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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69화 (1,826/2,000)

2069화. 합작

*

파앗.

한립까지 떠나고 인근 땅에서 하얀빛과 함께 동사요마와 백골요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란히 붙어 선 모습이 퍽 가까운 사이 같았다.

“저 인족 수사의 의식의 힘이 대단하구나. 천골환(天骨環)으로도 속일 수 없다니.”

백골요마가 감탄하며 하얀 고리를 토해냈다.

뼈를 조각해 만든 고리는 은은하게 빛났으나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래 갇혀 있더니, 할 일도 없었는가 천골환을 정교하게 연마해 두었습니다. 5품은 되어 보이는데요?”

동사요마가 고리를 힐끗 보고 말했다.

“마기가 공급되지 않아 수련도 하지 못하니 체내의 마보를 연마하는 것 말고 달리 할 일이 있었겠느냐. 네 뇌염도(雷魘刀)도 예전보다 더 강해졌겠지?”

한숨 섞인 백골요마의 말에 동사요마가 거들먹거리려다 부서진 현명신추를 떠올리고 얼굴을 굳혔다.

“저놈의 실력이 장난이 아니라서 천골환이 있는데도 기습은 꿈도 못 꾸겠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웅산이라는 도적놈과 함께 끝장을 내는 건데요.”

“시간이 그리 오래 흘렀건만 네 성격은 그대로구나. 그러니 늘 당하는 것이다.”

백골요마는 이를 갈며 분을 감추지 못하는 동사요마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 어차피 한 번 살다 가는 거 원한이 생기면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복수는 하며 살아야죠!”

“휴……. 그나저나 네 법칙의 실까지 그자가 연화를 시켰다는 게 사실이냐? 이미 법칙 고리까지 응결한 네 법칙 정사를 어찌 그리 빨리?”

“한 가 놈이 이상한 호리병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선천선기 같습니다! 강력한 제련능력을 지녀서 제 법칙정사도 거기로 빨려 들어가 몽땅 녹아버렸어요.”

“선천선기! 그럼 그렇지, 천지의 힘을 품은 선천선기가 아니고서야 그런 일이 가능할 수가 없지.”

“그놈이 제 법칙정사 절반을 앗아 갔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되찾아야 합니다. 법칙정사를 연화시켰다고 해도 그 기운은 흩어지지 않고 남아 있을 테니 얼른 빼앗아서 다시 제련해야 해요.”

“셋째야, 저들은 수도 많고 우리보다 실력이 있어 둘만으로는 무리다. 어렵사리 자유를 되찾았는데 너를 따라 죽으란 말이냐!”

“흐흐. 둘째 형님도 참, 괜한 걱정을 하십니다! 제가 똑똑하지는 않아도 아주 멍청하지는 않다고요. 저들이 계속 다른 진안을 찾게 두면 그곳의 보물에 현혹되어 어차피 다른 형제들을 풀어 줄 것 아닙니다? 우리 다섯 형제가 힘을 합치면 저들쯤이야 뭐.”

웃음 짓는 동사요마를 보았지만 백골요마는 답을 하지 않았다.

“왜 그러십니까?”

“네 말대로 나머지 형제들을 구하려면 진안을 모두 부숴야 한다. 다섯 곳의 진안이 파괴되면 봉인대진의 힘이 약해져 흑천마조가 탈출할지 모르는데 그러면 우리라고 무사할 듯싶으냐? 당시 흑천마조가 봉인을 당한 데는 우리의 책임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백골요마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따.

“그러면 어쩌자고요? 다른 형제들을 나 몰라라 하자는 말입니까!”

“거기 누구냐! 나오거라!”

동사요마가 따지는데 백골요마가 번개처럼 몸을 돌려 손으로 허공을 찔렀다.

손가락에서 다섯 줄기의 하얀빛이 날아가 어딘가를 꿰뚫었다.

쾅!

하얀빛은 백골 녹인 것이라도 되는 듯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폭발해 금빛을 감싸고 있는 붉은 신형을 드러나게 했다.

다섯 줄기의 하얀빛은 그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거대 손으로 뭉쳐져 붉은 신형을 가르려 했다.

* * *

그 시각, 산정상 쪽으로 날아가던 한립의 몸에서 미약한 금빛 파동이 일었다.

“한 형,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곁의 교삼이 그의 이상을 느끼고 물었다.

“아닙니다.”

한립은 아무렇지 않게 날카로워진 눈빛을 숨기고 쾌속으로 날아갔다.

* * *

“당신은…….”

붉은 신형을 감싼 금빛이 자신의 거대 손을 터트리는 것을 본 백골요마의 안색이 달라졌다.

동사요마가 열 받아 검은 장도를 꺼내 내리찍으려는 걸 그가 막았다.

