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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75화 (1,832/2,000)
  • 2075화. 진법중추

    *

    뇌옥책이 그걸 기회 삼아 금속 속성 법칙의 힘을 담은 비검들로 석검을 막아냈다.

    고공의 거검 두 자루는 흙 속성 법칙의 힘을 다할 때까지 버티다 쾅, 하고 터져나갔다.

    그걸 본 뇌옥책이 소안천과 시선을 마주치고 웃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여유를 누리게 두지 않고 고공의 문이 또 쿠쿵, 소리를 냈다.

    “검진을 파훼하기 전에는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진법도는 분명 검진 안 어딘가에 있겠죠? 여긴 제가 맡을 테니까 가서 찾으세요.”

    “검진의 위력이 강한데 혼자서 어찌…….”

    “그 말은 저희 천수종의 공법을 얕보는 것 같이 들리는데요? 아니면 그냥 저를 얕보는 건가요?”

    뇌옥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안천이 냉랭히 물었다.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당황스러움에 뇌옥책은 손을 내저었다.

    “그럼 안심하고 가요. 여긴 내게 맡기고요.”

    얼굴을 푼 소안천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조심하세요. 금방 진법도를 찾아오겠습니다.”

    “뇌 수사도, 조심하세요…….”

    뇌옥책의 걱정에 소안천이 무표정한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인 뇌옥책은 몸을 돌려 검진 중앙으로 걸어갔다.

    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운데 마음은 날아오를 것 같았다.

    고공의 문틈에서 노란 비검이 떨어져 교삼 무리와 요마들을 한시도 가만두지 않았다.

    덕분에 먼저 진법에 들어온 한립은 오히려 부담이 줄었다.

    진법의 힘이 분산되어 그가 막아야 할 공격이 줄었기 때문이었다.

    진령혈맥과 <천살진옥공>을 격발해 여섯 개의 팔로 청죽봉운검을 쥔 그는 금빛 뇌전을 마구 뿜어 길을 뚫으면서 검진 중앙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며 관찰한 바로 진법 중추가 중앙에 있을 거라는 예측을 해서였다.

    뇌전빛이 팍팍 터지는 사이 주위의 혼란스러운 기류가 돌풍을 이루어 환영을 보는 것처럼 주위가 흐릿해졌다.

    두 눈에 보랏빛을 일으킨 한립은 영목신통으로도 제대로 주위를 살필 수 없었는데 머리 위에서는 노란 거검이 뚝뚝 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의식을 분산해 길을 찾으며 검진의 공격을 막는 게 최선이었다.

    묵묵히 연신술 구결을 외워 의식의 힘을 퍼트린 한립은 세월탑의 다른 곳에서처럼 곤란함을 느꼈다.

    검진 안은 특히나 흙 속성 법칙의 힘이 충만해서 뭔가를 감지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머리 잃은 파리 마냥 같은 자리를 뱅뱅 맴돌 수도 있었다.

    게다가 걸으면 걸을수록 천지의 압력이 강해져 처음보다 발을 떼기가 열 배는 더 힘들었다.

    그가 쿵, 한 발을 내디디면 바닥의 암석이 콰직! 갈라지며 깊은 발자국이 남았다.

    “무슨 검진인지, 대라경 수사라도 이 안에 걸려들어 파훼법을 찾지 못하면 갇혀 죽을 수 있겠어…….”

    한립은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단내를 느끼며 투덜거렸다.

    겉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이미 몸속의 장기가 다 압축되어 더 버티다가는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수백 장을 걸어가니 그의 발길을 따라 발자국들이 길게 쭉 늘어섰다.

    ‘혹시…….’

    한립은 갑자기 멈춰서서 더는 구유마동에 의지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다른 방향으로 열댓 걸음을 걸어갔다가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그렇게 몇 번을 방향을 바꾸어 그를 주변으로 움푹 파인 발자국들이 가득 남게 되었다.

    천천히 눈을 뜬 한립은 길게 숨을 토해내고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기류가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검진의 중추로 다가갈수록 법칙의 힘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직접 여러 방향을 택해 걸어가 미세한 기운 차이를 비교해 보고 오른쪽 전방, 왼쪽 정방향 그리고 오른쪽 후방으로 갈수록 법칙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확인했다.

    오른쪽 후방으로 갈수록 기운의 증가 폭이 컸다.

    아마 오른쪽 전방과 왼쪽 정방향에 진안이 하나씩 있고 검진의 중추는 오른쪽 후방에 있을 터였다.

    목표를 정한 한립은 여섯 주먹을 붕붕 휘둘러 고공에서 떨어지는 거검을 부수면서 오른쪽 후방으로 나아갔다.

    검진이 혼란스러운 기류 때문에 열 걸음마다 서서 다시 방향을 조정할 필요가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 끝에 팔각형의 제단이 들어왔다.

