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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70화 (1,827/2,000)

2070화. 진입

*

광장의 하얀 나무들은 천호화혈도가 발산한 빛에 시들었고, 광장을 이룬 백옥 돌들도 펑펑 터져 난장판이 되었다.

통천검진이 붕괴한 충격에 튀어나온 수십 자루의 비검들도 사방을 난도질했다.

몸을 떨다 뒤로 뒷걸음질 친 뇌옥책을 스쳐 호삼과 교삼이 빠르게 전방으로 질주했다.

뇌옥책이 눈살을 찌푸리며 이를 악문 순간 멀리서 호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우리를 막지 못하십니다. 전방의 상황을 모르는데 괜히 수사와 싸우며 힘 빼고 싶지 않으니 그만두세요.”

그 말에 뇌옥책이 멈춰 섰고, 호삼과 교삼의 모습이 계단 너머로 사라졌다.

그때 남원자와 남안도 둔광을 일으켜 목신총 방향으로 날아올랐다.

“거기 서요!”

목신총 계단 앞을 막고 선 소안천이 소리쳤다.

고운 손에서 구렁이처럼 커다란 뇌전을 품은 남색 물구슬이 날아올라 남 씨 오누이를 향해 날아갔다.

남안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남색 보따리를 벌려 그 안에서 빛을 쏘아 보냈다.

구슬은 즉시 남색빛으로 변해 보따리 안으로 빨려 들어가서 기세등등하던 공격이 환영처럼 사라졌다.

“어떻게…….”

불가사의한 일에 소안천이 흠칫 놀랐다.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남안은 보따리 선기를 잠시 발동했는데도 선령력을 거의 다 소진한 듯했다.

남원자가 그녀의 손을 잡고 둔광을 결합해 소안천을 지나 사라졌다.

한립이 눈을 반짝이다가 금빛으로 날아올라 화원궁 방향으로 향했다.

줄곧 그의 행동을 주시하던 문중이 서둘러 십여 개의 검빛을 날렸지만 한립은 믿기지 않는 속도로 문중을 지나쳐 가버렸다.

문중은 어안이 벙벙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쉭!

그 순간, 웅산도 금색 둔광을 일으켜 날아올랐다.

문중은 정신을 차리고 막으려 했으나 한립보다는 느려도 번개 같은 움직임에 손을 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별안간 광장에는 뇌옥책, 문중, 소안천 세 사람만 남게 되었다.

“쥐새끼 같은 것들이 보물에 눈이 멀어 한 치 앞을 못 보고! 흑천마신이 봉인을 뚫고 나오면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문중이 열을 받아 성을 냈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우리도 흩어집시다. 설득해보고 안 되면 바로 진법을 복구하도록 하죠.”

비검들을 회수한 뇌옥책이 차분히 말했다.

“알겠어요. 이렇게 긴박한 순간에도 평정을 유지하시네요.”

고개를 끄덕인 소안천이 뇌옥책을 보았다.

“어떤 일은 사람은 최선을 다할 뿐이고 결국은 하늘의 뜻이 따라야 한다 했습니다. 최악을 막기 위해 노력할 뿐 엉망이 된 상황을 되돌릴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뇌옥책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이런 때에도 침착한 게 놀랍다고요. 자,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일러주세요.”

소안천이 그런 그를 향해 빙긋 웃음 지었다.

뇌옥책은 붉은색, 황토색의 진법 도구 두 벌과 옥간 두 개를 꺼내 문중과 소안천에게 나눠주었다.

“진법이 복잡해서 수리하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옥간에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으니 이대로만 하면 될 거예요. 정 안 되면 제게 연락을 주세요.”

뇌옥책은 전신원반을 따로 꺼내 소안천에게 내주었다.

당연히 문중은 동문이기에 이미 연락할 법기를 나눠 가지고 있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문중이 두 사람을 보며 포권을 하고 화원궁 방향으로 날아갔다.

“저도 가볼게요.”

“소 선자. 남 씨 오누이는 남색 보따리 선기까지 취해 더 실력이 강해졌습니다. 되도록 충돌하지 마시고 몸을 상하느니 그들이 보물을 가져가도록 두십시오.”

뇌옥책은 그녀를 불러 간곡히 일렀다.

“……고마워요, 뇌 수사. 그렇게 할게요.”

침묵하다 고마움을 표한 소안천이 목신총을 향해 날아갔다.

뇌옥책은 그녀가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고는 건토전 방향으로 향했다.

그들이 떠나고 오래지 않아 기마자, 백골요마, 동사요마 세 사람이 광장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해 서로 싸우다 각자 다른 길로 갈라섰습니다.”

백골요마가 눈에서 하얀빛을 뿜어 기운을 읽었다.

