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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80화 (1,837/2,000)

2080화. 각성

*

그 시각, 오색 보호막 안으로 파고든 한립은 노란 옥기둥을 향해 금색 거검을 횡으로 날렸다.

“저 죽일 놈이!”

노호성을 터트린 도윤진인이 금색 부적을 가리켰다.

부적의 신등 도안이 번쩍이고 굵직한 금빛이 빠져나왔다.

금색 부적의 신등 도안이 방출하던 시간법칙 파동이 훨씬 약해져 있었다.

굵직한 금빛을 흡수한 세월신등은 불길을 활활 일으켜 두 줄기의 화염을 쏘아 올렸다.

한 줄기는 시간도문이 가득한 화룡이 되어 불가사의한 속도로 금색 거검과 노란 옥기둥 사이를 막아섰다.

두 종류의 강력한 시간법칙의 힘이 충돌해 허공이 웅웅 진동했다.

두 개의 발톱으로 금색 거검을 막은 화룡이 입에서 뜨거운 불길을 뿜어 놀랍게도 거검을 빠르게 녹이는 중이었다.

신등에서 쏘아져 나간 다른 화염 줄기는 오색 제단 앞에서 불의 장막으로 퍼져 제단을 지켰다.

그걸 보고 눈썹을 꿈틀한 한립이 제 자리에서 멈춰 섰다.

한 시름을 놓은 도윤진인은 한립을 향해 살기등등하게 외쳤다.

“감히 네깟 놈이! 죽어라!”

도윤진인의 손에서 하얀빛이 날아가 거의 공간을 넘다시피 해서 한립 앞에 이르렀다.

몸에 수정빛을 반짝여 진극막을 일으킨 한립이 양팔을 가슴 앞에서 교차하고 청죽봉운검 9자루를 불러내 검기가 교차하는 금색 검막을 만들어냈다.

세월신등 근처라 시간영역과 진언보륜 등이 먹히지 않을 테니 일단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더 많은 비검들을 불러내기 전 하얀빛이 도달해 펑 하고 금색 검막과 부딪쳤다.

금색 검막을 깨버린 하얀빛은 전혀 줄어들지 않은 속도로 한립의 양팔에 떨어졌다.

쿵!

바람에 흩날리는 풀잎처럼 떠오른 한립이 뒤쪽의 오색 보호막에 등을 부딪히고서야 멈추었다.

뼈가 부르진 듯 양팔에 극통을 느낀 그가 급히 <천살진옥공>을 발동해 고통을 줄이고 있는데 하얀빛이 거머리처럼 따라붙었다.

흠칫 놀란 한립은 양발을 교차하며 옆으로 피하는 동시에 소매 속에서 녹색 광채를 뿜어 하얀빛을 감쌌다.

녹색 광채가 포위하자 속도도 확연히 줄어들고 어둑해진 하얀빛은 돌연 강철바늘과 같은 빛을 방출하며 녹색 광채를 찢어내고 한립을 기습했다.

동공을 수축한 한립은 지금이 그가 기다리던 때라고 생각했다!

크게 기합을 넣은 그의 몸에서 뇌전빛과 함께 36자루 청죽봉운검들이 날아가 하얀빛을 갈랐다.

동시에 금빛에 휩싸인 그의 피부에서 금색 털들이 쑥쑥 자라나 순식간에 금색 거원으로 변할 수 있었다.

채채채채챙.

금속성의 타격음이 터져 나오고 하얀빛을 가른 청죽봉운검들이 웅웅 떨었다.

거원이 크게 포효하며 주먹을 불끈 쥐고 태양과 같은 하얀 별빛을 일으켰다.

쿠쿵!

커다란 주먹까지 맞은 하얀 빛이 드디어 물러나고 금색 거원도 뒤쪽으로 몸이 기울어졌다.

주먹에서 살점과 피가 날리는 게 이번 공격으로 살이 터진 듯했다.

이제야 하얀빛의 정체가 단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검신이 두껍고 칼날이 뭉뚝한 이상한 단검은 오행인공대진 안의 선기들과 맞먹는 영력 파동을 발산하고 있었다.

한립은 머리를 굴리면서 선령력을 미친 듯이 운용해 두 손을 회복했다.

그가 가벼운 찰과상만 입고 자신의 공격을 받아낸 것을 본 도윤진인은 놀란 나머지 하얀 단검을 조종해 그에게 중상을 입히거나 격퇴하려 했다.

이때 쉭! 쉭! 두 번의 파공음이 들리고 한립이 갈라놓은 보호막 틈으로 교삼과 호삼이 들어와 오색 제단으로 몸을 날렸다.

도윤진인은 이제 정신이 없어 선령력을 아낄 생각도 하지 못하고 팔을 저었다.

그의 몸에서 빠져나온 금빛 덩어리가 금색 영역을 형성하고 신속하게 한립 무리를 향해 접근했다.

광대한 금빛 법칙 속에서 한립 무리의 영기의 빛이 흩어지려 했다.