    제단의 각 면에는 석검이 충직한 장수처럼 지키고 서서 중앙의 팔각 옥쟁반을 지키고 있었다.

    열 걸음을 더 다가간 한립은 검진 중앙 팔각형 제단에 총 여덟 개의 노란 돌이 박혀 흙 속성 법칙의 힘을 품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접근에 하얗던 팔각 옥쟁반이 그윽한 녹색으로 변하고 팔각 제단의 노란 돌들도 빛을 발했다.

    뒤이어 제단에 꽂힌 석검들이 웅웅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립은 여섯 개의 팔에 든 청죽봉운검에서 뇌전빛을 대량으로 뿜어 고공에서 떨어지는 노란 거검을 부수고 제단으로 몸을 날렸다.

    진언보륜을 역전해 가속한 그는 꽤나 빨랐지만 공간의 압력 때문에 진법 밖에서보다는 느렸다.

    제단과 30장 거리까지 가까워지자 고공에서 더는 노란 검들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립이 십여 장까지 거리를 좁혔을 때, 제단에서 드디어 여덟 개의 석검이 뽑혀 올라와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여덟 개의 석검들은 제단의 진법도 만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데 검진과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였다.

    날아들던 석검의 검신이 암황색 빛들로 갈라지며 삽시간에 수천 자루의 비검이 흙 속성 법칙 파동을 발산했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허와 실을 분별하겠는가?

    한립은 번득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검결을 맺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청죽봉운검 36자루가 푸른빛을 터트리면서 부채처럼 펼쳐져 검 그림자들을 겹겹이 만들어냈다.

    “가라.”

    한립의 명에 수많은 검 그림자들이 튀어 나가 수천 자루의 석검들과 맞부딪쳤다.

    채채채채챙.

    복잡한 소음 속에서 청죽봉운검의 검 그림자들이 빠르게 소멸해갔다.

    놀랍게도 수십 개의 검 그림자들은 겨우 암황색 검빛이 변한 석검 한 자루를 부술 수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청죽봉운검의 검 그림자들이 석검보다 훨씬 많았기에 잠시 대치 상태를 이룰 수 있었다.

    진지한 얼굴로 청죽봉운검을 조종하던 한립은 청죽봉운검의 검 그림자들이 많이 사라지고, 석검도 겨우 30자루가 남았는데 비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기합을 넣는 그의 몸에서 선령력이 흘러나와 청죽봉운검들 속으로 흡수되어갔다.

    채채챙!

    검 그림자들이 금빛 뇌전을 터트려 남은 석검을 대부분 깨부수고 이제는 본체인 석검 여덟 자루만 남아 한립을 향해 검끝을 겨누고 떠 있었다.

    ‘후우…….’

    청죽봉운검의 검 그림자가 아직 팔십여 개나 남은 것을 본 그가 안심하고 제단으로 오르려는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제단에 박힌 노란 돌들이 맹렬히 번득이자 허공의 여덟 개의 석검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폭발적인 힘을 발휘해 암황색 빛으로 나머지 청죽봉운검 검 그림자들을 전부 터트려 버린 것이다.

    충격을 받은 36자루 비검이 금속성의 마찰음을 내며 석검 일곱 자루를 겨우 막아섰지만 나머지 한 자루가 방어막을 뚫고 한립의 가슴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역전진륜 신통을 발휘한 한립은 몸을 옆으로 기울여 석검이 옆구리를 비스듬히 스쳤다.

    장포의 허리춤이 찢어진 그는 얼른 비검을 불러들이면서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 순간 퍽! 하고 제단의 노란 돌들이 빛을 잃고 갈라졌다.

    태탱!

    마지막 힘을 다한 석검들도 바닥으로 추락해 뒹굴고 있었다.

    제단에 너무 오랜 세월 박혀 있던 터라 돌 안에 함유한 법칙의 힘이 서서히 유실된 덕분이었다.

    한립은 막 제단으로 가려다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허리를 살폈다. 장포만 찢어진 줄 알았는데 피부가 베여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는데 문제는 상처 부위가 회백색으로 변해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다는 점이었다.

    석검이 스치는 순간 흙 속성 법칙의 힘이 작용해 그의 피부를 석화시킨 게 분명했다.

    검이 몸을 관통하지 않아 석화된 부위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한립은 생각 끝에 손끝을 칼처럼 세워 석화된 부분을 도려내고 상처를 회복했다.

    상처 처리를 마치고 청죽봉운검을 회수할 때 제단 멀리서 누군가 날아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멈칫하던 그는 재빨리 제단에 올라 푸른 빛이 어린 손으로 팔각 옥쟁반을 잡아채 내려왔다.

    옥쟁반을 살핀 그의 눈에 금방 희색이 어렸다.

    태세선존이 통천검파에서 가져나온 통천검진 진법도였기 때문이다.

