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6화. 검을 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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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게 표정을 굳힌 한립이 번득 그 자리에서 사라져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쉬쉬쉬쉭…….
갈기 사내가 움찔하며 멈추었을 때 육십 장 높이의 금색 거검이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표정이 변한 갈기 사내는 오른손으로 검은 망치를 불러내 붕! 휘둘렀다.
현명오철(玄冥烏鐵)을 지하 화맥으로 녹이고 마역을 돌며 모은 수백 가지 광석을 더해 탄생시킨 ‘현명신추(玄冥神錘)’라는 마족의 보물이었다.
이 망치는 무게가 상상을 초월해서 평범한 태을경 수사는 들어 올릴 수도 없었다.
서걱!
그런데 검기가 검은 망치를 반으로 가르며 부드럽게 미끄러져 내려가 갈기 사내의 팔까지 도달했다.
“……!”
기겁한 갈기 사내는 입에서 검은 구슬을 뿜었다.
펑!
검은빛이 갈기 사내를 감싸고 금색 검기를 맞이했다.
촤아앗.
검은빛마저 둘로 갈리고 금색 검기의 음산한 기운이 검은빛을 흩어버렸으나 갈기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금빛이 번득 사라져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바로 금색 고검을 든 웅산이었다.
창백한 얼굴로 들뜬 표정을 숨기지 못한 그는 손에 든 고검을 내려다보며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검이며, 여기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천여 장 밖 허공에서 갈기 사내가 검은빛을 번득이고 나타났다.
일격에 원기를 상해 얼굴색이 나빠진 그는 잘린 검은 망치를 보며 속이 쓰려왔다.
“대황고검(大荒古劍)!”
갈기 사내는 웅산의 손에 들린 고검을 보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의 검은 망치를 가른 웅산은 더욱 흥분해 가슴을 들썩였다.
“으하하! 마족들은 은혜도 원수로 갚으려 하는구나! 받아라!”
웅산이 소리치면서 대황고검에서 화려한 검빛을 일으켜 날아들었다.
번득 사라진 그는 백 장 높이의 금색 검빛으로 변해 갈기 사내를 가르러 날아갔다.
“겨우 금선 주제에 선검을 하나 쥐었다고 기고만장해서는! 날 이기려면 백만 년은 더 수련을 해야 할것이다!”
갈기 사내도 웅산의 태도에 격노하며 검은 기운을 품은 장도를 불러냈다.
손잡이에 사람의 것도 아니고 짐승의 것도 아닌 해골 머리가 박힌 장도는 기다란 도신에 번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검은 뇌전을 치직거리는 장도는 현명신추 이상의 보물같았다.
촤지지직!
장도에서 검은 기운이 빠져나와 날아드는 금색 검빛과 충돌했고 동시에 백여 개의 검은 뇌전 모양 수정실들이 밀려들었다.
검은 뇌전빛 속에서 거대한 검은 사자가 나타나 금색 검빛으로 달려들었다.
음산한 기운이 섞인 뇌전 법칙파동이 검은 뇌전 사자를 이루고 웅산이 변한 검빛과 맞붙었다.
쿠콰콰콰…….
그 결과 검은 뇌전 사자는 반으로 갈라지고 검은 뇌전 실들은 폭발해 흩어졌다.
몸을 부르르 떤 갈기 사내는 쿵쿵, 뒤로 물러나며 이럴 리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뇌전법칙에 당한 금빛도 흩어지고 웅산이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여전히 눈에 광기가 흘렀다.
멀지 않은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립이 눈을 반짝였다.
금선 후기에 불과한 웅산이 대황고검을 얻었다고 태을 후기의 갈기 사내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4품 선기라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3품 선기는 되는 것 같았다.
한립은 자기도 모르게 부럽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하다 한들 자신의 법칙에 맞는 선기라야 쓸모가 있었다.
갈기 사내와 한립 그리고 웅산의 싸움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서 다른 마족들은 이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족은 원래 선역의 수사들과 적대관계였고, 태세선존에게 오래 구금당한 터라 원한이 뼈에 사무친 상태였다.
그러나 모든 마족이 한립 일행을 공격한 것은 아니었다.
세월탑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들은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않고 검은 둔광으로 변해 날아갔다.
한립이 그걸 보고 눈썹을 꿈틀했으나 마족 여덟 명이 그를 향해 살기등등하게 다가오고 있어 신경을 껐다.
