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2화.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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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성은 방대한 면적만큼 드나드는 이들도 많아 성문 외에 공중의 보호막에도 적잖은 입구를 뚫어 두었다.
한립과 남안은 그중 하나로 성안에 들어가 빼곡한 행인들과 허공을 날아다니는 사람들을 보았다.
수사들도 많았지만 범인들도 굉장히 많았다.
널찍널찍한 도로가 사방으로 뻗어있고 상가들도 아주 휘황찬란해서 시장이 아니라 화려한 궁전을 보는 것 같았다.
백조산, 승룡전 같은 선계의 대형 상점은 물론 마역의 광원재도 이곳에 지부를 두고 있어 딴 때 같았으면 괜찮은 물건이 없나 살폈겠지만 지금은 금동 일로 마음이 급해 곧장 중심부로 향했다.
성을 거의 가로질러 금탑에 이른 그들은 대금원선역으로 통하는 과역전송진을 이용하려 백옥 광장에 내려섰다.
시장과 달리 인적이 드물어 분위기가 적막했다.
“이상하네요. 사형과 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오늘은 왜 이럴까요?”
남안이 주위를 둘러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한립도 미간을 좁혔다.
금탑의 상황이 이상한 것도 그렇고 두 사람이 광장에 내려서자마자 몇 개의 의식이 은밀히 그들을 탐색했기 때문이다.
무척 희미해서 그의 강대한 의식이 아니었으면 눈치도 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 예로 태을경 최고봉의 수행을 지닌 남안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한립은 의식을 퍼트려 반대로 상대를 찾아내려다, 그냥 평온한 얼굴로 금탑까지 걸어갔다.
대문 좌우에 천정 복색을 한 금의 갑사들이 서 있었다.
천정이 관리하는 과역전송진을 지키는 이들이라 문지기도 금선들이었다.
“두 분은 무슨 용무 때문에 오셨습니까?”
금의 갑사 중 한 명이 무표정하게 물었다.
한립과 남안은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금선 정도로 수행을 억눌러 두었다.
“과역전송진을 이용해 대금원선역으로 가려 합니다.”
한립이 웃으며 공수를 했다.
“며칠 전 과역전송진에 문제가 생겼는데 하필 지금 오셨습니다. 잠시 탑을 봉쇄했으니 나중에 찾아주세요.”
금의 갑사가 냉랭히 말했다.
“전송진에 문제가요? 언제 다시 이용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모릅니다. 수리가 되는 대로 알릴 것이니 수시로 선잔(仙棧)을 찾아 소식을 들으세요.”
금의 갑사가 손을 뻗어 금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떠있는 공중 건물을 가리켰다.
그곳이 금연성의 선잔인 것 같았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머리를 굴리던 한립은 선잔으로 날아갔고 남안이 묵묵히 그의 뒤를 쫓았다.
금탑 꼭대기의 대전 안에 금포를 입은 수사 넷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각자 주먹 크기의 하얀 구슬을 띄우고 있었다.
그들의 구슬에는 한립과 남안이 날아가는 모습이 떠올라 있었다.
“정보에 따르면 찾는 자는 의식의 힘이 강해서 탐색을 감지했을 겁니다. 저들도 아니란 소리지요.”
매부리코 사내가 하는 말에 다른 사람들이 수결을 맺어 다른 수사들을 조사했다.
“벌써 십여 년이 지났습니다. 한립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데 벌써 다른 방법으로 소금원선역을 떠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동그란 얼굴 중년인이 구슬을 조종하면서 말했다.
“벌써 지치기라도 한 것입니까, 양 수사?”
또 다른 회발 노인이 둥근 얼굴 중년인을 보았다.
“전 수사, 양 수사의 반려가 얼마 전 아들을 낳은 걸 모르세요?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고 싶을 텐데 소금원선역으로 파견을 나와 있으니 마음이 급할 수밖에요.”
마지막으로 중년 미부인이 웃음 지었다.
“하하, 그랬습니까? 축하드립니다.”
회발 노인은 입만 끌어당겨 웃었다.
둥근 얼굴 중년인은 그들의 말에 씁쓸한 얼굴을 하다 고맙다고 했다.
“자, 적 전주께서 한립을 찾으라고 보낸 것인데 한담을 나눌 여유 따위는 없습니다. 한 명도 놓치지 말고 꼼꼼히 검사해야 할 것이에요.”
