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2086화 (1,843/2,000)
  • 2086화. 신등을 손에 넣다

    *

    한립도 방심하지 않고 진언보륜을 불러내 가속했다.

    날아든 화세형충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의 벽에 부딪힌 것처럼 속도가 느려져 공중에 구금되었다.

    그걸 확인하고 살짝 마음을 놓은 그는 현천호리병을 꺼내 그것들을 담으려다 깜짝 놀랐다.

    수천 마리 화세형충들이 몸에서 금색 불길을 일으켜 진언보륜이 방출한 금색 광선을 부단히 축내고 있었다.

    금색 광선을 축내며 몸집을 불리는 화세형충들은 이전에 본 것들과 급이 달라 보였다.

    교삼과 호삼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교삼은 화세형충에 완전히 둘러싸여 법보가 만든 푸른 보호막이 오래 버틸 것 같지 않았고, 호삼은 은색 갑옷이 화세형충을 전혀 막아주지 못해 부리나케 달아나다 실수로 신등 분신 중 하나와 부딪쳤다.

    그 결과 신등 분신에서 붉은 화염 교룡이 뻗어 나와 그를 감싸려 했다.

    그때 천호화혈도가 웅, 울고는 화염 교룡을 베어냈다.

    핏빛 도광이 수백 마리 화세형충과 붉은 화염 교룡 위로 떨어져 교룡의 몸을 불똥으로 흩어지게 했다.

    호삼이 한숨을 돌리고 이동하려는데 또 다른 신등 분신 두 개가 붉은빛을 밝히더니 각각 화염 교룡을 분출해 그의 양어깨를 깨물었다.

    움직임이 느려진 그가 붙들리자 기다렸다는 듯 나머지 화세형충들이 그를 집어삼켰다.

    “저런…….”

    그걸 본 한립은 긴장했다.

    화세형충에게 물어뜯기고 있는 호삼의 생명력이 괴이하게 유실되어 피부가 마르고 기운이 쇠하는 중이었다.

    이를 악문 한립은 손을 저어 청죽봉운검 36자루를 날려 보냈다.

    청죽봉운검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푸른 검 그림자로 변해 부르르 떨며 금빛 그물을 치고 주변의 화세형충들을 에워쌌다.

    동시에 진언보륜을 몸 안으로 불러들여 역전한 그의 신형이 호삼을 향해 날아들었다.

    진언보륜의 제약이 사라진 화세형충들은 청죽봉운검이 만든 그물의 틈을 뚫고 일부만 그를 뒤쫓았다.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던 한립은 호삼의 곁에서 천살진옥공을 운용해 성신지력을 쏟아부은 팔로 주먹을 날렸다.

    펑! 펑!

    두 개의 신등이 갈라진 후 붉은 화염 교룡도 흩어졌다.

    이때 호삼을 둘러싸고 있던 화세형충들이 즉시 날아올라 한립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제는 앞뒤에서 화세형충이 몰려들고 있었다.

    털어낼 시간이 없어, 일단 그곳을 벗어나려는데 발을 떼자마자 몸에서 화염이 송이송이 피어났다.

    강렬한 시간법칙 파동에 역전진륜 신통을 사용하고도 벗어나지 못한 그는 그곳에 발이 묶였다.

    다음 순간 허공이 출렁이고 기마자가 나타나 그의 앞섶을 향해 손을 뻗었다.

    “드디어 네 놈을 잡는구나…….”

    눈썹을 끌어올린 기마자가 냉소를 흘렸다.

    “한 형!”

    막 자유를 되찾은 호삼이 그걸 보고 놀라 소리쳤다.

    한편 누에고치처럼 화세형충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교삼이 강렬한 윤회법칙 파동을 터트렸다.

    놀랍게도 화세형충들이 불길을 거두고 어둑하게 변해 잠이라도 든 것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교삼이 그쪽을 보고 몸을 날렸지만 주위의 신등들이 밝은 빛을 내면서 화염 교룡들을 뿜어 그녀의 길을 막았다.

    “아무도 널 구하지 못한다, 죽어라!”

    기마자가 한립을 붙들고 금색 화염을 일으켜 한립은 불길에 휩싸였다.

    “한 형…….”

    놀라서 눈을 부릅뜬 호삼이 천호화혈도를 휘두르려다가, 기마자가 손을 저어 대충 날린 금색 화염에 가슴을 맞고 튕겨 나갔다.

    교삼도 한립이 불길에 둘러싸인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마자는 여전히 한립을 붙들고 그가 재가 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살이 녹아 뼈가 드러나고 있는데도 원영이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걸 본 기마자의 입꼬리가 올라가 뒤쪽으로 손을 움직였다.

    그의 주위로 금색 화염 연꽃들이 피어나 거대한 우리를 이루고 주변 공간을 철저히 봉쇄했다.