갑자기 멈춰선 호삼이 천호화혈도를 꺼내 들고 전신에서 회백색 영역을 퍼트렸다.

츠츳!

그의 조종에 막 형성된 회백색 영역이 주먹 크기의 빛구슬로 수축해 응집된 밀도 높은 법칙의 힘을 지니고 천호화혈도 안으로 융합되었다.

천호화혈도 손잡이의 머리 둘 달린 여우 조각이 네 개의 핏빛 눈을 뜨고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나듯 하늘을 찌를 듯한 혈홍색 광채를 방출했다.

석경후의 신영이 핏빛 속에 나타나 연달아 수결을 맺으며 수많은 핏빛 주술문자를 장도 속에서 뽑아냈다.

눈동자 가득 천호화혈도의 빛을 담은 호삼이 괴성을 지르며 장도를 휘둘렀다!

핏빛의 거대한 파도가 도윤진인의 영역 못지않은 법칙 파동을 내뿜고 있었다.

쿠콰쾅!

핏빛 파랑과 금색 영역이 맞부딪친 순간 석경후 신영의 거대해지더니 양손에서 강렬한 핏빛을 터트렸다.

금색 영역은 그렇게 핏빛 파랑에 가로막혀 더는 퍼지지 못했다.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호삼은 몸의 회백색 빛마저 사라져 선령력 소모가 극심해 보였다.

한쪽 무릎을 땅에 댄 그는 장도를 쥔 두 팔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럴 수가!”

도윤진인이 믿기지 않는 장면에 손을 뻗어 날이 뾰족한 바늘 같은 하얀 검을 분출했다.

검은 언덕 크기의 거검으로 변해 세 사람을 횡으로 가르려 했다.

그때 이미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 한립이 번뜩 하얀 거검 앞에 나타나 수결을 맺었다.

금색 화룡과 교전하던 금색 거검이 펑, 퍼져 태양과 같은 폭발적인 빛으로 화룡을 날려버리고 그 안에 들어있던 이백여 가닥의 수정실들이 소리 없이 사라져 한립 옆으로 몰려들었다.

휘리릭 뭉쳐친 수정실들은 다시 금색 거검으로 변해 하얀 거검 앞을 막아섰다.

금색과 하얀색 거검의 격돌에 공간이 무너질 것처럼 울렸다.

하얀 거검을 막기는 했는데 한립도 휙 날아가 선혈을 토해냈다.

시간법칙의 힘이 세월신등에 의해 억눌린 상태에서 대라경 존재의 공격을 멀쩡히 받아낼 도리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도윤진인은 놀라고 있었다.

교삼은 그들의 싸움을 신경 쓰지 않고 번개처럼 오색 제단으로 이동해 제단에 오르기 직전이었다.

그 앞에는 세월신등의 화염이 형성한 불의 장막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주문을 외운 그녀의 손짓에 암홍색 수정실들이 뭉쳐 주변 영역의 빛을 짙게 만들어갔다.

암홍색 수정실들이 많아질수록 교삼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몸의 기운은 텅 비어갔다.

결연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수결을 맺는 속도를 한층 높였다.

쿠쿠쿵.

빽빽하게 밀집한 암홍색 수정실들이 집채만 한 고리 허상을 만들어내자 표면의 육각형 매화꽃 문양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암홍색 고리 가운데에서 새까만 빛이 회오리쳐 괴이한 힘에 공간이 요동쳤다.

날카롭게 소리를 지른 교삼이 양손을 앞으로 뻗자 암홍색 고리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금색 불의 장벽으로 돌진했다.

치치치칙!

지글지글 끓던 금색 화염이 고리의 검은 기운에 꺼져가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도윤진인이 더는 한립을 상대하지 않고 연달아 수결을 맺어 금색 불의 장막에 법결을 던져넣었다.

바깥의 교삼은 기운이 쇠약해져 있는데도 입에서 정혈을 뿜어 암홍색 고리에 힘을 싣고 있었다.

고리의 칠흑 같은 힘에 결국 잠식당한 불의 장막이 훅, 꺼져 주변으로 잔 불씨만 날렸다.

“윤회법칙!”

도윤진인은 놀라 눈이 찢어질 것 같았다.

겨우 태을경 수행을 지닌 수사들이 한 명은 시간법칙을 나머지는 윤회법칙을 익혀 대라경 수사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할지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광석화처럼 일어난 일에 옥기둥에 자리를 잡고 있던 뇌옥책 등은 나설 기회도 없었다.

“한 수사, 지금이에요!”

교삼이 크게 소리쳤다.

하얀 종잇장처럼 얼굴이 질려버린 그녀가 주저앉으니 암홍색 고리의 회전이 느려졌다.

그녀가 말을 꺼내기 전에 한립의 신형이 유성처럼 꺼져가는 불의 장막을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제단이 아니라 그 위의 세월신등을 향해 달려드는 중이었다.

