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9화. 돌발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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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하던 금색 시간영역이 더욱 견고하고 두꺼워졌다.
동시에 한립은 등 뒤로 진언보륜을 불러내 수많은 금색 파문들을 영역과 일체화시켰다.
쿠르릉!
오색 빛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시간영역의 범위 안에서 잠시 고요히 멈추었다.
시간영역과 진언보륜이 부들부들 떨리는데 뒤이어 도착한 오색 빛의 파도들이 차례로 밀려들었다.
통천검진 안에서 겪었던 공격보다 위력이 세서 곧 진언보륜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한립은 침착하게 양손으로 수결의 모양을 바꾸었다.
단시횃불, 동을신목, 광음정병, 환진사루 네 개의 법칙 보물들이 더 떠올라 시간영역과 융화되었다.
무너지려던 시간영역이 단단하게 변해 계속 늘어나는 오색 빛을 철저히 가두었다.
그때 청죽봉운검들이 펼친 검진이 작동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검기로 영역 안의 오색 빛들을 갈라내고 현천호리병이 녹색 광채를 뿜어 오색 빛들을 빨아들였다.
별안간 시간영역 안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뒤쪽에서 오색 빛이 여전히 넘실넘실 다가왔지만 시간영역에 갇힌 뒤 검기나 녹색 광채에 처리 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대전 안의 다른 이들은 상황이 달랐다.
입구에 주변에 있던 남 씨 오누이 중 남안이 피범벅이 된 몸으로 왼쪽 팔과 다리를 포함한 몸 절반이 형체도 없이 사라져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부상을 돌보지 않고 오른손에 쥔 옥으로 만든 남색 꽃을 내려다보며 흐느꼈다.
종적을 감춘 남원자가 있던 곳에는 망가진 선기 두 개만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요마들이 펼친 사상역마진이 붕괴된 자리에도 동사요마와 혈수요마가 보이지 않고 마기 잔해들만 수북했다.
중상을 입은 응비요마, 백골요마, 귀배요마는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그들 옆에 아직 밝은 빛을 발하던 금색 영역이 사라지고 기마자와 웅산이 의복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오색 보호막 안 도윤진인과 뇌옥책 등은 기운이 퍽 줄어들어 기력소모가 대단해 보였다.
한립은 오색 빛이 그친 것을 확인하고 진언보륜 등 시간보물들을 거두었고, 교삼과 호삼이 후들거리는 몸을 가누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도윤진인은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살아남은 것이 의외였는지 살의가 짙어진 눈으로 다시 수결을 맺었다.
“한 수사, 류 수사 이런 공격을 다시 받았다가는 전부 이 자리에서 죽고 말 겁니다. 제게 형세를 뒤집을 방법이 하나 있는데 두 분의 도움이 필요해요!”
교삼은 도윤진인이 두 번째 공격을 가하려 하자 얼른 한립과 호삼에게 전음으로 도움을 청했다.
“제단 아래 마두를 풀어 주자는 겁니까?”
눈을 빛낸 한립이 그녀의 생각을 유추했다.
“뭐라고요? 도조에 가까운 존재에다 마족이라던데, 마두를 풀어주어 어쩌자는 겁니까?”
호삼이 놀라 전음으로 소리를 높였다.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게다가 상대가 우리를 공격하지 않게 할 자신이 7할은 됩니다.”
교삼이 빠르게 말했다.
한립은 그녀의 제안에 마음이 끌렸다.
왠지 모르게 마두를 풀어주는 것이 좋겠다는 예감이 들었고, 사실 여기 온 순간부터 자신도 비슷한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어차피 다른 방법도 없었으니 말이다.
이번 공격은 간신히 이겨냈다지만 상고시대 10대 진법 중에 하나라는 오행인공대진이라면 다른 공격 수법이 더 있을 게 분명했다.
“한 형의 의견은 어떠십니까?”
호삼은 시선을 한립에게로 돌렸다.
“흑천마신을 풀어주는 건 위험이 따르는 일이나 교삼 수사에게 상대를 견제할 방법이 있다면 곤경에서 빠르게 벗어날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묘한 조급함 속에 한립은 생각할 것도 없이 답하고 고개를 저어 불안함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라 생각됩니다. 뇌옥책의 말대로면 흑천마신의 실력은 여기 있는 누구보다 강할 텐데 무턱대고 풀어주었다가 뒷감당을 어찌하려고요? 그보다는 오행인공대진을 깨고 도윤진인 무리와 교섭하는 것이 안정적인 해결책일 겁니다.”
호삼은 이상하다는 듯 그를 보았다.