    그 금빛 속에서 또 다른 한립이 나타났다.

    “체신괴뢰라, 같은 수법이 또 통할 줄 알았더냐?”

    몸을 돌려 화염 연꽃 속에 구금된 한립을 본 기마자가 조소했다.

    불길 속에서 타는 듯한 고통에 시달리느라 한립은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답을 하지 못했다.

    기마자도 헛소리하고 있을 생각이 없는지 번쩍 이동해 커다란 손으로 그의 머리통을 붙들었다.

    한립은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고통에 참지 못하고 비명을 터트렸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한립은 핏발 선 눈이 바깥으로 돌출되며 곧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교삼이 그걸 보고 암홍색 영패에 법칙의 힘을 마구 불어넣었다.

    문짝만하게 변한 영패가 암홍색 광선을 내뿜어,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주변의 신등 분신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튕겨 나갔던 호삼도 교삼을 따라 기마자를 향해 쇄도했다.

    힐끗 그들을 본 기마자는 비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안 돼, 늦었어…….”

    교삼은 절망스럽게 중얼거렸고, 기마자가 손에 힘을 주자, 한립의 머리가 수박처럼 퍽, 갈라졌다.

    “한 형!”

    눈을 부릅뜬 호삼이 소리쳤다.

    기마자는 그들을 개의치 않고 한립의 잔해에서 금색 소인을 끄집어냈다.

    “한 수사, 자네의 <대오행환세결>은 이제 내 것일세!”

    한립의 원영을 손에 들고 기마자가 통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대답 없이 발버둥 치는 원영을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검은 실로 꽁꽁 묶은 그는 추혼술을 시작했다.

    수행에 차이가 나니 금방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을 터였다.

    “……!”

    하지만 추혼술을 펼치던 기마자의 표정이 삽시간에 달라지더니 검은 실을 거두려 했다.

    막 머리를 잃은 한립의 시체가 꿈틀대다 그가 손에 쥔 원영 소인과 함께 무로 돌아가고, 교삼 옆에 푸른 인영이 나타나 잔잔히 웃음 짓고 있었다.

    바로 대라경 수사 류자재였다.

    그의 환술법칙과 교삼의 윤회법칙이 합쳐져 체신괴뢰 하나를 희생하는 대가로 기마자를 속인 것이다.

    하얀 돌풍과 함께 리기마가 기마자 앞에 나타났고, 그 위에 타고 있던 한립이 펄쩍 뛰어내렸다.

    화아앗.

    진언보륜 광명정병, 환진사 등의 시간법칙 보물들이 기마자를 에워싸고 시간정사를 쏘아 눈부신 오색 융합 빛을 만들어냈다.

    오색 융합빛 속의 기마자는 놀란 표정 그대로 굳어 환영이 한 꺼풀씩 벗겨져 스러져갔다.

    류자재와 곡린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수백 장 거리에서 그 기함할 만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허상이 한 꺼풀씩 벗겨져 사라질 때마다 기마자의 기운이 급속도로 약해져 대라경에서 태을경 수사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오색 융합빛도 점차 어둑해졌다.

    융합빛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한립이 소리쳤다.

    “네 시간은 끝났다!”

    진령혈맥과 천살진옥공을 격발한 그가 삼두육비의 마신 형상으로 변해 기마자의 단전과 심장 두 곳을 동시에 공격한 것이다.

    진룡혈맥이 변한 용 발톱이 기마자의 가슴을 뚫고 심장을 으깼지만 산악거원이 변한 주먹은 단전을 터트리지 못했다.

    “대라경 수사의 몸은 단단하구나.”

    한립이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주먹을 날리려는데 이변이 발생했다.

    기마자의 단전이 뜨끈해지더니 수백 마리 화세형충들이 쏟아져 나와 그의 팔에 달라붙은 것이다.

    순식간에 팔이 새까맣게 변해 말라비틀어져 가는 걸 본 한립은 흠칫 놀랐다.

    이때, 그의 어깨에서 머리에 일곱 빛깔 화염을 나풀거리는 은색 소인이 나타나 수영을 하듯 그의 팔로 뛰어들어 은색 화염을 분출했다.

    그 순간, 기마자의 단전에서 금색 법칙정사 한 뭉치가 빠져나와 노기 등등한 금색 소인으로 변하더니 사라져 버렸다.

    다음 순간 금색 소인은 천 리 밖에 있었다.

    호삼이 이를 보고 쫓으려는데 류자재가 말렸다.

    “대량의 시간정사로 원영을 감싸고 둔술을 펼쳐 리기마라 해도 쫓지 못할 것이다. 괜히 힘 빼지 말거라.”

