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7화. 도윤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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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한립은 자리를 떠나 호삼에게 다가섰다.
“도병의 금빛이 어찌나 이상한지 이 쪼그만 상처가 낫지도 않고 어깨는 점점 더 묵직해져서 이제는 들어올리기도 힘듭니다. 단약도 소용이 없어요.”
호삼은 긴장한 얼굴로 빠르게 설명했다.
화앗.
인상을 찡그린 한립은 손에서 금빛을 일으켜 상처에 드리웠다.
금빛 속에 작은 나무, 즉 동을신목 허상이 나타나 진한 법칙파동을 전달했다.
잠시 후, 나무 허상이 호삼의 상처에 뿌리를 내리고 피부에서 열기가 전해졌다.
조금 놀라던 호삼은 자신의 팔이 가뿐해지고 피도 멈춘 것을 알아차렸다.
“시간이 없어 시간의 힘으로 막아놓기만 한 겁니다. 나중에 다른 방도를 찾아 상처에 남아있는 힘을 제거해야 할 거예요.”
“일단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고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호삼이 고마움을 표했다.
몸을 돌려 금갑 도병 너머의 오색 제단을 본 한립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보였다.
“뭔가 알아낸 것입니까?”
눈을 빛낸 호삼이 물었다.
“교삼 수사, 도병들은 제단의 힘을 끌어와 싸우고 있으니 그 연계를 차단하지 않으면 싸움이 힘들어질 겁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말해주세요.”
교삼이 그 말을 듣고 전장에서 물러나 말했다.
“영역으로 연계를 단절하려 하는데 혼자만으로는 힘이 부족할 것 같고 수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한립은 그녀를 향해 답했다.
“그러죠. 영역을 방출하면 되는 건가요?”
“영역이 범위를 너무 넓게 잡지 말고 금갑 도병들을 격리하는 선에서 집중해보죠.”
“알겠어요. 바로 해봐요.”
“잠깐,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를 해두겠습니다.”
말을 하면서 한립은 전음으로 뇌옥책 등에게 영역범위를 축소하려 하니 그걸 고려해 행동하라고 알려주었다.
다들 알겠다고 답하자 그는 교삼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금색 영역이 수축하고 붉은 영역이 나타나 금갑 도병들이 있는 구역에서 양자 간에 완벽한 중첩이 이루어졌다.
시간영역의 수축에 다른 사람들은 움직임이 느려지는 것을 느끼고 급히 선령력을 일으켜 세월신등의 시간법칙의 힘에 저항했다.
화앗!
한립과 교삼의 영역은 중첩된 후 특이한 기운을 방출하며 빛이 몇 배로 강해졌고 반대로 그 안에 갇힌 금갑 도병들의 장창 끝은 어둑해져 기묘한 공격을 하던 소용돌이도 사라져갔다.
“효과가 있습니다! 속히 제거하시지요.”
한립의 말을 신호로 교삼과 호삼이 한립의 도병들과 힘을 합쳐 금갑 도병들을 빠르게 죽여 나갔다.
도병들이 만든 커다란 진법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그들이 기뻐할 때 다른 쪽에서 화륵, 화염이 치솟았다.
기마자 쪽 도병들도 당한 것 같았다.
두 곳의 도병들이 힘을 잃자 오행의 힘에 의지해 힘을 발휘하던 다른 도병들도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며 무너져 내렸다.
그걸 본 한립은 서둘러 남은 도병을 거둔 다음 제단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그때 모두가 보는 앞에서 흑백 빛줄기가 바닥에서 솟아올라 제단으로 날아들었다.
한립이 보니 검은색과 하얀색 실로 짠 두루마기를 입은 젊은 여인이 무표정하게 흑백 빛줄기 속에 들어있었다.
놀라운 일은 분명 두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의식으로 그녀의 기운을 감지할 수 없어 환영과 같다는 점이었다.
다른 이들도 그녀가 바닥에 숨어있는 줄 지금에야 알아챈 것 같았다.
“저건 또 뭐란 말입니까!.”
교삼이 크게 놀라 소리쳤다.
“음양법칙(陰陽法則)을 지닌 괴뢰를 숨겨오다니 누구의 소행인가?”
냉소를 흘린 기마자가 빠르게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그 말에 다들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재빨리 그녀를 뒤쫓기 바빴다.
흑백 여인은 손바닥에서 팔뚝 크기의 원형 태극 방패를 꺼내 태극문양을 이룬 검은색과 하얀색 물고기 문양에서 뿜어져 나온 빛으로 제단의 힘에 저항하고 아무렇지 않게 제단에 올랐다.
그녀의 손이 향한 곳은 금색 두루마리도 검은 철패도 심지어 금색 신등도 아니라 곡린 등에게 속한 세 개의 본명영패 쪽이었다.
