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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68화 (1,825/2,000)
  • 2068화. 퇴마

    *

    환진 내부, 한립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놀랍게도 진법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 의식의 힘이 아니라 물 속성 법칙을 토대로 구축된 환진은 아닐까?”

    연신술을 운용해도 벗어날 수 없자 한립은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정말 끝없는 해저로 가라앉는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 * *

    대략 일각이 지났을 때, 대전 안의 남색 제단 주변으로 원형 진법이 발동되었다.

    남원자는 진법을 찬찬히 살핀 뒤 남안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안은 손목을 돌려 불긋불긋 꽃이 핀 연못 정원이 그려진 지우산을 펼쳐 들었다.

    우산이 휘릭! 돌기 시작하더니 그 안의 연못이 살아난 것처럼 물결치고 있었다.

    “시작하지!”

    우산이 높이 날아올라 제단 위쪽을 가로막고, 남원자와 오누이는 동시에 수결을 맺었다.

    찰랑!

    우산 끝에서 물방울들이 튀어나와 허공을 적시고 연못을 노닐던 비단잉어들이 튀어 올라 궤적을 그리면서 제단의 금제를 맴돌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제단 위에서 금색 화염이 유유히 타오르는 동안 곁의 남색 보따리가 격렬하게 반응을 보였다.

    빵빵하게 부푼 보따리 안에서 콰르르, 하는 물소리가 격해져서 남원자와 남안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었다.

    쿵!

    남색 보따리 안에서 열여덟 마리의 수룡이 튀어나와 남원자와 남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거목 크기의 수룡들은 남색 수정처럼 매끈한 몸으로 강렬한 법칙 파동을 일렁였다.

    “조심해야 한다.”

    남원자가 당부를 한 뒤 수룡들이 그들이 펼쳐 놓은 진법과 충돌했다.

    콰콰쾅!

    수룡들은 뜻밖에도 남색 뇌전을 일으켜 제단 전체를 둘러쌌고, 그 위력에 놀란 남안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서둘러 마음을 가라앉힌 그녀는 수결을 바꾸어 가며 남원자를 도와 지우산에 대량의 선령력을 불어 넣었다.

    후웅!

    뇌전을 휘감은 열여덟 줄기의 수룡들이 빼곡하게 주술문자를 띄운 지우산으로 미친 듯이 빨려 들어갔다.

    우산의 흡입력이 뇌전 수룡에 대항하기는 했으나 제단 주변의 법칙 파동은 별로 약해지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구나. 금어산(錦魚傘)도 이 이상은 버티지 못할 거야. 보물을 얻으려면 모험을 하는 수밖에…….”

    “알겠어요!”

    두 사람은 진법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기괴한 수결을 맺고 물 속성 법칙의 힘을 일으켰다.

    주위로 두 겹의 영역이 나타나 가느다란 실들을 서로 연결하고 융합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남원자와 남안의 미간에서 원영 소인이 나타나 중앙에서 손을 맞잡고 합체를 시도했다.

    융합된 원영 소인은 체구가 거의 평범한 사람처럼 커졌는데 얼굴이 흐릿해 성별이 구분되지 않았다.

    이어 결합된 영역에서도 강대한 법칙의 힘이 흘러나와 융합 원영 소인의 몸에다 특수한 물의 갑옷을 응결하고 있었다.

    물의 갑옷을 입은 융합 원영은 기운이 폭증해 가부좌를 틀고 있는 두 육신을 놔두고 펄쩍 제단으로 뛰어올랐다.

    스륵.

    융합 소인의 손짓에 뇌전과 물의 장막이 부드럽게 갈라지고 지나갈 수 있는 틈이 생겼다.

    제단 내로 진입한 융합 원영을 향해 열여덟 마리 수룡들이 몸을 틀어 쇄도했다.

    그걸 본 융합 원영은 수결을 맺은 손을 양쪽으로 뻗어 원형 방패를 만들었다.

    쿠콰쾅!

    방패 위로 물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굉음이 터져 나오고 융합 원영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어차피 물러설 길이 없었기에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제단 안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쿠쿠쿵…….

    방패가 터지고 융합 원영이 입은 물의 갑옷이 서서히 흩어지고 있었다.

    위쪽에서는 지우산에 그려진 연못에서 물이 말라 그 안을 노닐던 십여 마리의 아름다운 비단잉어들 대부분이 사라져갔다.

    얼굴을 찡그린 융합 원영은 고집스럽게 앞만 보고 나아갔다.

    “으아아!”

    융합 원영은 붕괴하기 직전 남색 보따리에 손이 닿았고 힘차게 끌어당겨 제단에서 끄집어냈다.