한립이 교삼의 제안에 동의할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류 수사, 제게 믿음이 그리 없으신가요? 그렇다면 일단 오행인공대진을 상대해 보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차선책으로 흑천마신을 풀어주죠.”
미간을 좁힌 교삼이 기분이 상한 듯 말했다.
“그게 좋겠습니다.”
호삼이 잠시 고민을 하다 동의했다.
“오행인공대진을 파훼하든 흑천마신을 풀어주든 우선 저 보호막을 깨트려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겁니다.”
“그 점은 안심하세요, 한 수사. 황천후토인을 손에 넣을 때 암암리에 손을 써두어서 술법을 펼치면 5초 정도는 황천후토인의 법칙의 힘을 흩어버릴 수 있어요. 오행인공대진은 다섯 개의 4품 선기가 그 근간이 되니 그중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분명 오색 보호막에도 틈이 생길 거예요.”
한립의 말에 눈을 반짝인 교삼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한립과 호삼의 머리에 울렸다.
한립은 다른 이유로 멈칫해 보호막 뒤의 선기들을 보았다.
위력이 대단하기에 3품 선기인줄 알았더니 4품 선기들이었다.
윤회전에 반쯤 발을 걸치고는 있지만 홀로 수행을 하며 살아온 터라 견문에서는 거대 세력에서 배양한 교삼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무슨 문제라도…….”
교삼이 그의 표정 변화를 감지하고 물었다.
“아닙니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움직이지요.”
한립이 고개를 젓자 교삼은 일행에게 간략히 전술에 대해 상의했다.
쿵.
한립의 시간영역이 갑자기 밝은 빛을 발하면서 대전 전체를 감싸고 그들 셋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제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서 도윤진인이 수결을 맺은 손으로 오색 원반을 가리켜 빛을 일으켰을 때 움직일 수 있었다.
“제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구나!”
그들을 비웃은 도윤진인은 수결을 맺은 손을 움직여 오색 보호막에서 밝은 빛을 뿜었다.
도윤진인도 한립의 시간영역 내에 있었으나 움직임이 전혀 느려지지 않았고 오색 보호막의 빛의 파동 역시 그대로였다.
그걸 본 한립은 깜짝 놀랐다.
쿠릉.
또다시 오색 빛구슬들이 튀어나와 한립 일행을 향해 날아들었다.
도윤진인이 술법을 서둘러서 이전보다 오색 빛구슬의 수는 적었고 보호막을 떠나서 일정 거리 동안은 속도가 그대로 유지되다 10배로 느려졌다.
탄성을 내뱉은 한립은 도윤진인 옆 세월신등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세월신등 주변으로 일정 거리 내에서는 자신의 시간영역이 통하지 않는 듯했다.
생각보다 더 현묘한 세월신등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다른 신통은 몰라도 신등이 품은 시간법칙의 힘으로 적잖은 시간법칙 정사를 제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 경험을 토대로 예상해 보면 천 가닥도 가능할 듯싶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한립은 세월신등을 꼭 차지해야겠다는 강렬한 욕망이 생겼다.
불같은 욕망에 흠칫 놀란 한립은 마음을 억눌렀다.
목숨이 위험한 판에 보물에 욕심을 내다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됐다.
마음속에서 정체 모를 충동이 계속 일었으나 그것의 이유를 파악할 시간이 없었다.
오색 빛구슬들의 공격을 받은 한립은 멈추지도 다른 방어막을 펼치지도 않고 손을 들어 통천검진 진법도를 불러냈다.
이때 교삼, 호삼 두 사람은 지체하지 않고 멈춰서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원래 그들은 도윤진인의 시선을 끌려고 같이 움직인 것뿐이고, 오행인공대진은 한립이 뚫을 예정이라 계획대로 한 것이었다.
게다가 오색 빛구슬의 수량이 적어졌다고 하나 그들이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통천진법 진법도를 본 도윤진인이 안색이 달라져 서둘러 수결을 맺었다.
오색 보호막이 반짝인 뒤 한립을 향해 날아들던 빛구슬들이 전력을 다해 통천검진을 피했다.
한립은 자신의 예상대로 된 것에 안심했다.
도윤진인의 성격상 통천검파의 중요한 보물인 진법도를 그 같은 태을경 수사를 죽이기 위해 훼손하지 않을 거라 짐작했던 게 맞았다.
금빛을 반짝이고 속도를 배로 높인 그는 오색 빛구슬 틈을 지나 보호막 앞에 도착해 진법도를 거두었다.
한립의 두 손에서 뿜어져 나간 이백여 개의 수정실이 뭉치자 주위의 시간영역이 미친 듯이 금빛을 뿜었다.
스릉!
