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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99화 (1,856/2,000)

2099화. 스승으로 모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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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밝아진 한립은 번잡한 다른 공법들 말고 오직 시간법칙에 관련된 신통과 비술만 눈여겨보았다.

“이 <진언대수인>은 진언문 항마신통으로 시간법칙의 힘으로 만들어낸 거대한 손자국이라 할 수 있다. 각기 다른 시간법칙의 힘을 품은 9개의 빛무리를 품고 있어 진언대수인에 적힌 9가지 시간법칙의 힘으로 동시에 제압하는 것이다.”

“이 <멸시신광>은 공격형 신통으로 시간법칙으로 항마신광을 응결해서 그 허공마저 뚫을 수 있는 강력한 위력을 내지.”

“이 <곤천쇄지(困天鎖地)>는 구금류 신통으로 극성으로 익히면 천하만물을 가둘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각 구멍에는 이름만 적혀 있고 자세한 설명은 없었는데 미라노조가 일일이 어떤 신통인지 이야기해주었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고 한 문파에 이런 현묘한 신통들이 모여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시간법칙 신통만 해도 수백 가지였고 그가 익힌 <역전진륜>, <진실안>, <법언천지> 등도 이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한립 너는 <역전진륜>, <법언천지>와 같은 신통을 익힌 것 같은데 대부분 초급에 머물러 있어 수련의 깊이가 얕구나. 안타까운 일이야. 잠재력이 큰 신통들이거늘.”

미라노조는 한립을 살피다 이렇게 말했다.

“아, 미라 선배님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역전진륜>은 효과가 단일한 신통이라 어떻게 수련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속도를 높일 수 있지. 너는 열댓 배 정도 가속을 하는 것이 최선이겠으나 <역전진륜>으로 높은 수준에 이르면 수백 배, 심지어 천 배까지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미라노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백 배! 천 배!”

헉 소리가 절로 날만 한 수치였다.

“그렇기에 <역전진륜>은 효과가 단일한데도 진언문 제일의 보조 신통이라 불린다. 다만, 이 신통을 펼치면 몸의 부담이 막중해서 반드시 몸을 단련한 다음 익혀야 하지. 내 보기에 너는 육신이 이미 충분히 강한데도 <역전진륜>을 깊이 있게 익히지 못했으니 안타까운 일이라는 것이다.”

미라노조의 말에 한립은 심장이 쿵쿵 뛰는 동시에 자신이 너무 안일했음을 후회했다.

<역전진륜>으로 열댓 배 가속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여겨 더는 연구를 하지 않았었다.

나중에는 <대오행환세결> 구결을 손에 넣어 그걸 수련하는 데만 시간을 쏟았다.

“<법언친지>는 말하는 대로 법칙이 따라가는 천지를 조종하는 절세의 신통이다. 방금 내가 설법을 하면서도 <법언천지>의 운용에 대해 얼마간 언급을 했으니 알겠지. 의식의 힘이 강할수록 <법언천지>의 위력도 강해지는데, 너는 의식이 동급 수사를 능가하고 대라 존재에 비할 법하건만 그런 탄탄한 기초를 다지고도 아직 <법언천지>로 환술을 부리는 경지에서 맴돌고 있으니 귀한 신통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 아니겠느냐.”

미라노조가 고개를 저었다.

“환술도 고계의 경지에 이르면 유용하지 않겠습니까?”

<법언천지> 신통에 적잖이 심혈을 기울여온 한립은 낭비라는 말을 인정할 수 없어 반문했다.

“<법언천지> 자체가 환술 신통이 아니기에, 평범한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라도 환술법칙에 정통한 사람을 만나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잘못된 길로 계속 파고들지 말아야 할 것이야.”

미라노조는 약간의 질책을 담아 말했지만 한립은 상대가 진심으로 자신을 일깨우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전진륜>과 <법언천지>의 잠재력과 진짜 위력을 알고 나니 다른 시간신통에 대한 욕심이 많이 줄어들었다.

차분하게 걸음을 옮기던 한립은 한 가지 공법을 응시했다.

방금 얻은 <불후금운> 신통이었다.

“이건 진언문 제일의 방어신통으로 제대로 익히면 세상 어떤 사악한 힘도 침투할 수 없다. 수련조건이 무척 까다로우니 네가 구결을 얻었다 해도 쉽게 익히려 들지는 않는 게 좋을 게야.”

“알고…… 계셨습니까?”

