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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82화 (1,839/2,000)

2082화. 노망난 마두

*

“오랜만에 단잠을 자고 있었는데 말이야. 시끄러워서 깼단 말이지.”

다들 불안해해서 긴장된 분위기가 감도는데 흑천마조는 허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투덜댔다.

다들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 와중에 흑천마조는 신등을 향해 카학, 침을 뱉었다.

“에이, 태세 이 개 잡놈의 새끼. 날 이리 오래 가둬두고 말이야…….”

“내 아들은 어디에 있느냐! 내 아들은 어디 있냐고! 당장 말하지 않으면 네 놈을 가문 두지 않겠…….”

이어 그는 무슨 기억이 떠올랐는지 잔뜩 화가 나서 팔짱을 끼고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한립, 뇌옥책을 포함한 모두는 얼떨떨했다.

노망난 늙은이 같은 흑천마조의 행동이 그들이 상상하던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다는 마족의 모습과는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말하기 싫다 이거냐! 너 오늘 노부의 손에 잘 걸렸다!”

실컷 욕을 하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흑천마조는 다짜고짜 세월신등에 달려들어 주먹으로 쾅쾅쾅쾅 내려치기 시작했다.

불같은 분노의 표출에 대전 안이 크게 울렸다.

흑천마조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까만 연기 속에서 그의 요마 본체로 보이는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있었다.

일종의 법상으로 실체는 아닌 듯했다.

까만 연기 속 검은 그림자는 팔이 12개라도 되는 듯 세월신등을 향해 쉬지 않고 주먹을 퍼부었다.

대량의 등유가 튀어 금색 불바다를 이끌고 대전 바닥을 타고 퍼졌기에 나머지 사람들은 벽 쪽으로 미친 듯이 물러서야 했다.

쾅쾅쾅쾅쾅!

쾅쾅쾅쾅쾅쾅!

주먹질은 반각이 되도록 쉬지 않고 계속 되어도 세월신등은 부서지지 않았지만 세월전이 무너질 것 같았다.

결국 세월전 지붕이 무너져 내리고 모든 금제가 무력화되면서 대전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사방팔방으로 솟아올랐다.

뇌옥책은 오행인공대진을 버리고 기절한 도윤진인을 등에 업은 다음 소안천과 다른 통천검파 사람들을 데리고 대전을 탈출했다.

그가 멀리 달아나려는데 대전 바깥에 거대한 검은 연꽃이 금제를 이루고 피어나 주변 백리를 꽉 막아버렸다.

검은 연꽃은 층층이 쌓여 천장까지 높아져 흑천마조의 기운을 풍겼다.

쩌정!

통천검파 사람들이 모여 검진을 결합해 오색 검빛을 내뿜었지만 검은 연꽃은 경쾌하게 검진을 깨트렸다.

“시끄러워 죽겠다! 조용히 좀 하지 못하겠느냐!”

그 소리가 거슬렸는지 아직도 세월신등을 때리고 있던 흑천마조가 손을 까딱였다.

하늘에 검은 연기가 뭉쳐 만들어진 거대 손이 통천검파 사람들을 확 채서 대전 안으로 내동댕이쳤다.

“노부의 잠을 방해했으니 용서할 수 없다! 한 놈도 그냥 갈 생각 말거라!”

검은 안개가 몰려들어 굵직한 채찍으로 변해 허공을 갈기는데 벼락이 떨어진 것처럼 주변이 울렸다.

이에 눈치를 보던 다른 사람들도 세월전 상공에서 대기했다.

“교삼 수사, 흑천마조의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듯합니다…….”

한립은 참다못해 전음을 보냈다.

“그게…….”

교삼도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때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고래처럼 대전 안에 가득 찼던 검은 안개들을 흑천마조가 흡수해 거두었다.

“너희가 한번 말해봐라. 이 쪼그만 게 왜 안 깨지는 것 같으냐?”

고개를 갸웃거리다 세월신등을 노려보던 흑천마조는 그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시선을 오행인공대진으로 돌렸다.

“거 참 재밌는 게 여기도 있었어. 가지고 놀아 볼까나, 크크.”

흑천마조는 말을 하다말고 훌쩍 진법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건 어떻게 하는 거지? 아아, 생각났다.”

그는 다섯 줄기의 선령력 기둥을 응결해 금색 장검과 노란 인장 등 다섯 개의 선기에 선령력을 불어넣었다.

우웅.

순식간에 품계 높은 선기들을 연화시킨 그는 주문을 외워 오행인공대진을 발동해 오색 빛구슬을 응결하기 시작했다.

“이건…….”

“설마…….”