“그만둬!”
호삼이 깜짝 놀라 소리를 치더니 천호화혈도를 불러내 흑백 인영의 등을 갈랐다.
챙!
반달 모양의 핏빛이 장도에서 뻗어 나갔다.
파앗!
흑백여인은 이를 감지하고도 피하지 않고 다른 손으로 기괴한 수결을 맺어 등 뒤로 거대한 태극쌍어도(太極雙魚圖)를 응결했다.
핏빛 반달이 쌍어도로 떨어져 눈을 찌르는 빛을 터트렸다.
날카로운 힘이 핏빛 속에서 흩어져 주변 공간을 갈랐으나 태극쌍어도의 검은빛과 하얀빛이 서서히 회전하면서 기이한 파동으로 핏빛을 감쪽같이 흡수했다.
흑백 여인의 손은 이미 금색 신등을 지나 핏빛 영패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웅.
이때, 연꽃 모양의 금색 신등이 돌연 바르르 떨며 금빛을 방출했고, 등잔의 심지에서 화륵 불길이 치솟았다.
심지에서 쿵, 하고 금색 불길의 파도가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갔다.
신등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흑백 여인이 제일 먼저 몸에 두른 흑백쌍어도에 불길을 맞고 날아올라 모두를 지나쳐 대전 문으로 떨어졌다.
추락하자마자 앞구르기를 한 흑백여인은 바닥으로 스며들어 종적을 감추었다.
뇌옥책 등이 그녀를 쫓다 불길을 보고 뒤쪽으로 피하려 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남원자는 남안을 잡아 자신의 등 뒤에 끌어다 놓고 남색 보따리를 불러내 그 안에서 깊은 물빛 장막을 뿜어냈다.
파치칙!
불길이 남색 물의 장막과 충돌해 불똥이 튀는 가운데 두 사람은 뒤로 쭉 미끄러져 나갔다.
물과 불이 가시고 남안은 괜찮았지만 남원자는 참지 못하고 선혈을 토해냈다.
“오라버니!”
얼른 그를 부축한 남안이 가슴 아파했다.
손을 저어 괜찮다는 표시를 한 남원자는 얼른 몸을 바로 세우고 보따리를 거두었다.
두 사람에 비해 다른 이들이 더 큰 부상을 입어 다들 체내의 기운이 진탕되었는지 안색이 좋지 않았다.
가죽이 두껍기로 유명한 다섯 요마들도 쓴맛을 보고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중에 수행이 부족한 것을 알고 제단으로 다가서지 않은 웅산이 오히려 부상을 가장 적게 입은 사람이었다.
한립과 기마자만이 그들과 상반된 행동을 보이며 화염을 기회 삼아 제단으로 돌진했다.
한립은 다섯 가지 시간법칙 보물들을 띄우고 시간법칙의 힘으로 신등의 화염을 막고 있었고, 기마자는 금색 횃불 하나뿐이었으나 한립보다 더 강한 시간법칙 파동을 방출했다.
높은 수행을 발판으로 한립보다 먼저 제단에 도착한 그는 시야를 가득 채운 금빛을 보며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하하, 세월신등은 내 것이다!”
보통 사람보다 긴 그의 팔이 금빛에 휩싸여 세월신등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세월신등을 잡아 올리려는데 등잔이 마치 제단과 붙어 있는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이마에 주름이 잡힌 기마자는 대라 수행의 선령력을 모조리 끌어올려 힘을 썼고 그제야 세월신등이 조금 기울어졌다.
등잔 안에 담긴 약간의 금색 등유가 불빛을 머금고 바깥으로 튀고 있었다.
그걸 보고 모골이 송연해진 기마자는 금색 횃불을 불러들여 체내에 흡수했다.
화륵!
동시에 뻗은 손에 금빛이 폭발해 마치 화룡이 휘감은 것처럼 변했다.
등유 방울에 붙은 불씨는 급격히 자라나 작열하는 화염이 되어 기마자의 팔을 감쌌고 시간법칙의 힘을 함유한 두 불길의 접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기마자의 팔을 감싸고 있던 화룡들이 그의 몸속으로 물러나고 등유 방울 화염에 의한 금빛 파도에 기마자의 팔이 몇 초 만에 새까만 재가 된 것이다.
기마자와 세월신등이 교전하는 사이 한립이 날아들어 제단의 다른 물건들을 챙기려 했다.
“안 돼!”
놀란 기마자는 새까맣게 탄 팔을 스스로 잘라내 버리고 제단의 다른 물건들을 향해 반대쪽 손을 뻗었다.
금색 두루마리와 두 개의 핏빛 영패가 한립의 손에 들어가고 검은 철패와 마지막 핏빛 영패는 기마자의 수중에 떨어졌다.
