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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84화 (1,841/2,000)

2084화. 태세의 잔혼

*

“못 할 것 없지! 그렇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의 저물법기를 다 보아야 할 것이다. 누가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

기마자는 손에 낀 저물반지를 빼면서 다른 이들에게도 구정물을 끼얹었다.

그는 저물법기가 두 개 있었고 반지에는 전투에 쓰이는 보물들을, 선옥 옥주 영패 같은 귀중품은 다른 곳에 넣어 두었다.

흑천마조는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두 사람이 떠들자 뭐라고 하려다 갑자기 몸을 돌렸다.

“누구냐!”

흑천마조가 손을 뻗어 허공을 잡았다.

천지원기가 붕괴해 검은 거대 손을 이루고 무언가를 번개처럼 낚아챘다.

펑!

허공이 깨지고 금빛 누군가가 끌려 나왔는데 곡린이었다. 그가 벗어나려 발버둥 치기 전에 검은 거대 손이 사라졌다.

세월전 안에 파동이 일고 검은 손이 나타나자 그곳에 있던 이들은 깜짝 놀랐다.

검은 손은 흩어지면서 곡린만 떨구었다.

“아, 그 벌레 녀석! 흐흐, 안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제 발로 찾아왔구나.”

곡린을 알아본 흑천마조가 반가워하며 사라졌다.

곡린 앞 허공에 파동이 일더니 흑천마조가 나타나 주먹을 뻗었다.

그걸 보고 겁에 질린 곡린이 악, 소리를 지르면서 거목 크기의 서금충 본체로 변신했다.

앞발이 칼날처럼 허공을 갈라 금색 수정빛들이 흑천마조를 때리러 날아갔지만, 흑천마조는 피하지 않고 환영처럼 변해 수정빛들을 그냥 통과시켰다.

흑천마조의 주먹이 금색 거대 곤충의 머리에 꽂혔다.

쾅!

주먹이 닿기 직전 실체화되어 금색 서금충이 붕 날아가 무너진 세월전 벽에 부딪혔다.

벽은 특수 재료로 만들어져 금제가 사라진 후에도 잘 부서지지 않았다.

통천검파 사람들이 하필 인근에 있어서, 뇌옥책은 아직 깨어나지 못한 도윤진인을 데리고 피했다.

벽에 부딪히고 굴러떨어진 서금충은 충격에 눈빛이 흔들렸다.

단단하기 그지없는 껍데기에 흐릿하게 주먹 자국이 나 있었다.

“더 단단해졌잖아? 이거 때릴 맛 나겠다!”

귀신처럼 그 옆에 나타난 흑천마조가 주먹을 뻗었다.

서금충은 갑자기 금빛을 터트려 몸집을 주먹만 하게 줄이고 날개를 열심히 퍼덕여 불가사의한 속도로 도망쳤다.

“거기서!”

하지만 흑천마조가 언제 나타났는지 그 앞에 서서 뻗은 주먹으로 서금충을 강타했다.

쾅!

작은 서금충이 또 날아가 다른 쪽 벽에 부딪혔다.

금빛이 흩어진 서금충은 원래의 커다란 크기로 돌아갔다.

“으하하, 그렇지! 이렇게 속시원한 건 오랜만이야!”

이렇게 말한 흑천마조가 흐릿하게 변해 주먹을 날렸다.

쾅!

또 서금충은 벽으로 날아가 맞고 떨어졌다.

이번에는 머리가 아니라 몸통을 맞아서 정신이 혼란스럽지 않은지 금색 딱정벌레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석 선배님, 석 대인, 제가 잘못했습니다. 바깥에서 뭐 하시는지 엿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서금충은 더는 달아나려 하지 않고 애원했다.

“안 되지. 아직 실컷 때리지도 못했는데!”

흑천마조가 그 옆에 나타나 이번에는 발로 뻥 찼다.

한립과 기마자가 떠드는 소리에 머리가 복잡했는데 또 처자식과 관련된 이야기라 안 들을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에 느닷없이 곡린이 나타나자 화풀이를 한 것이다.

흑천마조는 법칙의 힘을 쓰지 않고 오로지 육신의 힘만으로 곡린을 때리고 걷어찼다.

곡린은 그걸로 죽지는 않겠으나 휙휙 세월전을 가로지르면서 계속해서 커다란 구멍을 만들고 있었다.

7층이 쾅쾅 울릴 때마다 곡린의 비명소리가 함께 터져 나왔다!

한립 등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대라경 수사가 금색 딱정벌레를 두들겨 패면서 따라다니고 있었다.

곡린은 계속해서 빌어보려 했지만 채 한 마디를 마치기 전에 흑천마조의 손과 발이 날아들었다.

입을 쩍 벌린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멀찍이 피해 다녔다.