한립의 양손 사이에 열장 크기의 금색 거검이 만들어졌다!
금빛 화염을 일렁이는 거검은 눈이 멀 것 같은 광채를 뿜고 있었다.
한립의 손에 들린 거검이 엄청난 기세로 노란 옥기둥 인근의 오색 보호막을 향해 내리쳤다.
도윤진인은 거검의 위력에 눈빛이 신중해 졌다가 금방 조소하며 손을 움직였다.
노란 옥기둥에 앉은 황안 노인이 빠르게 수결을 맺어 황천후토인에서 굵직한 노란빛을 뿜게 했다.
팟!
바로 그 순간, 뒤쪽으로 물러나던 교삼이 우뚝 멈춰 재빨리 수결을 맺고 암홍색 빛을 방출했다.
노란 옥기둥 위 황천후토인 표면에 돌연 붉은 빛이 돌더니 인장에서 보호막으로 흘러들던 빛이 어둑해졌다.
놀란 황안 노인이 황천후토인을 발동하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고, 오색 보호막의 빛이 암담해지며 떠오르던 오색 빛구슬들도 알갱이로 흩어졌다.
황안 노인과 도윤진인이 대책을 세우기 전에 한립의 금색 거검이 보호막의 가장 얇은 구역을 강타했다.
슥!
오색 보호막이 기다랗게 갈라진 것을 본 교삼이 멀리서 희색을 드러냈다.
‘됐어!’
그녀는 빠르게 주문을 외며 자신의 영역을 방출해 대전을 뒤덮고 암홍색 빛줄기로 변해 보호막의 틈을 향해 몸을 날렸다.
온 힘을 다해 천호화혈도를 날려버린 호삼도 회백색 빛줄기로 변해 검신에 착 달라붙었다.
허공에 기다란 균열을 만들면서 날아가는 천호화혈도는 교삼보다 속도가 빨랐다.
기마자, 웅산 그리고 요마 셋이 그들의 행동에 움찔했다.
“형님 저들이 오색 보호막을 갈랐으니 오행인공대진을 파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우리도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귀배요마가 눈을 크게 뜨고 응비요마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니다 인족은 믿을 수가 없으니 저들끼리 싸우다 양패구상하는 게 가장 나아. 우리는 저들이 대진을 막는 동안 이곳을 떠나는 게 상책이다.”
“허나…….”
응비의 말에 귀배요마가 망설였다.
“형님 말씀이 옳습니다. 이런 위험한 곳은 일찍 뜨는 게 오래 사는 길이지요! 기마자의 헛소리를 믿고 여기까지 와서 괜히 셋째와 넷째만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닙니까!”
백골요마는 후회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형님들. 어서 금제에 허점이 없는지 찾아봅시다!”
귀배요마도 동의했다.
“이렇게 가 버린다고? 아무 데도 가지 못하니 얌전히 있거라!”
요마들이 움직이려는데 귓가에 얼음장 같은 소리가 꽂혔다. 목소리와 함께 실체화된 금색 영역이 그들을 감쌌다.
영역 허공에 뜬 건 가소롭다는 표정의 기마자였다.
“기마자, 이게 무슨 짓이냐!”
응비요마가 검은 기운을 일으켜 저항했으나 금색 영역 안에서 움직임이 열 배는 느려져서 뭘 해도 소용이 없었다.
기마자는 응비요마의 질문에 웃음으로 답하고 수결을 맺은 손을 펼쳤다.
영역의 금빛이 꿀렁이고 요마들 위로 거목 크기의 금색 사내 허상이 떠올랐다.
하반신은 용이고 상반신은 덥수룩하게 수염과 가슴털이 자란 중년 거한은 불부채를 들고 위엄있는 표정을 지었다.
중년 거한 허상이 요마들을 향해 커다란 손을 뻗었다.
쿵.
거대한 압력에 요마들은 움직이기는커녕 찍! 소리도 하지 못했다.
“여기까지 너희들을 참아주며 데려온 것은 한 데 모아 제거를 하려던 것이었다.”
흐흐 웃음을 흘린 기마자가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핏빛 용이 새겨진 지팡이를 불러냈다.
그중 일곱 개의 용머리만 강한 핏빛을 발하고 나머지 두 개는 어둑했다.
핏빛 지팡이의 등장에 갑자기 음산한 바람이 불고 귀곡성이 끊이지 않았다.
기마자는 주문을 외며 수결을 맺어 지팡이에서 뿜은 핏빛으로 요마들을 감쌌다.
스스스.
핏빛에 휩싸인 세 요마의 몸이 급속도로 말라비틀어진 다음 지팡이의 어둡던 용머리 두 개가 밝은 빛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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