눈빛이 서늘해진 그는 청죽봉운검 36자루를 불러내 금색 뇌전을 품은 검기를 날렸다.
음기(陰氣)를 기반으로 하는 공법을 수련한 마족들은 청죽봉운검의 뇌전법칙을 감지하고 방어하려 했으나 한립의 등 뒤로 진언보륜이 떠올라 대량의 금색 파문을 수백 장까지 퍼트렸다.
그 안에서 움직일 수 없던 마족들은 금색 검기에 사정없이 몸이 잘려나갔다.
퍼퍼펑…….
뇌전 속에서 원영도 달아나지 못하고 그들이 가루가 되는 동안 한립은 진언보륜을 숨겨 나머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싸움을 시작하자마자 마족 태을경 수사 여덟을 제거한 그를 보고 다른 마족들이 웅성거리며 그를 주시했다.
뇌옥책 등도 놀라는 중이었다.
한립은 다른 이들이 어떻게 쳐다보든 신경 쓰지 않고 뇌전빛을 번득이며 사라져서 천여 장 밖으로 이동했다.
진언보륜을 띄워 금색 파문을 일으킨 그는 근처에 있던 마족 아홉 명을 가두고 검기로 갈라버렸다.
파죽지세로 태을경 마족 십여 명을 죽인 한립을 보고 마족들은 꼬리를 말고 달아나려 했다.
콰르릉!
한립은 뇌둔술을 이용해 따라가려 했지만 연달아 천둥소리가 들리고 시꺼먼 뇌전 영역이 퍼져 일대를 장악했다.
검은 영역 안에서 갈기 사내가 꼿꼿이 몸을 세우고 얼음장 같은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웅산도 다른 태을경 마족들을 가로막고 싸우고 있었는데, 보물을 얻은 뒤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는지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어디서 힘을 끌어와 적을 죽였다.
한립은 검은 뇌전 영역 안에서 금색 뇌전빛이 얼음처럼 녹는 것을 보았다.
주변을 맴돌던 청죽봉운검의 힘도 약해진 게 느껴졌다.
“뭐 하는 놈인지 모르겠으나 살아서 빠져나갈 생각은 말거라!”
갈기 사내는 영역으로 한립을 가두고 손에 든 검은 장도를 내리쳤다.
150여 가닥의 뇌전법칙 정사가 뿜어져 나와 검은 뇌룡(雷龍)을 이루고 천지를 멸할 것 같은 기운을 뿜었다.
뇌룡은 한립의 머리 위로 이동해 거대한 발톱을 휘둘렀다.
하늘이 어둑해지고 마치 발톱에 하늘이 갈라져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갈기 사내도 역전진륜 같은 가속 신통을 쓰는지 불가사의할 정도로 공격이 빨라서 한립이 검은 영역을 인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뇌룡의 발톱이 눈앞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가슴이 서늘해진 한립은 주먹을 뻗었다.
쿠쿵.
금색 주먹 허상이 긴 꼬리를 남기며 날아가 검은 용발톱과 부딪쳤다.
주변 청죽봉운검들도 주먹 허상을 따라가 푸른 검기 연꽃을 이루고 한립의 앞을 막아섰다.
촤악!
금색 주먹 허상이 뇌룡의 발톱에 찢겨나갔고, 다음은 푸른 검기 연꽃이었다.
한립의 본명 선기인 청죽봉운검은 비록 영역의 제약을 받아 뇌전법칙은 제대로 쓰지 못했으나 검진 자체의 위력만으로도 주먹 허상을 능가했다.
채채채챙!
격렬하게 떨리며 버티던 푸른 연꽃이 뚫려 36자루의 청죽봉운검들로 흩어졌고, 검은 용 발톱은 잠시 멈추었다가 한립을 향해 떨어졌다.
한립이 바라던 게 바로 이 잠깐의 지연이었다.
눈부신 금빛이 빠르게 퍼져 뇌룡을 감싸고 한립의 등 뒤에는 진언보륜이 떠서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단시횃불이 떠올라 단시화경을 퍼트려 한 번 더 뇌룡을 감쌌다.
한립의 시간영역, 진언보륜, 단시화경이 동시에 뇌룡을 제압해 속도를 열 배까지 늦추었다.
“뭐야!”
갈기 사내는 뇌룡이 멈추자 가슴이 철렁했다.
시간법칙을 수련한 한립의 실력이 보통이 아닌 것 같아 전력을 다해 영역을 펼쳐 억누르고 시간정사까지 소모해 가며 전광맥역전(電光脈逆轉) 비술을 사용해 가속한 것이었다.