“하하, 오래간만입니다. 백골 수사의 백골법칙은 나날이 매서워집니다!”

금빛이 가시고 정체를 드러낸 사람은 기마자였다. 그는 이미 원래 수행을 되찾은 상태였다.

“둘째 형님, 아는 사람입니까?”

동사가 웬 놈이냐는 듯 물었다.

“셋째야, 이분은 기마자 수사시다. 진언문 미라노조의 두 번째 제자였다가 사문을 배반하고 천정에 붙은 인물이지.”

백골요마는 비웃는 어조로 소개했다.

“하하, 아 그 진언문 배신자! 이야기는 참 많이 들었습니다.”

동사요마도 누군지 알아보고 기마자를 훑었다.

“기마자 수사, 진언문을 멸하는데 큰 공을 세우고 천정에서 꽤 높은 자리에 올랐겠습니다?”

“당시 스승이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천정의 휘하로 들어간 일을 알고 있군요. 도조의 중용을 받아 선옥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 선옥 주인이라 할 수 있지요.”

기마자는 부끄러운 기색 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손에는 ‘옥주(獄主)’라 새겨진 호랑이 머리 모양의 금색 영패가 들려있었다.

그걸 본 백골요마는 비웃는 표정을 천천히 거두었다.

“퉤이! 사문을 배반한 놈들은 많이 보았지만 당신처럼 스승을 팔아 출세를 하고 떳떳한 사람은 처음입니다! 저런 말종을 보았나…….”

동사요마는 거리낌 없이 욕을 해댔다.

“명성이 자자한 마역의 창산오왕(蒼山五王)중 동사왕 아니십니까. 성격이 불같다고 들었는데 과연 그렇습니다.”

기마자는 그런 동사요마를 보면서도 잔잔히 웃음 지었다.

동사요마는 기마자가 자신을 칭찬하는 소리에 파리라도 삼킨 표정을 지었다.

“셋째 아우.”

백골요마가 주의하라는 눈짓을 보내고 나서야 동사요마는 입을 다물었다.

“선옥의 주인이 되셨다니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옥주 대인께서 여기까지는 어인 일이신지?”

“제가 홀로 여기까지 온 것은 따로 천정의 지시가 있어서는 아니니 염려하지 마세요. 게다가 제가 선옥을 관리하면서 선옥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두 분께 해를 끼치려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드리려고 찾아온 겁니다.”

“무슨 뜻입니까?”

백골요마는 기마자의 말에 겉으로는 표정을 풀었으나 속으로는 경계심을 키웠다.

“앞서 떠난 무리와 원한이 있는 것 같은데, 저도 마침 저들과 소소하게 갈등이 좀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알고 지낸 사이에 목표도 일치하니 힘을 합치자는 말입니다.”

기마자가 한립이 떠난 곳을 바라보았다.

“힘을 합치자고요? 기마자 수사는 이미 대라경에 이르렀고 시간법칙까지 익혀서 저희 형제의 도움은 필요치 않을 것으로 압니다.”

“상대도 실력이 만만치 않고 수도 많아 홀로 움직이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동사 수사도 겪어 보셨겠지만 저들 중 한 명은 특히나 더 상대하기 벅찬 감이 있지 않습니까?”

백골요마가 관심을 보이자 기마자가 웃음을 흘렸다.

“흥!”

그 말에 한립을 떠올린 동사요마가 눈을 부릅떴다.

“두 분이 하시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으니 창산오왕 중 다른 세 분을 구하고는 싶은데 흑천마조가 빠져나올까 봐 걱정이라고요? 제게 형제분들은 구하면서 흑천마조는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백골요마가 깜짝 놀라며 말했고, 동사요마도 기마자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물론입니다! 흑천마조가 빠져나오면 저도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텐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기마자의 말을 들은 동사요마가 말없이 백골요마의 결정을 기다렸다.

“……어떤 방법인지 들어나 보겠습니다.”

백골요마는 무표정하게 물었고 기마자는 입술을 달싹였다.

전음으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백골요마와 동사요마는 크게 놀란 얼굴이었다.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저도 목숨이 걸린 일이니 걱정하지 마시지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분명 합작에 조건이 있을 테니 미리 말해 주세요.”

백골요마는 과감히 결정을 내렸다.

“하하, 결단력이 있으십니다. 형제들을 모두 구한 뒤에 창산오왕은 힘을 모아 본존이 세월신등을 취하고 한립을 죽일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하하 웃음을 터트린 기마자가 살의를 드러냈다.

“한립을 죽이는 것은 우리도 바라는 바입니다. 그 대신 그놈을 죽이면 그놈이 지닌 보물은 모두 우리 것입니다.”

눈을 번득인 동사요마가 입을 열었다.

“다른 선기와 재료들은 전부 내줄 수 있지만 내가 찾는 공법경전이 있습니다. 글자가 적힌 것은 전부 내줄 수 없습니다.”

