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4화. 손을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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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영역도 압축되어 더욱 짙은 색깔을 냈고, 두 자루 빛의 검이 영역으로 돌아와 수정실로 변해 내부를 채웠다.
진한 시간영역 속에 진입한 거검들이 속도가 느려진 틈에 한립은 여섯 개의 손을 뻗었다.
튕겨 나온 뇌전 거검이 흩어져 조금 작은 뇌검(雷劍)으로 변해 여섯 개의 손에 들리고 폭발적으로 검기를 날려 그물을 쳤다.
석검들이 금색 검기 그물에 잘려 나갈 때마다 한립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인상을 찡그렸다.
석검 한 자루 한 자루가 얼마나 무거운지 거산을 하나씩 쳐내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석검들은 많았고 우수수 빗물처럼 떨어지는 중이었다.
‘빌어먹을! 이건 대체 무슨 검진이란 말인가!’
한립도 속에서 열불이 솟아 <천살진옥공>을 전력으로 발동하며 청죽봉운검, 시간영역을 동시에 운용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석검들을 막아갔다.
* * *
석검 광장 천여 리 밖의 고공에서 교삼과 호삼의 둔광이 나란히 날고 있었다.
“귀배(龜背) 요마의 몸은 정말 튼튼한가 봅니다. 후토대인(后土大印)으로 눌러 놓았는데도 그대로 뒤집고 달아나 버렸어요.”
교삼이 미간을 좁히며 손에 든 암황색 인장을 내려다보았다.
흉악한 짐승의 모습이 새겨진 인장에는 황천후토(皇天后土)라는 네 글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흙 속성 법칙을 익힌 것도 아닌데 그 인장을 쓰려니 그렇지요. 방어력이 강하기로 이름 높은 현귀(玄龜) 일맥의 요마를 죽이는 게 쉽지도 않고요.”
호삼이 웃음을 흘렸다.
고개를 끄덕인 교삼이 노란 인장을 넣으려다 시선을 들어 석검 광장을 발견했다.
검기가 난무하는 통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저기…….”
“검진입니다. 벌써 발동이 된 것 같은데 누가 뛰어든 걸까요?”
호삼도 놀라 말했다.
그들이 석검 광장 주변에 내려섰을 때 멀리서 남원자 오누이도 나타났다.
교삼과 호삼을 본 남원자가 눈썹을 꿈틀했다.
남안은 검기로 가득 찬 석검 광장과 그 뒤의 웅장한 대전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교삼 쪽과 남원자 쪽 쌍방이 먼저 입을 열지 않고 있는데 뇌옥책, 소안천, 문중 세 사람이 날아들어 합류했다.
뇌옥책은 도착하자마자 운행 중인 검진부터 살폈다.
“통천검진(通天劍陣)……. 문 사제, 보고 있는가? 정말, 정말 완전한 통천검진일세!”
뇌옥책은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문중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문중에서 실전된 검진을 이곳에서 보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문중도 눈빛이 달라져 답했다.
“오랫동안 연구를 했지만 도저히 완벽한 검진의 모습을 그릴 수 없었는데 진짜를 보고 나니 경전에 적힌 그대로가 아닌가! 태세선존이 통천검진의 진법도를 가져다 여기다 설치한 것이었어.”
뇌옥책은 흥분한 얼굴로 전음을 보내고 있었다.
“뇌 수사, 왜 그러시죠?”
소안천이 그의 표정이 이상한 것을 보고 다가왔다.
그 말을 들은 뇌옥책은 그제야 자신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아, 종문에서 오래전에 유실된 통천검진이라는 검진을 보아 너무 격동하고 말았습니다…….”
“이게 그 유명한 통천검진이란 말인가요?”
소안천은 의외라는 얼굴을 했고, 교삼 등도 표정이 달라졌다.
통천검파의 이름이 유래된 것도 바로 이 통천검진 때문이었다.
달리 말하면 통천검진을 지녀야 진정한 통천검파라고 할 수 있었다.
“뇌 수사, 검진의 상태로 보았을 때 누군가 파훼를 하는 중인 듯합니다. 어서 다른 요마가 먼저 대전에 이르지 않게 서둘러 들어가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교삼이 입을 열었다.
뇌옥책이 망설이다 뭐라고 답하려다 고개를 틀었다.