“뭐 하는 거예요!”

교삼은 놀라 소리쳤으나 한립은 흐릿한 눈으로 오로지 신등만 보고 있었다.

마치 머릿속에 신등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았다.

“정녕 죽고 싶더냐!”

도윤진인이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세월신등을 가리키며 다른 손은 이로 물어뜯어 피를 냈다.

격렬하게 웅웅 떨린 세월신등의 등유가 화르르 끓어올라 금색 불길을 담은 기름 방울을 한립을 향해 날렸다.

한립은 그마저도 알아채지 못하고 욕망에 이성을 잃고 대오행환세결을 극성으로 발동했다.

진언보륜을 비롯한 시간법칙 도구들이 차례로 떠올라 원형 보호막을 형성하고 금색 불길에 저항했다.

불길에 금색 보호막이 점점 얇아지는 데도 이를 악문 한립은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전에 세월신등을 향해 앞뒤를 재지 않고 달려들던 기마자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몇 초 후 시간법칙 기구들이 버티지 못하고 보호막이 타버리면서 한립은 맨 몸으로 불길 속에서 타올랐다.

불지옥에 떨어진 것 같은 고통에 인상을 찌푸린 한립은 세월신등을 향해 간절하게 손을 뻗었다.

신등의 불길이 응결해 교룡처럼 그의 팔을 파고 돌면서 몸 절반을 지글지글 태우고 있었다.

장포와 피부 근육이 녹아내리는 느낌이 생생하게 나고 뼈마저도 불길에 의해 새까맣게 변하고 있었다.

이 극한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을 빼앗겼다.

“조금만 더 참으면 돼……. 저것만 손에 넣으면 돼…….”

“어서! 어서! 조금만 더!”

“세월신등을 손에 넣어……. 세월신등을…….”

눈을 번득인 한립이 중얼거렸다.

“잡았다…….”

<천살진옥공>이 스스로 발동해 수많은 진령혈맥이 체내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진령혈맥을 격발해 혈맥 발작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고민 따위는 그의 머릿속에 없었다.

지금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오직 단 한 가지, 세월신등을 손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안 되겠는지 도윤진인이 불같이 화난 얼굴로 펄럭이며 신등 방향으로 달려갔다.

교삼은 이때 어디서 힘이 났는지 다시 수결을 맺어 암홍색 고리가 제단을 향해 쇄도하게 했다.

“안 돼!”

도윤진인이 기겁해 몸을 돌리려 했으나 늦고 말았다.

제단의 오색 빛은 암홍색 고리에 쉽게 뚫렸고 쿠쿵, 하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구멍이 지하 깊은 곳까지 뚫려 버렸다.

그 순간 한립의 연신술이 스스로 발동되어 마음속의 충동을 밀어내고 이성을 찾게 했다.

“한 수사!”

누군가 사납게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는 뇌옥책이 목이 터져라 그를 질책하는 것이 보였다.

“금원선역의 수많은 창생의 생명을 뭘로 보는 겁니까!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마두를 풀어주려 하다니! 제단이 파괴된 마당에 신등까지 취하면 마두를 더는 막을 수 없을 겁니다!”

뭐? 마두? 사리사욕? 창생?

단어들이 머리에 콱콱 박힐 때마다 한립은 조금씩 자신이 벌인 짓을 깨닫고 가슴이 철렁했다.

급히 불길에 녹아 뼈가 드러난 손을 거두고 물러나려는데 신등의 화염은 그를 놓아주지 않고 쫓아왔다.

좋은 생각이 든 한립은 허리춤의 비취색 호리병박을 풀어 밑바닥을 탁, 쳐서 소용돌이를 방출해 팔뚝의 불길들을 가둬버렸다.

불길을 머금은 호리병이 붉게 달아올라 오래도록 원래 색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호리병을 허리춤에 다시 묶어둔 그는 새까맣게 탄 팔을 들어 올리고 방금 벌어진 일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식은땀에 남은 의복이 다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어떻게 된 거지? 누군가 날 조종했단 말인가?’

아니,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세월탑에 들어온 후로 걸리는 일들이 많았다.

누군가 심어 놓은 목표가 아닌 자신이 마음 깊이 품은 작은 욕망이 티 나지 않게 자라나 도저히 스스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조차 없었다.

최종 목표가 그가 진심으로 원하는 세월신등이었기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제단을 부수고 보물을 취하려 한 것이다.

머리가 맑아진 한립은 제단에 뚫린 구멍을 응시했다.

그 안에서 검은 연기가 꿈틀꿈틀 피어올라 흩어지지도 않고 대전 안을 잠식하고 있었다.

동을신목 허상을 불러내 팔뚝에 뿌리내리게 하니 살점이 빠르게 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외상은 금방 처치했으나 내상은 치료하는데 오랜시간이 걸릴 터였다.

공중에 몸을 띄운 그는 구유마동을 발동한 보랏빛 눈으로 제단의 구멍을 자세히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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