    팔에 붙은 화세형충이 사라진 후 한립은 기마자의 시체에서 저물반지와 저물대를 꺼내 연화를 시키지도, 챙겨 넣지도 않고 들고만 있었다.

    조종하는 사람이 없어 원래 상태로 돌아간 세월신등은 교삼이 들고 있었다.

    “한 형, 약속대로…….”

    “전 세월신등만을 원합니다.”

    교삼이 말을 꺼내자 한립은 바로 저물법기들을 던져 주었다.

    미소를 지은 교삼이 세월신등을 한립에게 던졌다.

    각자 서로의 물건을 확인한 그들은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품에 집어넣었다.

    “도울 만큼 도운 것 같은데 본명원패를 돌려줘야 할 때가 아닌가?”

    리기마가 한립 앞으로 걸어왔다.

    그 말에 한립이 대답을 하려는데 쿠쿠쿵, 하고 공간 전체가 흔들렸다.

    놀란 무리는 흑천마조와 잔혼이 싸우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쿠콰쾅!

    세월전이 있는 방향에서 검은빛과 금빛이 교차하면서 다시 천지가 진동을 했다.

    두 사람의 싸움으로 7층이 거의 허물어져 있었다.

    쿠콰콰쾅!

    “하하! 신나! 재밌어! 이거지 바로!”

    경천동지할 폭음이 들리고 모습을 드러낸 흑천마조는 몸에서 발산한 검은빛으로 하늘의 절반을 가리고 하하 웃음 지었다.

    금색 잔혼도 금빛을 대량으로 뿌리며 그와 대치 중이었다.

    이때 잔혼의 몸은 더 흐릿해져서 금빛이 흑천마조의 검은빛보다 훨씬 약해져 있었다.

    매우 먼 곳에 있던 한립 무리도 흑천마조의 검은빛에 영향을 받았다.

    두근, 두근, 두근…….

    선령력의 흐름이 혼잡해지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금방 터져버릴 것 같았다.

    눈앞에 수많은 광경이 지나가 연달아 악몽을 꾸는 것만 같았다.

    ‘심마법칙!’

    한립은 급히 시간법칙의 힘을 끌어올려 몸을 보호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더 멀리 몸을 피했다.

    류자재, 교삼 등도 법칙의 힘으로 몸을 보호하면서 멀리 날아갔지만 심마의 발작을 막을 수는 없어 보였다.

    다행히 검은빛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영역을 넓히지는 않아 한참 후에야 선령력이 가라앉고 이상한 증상들이 사라졌다.

    한립은 먼 곳의 검은빛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을 빛냈다.

    짙은 검은빛 속에서 금색 잔혼의 금빛은 억눌려 극도로 빛나는 금색 구슬처럼 변해 있었다.

    “에이, 노인네가 잔혼 한 줄기만 남겨 놓고 간 게 아쉽구만. 더 싸워봤자 재미는 없겠어!”

    탄식한 흑천마조는 오른손에서 일으킨 칠흑 같은 빛으로 허공을 갈랐다.

    금색 잔혼이 들어 있는 빛구슬 위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검은 거대 손이 나타났다.

    거대 손이 막대한 힘으로 빛구슬을 찢고 그 안의 잔혼을 내리쳤다.

    안 그래도 빛이 어두워진 금색 잔혼은 열 줄기의 빛을 뿜으며 거의 투명하게 변했고, 9개의 빛줄기는 검은 거대 손에 막혔지만 빛줄기 하나가 바깥으로 뻗어 나가 한립 무리가 있는 곳으로 날아들었다.

    그것을 보고 그들이 기겁해 피하는데 한립이 들고 있던 세월신등이 그를 따라가지 않고 수많은 금색 화염을 꽃처럼 피워 금색 불바다를 일으켰다.

    안색이 달라진 한립은 급히 신등을 놓아주고 수천 리 바깥으로 벗어났다.

    어렵게 얻은 세월신등을 이렇게 두고 가야 한단 말인가?

    마지막 금빛 줄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푹! 하고 금색 불바다와 충돌했다.

    쿵!

    방대한 시간법칙의 힘이 금색 불바다 속에서 흘러나와 빛줄기로 융합되었다.

    그러자 검은 기운 속 금색 잔혼이 몸을 빛내면서 빠르게 실체화되어 한 주먹을 날렸다.

    거대한 힘이 충돌하면서 공간이 찢어지고 공간균열들이 생겨 허공을 떠다녔다.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곳까지 멀리 달아난 한립 무리도 그 힘에 구금되어 꼼짝하지 못했다.

    “십방세월도(十方歲月道)! 잔혼 주제에 이런 신통을! 내 천지통곡(天地慟哭) 받아봐라!”

    흑천마조가 쩌렁쩌렁 소리를 지르고 새까만 검을 불러내 교룡과 같은 수백 개의 검빛을 분출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