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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104화 (1,861/2,000)
  • 2104화. 거래

    *

    크하앙!

    화지공간 상공으로 날아오른 금색 화룡이 용울음을 터트렸다.

    맨눈으로 똑바로 볼 수 없는 금빛과 그 안에 품은 법칙의 힘은 산을 무너트리고 바다를 뒤집을 것 같이 거세서 도윤진인이나 기마자가 세월신등을 사용할 때보다 더 기세등등했다.

    인근 허공이 부들부들 떨리며 깨져버릴 것 같았다.

    화지공간이 깨지게 둘 수 없었기에 한립은 빠르게 수결을 맺어 화룡을 신등으로 불러들였다.

    연달아 법결을 던져 넣어 세월신등 안의 시간법칙파동을 안정시킨 그는 무궁무진한 힘을 품고 있던 화룡을 떠올리고 의혹에 잠겼다.

    어째서 그가 조종할 때만 세월신등이 이런 위력을 낸단 말인가.

    그는 몰랐지만 전부 <대오행환세결> 덕이었다.

    세상의 근원인 오행법칙을 품은 <대오행환세결>은 기마자가 익힌 다른 공법보다 더 급이 높은 시간법칙의 힘을 품고 있어 신등의 위력을 격발한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한립은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 세월신등을 앞에 세워두고 제련을 지속했다.

    이제 겨우 조종만 가능한 것이라 손에 익으려면 더 제련이 필요했다.

    지금부터는 온 정신을 쏟을 필요는 없는 과정이라 신등을 제련하는 한편 통천검진의 진법도와 <오뢰정법진경>도 꺼내 보았다.

    <오뢰정법진경>에 의식을 불어넣은 한립은 감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흑천마조가 극찬을 했듯 세상천지 뇌전공법이란 공법은 다 모여 있어 그의 견문을 훨씬 넓혀 주었다.

    <오뢰정법진경>에 따르면 세상의 뇌전법칙은 36가지 천뢰(天雷), 72가지 지뢰(地雷), 108가지 운뢰(雲雷)로 나뉘는데 그가 이전에 보았던 뇌전들은 대부분 운뢰와 지뢰이고 서른여섯 가지 천뢰는 각각이 절대적인 위력을 지녀 보기 힘들다고 했다.

    한립이 장악한 벽사신뢰도 지뢰, 당초 회계 세살지에서 얻은 완골금뢰도 지뢰였는데 두 가지가 융합되면서 형성된 새로운 뇌전의 힘이 아무래도 천뢰에 퍽 가까워진 듯했다.

    <오뢰정법진경>에 서술된 뇌전을 어떻게 발동하고 응축하고 배양하는지에 대한 비술들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 적힌 공법이나 비술은 너무 현묘해서 뇌전법칙을 수련하는 것도 아니니 그가 깊게 연구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의 손에 <오뢰정법진경>이 들어온 것은 멋모르는 아이 손에 진주를 들려준 것과 같았다.

    한립은 <오뢰정법진경>을 바로 활용할 수 없는 것에 안타까워할 만큼 한가롭지 않았기에 바로 옥간을 넣어버리고 통천검진의 진법도에 집중했다.

    고생할 줄 알았는데 의식을 쉽게 주입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쿠쿵! 하며 의식세계로 들이닥친 막대한 정보의 양이었다.

    강대한 의식의 힘으로 한참 만에 정보를 소화한 한립은 미소를 지었다.

    통천검진을 펼치는 방법과 어떻게 검진을 발동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하늘에 다다랐다는 통천(通川)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어떻게 보면 검진의 영역을 벗어나는 천지의 도를 담은 진법이라 할 수 있었다.

    통천검진 자체는 어떤 속성도 지니고 있지 않아 어떤 비검이든 36개를 모으면 진법을 펼칠 수 있었지만 검진의 위력이 강한 만큼 그걸 감당할 만한 품질이 되어야 했다.

    한립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청죽봉운검은 그 수가 충분한 것은 물론 품질은 말할 것도 없이 통천검진을 펼치기 완벽한 비검이었다.

    눈을 감고 의식세계의 정보를 열람하던 한립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팟!

    그러던 그때, 눈썹을 꿈틀한 그가 붉은빛의 윤회전 가면을 불러내 썼다. 거래 화면을 띄우니 시간 재료를 구한다는 요구에 누군가 응답을 해왔다.

    반가워하며 얼른 수결을 맺어 화면을 가리키자 붉은빛이 반짝이면서 암홍색 장포를 입고 구불구불한 검은 머리를 늘어트린 청년 허상이 빠져나왔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도 준수한 느낌이 드는 사내는 원삼(猿三)이라 적힌 가면을 쓰고 있었다.

    “하하, 용오 수사. 위명은 오랫동안 들어왔습니다.”

    원삼이 공수하며 웃는데 목소리가 청량했다.