고공에서 검은빛이 반짝이고 여덟 개의 둔광이 떨어졌는데 그중 가장 앞서 날아든 것이 제단에서 보았던 우두머리급 요마들이었다.
동사요마, 백골요마, 혈수요마 외에 낯선 얼굴도 둘이나 있었다.
그중 하나는 거구에 새까만 몸을 지니고 머리에는 용 뿔이 피부에는 용 비늘이 돋아 있었는데 등에 멘 거대한 흑청색 거북 등딱지가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이었다.
그 등딱지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기다란 상처가 보였다.
이 귀배 요마는 나타나자마자 교삼을 보면서 험악한 눈빛을 보냈다.
또 다른 새로운 요마는 인족과 똑같은 얼굴에 매부리코를 지니고 하얀 눈썹이 길게 뻗어 있어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 응비(鷹鼻) 요마는 남원자 오누이를 무표정하게 바라보았으나 눈 깊은 곳에 짙은 살의를 느낄 수 있어 그들과 이전에 충돌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악의 어린 시선에 남안도 피식 웃으며 비취색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버드나무 가지 같은 지팡이에서 강렬한 나무 속성 법칙 파동이 전해졌다.
그리고 교삼은 요마들 옆의 별다른 요기가 느껴지지 않는 두 사람을 주목했다.
기마자와 웅산이었다.
“다들 그렇게 볼 것 없네. 보물을 얻기 위해 여기 온 목적은 모두 같지 않은가? 이들이 요마라 하나 서로 철천지원수도 아니니 그리 적대시할 이유는 없을 텐데.”
기마자가 요마 무리를 경계하는 수사들을 보고 입을 뗐다.
“같은 종족이 아닌데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입니까? 요마가 선계를 해쳐 수백만 년 동안 그 전란의 폐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습니까?”
뇌옥책이 냉소했다.
“뇌 수사는 그러면 목숨을 걸고 한바탕 싸워야 한단 말인가? 그러다 죽은 이들은 당연히 보물을 취할 수 없겠으나 살아남은 이들은 어떤가? 몇 사람의 힘으로 통천검진을 통과할 수 있냔 말일세. 아, 뇌 수사는 통천검파 출신이라 혼자서도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기마자의 말에 뇌옥책은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상대의 독사 같은 혓바닥이 다른 이들을 선동하고 있었고, 역시 교삼 등은 고민하는 눈치였다.
“말 몇 마디에 제발 놀아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요마가 어떤 것들인데…….”
문중도 인상을 굳히고 말했다.
“흐흐, 교활하고 음흉하기로는 당신들 인족만한 것들이 없을 텐데?”
백골요마가 그 말에 차갑게 반박했다.
“둘째 형님, 제가 진작 저들과 손을 잡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냥 쓸어버리면 간편할 텐데요?”
동사요마가 기다리기 지쳤는지 대뜸 싸우자고 말했다.
혈수요마와 귀북요마는 불편한 얼굴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응비요마가 말없이 동사요마를 흘끗 쳐다봐 동사가 목을 움츠리고 입을 다물었다.
“뇌 수사, 제가 한마디만 할 수 있게 해주시지요. 우리가 여기서 싸우든 말든 이미 누군가가 저 안에서 검진을 깨는 중입니다. 그가 먼저 대전에 들어가 보물을 취한다면 우리 중 누구도 보물을 얻을 수 없는 것을 물론 마두가 세상에 나오게 될 겁니다.”
조용히 있던 웅산이 이때 입을 열었다.
뇌옥책도 ‘마두’란 소리에는 심장이 철렁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면 진법 안의 사람을 추론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다른 이라면 몰라도 한립은 정말 통천검진을 깨고 안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통천검진의 진법도는 반드시 그가 차지해야 했다.
“어쩔 수 없지요. 웅 수사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대전에 이르기 전에는 잠시 서로를 공격하지 않고 힘을 합치는 것이 어떻습니까?”
뇌옥책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에 기마자가 응비요마에게 어떻냐는 눈빛을 보냈다.
“전부 수사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응비요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렇게 할 테니 제대로 처신하길 바라네.”
기마자의 말에 뇌옥책이 교삼 등 나머지 사람들을 보았고 그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성의를 보이기 위해 난 이들의 수하들은 이곳을 떠나게 하지. 뇌 수사도 그만한 성의를 보여야 할 걸세.”
“무슨 소립니까?”
기마자의 말에 뇌옥책이 모른 척 물었다.