흑천마조가 아무도 떠날 수 없다고 말해놔서 너무 멀리까지는 못 가고 허둥지둥 피하는 모습이 우스워 보였다.

이때 멀리서 하얀빛이 날아들었다.

한립 일행이 6층에서 보았던 청포 중년인이 리기마를 타고 있었다.

한립, 호삼, 교삼 등은 그를 알아보고 기뻐했는데 기마자는 얼굴을 굳혔다.

“흑천 수사, 좀 봐주시지요.”

청포 중년인이 회백색 빛을 날려 맞아 나가떨어지고 있는 금색 딱정벌레를 받아주려 했다.

하지만 워낙 엄청난 충격을 받고 날아가던 터라 금색 벌레는 회색빛을 맞고 튕겨 나가 다시 다른 벽에 부딪혀 떨어졌다.

“류자재, 이 늙은이가 웬일이야? 노부의 일에 상관하겠다는 건가?”

구타를 잠시 멈춘 흑천마조가 기분이 꽤 풀렸는지 청포 중년인을 보았다.

“허허, 석 수사께서 봉인을 벗어나셨으니 축하를 드리러 오는 것이 당연하지요. 제 본명원패도 이곳에 있어서 세월신등 금제가 뚫린 김에 찾으러 온 것입니다.”

공수를 한 류자재는 오색 제단이 있던 곳을 보고 놀란 기색을 했다. 오색 제단은 진작 부서지고 잔해만 남아 있었다.

류자재는 모여 있는 이들을 살피다 기마자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탄 리기마도 본명원패를 찾을 수 없어 수사들을 살피는 중이었다.

“노부도 여기서 할 일이 있네. 뭘 찾더라도 순서는 지켜야지. 수사가 류기 그 늙다리 노조의 참시라는 걸 봐서 이따가 찾을 시간을 줄 테니까 방해하지 말라고!”

‘류기 노조의 참시…….’

이때 호삼, 교삼 등과 함께 서 있던 한립이 눈을 크게 떴다.

류자재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류기 노조가 떠오른 이유가 있었다.

두 사람은 사용하는 법칙도 똑같았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할 때는 아니라, 한립은 조용히 곁의 호삼에게 입술을 달싹였다.

호삼이 그를 향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허허, 감사합니다.”

류자재는 흑천마조에게 고개를 숙이고 옆으로 물러섰다.

“류 수사, 도와주세요…….”

이때 미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금충이었다.

그 단단한 몸이 잠깐 사이에 울퉁불퉁하게 변해 껍데기 곳곳이 터져 피가 흐르고 눈코입 등 뚫린 구멍에서는 핏물이 줄줄 새어 나와 아주 처참한 꼴이었다.

“석 수사, 대라경 최고봉의 수행으로 우리보다 실력에서 한참 앞서시면서 곡린에게 이러실 필요 있으십니까. 곡린이 세월전을 엿보던 것도 자신의 본명원패를 찾고 싶어서였을 겁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시지요.”

망설이던 류자재가 안 되겠는지 다시 공수하고 흑천마조를 설득했다.

“오래 잤더니 몸이 찌뿌둥했는데 꽤 풀리긴 했군. 데려가게. 다음번에 내가 알아서 찾을 테니까.”

흑천마조는 대충 손을 저었다.

금갑 딱정벌레가 그 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관대한 처사에 감사드립니다.”

류자재가 고개를 숙이고 회백색 빛을 날려 곡린을 데려왔다.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간 곡린은 얼굴에 멍이 가득하고 온몸이 팅팅 부어있었다.

류자재가 그대로 걸음을 돌리려다 호삼을 보더니 멈추었다.

“석 수사, 태세선존에게 잡혀 이곳에 같이 봉인되어 있던 것도 인연인데 이제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괜찮으시면 저와 천호족으로 가서 쉬다 가시지요.”

“하하, 됐네. 노부는 부인과 아들을 찾아야 해. 그들을 구출해서 가족끼리 한 번 다복하게 살아봐야지. 너희 여우굴은 분명 냄새가 진동할 텐데 거길 왜 가겠나!”

“아, 그래요? 드디어 금령부인과 공자의 행방을 찾으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소식을 전해 들으셨습니까?”

이야기가 이렇게 흐르자 기마자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오른손을 몰래 소매 속으로 감추었다.

“기마자 수사가 알려주었네. 나를 데리고 금령을 찾으러 같이 가준다고도 했어.”

흑천마조가 손을 뻗어 기마자를 가리켰다.

“저 자에게 길 안내를요? 설마 저자가 선옥의 옥주인 것을 모르십니까?”

류자재는 눈썹을 끌어올리고 짐짓 놀란 척 물었다.

“뭐라고? 기마자가 선옥의 옥주라고? 기마자, 넌 대체 누구냐!”

흑천마조는 류자재는 퍽 믿는지 기마자를 돌아보는 눈빛이 싸늘했다.