    “제가 용오인 것은 맞습니다. 시간법칙 재료가 있으시다고요?”

    한립은 상대가 자신에 대해 들어본 것 같아 내심 의아했으나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렇지 않았으면 연락은 왜 했겠습니까?”

    원호는 주먹 크기의 남색 수정체를 불러냈다.

    물방울 모양을 한 수정이었다.

    허상에 불과했으나 금빛이 물결치는 게 일렁일렁 전해졌다.

    “수연시정(水衍時晶)!”

    한립은 한눈에 남색 수정을 알아보았다.

    “평범한 수연시정이 아니라 가장 상등품의 수연시왕정(水衍時王晶)입니다. 시간법칙의 힘이 얼마나 풍부하게 들어있는지 5품 선기도 제련할 수 있을 테고요.”

    원삼의 설명을 듣고 자세히 살피니 화세형충 벌집 못지않은 느낌이었다.

    “얼마면 거래를 하실 생각입니까?”

    한립은 직접적으로 물었다.

    “수연시왕정은 거의 전 재산을 털어 구한 것이라 선원석으로는 거래할 생각이 없습니다.”

    “물물교환을 하자는 겁니까?”

    “그렇게 말해도 좋겠지만, 이걸 이용해 용오 수사와 거래를 하고자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알아듣게 말씀해 보시지요.”

    “돌려 말하는 걸 싫어하시는 듯하니 저도 시간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시간도단이 필요한데, 용오 수사가 일전에 시간도단을 제련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게 시간도단을 10번 제련할 만한 재료가 있으니 이걸로 도단 5개를 제련해 주시면 수연시왕정을 드릴 생각입니다.”

    원삼은 진지하게 조건을 제시했다.

    “제가 도단 다섯 개를 제련하지 못한다면요?”

    “시간도단을 제련하는 데 실패하거나 수량이 부족하다면, 죄송하지만 수사도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겁니다.”

    원삼의 말에 한립은 미간을 좁혔다.

    그가 도단사이기는 하나 10개 분량으로 시간도단 5개를 성공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용오 수사, 이 거래는 당신에게 유리합니다. 재료도 다 제가 대니 수사는 연단만 해주면 되는 일입니다. 성공하면 시간도단 다섯 개로 수연시왕정을 바꿔 가시고 실패하더라도 손해 볼 것은 없지 않습니까? 고민할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원삼은 그가 말이 없자 불만스럽게 말했다.

    “오해하셨군요. 이 거래를 저도 꼭 하고 싶습니다만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말해보세요.”

    “원하는 도단의 등급이 있습니까?”

    “물론 2품 도단 이상이어야 합니다. 딱히 걱정하실 건 없는 게, 제가 드리는 도단 주재료는 시간법칙을 농후하게 지니고 있어 수사의 연단 기술만 충분하다면 3품 도단을 만드는 것도 문제없을 겁니다.”

    원삼의 말에 한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질문은 무엇인지 한 번에 말씀해 주시지요. 거래란 게 소통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원삼 수사도 연단술을 익혀 본 분 같으니 아실 겁니다. 연단이라는 게 기술도 중요하지만 운이 따라줘야 하는 일이라, 10개 분량의 재료로 도단 5개를 만들어내는 게 아무리 숙련된 도단사라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만일 운이 따라주지 않아 도단 5개를 제련하지 못하면. 나머지는 제가 연단을 한 노고를 생각해서 선원석으로 드릴 수는 없겠습니까? 통상 거래되는 가격의 3할을 더 드리겠습니다.”

    한립은 진심을 담아 물었다.

    “안 됩니다. 제가 원래 한 번 한 말을 거두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수사가 수연시왕정을 원하시면 그걸 얻을 단 하나의 방법은 시간도단 5개를 만들어내시는 겁니다. 제련에 실패한다면 10배의 가격을 지불하겠다고 해도 절대 팔지 않겠습니다.”

    원삼의 태도는 아주 단호했다.

    “이건 어떻습니까? 도단이 네 알 미만이면 수사의 말대로 하되, 네 알 이상이면 제게 고가에 매입할 기회라도 주시지요.”

    미간을 좁힌 한립이 다시 물었다.

    “용오 수사, 분명히 말했습니다. 수연시왕정을 가져가시려면 시간도단 5개를 가져오셔야 합니다. 그 외에 다른 길은 없으니 싫으시면 거래를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원삼의 시선이 냉랭해지며 거래를 끝내려 했다.

    “아닙니다. 수사의 뜻대로 하지요.”

    한숨을 내쉰 한립은 결국 조건을 수락했다.

    눈빛이 살짝 부드러워진 원삼이 손을 젓자 한립의 거래 화면 중간에 전송진법이 반짝이고 저물반지와 하얀 옥간이 떠올랐다.

