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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105화 (1,862/2,000)

2105화. 쫓아버리다

*

백발청년은 수하들의 찬사에 희미하게 미소가 어리려던 찰나, 돌연 굳은 표정으로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멀리 하늘 끝에 눈부신 금빛이 모여들어 갑자기 묵직하기 짝이 없는 압박감이 전해졌다.

강렬한 법칙의 힘이 출렁출렁 퍼져나가고 천둥소리가 만 마리의 말이 내달리는 것처럼 하늘을 울렸다.

“누가 경지를 돌파하기라도 하는 것일까요?”

하얀 코끼리 요족이 물었다.

“그보다는 누군가 도단을 제련하고 있다, 그것도 시간도단을! 안 그래도 진령왕 전하에게 드릴 선물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귀한 물건을 바치려 하는구나!”

눈을 반짝인 백발청년이 길게 포효하더니 하얀빛으로 변해 먹구름을 빠져나갔다.

극히 빠른 속도로 금빛이 있는 곳으로 향한 백발청년은 멀리 하얀 구름에 숨어 두꺼운 금색 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광활한 법칙 파동이 인근 수백만 리의 천지영기를 요동치게 만들고 있었다.

콰콰쾅!

금색 구름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겨 하늘과 땅을 찢으며 눈부신 광선을 터트렸다.

금색 광선이 떨어진 작은 산 주위로 강력한 금제의 파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선역 수사!”

표정이 흉흉해진 백발청년은 살심을 드러냈다가 길게 호흡하면서 참았다.

이때 작은 산에서 수백 장 높이의 거대한 산봉우리가 날아올라 금색 표면에 빼곡히 새겨진 금색과 회색 주술문자를 반짝였다.

원합오극산이었다.

콰르르.

금빛이 원합오극산에 내리꽂히면서 경천동지할 폭음을 냈다.

진한 금색 산봉우리는 가볍게 몸을 떨어 금빛을 털어내 단겁의 금빛을 막아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공중의 금색 구름이 출렁거리며 또 다음 금빛을 떨구고 있었다.

짙은 금색 산봉우리가 빛을 완전히 회복하기 전에 한 마리 교룡 같은 굵은 금빛이 떨어졌고 이전보다 훨씬 강한 위력에 오극산의 금색과 회색빛도 압력에 밀려났다.

금색 교룡이 그 틈을 타고 오극산 위에 떨어졌다.

콰릉!

짙은 금색 산봉우리는 아래쪽으로 추락하다 금방 금색과 회색빛이 다시 돌아오며 원래 상태로 회복되었다.

“저렇게 강력한 연단용 보물이라니! 5품 아니, 6품 단겁도 충분히 막아내겠어!”

백발청년의 눈에 탐욕이 깃들었다.

금색 구름이 마지막 힘을 다하고 흩어지자 일대는 쾌청한 하늘을 되찾았고 진한 금색 산봉우리는 급격히 몸집을 줄여 아래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쉬쉬쉭…….

이때 인근 허공에 파동이 일더니 천 가닥 만 가닥의 하얀 실들이 나타나 산봉우리를 꽁꽁 감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동시에 대량의 하얀 빛이 모여 거대한 발톱으로 변해 작게 변한 산봉우리를 채가려 하고 있었다.

거대 발톱이 공간을 함몰시켜 거대한 검은 구멍을 만들고 짙은 금색 산봉우리를 삼키기 직전이었다.

웅웅!

돌연, 산봉우리가 격렬하게 몸을 떨며 칼날과 같은 금색과 회색빛을 방출해 하얀 실들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하얀 실은 무슨 신통인지 아주 질겨서 금회색 검빛으로 잘라낼 수가 없었다.

산봉우리가 완전히 하얀 거대 발톱에게 잡히려는데 이변이 발생했다.

크아앙!

아래쪽 낮은 산에서 눈부신 금빛이 쏘아져 나와 거대한 금색 화룡으로 변하더니 번득 산봉우리 앞을 막아선 것이다.

금색 화룡은 거대한 몸으로 산봉우리를 묶고 있는 하얀 실들을 휘감았다.

금회색 검빛에도 잘려나가지 않던 하얀 실들이 갑자기 흐물흐물해져서는 녹아내리고 있었다.

다음으로 금색 화룡은 머리를 쳐들고 하얀 거대 발톱을 향해 머리를 들이받았다.

푸훅!

하얀 거대 발톱이 금색 화룡 앞에서 종잇장처럼 뚫려 터져버렸다.

그뿐 아니라 금색 화룡의 몸에서 아홉 줄기 불길이 흩어져 각각 작은 화룡이 되더니 번개처럼 인근 허공을 공격했다.