책임자인 매부리코 사내가 나지막하게 분부했다.
그때 둥근 얼굴 중년인이 갑자기 인상을 찡그렸다.
“양 수사, 왜 그러십니까?”
매부리코 사내가 돌아봤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전에 다른 임무를 나갔다가 의식 손상을 입어서 아무래도 전륜진주(轉輪眞珠)를 조종하기가 벅차군요.”
둥근 얼굴 중년인의 부끄럽다는 듯한 표정에 매부리코 사내가 얼굴을 굳혔다.
확실히 상대의 의식 파동은 갑자기 강해졌다 약해졌다 하며 문제가 있었다.
“부상을 입었다니 먼저 들어가 쉬세요. 어차피 반나절 후면 교대를 할 때니까 그때까지 우리들이 알아서 해보겠습니다.”
회발 노인이 눈을 들어 올리고 이렇게 말했다.
“맞아요. 넷이나 셋이나 별 차이 있나요.”
중년 미부인도 거들었다.
둥근 얼굴 중년인은 고맙다는 눈짓을 하고 매부리코 사내의 말을 기다렸다.
“전 수사와 류 수사가 저렇게 말씀하시니, 양 수사는 일찍 들어가 쉬세요. 조속히 몸조리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매부리코 사내의 허락에 둥근 얼굴 중년인이 하얀 구슬을 거두고 나갔다.
* * *
한립과 남안은 다른 사람들과 섞여 선잔으로 들어섰다.
신중한 성격 덕에 첫 번째 난관을 넘겼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규모는 다른 선역보다 컸는데 배치는 비슷해서 양쪽에 단약, 선기, 재료를 구매할 수 있는 곳이 있고 중앙에는 천장에 달하는 푸른 비석에 임무가 가득 쓰여 있었다.
그리고 임무 비석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각종 죄목이 적힌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 주선방도 놓여 있었다.
임무 비석과 주선방 주변을 사람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서서 뭔가 설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뭔가 하고 보니까 이전보다 훨씬 앞줄인 주선방 상단에 한립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그의 죄목도 자연히 추가되었다.
한립, 윤회전 구성원, 금술을 수련, 북한선궁 궁주 소진한과 금원선궁 궁주 동방백 살해, 마역과 결탁, 금원산맥 영맥을 훼손해 생령을 도탄에 빠트림. 포상금 선원석 5천만 개!
거기에는 그에 대한 정보도 자세히 적혀 있었다.
뇌전 속성의 청죽봉운검과 마기를 지니고, 마역의 구유마동, 공법, 거마변신술 등의 신통을 펼치며 시간법칙을 수련했다 등등.
한립이 아직 금원선역에 있다는 소식과 직접 잡아 오지 못해도 정보를 제공하는 자에게도 후한 보상이 있을 거라는 내용이 더해졌다.
교삼, 호삼 등도 분명 태세선부에 있었는데 그들은 주선방에서 별 변화가 없고 한립만이 집중적으로 추포령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한립이 대체 누군데 천정이 선원석 5천만 개를 포상금으로 걸었을까요? 이렇게 높은 금액은 처음 봅니다!”
“선원석 5천만 개면 수련하기 좋은 곳을 찾아 천만 년간 폐관 수련을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겠어요.”
“에이, 겨우 수련은. 이 정도 선원석이면 쓸만한 영맥에 종파를 하나 만들어도 되겠습니다!”
“주선방 윗줄에 오른 자를 우리 같은 금선들이 잡을 수나 있고요? 그랬으면 벌써 잡혔겠지요.”
“하하, 진 수사의 말이 맞습니다! 선원석이 아무리 좋아도 명줄보다 좋겠어요.”
“원래 위험이 클수록 보상도 큰 법입니다. 그런 담을 가지고 무슨 임무를 받겠다고 여기 나와 계십니까.”
“윤회전 구성원에 마역과 결탁해 금원산맥을 붕괴시켰다는 것을 못 보셨습니까? 이런 자를 어떻게 잡습니까?”
“금원산맥이 붕괴된 일은 저도 들었습니다. 범인들이 몰살당하고 수많은 종문이 망했습니다. 아주 극악무도한 놈입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시끄럽게 떠들면서 자신의 종문에도 관련 내용을 알렸다.
선원석 5천만 개면 누구나 탐낼 만했다.