“백골 수사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일은 없는 듯합니다.”

기마자가 미소를 지었다.

“별 것 아닌 재주입니다. 저들이 흩어졌으니 각개 격파하면 일이 쉽게 풀리겠어요.”

“급할 것 없지요. 저들의 목적은 보물이니 우리를 대신해 진안을 파괴해 줄 겁니다. 세 분 형제께서 나오시고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유리할 거예요.”

“일리가 있습니다.”

“저들이 세 갈래로 나뉘어 이동 중이니 우리도 그러지요. 진안의 어떤 보물도 더는 저들 손에 들어가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기마자의 말에 백골요마와 동사요마가 대황고검과 남색 보따리의 위력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건토전과 목신총으로 날아간 후 뒤에서 냉소를 흘린 기마자가 번득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한립은 한참을 가도 뇌옥책 등이 쫓아오지 않자 마음을 놓았다.

그들이 두렵지는 않으나 호삼의 말대로 전방의 상황도 모르는데 악의가 없는 사람들과 싸우느라 힘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전방을 보는 눈빛에 열의가 어린 그가 속도를 높였다.

진안의 보물은 놓칠 수 없었고 뇌옥책이 말한 흑천마신은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현재 그의 실력에 도조급과 정면충돌하지 않는다면 살아서 빠져나갈 구멍은 있었다.

세월탑 안에서 수확이 적지 않아 감당할 수 없는 변고가 생기면 언제든 떠날 작정이었다.

탑에 숨겨져 있다는 세월신등도 갖고는 싶었지만 없으면 안 되는 물건도 아니었고 목숨이 가장 중요했다.

일각이 지나 풍경이 달라졌다.

하얀 안개가 흩날리는데 희미하게 영력이 어리며 시야를 방해했다.

인상을 찡그린 한립은 속도를 줄이고 의식을 최대한 방출해 주변의 동정을 살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이동하던 그가 눈을 반짝이고 전신에 금빛을 일으켜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눈앞에 밝아지고 또 다른 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화산돌을 깔아 만든 광장은 미세한 공기구멍이 나 있었고, 그 안에서 나풀나풀 연기가 올라왔다.

화산석 광장 뒤로 타오르는 불꽃 같은 색깔의 대전이 열기를 물씬 뿜어냈다.

한립은 서두르지 않고 광장에 다가서기 전에 구유마동을 일으켜 관찰했는데 이전 남색 광장과 달리 이상한 점이 없었다.

두 발이 광장에 닿은 그는 화상을 입을 것 같은 열기에 미간을 좁혔다. 신을 신고 있는데도 발이 너무 뜨거웠다.

하지만 몇 걸음을 걷다 보니 금방 적응이 되어 광장을 무사히 지날 수 있었다.

붉은 대전으로 이르는 계단 앞에 선 한립은 고개를 들어 화원궁이라 적힌 편액을 보았다.

편액 위로 주술문자들이 각인된 화염 동패가 떠있었다.

눈을 반짝인 한립은 안색이 급변해 무언가를 피하려는 듯 옆으로 몸을 꺾었다.

화염동패의 주술문자에서 홀연히 적홍색 광선이 빠져나와 그의 미간을 노리고 있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그가 피하려 했음에도 광선에 닿고 말았다.

치직!

피부가 타들어 가고 하얀 이마뼈가 드러났다.

뼈도 녹으려는 찰나, 한립의 이마에서 은빛 화염이 일어나 붉은 화염 광선을 밀어냈다.

정염불새의 출현에 한립은 극통에서 벗어나 서서히 피부를 아물게 할 수 있었다.

큰 소리로 지저귄 정염불새가 사방으로 뿜은 화염을 연꽃잎처럼 모아 붉은 광선을 집어삼키고 대전 문의 동패를 향해 날아갔다.

몇 초 뒤, 화염 동패는 은색 화염이 줄줄 녹아 정염불새에게 잡아 먹히고 말았다.

돌아온 정염불새는 칭찬해 달라는 듯 한립 주변을 신나게 날아다녔다. 웃음을 흘린 한립이 불새를 거두고 자신의 이마를 문질렀다.

피부가 낫기는 했으나 중간에 작게 붉은 표식이 남아있었다.

손을 들어 대전의 문을 밀어젖힌 그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양쪽에 기다란 나무 진열장들이 놓여있고, 그 위에서 연꽃 모양 등잔들이 콩알 크기의 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대전 중앙의 원형 제단은 이전에 보았던 제단과 비슷한 양식에 붉은 수정 제단이 우뚝 서서 두 가지 물건을 받들고 있었다.

용 눈알 크기의 하얀 구슬과 금색 화염 한 덩이였다.

어떤 문양도 없는 투명한 구슬은 하얀 화염에 휩싸여 진한 불 속성 법칙의 힘을 발산했다.