쿵.

작렬하는 금빛이 허공을 터트리고 수많은 불똥이 퍼지면서 금빛 불바다를 형성했다.

그 안에서 누군가 휘청이며 나와 순식간에 수십 리를 벗어나 몸을 가누었는데, 당연히 백발청년이었다.

찢어진 상의 사이로 검게 탄 피부가 보였지만 상처가 그다지 심하지는 않았고, 그저 백발이 반 이상 타버려 몰골이 흉흉해져 있었다.

작은 산에서 한립이 장포를 펄럭이며 나타나 원합오극산을 소매 속에 넣어버렸다.

명한선궁에 들어갔을 때 태을단이 있던 금색 대전의 지붕이 단겁을 막는 효과가 있는 것을 보고 무너진 대전 잔해에서 망가진 지붕을 뜯어와 원합오극산에 섞었더니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내가 누군 줄이나 아느냐? 감히 내게 부상을 입혀? 네 목숨을 대가로 치르게 될 것이다!”

백발청년이 벌컥 화를 내며 양팔을 펼쳐 전신에서 하얀빛을 일으켰다.

이마에 하얀 문양들이 떠올라 희미하게 왕(王)자를 만들었다.

화상을 입은 피부를 빠르게 회복한 그의 두 팔에서는 낫 같은 새하얀 손톱들이 자라고 등 뒤로 거대한 날개가 펼쳐져 반인반수의 모습이 되었다.

대라경의 방대한 기운을 터트린 백발청년 주변으로 기류가 요동치면서 돌풍이 몰아쳤다.

한립도 폭발하는 기류에 쿵쿵 뒤로 물러섰는데, 그 순간 백발청년이 날개를 움직여 사라지더니 그의 뒤에서 나타나 날카로운 손톱을 뻗었다.

손톱 주위로 하얀빛무리가 나타나 특이한 법칙의 힘을 드러냈다.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폭음을 내며 손톱은 허공을 조각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백발청년의 날카로운 손톱이 한립의 등을 뚫으려는데 그 앞에 금색 고대 등잔이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 한립은 언제 몸을 돌려는지 그를 마주 보고 수결을 맺은 손을 뻗고 있었다.

대량의 금색 화염이 등불에서 쏟아져 나와 금빛 파도로 둘 사이를 갈라놓고 백발청년을 덮쳐왔다.

방금 세월화염에 당했던 백발청년은 가까이 접근할 생각을 버리고 하얀빛을 크게 일으켜 금빛 파도 앞에서 멈추었다.

지금 그는 분하면서도 많이 놀란 상태였다.

저 선역 수사의 수행은 분명 별 게 아닌데 강력한 선기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게 분했고, 상대의 공격속도가 그와 엇비슷하다는 게 놀라웠다.

청년이 품은 도올혈맥은 속도가 매우 빨라서 만황계역에서도 이 방면으로 그와 겨룰 종족이 몇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대라경 수사라 평소였으면 일장에 때려죽일 수 있었는데 저 인족 수사는 만만치가 않았다.

백발청년이 뒤쪽으로 물러나 금빛 화염과 거리를 벌리려는데 금색 파문이 퍼져 자욱하게 천장을 감쌌다.

그 안에서 몸이 굳은 백발청년은 강대한 시간법칙에 휩싸여 기겁한 채로 전력을 다해 벗어나려 했다.

그때 금색 화룡 한 마리가 튀어나와 세게 백발청년을 들이받고 금색 태양으로 변해 폭발했다.

쿠콰쾅!

엄청난 법칙의 힘이 인근 허공을 찢고 백발청년의 몸이 몇 조각으로 갈라졌다.

크오오오!

몸이 조각난 백발청년은 죽지 않고 노호성을 터트리며 체내에서 눈부신 하얀 선박을 불러냈다.

만황요족의 문자와 만여 짐승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들어 참배하는 그림이 새겨진 선박은 정염불새의 하얀 불 구슬 못지않은 방대한 법칙의 힘을 발산하고 있었다.

선박은 백발청년을 감싸 쾌속으로 하늘을 갈랐다.

촤악!

놀랍게도 진언보륜의 금색 파문 구역이 갈라지면서 선박이 하얀 환영으로 변해 하늘 끝으로 사라지게 놓아주었다.

“선역 수사, 네 놈! 기억해 두겠다!”

백발청년의 열 받은 목소리가 멀리서 울려 퍼졌다.

한립은 평온한 얼굴로 그걸 보며 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얀 선박의 속도가 너무 빨라 어차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손쉽게 대라에 이른 수사를 격퇴하고도 한립은 우쭐대는 기색 없이 세월신등을 불러들여 쓸어보았다.