“한 수사, 어서 떠나는 게 좋겠어요.”
남안이 참다못해 전음을 보냈다.
한립이 강력한 금제를 심어두어 그가 죽으면 그녀도 죽은 목숨이었다.
주선방을 본 한립도 금연성을 떠날까 하다가 과역전송진이 폐쇄된 것과 금탑 앞의 감시를 떠올리고는 마음이 평온해졌다.
“긴장하지 마세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 됩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남안도 왠지 모르게 안심했다.
한립과 남안은 윤회전 가면으로 변신해서 대라경 수사라 해도 그들의 진짜 얼굴을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방금 표정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금방 차분하게 바뀌어서 누군가 줄곧 주시하지 않았다면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립은 선잔의 무리들 속에서 누군가가 그들을 주시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바로 금탑에서 의식 부상이 도졌다며 빠져나온 동그란 얼굴 중년인이었다.
“역시 수상해. 저 사내, 전륜진주를 감응하지 못한 척했지만 순간적으로 미세한 의식 파동을 방출했어. 다른 사람의 눈은 몰라도 내 탐혼안(眈魂眼)은 속일 수 없다. 조금 늦게 와서 주선방을 본 반응을 살피지 못한 게 아쉽구나.”
눈동자에 기이한 빛이 어린 그는 한립과 남안을 면밀하게 살폈다.
선잔을 빙 둘러본 한립은 자연스럽게 그곳을 빠져나와 날아갔다.
“이렇게 그냥 간다고? 더 의심스럽구나. 누구에게 알려야 하는데……. 아니지, 아이의 선규가 선천적으로 수축해 있어 치료하려면 막대한 양의 선원석이 필요해. 확실히 신분을 확인한 다음 알려서 보상을 받아야 한다.”
보라색 구슬을 꺼냈던 중년인은 그걸 다시 넣어두고 검은 그림자로 변해 한립과 남안의 뒤를 밟았다.
금연성 출구에서 비용을 내고 날아오른 한립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갑시다!”
푸른빛을 일으켜 남안을 감싼 그가 빠르게 하늘을 갈랐다.
금연성 인근에서는 사섬에게 빼앗은 흑룡비주를 탈 수 없었지만 그의 속도에 수백만 리를 단숨에 주파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아직 그리 안전한 거리가 아닌데 안 가고 뭐 하세요?”
남안이 갑자기 멈춰선 그를 향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떠나기는 해야 할 텐데, 그 전에 처리할 일이 있습니다.”
미소를 지은 한립은 말을 끝맺기 전에 뒤쪽의 야트막한 언덕으로 손을 뻗었다.
쿠쿵.
산만한 금색 거대 손이 나타나 두부처럼 언덕을 뜯어내자 그 안에서 동그란 얼굴 중년인이 당황한 얼굴로 튀어나왔다.
태을 초기 수행을 지닌 자였다.
“어딜 가려고! 미행당하는 걸 모를 줄 알았습니까?”
코웃음을 친 한립은 손을 움직였다.
금색 거대 손이 흐릿하게 사라져 검은 그림자 앞을 막더니 힘차게 다섯 손가락을 오므렸다.
중년 사내의 몸이 거대한 압력에 터졌는데 피는 보이지 않고 수백 개의 검은 빛줄기가 온갖 군데로 신속하게 사라졌다.
진짜 중년인을 찾지 못한 한립은 눈썹을 끌어올렸다.
수많은 화신 속에 전부 중년인의 기운이 숨어 있는 듯했다.
당황하는 기색 없이 수결을 맺은 그의 몸에서 진언보륜이 빠져나와 천장 범위를 금빛으로 둘러쌌다.
검은빛들은 그 안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십여 년 동안 시간법칙을 전부 회복한 그는 이전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없애라!”
소매 속에서 금색 뇌전들이 날아가 검은빛들을 터트렸다.
미약한 비명소리가 들리다 뇌전빛과 함께 사라졌다.
상대의 암영법칙(暗影法則)은 뇌전법칙에 쥐약이라 살아남지 못한 듯했다.
진언보륜을 거둔 한립을 보고 남안이 당황해 물었다.
“저자는 누굴까요? 천정에서 이미 우리를 발견했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크지만 상관없습니다. 우리의 소식을 전할 기회를 주지 않았으니까요.”
“그럼 다행이고요.”
한립은 흑룡비주를 불러내 그녀를 태우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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