한립은 깜짝 놀랐다.

“물론이지. 진언문 내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도 내 눈을 피할 수는 없다. 그 정도 능력도 되지 않았다면 어찌 진언문을 다스리겠느냐.”

미라노조의 담담한 답변에 한립은 낯이 뜨거워졌다.

미라노조가 뻔히 보고 있는데 들키지 않은 줄 알고 좋아했던 것이 민망했기 때문이다.

바꿔 생각하면 홀로 구원관으로 가보려 했던 것도 너무 부주의한 행동이었다.

적몽과 묘법선존에게 쫓겨 병령이 장천병을 발동해 구해주지 않았으면 이미 구원관이나 천정의 수중에 떨어져 죽은 목숨이었을 터였다.

그간 수행과 시간법칙은 막힘없이 늘었는데 심경(心境)의 수련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해 이런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게 된 것 같았다.

한립은 자신의 자만심과 불안정한 정서를 토해내는 마음으로 길게 숨을 내쉬고 평정을 되찾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각종 공법을 살피며 대청의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마지막 구멍 안은 텅 비어 있었는데 명패에는 <대오행환세결>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진언화륜경>, <단시류화집> 등 다섯 가지 공법도 보이지 않았다.

“<대오행환세결>은 진언문의 보물로 입에서 입으로며 전수가 될 뿐 문자로 남기지 않는다.”

“아, 그랬군요.”

미라노조의 말에 한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후대에는 분명 다섯 개의 공법들이 경전으로 만들어져 전해지지 않았던가.

“공법과 신통들은 충분히 본 것 같은데, 나를 따라 장보전으로 가보자꾸나.”

미라노조가 웃음 지었다.

“예.”

고개를 숙인 한립은 대청을 돌아 나와 장보전으로 향했다.

* * *

장보전의 구조는 경전들을 모아놓은 곳과 비슷했고, 격자형으로 파인 구멍에 다양한 선기들이 놓여 있었다.

수백 자루가 한 벌인 금색 비검, 보광을 만발하는 금색 거울, 오색 호리병, 구름처럼 부드럽고 폭신한 하얀 그물망 등 종류도 다양했다.

경전과 달린 장보전의 소장품들은 각각 보양을 위한 진법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에 놓인 선기들은 급이 무척 높아서 가장 낮은 게 6품 선기였고, 몇 개는 하얀 불구슬에 못지않은 것도 있었다.

게다가 그중 두 개는 시간선기였다.

조금 전의 성찰로 마음을 가라앉힌 한립은 차분하게 장보전을 둘러보고 나왔다.

“다른 곳도 둘러보겠느냐?”

“아닙니다. 진언문이 어떤 곳인지 확실히 알았습니다. 허나 저는 홀로 지내는 것에 익숙하고 이곳에서 오래 머물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니 입문하는 것은 아닐 줄 압니다.”

고개를 저은 한립은 공수를 했다.

금색 고리의 시간도문이 반절 정도 남아 이곳에서 이틀은 지낼 수 있겠지만 진언문에 입문해 미라노조의 가르침을 받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진언문은 천정과 멸문의 원수를 지게 되어 있었다.

이런 은원은 한쪽이 철저히 무너져야 끝이 났는데 진언문의 세력이 크다 한들 천정에 비하면 부족했다.

미라노조를 스승으로 모시면 이득도 있겠으나 진언문과 천정의 은원에 휘말리는 것은 잃을 것이 더 많은 일이었다.

미라노조는 평온한 얼굴로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놀라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 사람의 말대로 한 수사는 침착한 인물이군. 공법과 신통, 이 수많은 보물에 현혹당하지 않았어.”

미라노조는 한립의 거절에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본 한립이 눈썹을 끌어올렸다.

“진언문과 천정의 쟁투에 휘말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알겠다. 허나 부족하지만 <대오행환세결>을 익혀 진언문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도 천정이 추살을 멈추지 않을 텐데?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천정과 이미 악연을 쌓아 쫓기고 있을 테고.”

“그걸 어찌 아십니까?”

한립이 흠칫 놀라 물었다.

“네가 지닌 연신술과 윤회전 가면의 기운을 느껴서이다. 일반 성원의 가면도 아닌 듯하니 윤회자겠지. 게다가 시간법칙을 익혀 진작 천정의 기탄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니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선배님의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니 진언문에 들어오는 것은 천정의 너에 대한 태도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야. 심지어 천정은 벌써 너를 진언문 제자로 여기고 있을 것이고.”