“저들의 헛소리입니다. 저는 천정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기마자가 급히 변명했다.

“뭐가 사실인지는 이걸 보시면 알 겁니다.”

류자재는 손을 들어 회백색 구슬을 떠오르게 했다.

구슬 표면에 기마자가 백골요마와 동사요마를 포섭하려는 장면이 나타났다. 게다가 그가 옥주 영패를 꺼내 보이는 것도 선명하게 보였다.

“이 자식이 감히 날 속여?”

흑천마조가 화를 내자 기마자가 금빛을 흩날려 영역을 펼쳤다. 금색 불길이 가득한 단시화경이었다.

기마자는 모두를 묶어 두고 금빛으로 변해 태세전 위로 날아올랐다.

“겨우 단시화경으로 나를 붙들어 둘 수 있을 것 같으냐!”

노호성을 터트린 흑천마조는 검은빛을 파도처럼 흘려보내 단시화경을 찢고 한 손을 하늘 위로 뻗었다.

쿠르릉.

하늘 절반을 가릴만한 검은 거대 손이 나타나 기마자를 향해 날아갔다. 기마자는 잡히기 직전 금빛을 터트려 인근을 대낮처럼 비추었다.

다음 순간, 산만한 금색 빛덩어리가 불꽃을 품고 떠올라 검은 거대 손과 충돌했다.

쿠쿠쿠!

거대 손이 금색 빛덩이에 막혀 주변으로 공간이 부서져 나갔다.

기마자는 얼굴의 일곱 구멍에서 피를 쏟으면서 급격히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두 팔로 안아 든 세월신등의 영기의 빛이 어둑해졌다.

떨어지며 중얼거린 그는 금빛을 반짝여 몸을 가두고 다른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다.

금색 빛덩이는 여전히 검은 거대 손과 교전하다가 아예 거대 손에 구멍을 뚫어버렸다.

흑천마조는 금색 빛덩이를 보고 흥분해 기마자가 달아나든 말든 그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수축한 빛덩이는 관모를 쓴 금색 신영으로 변해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위엄이 느껴졌다.

대전 잔해 뒤로 몸을 숨기고 있던 뇌옥책 등이 금색 신영을 알아보았다.

“노조!”

“그 오랜 세월 동안 이곳을 떠나지 않으시고 탑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뇌옥책을 비롯한 몇몇이 금색 신영을 향해 절을 올렸다.

“세월신등이 주인도 없이 대단한 위력을 낸다 했더니 그 안에 잔혼을 남겨두고 갔구나, 문태세!”

흑천마조는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로 차갑게 소리쳤다.

금색 신영은 흑천마조를 보면서 엄숙히 검결을 맺었다.

두 사람의 몸에서 검은빛과 금빛이 폭발해 막대한 힘에 세월전 잔해들이 날아오르는데 오행인공대진 때문인지 바닥만은 멀쩡했다.

다른 사람들은 두 사람의 기운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멀리까지 날아가 그들을 지켜보았다.

쿠콰콰콰…….

흑천마조와 태세 잔혼의 싸움에 먹구름이 몰려들어 뇌광이 번득이고 굉음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한 수사, 기마자가 세월신등을 가지고 가게 두면 안 됩니다. 쫓아야 해요.”

교삼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교삼 수사, 기마자는 대라경 수사에 머리도 좋은데 세월신등까지 얻어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일 겁니다. 우리끼리 쫓는 게 현명한 일일까요?”

한립은 바로 그러겠다고 하지 않았다.

흑천마조의 심마에서 벗어나 이전처럼 세월신등에 눈이 뒤집혀 있지 않았다.

“기마자와 원수지간이면서 그냥 보내겠다고요?”

“원한이 있다고 하나 실력의 차가 큽니다. 게다가 세월신등이 사라지고 탑의 금제까지 망가져 이 공간은 얼마 버티지 못할 거예요. 어서 떠나야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기마자는 세월신등 말고도 우리가 윤회전에서 받은 임무와 연관된 중요한 물건도 가지고 갔습니다. 윤회자의 일원으로서 도와주셔야죠.”

“곤란하게 하지 마시지요. 윤회전 임무라도 제 임무는 아니지 않습니까.”

자신은 상관없다는 한립의 태도에 교삼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제가 기억하기로 ‘금동’이란 어린 친구를 데리고 다니셨죠? 금동 수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교삼이 잠시 고민하다 전음으로 말했다.

“무슨 소립니까?”

안색이 달라진 한립은 긴장해 물었다.

“이야기가 길어요. 기마자를 잡는 건 수사의 벗에게도 중요한 일일 테니까 어서 나서주세요. 시간법칙을 익힌 기마자를 수사의 도움 없이 잡기는 힘들어요.”

교삼이 다급한 얼굴로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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