한립은 미간을 좁히고 교삼은 안색이 달라졌다.

기마자도 생각이 많은 얼굴로 눈을 굴리고 있었다.

누가 쳐다보든 말든 흑천마조는 수결을 맺은 양손에서 빛을 뿜어 오행인공대진에 불어넣었고, 오색 빛구슬이 자극을 받아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힘을 담은 빛의 장막을 형성했다.

흑천마두는 신나는 얼굴로 ‘그렇지!’하고 좋아하다 몸이 퍽, 폭발해 검은 가루로 변했다.

입을 쩍 벌린 몇몇 사람들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무슨일인지 이해하려 노력했다.

“저 노마두……. 오행인공대진을 갖고 놀다 죽은 겁니까?”

호삼이 중얼거렸다.

“죽지 않았습니다. 정신이 나간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요.”

한립은 못을 박듯 결론을 내렸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속에서 검은 연기가 뭉쳐 다시 흑천마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하하! 으, 시원하다! 오랫동안 씻지를 못했더니 찌뿌둥했는데. 이제야…….”

노마두는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리고 오색 빛구슬을 또 한 번 뭉쳐 소멸의 힘으로 육신을 산산조각 냈다.

흩어진 검은 가루 속에서 연기가 뭉쳐 흑천마조로 변신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깨끗해졌어.”

아까 못한 말을 이어서 한 그는 곧바로 또 몸을 터트렸다.

“정신이 나간 게 확실합니다.”

호삼이 입을 다물고 전음으로 교삼과 한립에게 말했다.

오행인공대진이 웅웅 발동할 때마다 흑천마조는 가루로 변했다가 다시 합쳐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신형은 단단해지는데 오행인공대진이 힘을 다해 붕괴되고 있었다.

흑천마조는 흥이 올라 속에서 헤엄을 치는 척하다가 터지거나 개헤엄도 쳐보는 등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자폭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오행인공대진이 힘을 잃어가자 노마두도 질린 듯했다.

“이게 다라고?”

중얼거리던 그는 양손을 하늘 높이 뻗어 진법의 다섯 선기에 선령력을 꿀렁꿀렁 불어넣었다.

찬란한 빛을 머금은 선기들이 오색 빛줄기를 빛구슬 속으로 불어넣어 이전보다 훨씬 강한 힘으로 흑천마조의 몸을 가루로 만들었다.

동시에 오색 보호막에서 주먹 크기의 빛구슬들이 날아올라 사방팔방으로 날아들었다.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소멸의 기운을 품은 구슬들이었다.

지켜보던 이들이 감히 맞서지 않고 피하는 동안 세월전은 네 벽마저 구멍이 숭숭 뚫려 흔들거리고 있었다.

쉭!

세월전에서 최대한 물러나 뒤로 이동하고 있던 한립이 막 벽을 통과한 오색 빛구슬을 피했을 때, 기마자가 그의 측면에서 나타나 검은 도끼를 들고 연달아 열댓 번을 찍었다.

검은 도끼 허상들이 날아들자 한립은 어쩔 수 없이 진언보륜을 역전해 위쪽으로 몰아갔고, 그 결과 위쪽에 있던 오색 빛기둥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위기의 순간 <천살진옥공>을 극성으로 펼친 한립은 주먹에 금빛을 실어 오색 빛구슬을 향해 연타를 날렸다.

금빛 파문이 뭉쳐진 주먹 허상들과 오색 구슬이 만나 시간법칙의 힘으로 아주 찰나의 시간을 끌어주었다.

한립은 또 다른 손으로 수결을 맺어 청죽봉운검 36자루를 합일한 장검을 손에 쥐고 휘두를 새도 없이 검신에 손바닥을 대고 앞을 막았다.

검신에서 금색 뇌전이 치솟아 거대한 뇌전 손으로 변해 오색 빛구슬을 감싸고 있었다.

파치치칙!

뇌전이 충격이 사라질 때마다 금색 장검에서 새로운 뇌전을 보충했다. 교삼과 호삼이 그의 옆으로 날아와 기마자가 다시 손을 쓰는 것에 대비했다.

기습한 기마자는 물러나 폐허 바깥의 바위 위에 내려섰다.

바위 뒤쪽에 몸을 숨기고 있던 웅산은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기마자…….”

오색 빛구슬들이 차차 사라지고 한립이 검을 든 채 차가운 눈으로 노려봤다.

그때 예상치 못하게 누군가 손을 뻗어 검을 쥔 한립의 팔을 붙들었다.

상대는 흑천마조였다!

“어떻게…….”

기척은커녕 어떤 파동도 느끼지 못한 한립은 고개를 돌려 흑천마조를 보고 머리털이 쭈뼛 곤두섰다.