미라노조의 말에 한립은 말없이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정말 진언문에 들어오는 게 어떻겠더냐. 홀로 <대오행환세>을 제법 익혔다지만 내 눈에는 그 폐해가 보인다. 체내의 다섯 가지 시간법칙의 힘이 강해질수록 문제가 생기다 결국에는 그 기운들이 폭동을 일으켜 몸이 터져 죽을 수도 있을 것이야.”

미라노조가 한립을 훑고 무심히 말했다.

표정이 수시로 바뀌던 한립은 얼굴이 가라앉았다.

미라노조의 말대로 아직 <대오행환세결>을 심도 있게 익히지도 못했는데 어렴풋이 체내의 다섯 가지 시간법칙의 힘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그냥 느낌이라 뭐라 딱 꼬집을 수 없었는데 미라노조의 말을 듣고 보니 이제 확신이 섰다.

“미라 선배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렇다면 진언문에 입문하겠습니다.”

고민을 마친 한립은 고개를 들고 미라노조를 향해 사부를 모시는 대례를 올리려 했다.

“너와 나는 세월을 거슬러 만난 인연이니 그런 허례는 할 필요 없다.”

미라노조는 한립이 동의한 것에 기뻐하면서도 무형의 힘으로 절을 하려는 그의 몸을 받쳤다.

그 말에 한립은 또 한 번 놀랐다.

“한립, 내 비록 너를 제자로 들이나. 네 실력에 대라경에 이를 날이 머지않았겠지. 명의상으로는 사제지간으로 지내되 벗으로 친분을 쌓아도 될 것이야.”

미라노조가 그런 한립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놀라운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진언문의 각 문파에서 사제 관계는 가족 간의 배분이나 신분의 차이처럼 절대적이라 진언문 같이 전통 있는 문파에서는 더욱 엄격히 따지게 되어 있었다.

미라노조가 이리 말한 것은 무슨 뜻이란 말인가?

이해가 되지는 않았으나 제자로서 절을 올리지 않는 것은 그의 마음과 통했다.

오랜 세월 자신의 힘으로 살아남았던 그는 누군가에게 머리를 숙여 절을 올리고 사존, 혹은 배분 상 어른으로 삼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어찌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선배님을 스승으로 모시려면 당연히 제자로서 예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한립은 공손히 말했다.

미라노조는 더는 강요하지 않고 그를 끌어들여 함께 마주 앉았다.

“한립, 미래에서 왔다니 그 시대에 진언문은 어떤지 말해줄 수 있겠느냐?”

미라노조가 진지한 얼굴로 물어왔다.

“제가 있는 시대에서……. 진언문은 진작 천정에 의해 멸문을 당했습니다. 알아본 바에 따르면 천정의 시간도조가 직접 나섰더군요.”

한립은 멈칫하다 사실대로 말했다.

“역시 그랬구나.”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사존. 기마자는 신용할 수 없는 자입니다. 미래에 천정에 의탁할 자이고 진언문이 멸문을 당한 일도 그와 연관이 있는 줄 압니다.”

“하늘의 뜻이 그렇다면 바꿀 필요는 없겠지. 일어날 일을 막으려다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를 일이니 말이야.”

미라노조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도 표정 변화가 없었다.

“허나…….”

“기마자를 막으면 진언문이 반드시 멸문당하지 않을 거라, 더 나은 처지에 놓이게 될 거라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느냐? 진언문의 일은 네가 걱정할 것 없다. 네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니 <대오행환세결>을 펼쳐 보거라. 내 자세히 살펴보고 잘못된 곳을 일러줄 것이야.”

한립이 뭐라 더 말하려는데 미라노조가 그의 말을 막았다.

한립은 시키는 대로 <대오행환세결>을 운용했다.

진언보륜, 단시횃불, 광음정병, 환진사루, 동을신목 등 다섯 개의 시간보물들이 떠올라 그를 중심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미라노조의 지도를 받기 위해 <대오행환세결>을 전력으로 발동해, 진언보륜 등은 시간도문을 밝게 빛냈고 시간법칙 정사도 떠올랐다.

시공간초월을 하며 소모한 50가닥의 시간정사는 전부 단시횃불에서 나온 것이라 단시횃불의 시간정사는 백여 가닥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진언보륜에 30가닥 정도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환진사루, 광음정병, 동을신목 등에는 시간정사가 거의 없었다.

미라노조는 그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다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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