 평생 노예로만 살아온 너희들은 육신을 차지한 결과가 무엇인지 영영 모를 것이다!”

류천호는 류백재와 류호연을 힐끔 보며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얼굴이 어두워졌던 류백재와 류호연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동시에 두 사람은 검푸른 털이 길게 자라나고 두 손이 짐승의 발톱으로 변해 반인반수의 모습이 되었다.

류청도 회백색 기운을 더욱 강하게 일으켰다.

“그만! 아직 수라혈문 안이라는 것을 기억하거라. 과도한 충격을 받으면 공간이 유지될 수 없다. 너희들의 은원은 이곳을 떠나 알아서 해결해야 할 것이야.”

그 순간, 백택이 날아들어 엄히 훈계했다.

백택이 나서자 네 사람도 기운을 감추고 진지하게 답했다.

물론 류청 무리 셋과 류천호 사이의 적의는 줄어들지 않았지만.

“류 수사, 류천호는 류기 노조의 다른 참시(斬尸)인 것입니까?”

한립은 호삼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렇습니다. 류천호가 바로 류기 노조가 베어낸 삼시 중에 악시(惡尸)예요! 사실 수사도 만난 적이 있는 자이고요.”

“만난 적이 있다면…….”

“회계, 세살지!”

호삼이 또박또박 지명을 밝혔다.

“당시 세살지에 갇혀 있던 거대 여우가 류기 노조가 아니라 저 악시였단 말입니까!”

영리한 한립이 그 뜻을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맞습니다. 저놈에게 속아 넘어가 풀어주다니 제가 되돌리지 못할 실수를 저질렀어요!”

“류천호가 무슨 짓을 했기에 천호족 전체가 이렇게 증오하는 겁니까? 류기 노조는 이미 목숨을 잃은 것입니까?”

“제가 알기로 류기 노조께서는 살아계시지 않습니다. 다 저 류천호가 외부의 적과 내통한 결과이고요!”

호삼은 눈에서 핏빛을 번뜩이며 류천호를 노려보았다.

삼시 중 류백재는 류기 노조의 자아시(自我尸), 류호연은 류기 노조의 선시(善尸)가 분명했다.

그런데 저들은 왜 류천호를 적대시하는 걸까? 그가 알기로 베어버린 삼시, ‘참시’들은 다 본체와 적이 된다고 들었다.

“삼시와 본체의 관계는 네가 아는 것처럼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본능적으로 본체를 죽이고 몸을 빼앗고 싶은 마음을 타고 나지만 그들도 독립된 생령이기 때문에 각자 생각이 있고 복종시킬 수도 있지. 게다가 류기 노조는 환영법칙을 수련했기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데 능했으니 참시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게 불가능하지도 않았겠지.”

머릿속에 장천병 병령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병령 선배님, 깨어나셨군요!”

한립은 반갑게 병령과 교류했다.

“아니, 네 녀석이 도조와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으면서 대라급 존재들의 싸움에 휘둘려 있는데 낸들 어떻게 하겠느냐? 내가 다시 시공간초월을 펼치더라도 네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겠구나.”

병령이 콧방귀를 뀌었다.

“화 푸시지요, 선배님. 아직 상황이 그렇게 최악은 아닙니다만 언제라도 시공간초월을 할 수 있게 준비만 해주십시오.”

“네 시간정사만 충분하면 그거야 몇 번이고 해줄 수 있……. 아니, 언제 이렇게 많은 시간정사를 다시 모은 것이냐? 네 녀석이 가진 패가 두둑해 이리 태연했구나.”

병령이 뭐라고 하다 말고 놀라 중얼거렸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 일은 나중에 말씀을 드려도 늦지 않을 것 같군요. 병령 선배님, 삼시를 베어낸 다음 굴복시킬 수 있다는 것이 정말입니까?”

“내가 널 속이기라도 할 듯싶으냐? 가능은 한 일인데 쉽지는 않을 것이다.”

병령은 별로 긴말은 하고 싶지 않은지 이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류기 노조의 세 참시가 실력이 다른 것이 이상합니다. 류천호는 대라 최고봉의 수행을 지녔는데 류백재와 류호연은 대라 중기가 아닙니까. 삼시들도 일반 수사처럼 수련해서 수행을 높일 수 있는 것입니까?”