백발청년은 이제 막 대라의 경지에 이르러 수행이 안정화 되지 않은 탓에 그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었다.

아까부터 먹구름 속에서 괴성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들던 요수들은 백발청년이 한립에게 한 방에 중상을 입고 달아나는 것을 보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

한립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먹구름 안 요족들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서둘러 먹구름을 틀어 백발청년이 달아난 방향으로 쫓아갔다.

한립은 눈썹을 꿈틀했지만 그 요족들도 쫓지 않았다.

세월신등의 힘으로 백발청년을 쫓아버리기는 했지만 신등을 사용하느라 선령력이 절반밖에 남지 않아 괜한 일에 힘을 쓰고 싶지 않았다.

단약을 꺼내 복용한 한립은 둔광을 일으켜 은각서부와 운문호부 행렬이 향한 곳으로 날아갔다.

정염불새가 그곳에 있었기에 어디에 있든 방향을 알아낼 수 있었다.

보름 뒤 한립은 소리소문없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정염불새에게 그간 행렬이 딱히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았다는 것을 들은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화지공간으로 들어갔다.

윤회전 가면을 꺼내 쓴 그는 바로 원삼에게 연락을 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방에 암홍색 빛이 반짝이고 원삼의 허상이 떠올랐다.

“용오 수사, 이리 급히 저를 찾으시고. 무슨 일이십니까?”

원삼의 눈빛은 덤덤했지만 무언가를 갈구하는 희미한 열망은 숨길 수 없었다.

한립은 대답 대신 옥함을 열어 안에 든 용 눈알 크기의 금색 단약 다섯 개를 보여주었다.

금빛 광채가 일렁이는 단약들은 전부 금색 도문이 세 줄씩 들어가 있었다.

“도단!”

원삼이 눈이 밝아져 소리쳤다.

한립은 잔잔히 웃음 지었다.

이 도단 다섯 개를 제련하려고 필생의 연단술에, 각종 보조 신통을 모조리 쏟아 부었다.

금색 단약을 보면 볼수록 원삼의 기쁨도 배가 되었다.

“하하, 연단술이 고명하신 줄은 알았으나 겨우 5, 6년 만에 시간도단 다섯 개를 완성하시고 대단하십니다.”

“원삼 수사께서 10년 내로 완성해 달라 하셔서 서둘러 보았습니다. 게다가 운이 따라주어 간신히 수사의 요구대로 다섯 개를 만들 수 있었고요. 단약에 문제가 없는지부터 확인하시지요.”

한립은 웃으며 시간도단들이 든 함을 전송진법에 올려두고 수결을 맺었다.

함이 사라져 원삼 앞에 나타났다.

“전부 훌륭합니다. 게다가 다섯 개 모두 3품 도단이라니 제 예상보다 품질도 좋고요. 약속한 수연시왕정에 따로 선원석 백만 개를 드리겠습니다.”

원삼은 도단을 일일이 꺼내 자세히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따로 선원석까지 챙겨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 약속한 대로 시간도단 5개를 수연시왕정으로 바꿔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한립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담담히 선원석을 거절했다.

그 말을 들은 원삼은 잠시 말없이 그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용오 수사가 이리 시원시원한 성미이신 줄은 몰랐습니다! 이것도 인연인데, 앞으로 벗으로 지내면 어떻겠습니까? 제가 용오 수사처럼 연단술에는 뛰어나지 못해도 이런저런 인맥과 수단이 있어 진귀한 재료를 구하는 데는 도가 텄습니다. 알아두면 쓸모가 많은 벗이라 이 말입니다.”

원삼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원삼 수사와 벗이 될 수 있다면 저야 좋지요.”

한립도 미소를 지었다.

원삼과 오래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었지만 수연시왕정을 지니고 이 많은 시간도단 재료를 구한 것을 보면 시간법칙 재료를 구할 방도가 있단 소리였다.

그래서 선원석을 거절하며 호감을 사려 했는데 그게 통한 것 같았다.

“도단을 급히 쓸 일이 있어 오늘은 길게 이야기 나누기 어렵겠고, 후에 구원성에 오시면 잊지 마시고 꼭 연락주세요. 진탕 술이나 마시면서 놀아봅시다.”

‘구원성!’

원삼의 초대에 한립은 눈썹을 끌어올렸다.

구원성이면, 남안이 말했던 구원관 산문 인근의 거대성이자 대금원선역의 가장 큰 성 중 하나였다.

원삼이 설마 구원관 인물이란 말인가?

한립은 머리를 굴리며 알겠다고 답했고, 원삼은 수연시왕정을 전송진법을 통해 보내주었다.

원하는 것을 얻은 두 사람은 금방 전신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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