    보따리가 사라진 제단은 남색 빛을 반짝이고 수룡들이 액체로 변해 보따리 속으로 싹 사라져 버렸다.

    그때 제단 위 지우산에 그려진 연못이 마침내 바닥을 보이고 비단잉어들이 전부 사라져 화륵, 불길에 사로잡혀 타들어갔다.

    제단에서 겨우 물러난 융합 원영은 다시 작은 원영으로 분리되어 각각 남원자와 남안의 몸으로 들어갔다.

    거칠게 숨을 들이마신 그들은 번쩍 눈을 떴다.

    남안이 남색 보따리를 들고 희열이 가득 차 남원자를 향해 무어라 말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돌연 제단이 심하게 흔들리며 거미줄처럼 금이 좍좍 벌어졌다.

    제단이 조금씩 무너져내리자 남원자는 얼른 남안의 손을 잡고 날아올라 대전을 벗어나 물안개가 자욱한 광장으로 달아났다.

    두 사람이 광장에 내려설 때쯤에는 물안개가 차츰 옅어지고 있었다.

    이전보다 더 극심한 고통 속에 있던 일행들이 눈꺼풀을 바르르 떨며 깨어나려는 조짐을 보였다.

    만장 바닷물 속에서 질식해가던 한립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깨어나자마자 전방의 남색 대전이 진동하고 남 씨 오누이가 바닥으로 내려서는 것을 보았다.

    인상을 찡그린 그가 의심을 품었을 때, 대전 안에서 콰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전 쪽 바닥을 시작으로 거대한 검은 균열이 갈라져서 절벽 전체를 가르고 있었다.

    “제길…….”

    뇌옥책이 놀라 대전 쪽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거대한 검은 균열은 남색 대전까지 반으로 갈라 무너뜨리고 있었다.

    한립은 갈라진 대전 안에 금색 화염 만이 제단 위에 떠서 거의 꺼져가는 것을 발견했다.

    눈썹을 꿈틀한 그는 체내의 대오행환세결을 급속도로 운영해 시간법칙의 힘으로 멀리서 불꽃을 끌어들였다.

    어차피 제단의 금제는 남 씨 오누이에 의해 파괴되어서 금색 불꽃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그에게 날아들었다.

    위태롭던 대전이 완전히 허물어지고 제단의 잔해마저 끝 모를 검은 균열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다 끝났어…….”

    딱딱하게 굳은 뇌옥책이 허탈하게 말했다.

    제단 아래에서 강대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이 감지되고 있었다.

    “태세 노인네, 본 왕을 영원히 가둬둘 수는 없을 거라 하지 않았더냐! 우하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균열 안에서 흘러나왔다.

    잠시 후, 평범한 사람보다 대여섯 배는 큰 백골 요마가 날아올랐다.

    옥처럼 반짝이는 백골은 내장이나 피부는 없는 대신 산양의 두개골을 달고 등 뒤로 뼈 날개까지 펼치고 있었다.

    상대가 동사(銅獅) 요마와 비슷한 기운을 지녔다는 점에서 한립은 미간을 좁혔다.

    “너희가 본 왕을 꺼낸 것이냐?”

    백골 요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립 등은 대답 없이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무도 자신의 말에 답하지 않는 사이 백골 요마는 남안이 든 남색 보따리를 들고 눈구멍에서 녹색 눈알을 굴렸다.

    “그게 너희들 손에 있는 것을 보면 너희가 봉인을 풀었을 터. 본 왕은 요마지만 은혜는 갚을 줄 안다. 이 유수첩(幽遂鉆)을 상으로 내리지.”

    백골 요마는 손을 펼쳐 뾰족한 남색 빛을 날렸다.

    여덟 개의 남색 돌들이 날아올라 진한 물 속성 법칙의 힘을 발산했다.

    일행들은 안색이 달라졌다.

    유수첩이 귀해서라기보다는 백골 요마의 행동이 당황스러워서였다.

    “허! 대답도 하기 싫고, 상도 받기 싫은 것이냐? 이것들이…….”

    한립 무리가 남색 돌을 받지 않는 것을 본 백골 요마는 당장 표정이 싸늘해져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여덟 개의 유수첩들이 파공음을 날리며 날아들어 폭발했다.

    퍼펑!

    강렬한 파동에 코를 찌르는 악취가 섞인 연기가 실려 나왔다. 그리고 주변 공간이 부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츠츠츳 거리는 소리를 냈다.

    진작 대비하고 있던 무리는 각자 신통을 펼치며 뒤로 물러섰다.

    “얌전히 죽지는 않겠다면 어디 제대로 놀아주마!”