    반지와 옥간을 꺼내 의식을 불어 넣어보니, 옥간은 그가 이전에 제련했던 방법과는 다른 도단 약방이었고 저물반지에는 해당하는 재료가 말한 분량대로 들어있었다.

    주재료는 달라도 배합하는 비율 등이 비슷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전에 도단을 연단했던 경험이 도움이 될 터였다.

    “재료를 받았으니 최대한 빨린 연단에 들어가겠습니다. 원하시는 기간이 있으신지요?”

    “10년 내로만 가져다주시면 됩니다.”

    원삼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번득 사라져 버렸다.

    아무래도 그가 뜸을 들이고 조건을 조정하려고 했던 것에 불만을 표시한 듯했다.

    작게 웃음 지은 한립은 그저 재미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선계에서 보기 드문 성격이었다.

    이번 거래는 난이도가 있었지만 상대가 말한 대로 그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상대가 무조건 시간도단 5개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니 수연시왕정을 얻으려면 자신은 최선을 다해 연단을 해야만 했다.

    실패하면 시간을 낭비하는 셈이고 말이다.

    고개를 저은 한립은 옥간을 들고 분석에 들어갔다.

    눈을 감자 머릿속에 연단 과정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반년이 지나서야 눈을 뜬 한립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반년 동안 머릿속으로 수천수만 번 연단 과정을 반복해 모든 과정을 철저히 점검했다.

    지난번에는 9개를 만들 분량으로 딱 한 번만 성공하면 되었는데 이번에는 10개를 만들 분량으로 다섯 번이나 성공해야 하니 부담감이 컸다.

    화지공간에서 날아오른 한립은 바깥의 방으로 빠져나왔다.

    그는 빛의 문을 닫고 정염동자를 불러냈다.

    “넌 여기서 이곳을 지켜줘야겠다. 강한 적이 찾아와 행렬을 습격하면 나서서 제거해야 할 것이야. 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거라.”

    한립의 말에 더 영특해진 정염동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가슴을 탕탕 쳤다.

    정염동자에게 몇 마디 칭찬을 건넨 한립은 그림자처럼 변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배를 빠져나갔다.

    도단을 제련하면 도겁이 도래할 텐데 두 종족이 그걸 보게 할 수는 없었다.

    행렬을 떠난 한립은 외진 산봉우리에 간략하게 동부를 만들고 몇 겹의 금제를 펼친 다음 연단에 착수했다.

    * * *

    먹구름 떼가 만황계역 상공을 지나는데 그 안에 만황요족 대군이 가득했다.

    호랑이, 표범, 여우, 코끼리, 곰 등 다양한 모습의 요족들이 적어도 수만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수많은 만황 요수 중에 호랑이형 요수가 가장 많아 거의 절반을 차지했고 다른 요수들은 그들을 두려워하는 듯했다.

    먹구름 중앙의 까만 의자에 음침하게 생긴 백발청년이 앉아 있었는데 만황요족의 특징은 전혀 보이지 않고 그냥 인족 수사 같았다.

    청년 주위에 선 강력한 기운을 지닌 여덟 요족들은 전부 태을경 최고봉의 존재였다.

    “노족장께서 혈사대회에 소주를 대신 참석시키신 것은 우리 추오족(騶吾族) 다음 대를 이를 족장으로 소주를 점찍으신 것 아니겠습니까! 축하드립니다, 소주!”

    온몸이 새까맣고 철탑같이 단단하게 생긴 거한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아첨을 했다.

    얼굴에 호랑이처럼 노란 무늬가 있는 것이 그 역시 호랑이 요족이었다.

    “부친의 십여 자녀 중에 내 도올혈맥(檮杌血脈)이 가장 짙다. 지금까지 결정을 미뤄 온 게 늙은이의 노망인 게지.”

    백발청년은 거침없이 말했다.

    “족장 대인께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많으셨을 줄로…….”

    호피 무늬 거한이 찔끔하며 입을 열었다.

    “흥, 생각은 무슨! 동생이란 것들이 종일 부친의 귓가에 뭐라 속삭여 대니 늙은이가 망설인 게지. 천정의 압박이 심해지고 내가 대라경에 이르지 않았으면 아직도 결정을 미루었을 게다!”

    “소주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제 소주께서 대라경에 이르셨으니 감히 누가 경쟁할 생각을 하겠습니까. 마음 푹 놓으셔도 되겠습니다!”

    곁의 사자 형 요족이 거들었다.

    “마음 놓으라고? 아니, 지금도 동생들은 암암리에 장로들을 포섭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니야.”

    백발청년이 고개를 저었다.

    “소주의 말씀이 옳습니다!”

    호피 거한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것들이 무슨 짓을 하든, 내가 혈사대회에서 도올혈맥을 완전히 각성하면 내가 다음 대 족장이 되는 것에 아무도 토를 달 수 없을 테지만.”

    “역시 소주의 생각이 깊으십니다!”

    또 다른 요족들이 그를 떠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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