한립과 기마자 둘 다 상대가 무언가를 더 가져가기를 원치 않았으나 세월신등의 반응이 심상치 않아 급히 뒤쪽으로 몸을 날려야 했다.
대전의 벽에 반짝거리는 수많은 금빛 점들이 떠올라 두꺼운 빛의 장막을 이루고 대전 내부의 바닥과 천장을 감싸버렸다.
두꺼운 금색 장막에 의해 외부와의 연계가 끊기고 완전히 독립된 공간이 된 것 같았다.
동시에 제단의 세월신등은 불길을 화르륵 일으켜 이전보다 강렬한 시간법칙을 방출했다.
훅!
아홉 줄기의 화염룡이 불길에서 갈라져 한립과 기마자를 쫓았다.
한번 당해본 기마자는 이전보다 더 위력이 강할 게 분명한 화염룡과 다투지 않으려 피했고, 한립은 기마자보다 더 빨리 수백 장 밖 지면에 떨어졌다.
제단을 벗어난 그들을 향해 인근의 도병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도병들의 진법을 파훼했으나 남은 도병의 수가 여전히 많았다.
수결을 맺은 한립은 수많은 날카로운 금색 검기들을 뿜었다.
장대비가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고 도병들이 검기에 맞고 나가떨어져 주변에 공간이 생겼지만 더 많은 도병들이 거침없이 몰려들었다.
“한 수사, 이리로!”
교삼이 전음을 보내왔다.
멀지 않은 곳에서 호삼과 교삼이 대전 벽을 등지고 서서 선기로 도병들을 물리치고 있었다.
금빛으로 변한 한립이 얼른 그들 곁으로 이동했다.
“본명원패를 구해오셨군요! 어느 분 것입니까?”
호삼이 바로 다가왔다.
급히 챙기느라 아직 확인하지 못한 한립도 이제야 핏빛 영패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패에는 손톱 크기의 금색 곤충과 하얀 말이 새겨져 있었다.
표정이 가라앉은 호삼이 번쩍 고개를 들어 기마자를 보았다.
교삼도 한립이 가져온 세 가지 물건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 기마자를 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때 기마자는 다섯 요마들에게 가 있었다.
팔이 잘려나간 자리에 아직도 금색 불빛이 어려 꿈틀대며 어깨를 침식해 살과 뼈를 태우는 중이었다.
“대인, 팔이!”
웅산이 놀라 소리쳤다.
“작은 부상이다.”
코웃음을 친 기마자는 입에서 금색 단도를 불러내 잘린 팔의 부위를 얇게 저민 다음 금빛으로 막아두었다.
떨어져 나간 살점이 바로 팍, 터져 재로 변했다.
이상한 향기가 나는 녹색 단약을 복용한 기마자는 금방 초록빛 속에서 새로운 팔을 자라나게 했다.
한립이 기마자에게서 시선을 떼고 대전의 다른 곳을 둘러보다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남씨 오누이도 그와 멀지 않은 곳에서 벽을 등지고 도병들과 싸우고 있었는데 뇌옥책, 문중, 소안천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술법을 펼쳐 그들의 행방을 알아내려는데 제단 위 상공에서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세 사람 말고 도포를 걸치고 머리에 관모를 쓴 수척하고 냉엄해 보이는 노인이 함께였다.
노인은 금색 등잔이 그려진 부적을 쥐고 있었는데 그 도안의 모습이 세월신등과 흡사했다.
부적이 시간법칙의 힘을 품은 요란한 빛을 뿜으며 세월신등 안으로 날아들었다.
용솟음치던 불길이 즉시 물러나면서 신등이 원래 상태를 되찾았다.
“저건 통천검파 종주, 도윤진인!”
교삼은 관모 노인을 보고 긴장했다.
‘도윤진인!’
기마자와 요마들을 제외하고 그 소리를 들은 대다수가 경외감을 드러냈다.
남원자와 남안은 두려운 얼굴로 조용히 제단과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한립도 금원선역에 대해 각 방면에서 조사를 해두었기에 통천검파 종주 도윤진인에 대해 알고 있었다.
금원선역에서 도윤진인의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었고, 금원선궁 궁주 동방백 이상으로 명망 있는 존재였다.
수행이 대라경에 이른 도윤진인은 강직한 성격으로 악한 것을 증오해 그의 역린을 건드리면 선궁이라 해도 물러서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줄곧 폐관 수련을 하며 삼시를 베어내려 시도 중이라 했는데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대체 그런 도윤진인이 언제 여기 와있었단 말인가?
대전 입구는 진작 봉쇄되어 대라경 존재라도 잠입하기 불가능할 텐데 혹시 조금 전 흑백괴뢰와도 연관이 있단 말인가?
한립의 이런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뇌옥책이 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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