    냉소를 흘린 백골 요마가 소리를 질렀다.

    대전이 있던 절벽 전체가 허물어 지면서 방대한 체구를 지닌 다양한 요마들이 지하에서 솟구쳐 그들을 공격했다.

    한립은 청죽봉운검 한 자루를 꺼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태을 후기의 머리 셋 달린 올빼미 요마를 베었다.

    쉭!

    뇌전을 품은 검빛이 단번에 요마를 벨 줄 알았는데 예상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올빼미의 세 머리에서 눈을 찌르는 금빛이 나와 금색 검빛을 막고 중간 머리가 목을 수축했다가 뻗으며 검빛에 대항하는 사이, 양옆 머리가 입을 벌려 한립을 향해 나선형의 파문을 날려 보냈다.

    양옆에서 날아드는 나선형의 금색 파문 때문에 공기의 흐름이 느릿해지고 있었다.

    천살진옥공을 운용한 한립은 등 뒤로 금색보륜을 불러내 두 금색 파문에 저항하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치지직!

    화르륵.

    검을 든 손에서 뇌전이 뻗어 나가 삼두효(三頭梟)의 가슴을 강타하고 은색 화염이 나타나 요마를 휘감았다.

    과정이 복잡했지만 시간법칙의 보조 하에 벽사신뢰와 정염불새가 힘을 합쳐 삼두효는 몇 호흡 만에 제거당했다.

    한립은 단 한 마리만을 상대했지만 남 씨 오누이 쪽은 훨씬 북적였다.

    남안이 든 남색 보따리에 흥미를 느낀 태을경 요마 여덟 마리가 그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뜬 한립은 보따리가 웅산이 손에 넣은 고검과 같이 제단의 보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망설이던 한립이 그들을 도와주려는데 남안이 눈을 번득이더니 수결을 맺은 손으로 보따리를 가리켰다.

    팟-!

    손끝에서 남색 불빛이 날아가 보따리를 깨우자 뇌전 소리가 콰릉콰릉 울리며 남색 빛의 소용돌이가 빠져나왔다.

    보따리 안에 수뢰대진(水雷大陣)을 품고 있는 듯했다.

    “가라!”

    여인의 외침에 소용돌이 안에서 여덟 마리 수룡들이 빠져나와 요마들과 물어뜯고 싸우기 시작했다.

    선령력 소모가 큰지 남안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걸 본 한립은 깜짝 놀랐다.

    대체 얼마나 급히 높은 선기이기에 딱 한 번 사용으로 저렇게 힘들어 한단 말인가?

    선령력 뿐 아니라 법칙의 힘도 상당히 들어가는 듯했다.

    겨우 금선 후기의 육신을 지닌 웅산이 대황고검을 발동했던 것을 떠올리면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른 요마가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수룡들로 요마들의 퇴로까지 막게 하고, 수뢰로 요마들을 재로 만들어 버린 남안은 힘이 고갈된 듯 주저앉았다.

    그러자 남원자가 서둘러 그녀를 부축하고 대신 남색 보따리를 넘겨받으며 남색 단약을 꺼내 입에 넣어주었다.

    여태껏 지켜만 보던 백골 요마가 이를 보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 나머지 요마들을 뒤로 물렸다.

    그들을 쭉 훑어본 백골 요마는 뼈 날개를 펄럭여 남은 요마들과 함께 멀어져 갔다.

    요마와 싸우느라 흩어졌던 일행이 모여들었다.

    뇌옥책은 남원자가 든 남색 보따리를 보고 난색을 표했으나 결국에는 누구도 탓하지 않고 모두를 향해 공수했다.

    “이곳 금제는 손상 정도가 심해 복구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습니다. 다들 다른 곳에 혹시나 남은 보물이나 쓸만한 물건이 있나 살펴보고 오셔도 좋습니다.”

    그는 나머지 사람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중을 데리고 급히 진법이 있던 곳으로 날아갔다.

    남원자 오누이는 바로 가부좌를 틀고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특히 남안은 기력소모가 너무 심해서 단약을 복용하고도 낯빛이 좋지 않아 남원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손에 든 남색 보따리를 보는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한립은 이를 지켜보다 다른 사람들처럼 인근을 수색하러 떠났다.

    폐허가 된 산봉우리는 물 속성 재료 몇 개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물건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일각이 지나 뇌옥책, 문중이 돌아왔다.

    “수리를 마쳤습니다. 가시죠.”

    뇌옥책은 소안천을 불러 문중과 함께 먼저 출발하고 교삼 등이 그들을 따라갔다.

    한립은 막 출발을 하려다 찜찜한 느낌에 뒤를 돌았다가 고개를 젓고 날아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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