한립은 삼시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아 가르침을 구했다.

“삼시는 완전한 생령과 다름이 없다고 내 방금 말해주었다. 그러니 당연히 수련도 할 수 있지. 다만 류기 노조의 삼시들이 수행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저 악시가 류기 노조의 육신을 차지해서다. 기본적으로 본체의 육신을 차지하면 삼시의 실력은 맹진하게 되니까.”

“본체의 육신이 삼시들에게는 아주 중요하겠군요?”

“그야 물론이지. 본체는 천지대도의 근간이라 그 육신을 차지하지 않고는 삼시가 도조경에 이를 방법이 없다. 그렇지 않으면 왜 삼시들이 본체의 육신을 차지하려 전전긍긍하겠느냐?”

“한 가지 더 의문이 있습니다. 수사의 본체와 삼시는 대체 무슨 관계인 것입니까? 삼시가 본체의 육신을 노린다면, 그냥 없애서 화근을 제거하는 게 맞을 텐데요.”

“삼시는 수사의 집념의 화신이나 마찬가지라 철저히 멸할 방도가 없다. 게다가 삼시를 죽여도 그 잡념은 마음에 남아 수련에 영향을 미칠 테니 다시 베어내야겠지. 게다가 삼시를 베어낼 때마다 집념이 배로 늘어 다음 삼시를 베어내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 수사에게 삼시는 죽일 수도 그렇다고 그냥 놔둘 수도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이 삼시를 봉인하는 것이고.”

병령은 즐겁게 아는 바를 줄줄 풀어 놓았다.

“그렇다면 삼시와 본체는 공생하는 사이와 비슷하군요. 수사의 본체가 죽으면 남은 삼시들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본체가 사라지면 삼시도 그 근원을 잃게 되어 그때부터 죽일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러니 삼시들도 어쨌든 본체가 살아 있기를 바라지.”

한립이 병령과 문답을 하는 사이 백택은 류청 등 네 명에게 다가섰다.

“폐하, 각 종족에서 진령왕 혈맥을 계승할 사람을 선발한다고 하셨으니 천호족인 저도 자격이 되겠지요?”

류천호가 백택에게 예를 취하고 당당히 물었다.

“신분으로 따지면 그렇지만 류기의 일은 어찌 해명할 것인가?”

백택이 담담히 물었다.

“도조경에 이른 폐하는 저희 같은 삼시들이 태생적으로 본체의 육신을 빼앗고 싶어 하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그래서 과거의 일이 발생한 것이니 부디 이해를 해주시지요.”

“헛소리! 류기 노조께서는 이미 도조가 되어 네가 필적할 수 없는 분이셨다. 폐하, 류기 노조께서 화를 당하신 건 분명 류천호가 외부 세력과 작당해서입니다. 천정 아니면 회계과 손을 잡았던 인물을 어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류청이 사납게 소리쳤다.

“당시 회계와 손을 잡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그들과 관계를 청산하고 만황으로 돌아왔습니다. 제 몸에 만황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한순간도 잊은 적 없고요. 게다가 류기의 육신을 얻은 저는 도조 경을 한두 걸음 앞두고 있다 볼 수 있습니다. 구미선호 성조의 혈맥을 전승해 도조의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저기 류낙아 보다 훨씬 크겠지요. 현명한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폐하.”

류천호는 류청을 상대하지 않고 백택에게 말했다.

백택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폐하, 류천호 저자의 간교한 말에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류기 노조께서도 저자의 말을 믿었다가 그리 돌아가신 게 아닙니까! 성조혈맥은 절대 저런 자에게 전승될 수 없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류청이 간절히 고했다.

“자네들의 말이 다 일리가 있다만, 전승자를 선발하는 것은 천호족의 일이라 내 비록 만황의 왕이라 해도 간섭할 수 없군. 이렇게 하지! 구미선호의 혈맥의 힘은 영성을 지니고 있네. 누가 그 힘을 계승할지 혈맥의 힘이 택하게 하지.”

백택이 류청과 류천호를 보고 말했다.

멀리서 한립이 인상을 찡그렸다.

류청은 이상하다는 눈빛이 스치고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폐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류천호도 슬쩍 미간을 좁혔다 펴고는 동의했다.