오행인공대진을 이용해 여러 번 몸을 씻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지금 한결 깔끔하고 정신도 맑아 보였다.

“녀석, 대오행환세결을 쓸 줄 아는구나? 정말 오랜만이야. 자자, 노부와 몇 수 겨뤄보자꾸나…….”

빙긋 웃고 있는 흑천마조는 전혀 농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런 말씀 거둬주시지요, 선배님. 저같이 까마득한 후배가 어찌 상대가 되겠는지요.”

손을 빼내려던 한립은 뜻대로 되지 않자 구유마동을 발동해 상대의 허점을 알아보고자 했다.

그런데 흑천마조는 그것마저 한눈에 알아보았다.

“하하, 우리 성족의 영안 비술까지? 이런 녀석은 흔치 않지, 흔치 않아.”

흑천마조가 오랜만에 정상인처럼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를 들킨 한립은 긴장해 상대를 살폈다.

“그래 누구에게 전수를 받은 것이냐? <천살진옥공> 같은 성족 고계 공법까지 익히다니.”

“선배님께서 이리 혜안을 지니셨으니 제가 속일 수가 없군요. 제 스승 되시는 미라노조에 대해 혹시 들어보셨을지요?”

흑천마조가 묻는 말에 기함한 한립은 그가 자신의 다른 비밀들을 더 나불거리기 전에 급히 말했다.

“그렇지, <대오행환세결>을 주 수련 공법으로 익혔으니 미라노조 그 뚱땡이 승려의 제자일 줄 알았어! 하하, 내 짐작이 맞았구나…….”

흑천마조는 자신이 낸 수수께끼의 정답을 맞힌 것이 퍽 즐거워 보였다.

“선배님께서 견문까지 넓으시니 정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질문에 답을 드렸으니 이제 그만 제 팔을 놓아 주시지요?”

한립은 상대가 기분이 좋은 것을 보고 얼른 자신을 풀어줄 것을 요청했다. 그의 연이은 칭찬에 흑천마조의 기분은 더 좋아지고 있었다.

“네 녀석은 생긴 것은 그저 그런데 눈빛이 괜찮아. 내가 아는 녀석들 중에 눈빛만은 네게 비할 자가 몇 안 되는구나! 아, 뭐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어서 노부에게 가르침을 청하거라! 오늘 기분도 좋겠다, 원래 쉽게 이런 거 해주는 사람이 아닌데 네게 몇 수 지도를 해주마!”

한립의 팔을 놓아준 흑천마조는 뽐내듯 말했다.

“제가 어찌 선배님을 귀찮게 해드릴 수 있겠습니까. 물을 것은 없습니다.”

한립은 팔을 움직여보고는 상대의 의중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질문할 수 없어 이렇게 답했다.

“그건 안 된다! 노부가 어떤 사람인데 한 번 내뱉은 말을 거두란 것이냐? 내가 질문하라고 했으면 넌 무조건 질문을 해야 해!”

그 소릴 들은 흑천마조는 얼굴을 굳히고 화를 냈다.

그들 옆에서 두세 장 거리에 선 교삼과 호삼은 어쩔 줄 몰라하며 다가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고 어색한 얼굴로 서 있었다. 기마자 역시 뜻밖의 상황에 당황해 침음하다 정체 모를 미소를 지었다.

뇌옥책 무리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달아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 몰래 도윤진인에게 단약이나 먹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묻고 싶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이곳에서 서금선을 보신 적이 있는지요?”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한립이 공손히 물었다.

7층에서 별안간 실종된 곡린이 줄곧 마음에 걸렸다.

이전에 약속한 것이 있기는 했지만 이곳 상황이 시시각각 달라져 상황에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봤지.”

“어디서 보셨습니까?”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잊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 맷집이 좋아서 심심할 때 두들겨 패기 좋았는데 본 적이 오래되었어.”

흑천마조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곡린이 7층에 올라와 미친 늙은이에게 두들겨 맞았었다는 이야기가 이걸 뜻하는 거였다.

“선배님께서는 세월전 제단에 갇혀 계셨던 것이 아닌지요? 서금선을 어찌 만나실 수 있었던 겁니까?”

“갇혀 있었다고? 내가? 거기가 조용해서 잠이나 자려고 누워있었던 게지 내가 나오고 싶으면 누가 노부를 막을 수 있단 말이냐?”

“그랬군요. 제 오해였습니다.”

불만스럽게 답하는 흑천노조를 향해 한립은 서둘러 말했다.

처음 제단에 구멍이 뚫렸을 때 흑천노조를 묶어둔 금제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금제가 이미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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