“그러지요. 우리는 선기 같은 것만 챙기고 나머지는 남겨 드리겠습니다.”

쌍방은 구체적인 협의를 하고는 사라졌다.

그들이 떠나고 오래 지나 다른 쪽 절벽에서 푸른빛이 번쩍이고 세 사람이 등장했다.

곡린, 리기마, 청포 중년인이었다.

“기마자는 선옥의 주인이면서 봉인을 더 강화하기보다는 태세의 신등을 노리고 있습니다. 저들의 행보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지 방해가 될지 모르겠어요.”

곡린은 금색 눈동자를 반짝였다.

“저들이 합세해 봉인이 깨질 가능성은 커졌으나 기마자는 수행이 높고 시간법칙까지 익혀 호삼 무리는 물론 우리도 적수가 될지 모릅니다. 저자가 먼저 우리의 본명원패를 손에 넣으면 빼앗아 올 수 없단 이야기예요……. 태세 그 자식이 우리의 본명원패를 세월신등과 연계해 두고 우리가 신등에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태세화염으로 원패를 태우게 해두어 믿을 건 호삼과 한립 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청포 중년인이 고개를 저었다.

곡린과 리기마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그의 말을 듣고는 표정이 달라졌다.

“그럼 류 형 생각에 우리는 어쩌면 좋겠습니까? 기마자가 아직 태세전에 이르지 못했을 때 우리가 시간을 끌어볼까요?”

“기마자가 백골왕, 동사왕 등과 손을 잡지 않았으면 막을 수 있었겠으나 이제는 늦었습니다.”

초조해진 곡린의 질문에 청포 중년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방법이 없단 말입니까?”

리기마가 참다못해 끼어들었다.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만 위험을 감수해야지요.”

청포 중년인은 팔뚝 크기의 인형을 불러냈다.

넉넉한 품의 긴 치마를 입은 청수한 여인의 모양을 한 인형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청포 중년인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은 인형의 몸은 왼쪽은 하얗고 오른쪽은 까매서 각각 온화한 대갓집 규수같은 분위기와 독살스러운 악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이건…….”

“특수한 재료를 이용해 만든 ‘선악이심(善惡二心)’이라 이름 붙인 괴뢰입니다. 본명원패를 되찾으려면 이 수밖에는 없을 듯싶군요.”

청포 중년인은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얼굴이었다.

“이걸로 어떻게 말입니까?”

놀란 곡린의 물음에 청포 중년인이 회백색 결계를 치고 무어라 대답했다.

* * *

한립 일행은 의식을 퍼트리고 조심스럽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진 넘게 올라갔을 때 눈앞이 밝아지고 비교적 완만한 지형의 백옥 광장이 나타났다.

광장 주위로 품종을 알 수 없는 높은 나무들이 새하얀 이파리를 지닌 채 자라고 있어 주변 구름과 어우러져 절경이었다.

광장에 별다른 함정이나 결계가 없는 것을 확인한 그들은 아름다운 풍경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날아갔다.

광장 건너편에 세 개의 계단이 어딘가로 이어져 있었고, 각각 화원궁(火元宮), 건토전(乾土殿), 목신총(木神塚)이라 적힌 백옥 석패가 세워져 있었다.

호삼, 교삼 등은 눈이 밝아져서 각자 계단을 바라보며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표정이었는데 문중, 뇌옥책, 소안천 세 사람이 흩어져 세 계단 앞을 가로막았다.

“이미 진안이 두 곳이나 파괴되었습니다. 더는 안 돼요. 흑천마신이 세상에 나타나면 모두 죽은 목숨이란 말을 왜 알아듣지 못하시는 겁니까!”

뇌옥책이 한 손을 들어 길을 막았다.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호삼과 교삼이 날아올라 중간의 건토전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그만두지 않으면 저도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목소리가 가라앉은 뇌옥책이 수십 자루의 금색 비검을 소매에서 날렸다.

그걸 본 한립이 동공을 수축했다.

6, 70자루의 비검들은 하나같이 강렬한 법칙 파동을 내뿜은 8품 이상의 선기였고 몇몇 빛이 요란한 비검들은 7품은 되는 것 같았다.

호삼과 교삼은 그래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뇌옥책은 그들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검결을 맺어 6, 70자루의 비검으로 통천검진을 펼치려 했다.

화아앗!

그러나 검진이 완성되기 전 눈부신 암홍색 빛이 교삼의 몸에서 튀어나와 검진을 가렸다.

부들부들 떨린 검진이 흩어져 비검들로 분리되자 그 사이 호삼이 천호화혈도를 들어 허공을 갈랐다.

부웅!

핏빛 도광이 천지를 가르며 진득한 혈홍색 기운을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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