“당신들도 아닌 척하지 말고 같이 나서지 그러십니까? 다들 구미선호 성조의 혈맥의 힘이 탐나 천호족으로 돌아온 주제에.”

류천호의 말에 류백재는 정말 마음이 동하는지 백택을 힐끗 보고 부인하지 않았다.

류청이 이를 보고 내심 냉소를 흘렸으나 티 내지 않았다.

“저는 천호족을 지키겠다고 주인님께 약속했기에 돌아온 겁니다. 성조혈맥을 두고 경쟁할 마음이 없으니, 저는 끌어들이지 마세요.”

류호연이 정색을 하고 고개를 젓고는 표표히 날라 뒤로 물러났다.

“하하, 이런 때에도 군자 놀음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호연 수사.”

류천호가 헛웃음을 흘렸고, 류백재는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졌다 돌아왔다.

류청은 감동한 듯 류호연을 향해 눈짓하고 류낙아 등을 불러들였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류낙아는 경천동지할 수행을 지닌 류천호와 경쟁할 생각에 긴장이 되어 흘끗 한립을 쳐다보았다.

“걱정할 것 없다. 류청 족장님께서 이런 제안에 동의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야. 넌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

눈을 빛낸 한립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려했다.

한립의 말을 듣고 마음이 적잖이 놓인 류낙아가 목 장로, 호삼을 따라 류청 앞에 섰다.

“족장님.”

“낙아야, 전력을 다하거라. 넌 우리 천호족의 전부다. 천호족과 공생공사하는 네가 진정한 천호의 후예라는 것을 명심하거라. 성조 혈맥은 영성을 지녔으니 반드시 너를 선택해 줄 것이다.”

류청이 류낙아의 손을 꼭 잡고 용기를 주었다.

그 사이 회백색 정혈 한 방울이 그의 저물반지에서 빠져나와 또르륵, 그녀의 손으로 흡수되었다.

화끈한 열기를 느낀 류낙아는 영리하게 표정 변화를 감추었다.

“족장님을 결코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겁니다.”

류낙아는 진심을 다해 인사를 했다.

한쪽에 선 류천호는 류청과 류낙아의 모습을 보며 눈에 의혹이 서렸다.

“그래, 가보거라.”

류청이 웃으며 답하자 류낙아가 가볍게 날아올라 구미선호 혈맥 허상 앞에 섰다. 류천호도 그녀 인근으로 날아올랐다.

류백재도 늦지 않게 구미선호 혈맥의 다른 쪽으로 떠올랐다.

“준비가 되었으면 시작하거라.”

백택의 선포에 세 사람이 회백색 빛을 강하게 방출했다. 수행의 차이가 있어 빛의 선명함이 달랐다.

가장 수행이 높은 류천호는 눈부신 빛을, 류백재가 그보다는 못한 밝은 빛을 내뿜었고 류낙아의 빛이 가장 약했다.

세 사람의 빛이 각각 천호 허상을 만들어냈는데 류천호와 류백재의 천호 허상은 꼬리가 9개인데 반해 류낙아의 것은 꼬리가 6개였다.

세 천호 허상이 구미선호 혈맥을 향해 앞발을 내밀고 흡인력을 발동했다.

류낙아의 회백색 빛이 만들어낸 천호 허상이 이상하게 선명하게 류천호의 구미천호와 맞먹고 류백재의 것을 초월했다.

그걸 본 류백재가 전력을 다해 혈맥을 발동했지만 그래도 허상에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는 류천호와 류낙아의 시선이 가라앉았다.

이때 구미선호 혈맥 허상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천천히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허상의 시선은 류백재를 짧게 스쳐 류낙아와 류천호에게 집중되었고, 그걸 본 류백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순간 류천호가 양손으로 기괴한 수결을 맺으며 신비로운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구미선호 혈맥 허상이 번득 그쪽으로 향하려는데, 류낙아가 포효했다.

류낙아의 미간에 물방울 형태의 회백색 표식이 떠올라 그녀의 빛을 마치 활활 타오르는 화염처럼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류낙아의 천호 허상이 두 배는 밝게 빛나며 다른 두 사람의 허상을 압도했고, 눈에 희색이 어린 구미선호 혈맥 허상이 류천호를 버려두고 류낙아를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굵직한 회백색 빛이 막대한 혈맥의 힘을 품고 류낙아의 몸으로 콸콸 흘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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