“통천검진은 통천검파에서 나왔으니 그 파훼법을 모른다고 할 수 없겠지?”
“문중에서 실전된 지 오래인 검진입니다. 다른 검진들을 수없이 변형하고 개발해도 초기의 통천검진은 구현하지 못했지요. 어떻게 파훼를 할지는 직접 들어가 알아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뇌옥책은 탄식하듯 말했으나 기마자는 전혀 믿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믿으시든 못 믿으시든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정 안 되겠으면 수사께서 먼저 진법을 파훼해 보시던가요.”
“아니, 그럴 필요 없네. 다 같이 들어가지. 안으로 들어가면 수사도 어쩔 수 없이 최선을 다해야 할 테니까.”
기마자가 씩 웃음 지었다.
“물론입니다. 안으로 들어가 진법의 변화를 직접 보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뇌옥책의 대답에 무리는 둘로 나뉘어 검진 앞에 섰다.
“안으로 들어가면 함부로 움직이지 마세요. 많이 움직일수록 검진의 거센 저항을 받게 될 겁니다.”
뇌옥책은 교삼 등에게만 따로 전음을 보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수사.”
그 소리를 들은 수사들은 표정 변화 없이 조심스럽게 전음으로 답했다. 그들을 보던 기마자의 얼굴에 비웃는 듯한 표정이 스쳤다.
“들어갑시다.”
뇌옥책은 검진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소안천의 고운 손을 잡고 함께 날아올라 그녀의 가슴을 뛰게 했다.
콰르릉 콰콰쾅!
검진 안으로 들어서자 무형의 압력이 가해졌고,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 전에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운 노란 구름이 그들 머리 위를 가득 채우고 있어서 손을 잡은 소안천과 뇌옥책 말고 다른 이들은 서로를 볼 수도, 의식으로 감지할 수도 없게 되었다.
중압감이 다른 곳의 열 배에 이르는 터라 등에 거산을 짊어진 채 움직이는 듯했다.
“흙 속성 법칙의 힘을 근간으로 하는가 봅니다. 뚫고 나가기 쉽지는 않겠어요.”
뇌옥책은 검진의 변화를 자세히 관찰했다.
“흙 속성 법칙의 힘을 근간으로 한다는 게 무슨 의미죠?”
“통천검진은 검진을 기초로 하되 그 자체로는 어떤 속성도 띄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비검으로 펼쳤느냐에 따라 다양한 변화와 공격 수단을 지니게 되지요. 제가 안으로 들어가 봐야 검진을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한 것도 그 때문이고요.”
“그래서 방법은 찾았나요?”
“누군가 검진을 통제하고 있다면 변화무쌍한 변화를 보일 검진이나 지금은 통제하는 이가 없으니 진법도가 중추가 되어 발동되고 있을 겁니다. 검진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법도를 찾아내는 거예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데 머리 위에서 쿠릉,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의식중에 고개를 든 두 사람은 뿌연 노란 구름 속에 문이 나타나 틈이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
노란 소용돌이와 함께 심장을 옥죄는 무시무시한 흙 속성 법칙 파동이 느껴졌다.
쿠쿠쿠…….
검진에서 수십 자루의 노란 검기들이 느닷없이 날아들어 두 사람을 베었고 고공에서는 거검 두 자루가 떨어지고 있었다.
“소 선자, 조심하십시오!”
뇌옥책은 경고를 하고는 앞으로 나서서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전신에서 흘러나온 빛이 커다란 원형 주술문자를 형성해 우후죽순처럼 금빛을 피워냈다.
콰콰콰쾅!
부단히 폭음을 터트리며 금색 금빛과 거검 두 자루 그리고 검기들이 충돌했다.
태산과 같은 중압감 속에서 자신이 날린 금빛 들이 펑펑, 터지는 것을 본 뇌옥책의 표정이 신중해졌다.
“이게 통천검진의 위력이란 말이죠?”
그의 옆에서 물 속성 법칙의 힘이 퍼져나갔다.
물빛을 머금은 소안천이 두 손 사이에 구슬을 끼고 콸콸 물줄기를 방출하고 있었다.
살짝 감은 눈의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는 그녀의 모습은 물빛 속에서 더욱 신비로워 보였다.
솨아아!
엄청난 물소리와 함께 치솟은 물줄기가 거대한 파도로 변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검들과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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