    그 복잡함과 정교함이 상상을 초월하는 보물이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진법도를 거두었을 때 쿠릉, 하고 고공의 노란 문이 닫혔다.

    부단히 떨어지던 석검들도 없어지고, 거대한 검진이 해체되어 줄곧 그를 억압하던 중압감도 옅어져 갔다.

    제단에서 천천히 물러선 한립이 단약을 꺼내 삼키는데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하하,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 수사…….”

    고개를 돌려보니 뇌옥책이 웃으며 자연스럽게 바닥에 떨어진 여덟 개의 석검을 거두고 있었다.

    “다른 분들이 검진에 들어와 공격을 분산해 주신 덕입니다.”

    한립은 싫어하는 기색 없이 미소 지었다.

    “겸손도 하십니다. 검진을 파훼한 공로를 어찌 제가 모르겠습니까.”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뇌옥책은 손을 내젓는 한립을 보고 이 말을 할까 말까 머뭇거리다가 그래도 입을 열었다.

    “제가 한 가지 청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무슨 일인지 말씀해 보시지요.”

    한립은 뻔히 무슨 청일지 알았으나 모르는 척 물었다.

    “아마 검진의 진법도를 찾으셨을 겁니다. 그건 저희 통천검파에서 잃어버린 지 오래인 종문의 보물인데 돌려주신다면 최대한의 성의로 보상을 해드리겠습니다.”

    뇌옥책이 진심을 담아 공수를 했다.

    그 말을 들은 한립은 이상하다는 얼굴로 반문했다.

    “줄곧 검진에 갇혀서 제자리를 맴돌다 겨우 벗어난 참입니다. 무슨 진법도를 말씀하시는 건지 통 모르겠군요.”

    “이 검진이 수사에게는 그저 위력적인 절진에 불과하겠으나 저희 종문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보물입니다. 수사께서 아량을 베풀어 돌려주신다면 5품 선기를 사례로 들이고 수사를 저희 통천검파의 무기명 장로로 삼아 아무 조건 없이 장로 대우를 해드리겠습니다.”

    뇌옥책은 예상했다는 듯 줄줄 준비한 말을 늘어놓았다.

    누가 들어도 대단한 혜택이었다.

    통천검파의 장로급 대우면 그가 걸 수 있는 최대한의 조건으로, 조사당에 이름을 올리거나 종문의 임무를 수행할 필요 없이 영원히 막대한 수도 자원만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금원선역에 머물 마음이 없는 한립에게는 계륵인 보상이었고, 통천검진이 마음에 쏙 들어서 반드시 청죽봉운검으로 펼쳐보고 싶었다.

    “호의는 잘 알겠습니다만 정말 진법도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뇌 수사가 내건 조건을 생각하면 진법도를 내놓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말입니다.”

    “한 수사, 정말로 제단에 진법도가 없었습니까?”

    아쉬움 가득한 한립의 얼굴을 보고 뇌옥책이 눈을 가늘게 떴다.

    “없었습니다. 이 석검들이 다였는데 제가 제대로 살펴보기도 전에 수사가 챙겨가지 않으셨습니까.”

    한립은 쓴웃음을 지었다.

    뇌옥책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지만 어떤 이상한 점도 찾을 수 없었다.

    “하실 말씀이 남지 않았으면 일단 세월전으로 가서 다른 금제는 없는지 살펴보시지요?”

    화제를 바꾸는 한립을 뇌옥책이 지긋이 쳐다보다 불시에 수결을 맺고 주문을 외웠다.

    팟.

    팟.

    그의 허리춤에서 옥패가 반짝이고 몸을 돌리고 있던 한립의 손가락에서 저물 반지가 똑같이 빛을 발했다.

    팔각 옥반을 넣어둔 저물반지였다.

    “한 수사, 정말 돌려주지 않으실 겁니까?”

    뇌옥책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비경에서는 각자 능력껏 보물을 찾아 갖는 것이 원칙입니다. 석검을 양보한 것으로 이미 최대한의 선의를 베풀었으니 그만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억지로라도 빼앗아야겠다면 나 역시 당신이 가져간 석검마저 돌려받을 의향이 있습니다.”

    어차피 들킨 것 한립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냉랭히 말했다.

    할 말을 마친 그는 당당히 광장을 지나서 성큼성큼 웅장한 궁전의 계단을 올라갔다.

    제자리에 어두커니 서 있던 뇌옥책은 얼굴을 펼 수가 없었다.

    이때 광장의 노란 구름을 가르면서 기마자가 요마들을 이끌고 날아오고 있었다.

    길게 숨을 내쉰 뇌옥책은 노기를 억눌렀다.

    종문의 보물을 되찾는다는 명분이 있기는 했지만 진법도를 연구하고 싶은 사심이 더 컸다.

    그렇다면 더 귀한 보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세월전을 살피는 것이 더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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