한립은 <대오행환세결>을 운용해 시간영역으로 도처를 장악하고 시간법칙의 힘으로 제단의 금색 화염을 끌어왔다.

동일한 속성의 법칙의 힘에 이끌린 화염이 반짝거리기는 했으나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제단의 진법을 파훼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겠군…….”

자조적으로 중얼거린 그가 제단을 유유히 돌며 진법을 관찰했다.

턱을 괴고 생각이 잠겨 있던 한립은 손을 펼쳐 진법 깃발과 원반들을 제단 사방으로 배치했고 오래지 않아 팔각형의 진법이 제단 둘레에 완성되었다.

빠진 것이 없는지 점검을 마친 그가 진법을 발동하니 제단의 하얀 불구슬이 번쩍이면서 화염을 아래쪽으로 흡수시켰다.

제단의 불꽃 문양들이 빛을 발하며 대량의 불길을 내뿜어 한립을 공격했다.

쿠쿵.

불길이 흘러나온 순간, 주변의 금빛들이 장벽을 이루어 마치 불길을 한데 모아 천장 쪽으로 이끌었다.

천장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것을 본 한립은 이대로 진법이 힘을 발산하게 한 뒤 보물을 취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대전 양쪽의 벽에서 붉은 기운이 떠올라 불꽃 문양들을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금제가 제단 말고 다른 곳에도…….”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한립이 바라보는 앞에서 붉은 문양들이 각각 사슴의 뿔에 소의 얼굴, 뱀처럼 기다란 몸을 지닌 괴물로 변했다.

벽 양쪽에서 나타난 두 마리의 괴물은 목재 진열장을 훑으며 등잔의 불꽃을 몸에 깃들게 하고 작열하는 불뱀이 되어 한립을 향해 입을 쩍 벌렸다.

한립은 좌우로 기민하게 움직여 두 소머리 불뱀을 피했지만, 불뱀들은 그를 빙 돌아 중앙에 놓고 에워쌌다.

자신이 제단 주변에 높은 벽을 세웠던 것처럼 불뱀들이 그를 둘러싸고 벽을 만들고 있었다.

크오오오-!

머리를 쳐든 두 불뱀은 포효 속에 불길이 이글이글 뿜어져 나왔다.

불길이 어찌나 뜨거운지 단단한 바닥까지 갈라지며 터지고 있었다.

한립은 금빛 보호막으로 몸을 감싸고 불길을 막아냈으나 연단로 속의 단약이 된 것처럼 숨이 막혀왔다.

정신을 집중해 열기를 참으며 <천살진옥공>을 운용한 그는 몸을 회전하며 두 주먹을 난사해 폭발적인 성신지력으로 불길을 밀어냈다.

휘잉.

회전은 점점 빨라지고 주먹이 쉬지 않고 뻗어 나가 불길 가운데 그를 둘러싼 원형의 장벽을 이루었다.

체내의 진언보륜을 역전해 이제 흐릿하게 변한 한립의 속도가 극도로 빨라졌다.

쿠쾅!

불길을 밀어낸 진공 벽이 터지면서 성신지력이 담긴 수많은 손바닥 자국들이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한립이 좌우를 향해 빠르게 주먹을 뻗자 양쪽 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불꽃 문양들이 파괴됐다.

위험에서 벗어난 그는 제단의 불길이 약해진 것에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시간을 끌었다가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

잠시 머리를 굴리던 한립은 하얀 불구슬을 취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화르르.

손바닥에서 정염불새가 변한 은염소인이 나타나 그를 은빛 불길로 감싸주었다.

화염 외투를 입은 한립은 오른팔을 들어 살펴보았다.

오른팔을 덮은 불길은 다른 곳과 달리 일곱 빛깔로 칠채화단사의 화염의 기운을 담고 있었다.

그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몸을 날려 제단으로 돌진했다.

그가 제단 안으로 진입하자 약해졌던 불길이 다시 활활 타올라 피부는 물론 뼈와 장기까지 구워지는 것 같았다.

동시에 의식세계에도 화염이 차올라 혼백이 불구덩이에서 지져지는 고통을 참아야 했다.

콧김만 뿜어도 생살이 타는 냄새가 솔솔 올라올 정도였다.

급히 연신술과 <천살진옥공>을 전력으로 발동한 그는 의식과 육신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고통을 줄였다.

그의 몸을 감싼 정염불새도 웬일로 주변 화염들을 삼키고 싶은 충동을 참으면서 한립에게 치명적인 불길을 밀어내 주고 있었다.

그러나 하얀 불구슬과 금색 화염은 제단의 중앙에 있었고 안쪽으로 갈수록 불길은 더욱 거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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