이걸로 한립을 죽이거나 중상을 입힐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실패했다.
원래 불같은 성정을 지녔던 갈기 사내는 태세선존에게 오랜 세월 갇혀 지내면서 성격이 더욱 괴팍해졌다.
그래서 봉인을 풀어주었든 말든 진선계 수사들을 모조리 죽여 분풀이라도 하려고 했던 것인데 한립의 실력을 보자 정신이 맑아졌다.
반면 뇌룡을 붙들어둔 한립은 너무 방심했다고 자책했다.
처음부터 시간영역을 펼쳤으면 아예 위험에 처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반성하면서도 빠르게 손을 놀렸고, 그의 수중에는 어느새 현천호리병이 들려있었다.
바로 그때 옆에서 쿵, 소리와 함께 금빛이 커졌다.
제단에서 날아든 금색 화염이 그곳에 있었다.
제단이 부서지고 모든 일이 갑작스럽게 벌어져 깜빡 그 존재를 잊고 있었다.
금색 화염은 시간영역과 공명을 해서 몇 배로 커지더니 진언보륜과 단시화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활활 타올랐다.
농염한 시간법칙의 파동이 화염에서 폭발해 주변 시간영역을 뒤흔들고 있었다.
“이건…….”
깜짝 놀란 한립이 손을 뻗어 금색 화염과 현천호리병박에 법결을 던져 넣었다.
금색 화염 안으로 스며든 한립의 시간법칙의 실이 맹렬하게 빛을 발하고 화염과 함께 금빛 그림자로 변해 뇌룡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비취색 빛을 발한 현천호리병박은 퐁! 하고 비취색 빛을 뿜었다.
호리병박의 비취색 빛이 극히 빠른 속도로 뇌룡을 감싸고 끌어당겼지만 갈기 사내가 백 개가 넘는 법칙정사로 응결한 것이라 빨리 끌어올 수가 없었다.
이때 금빛이 날아들어 뇌룡을 때렸다.
치직.
작은 소리와 함께 뇌룡이 둘로 갈라졌다.
한립은 뜻밖의 효과에 크게 기뻐했고 갈기 사내는 경악했다.
그러나 금색 화염이 갑자기 요동치면서 시간법칙의 힘으로 주변 진언보륜과 단시화경에 영향을 미쳐 뇌룡의 속박이 일순 느슨해졌다.
이때 눈을 반짝인 갈기 사내가 검은 뇌전빛을 강하게 일으키며 빙글 돌아 거목 크기의 거대 사자 마수로 변신했다.
고동색 피부를 지녀 구리 사자상처럼 변한 그는 몸에 검은 번개 문양이 가득하고 머리에는 굽은 뿔이 두 개나 자라 뇌전을 타닥거렸다.
동사마수(銅獅魔獸)의 두 뿔에서 금세 작은 태양같은 검은 뇌전 덩어리가 뭉쳐졌다.
둘로 갈라진 뇌룡도 수축해 크기 차이가 나는 검은 뇌전 고리로 변해 호리병박의 비취색 광채와 진언보륜, 단시화경의 제약에서 벗어나 빠져나가려 했다.
쉭!
“어딜!”
표정이 굳은 한립이 입에서 푸른빛과 금빛을 방출했다.
푸른 빛은 현천호리병박으로 들어가 비취색 광채 속에서 분분히 녹색 수정실들을 만들어냈다.
훅!
속도가 몇 배는 빨라진 비취색 광채가 두 뇌전 고리들을 따라잡아 감싸고 수정실 3, 40가닥이 검은 고리를 칭칭 감았다.
금빛은 이십여 가닥의 법칙 정사로 변해 금색 화염을 가두는 그물이 되었다.
금색 화염의 불안정한 시간법칙의 힘이 차단되자 진언보륜과 단시화경은 위력을 회복했다.
이에 빠르게 수결을 맺은 한립이 진언보륜의 범위를 확장해 두 개의 검은 고리를 향해 보내자, 동사마수가 그걸 보고 놀라 포효하며 전신의 번개 문양에서 빛을 일으켜 머리 위의 뿔로 기운을 모았다.
두 개의 검은 뿔은 투명하게 변해 다시 밝은 뇌전을 터트렸다.
비취색 광채 속의 검은 고리가 힘차게 반항하면서 동사마수 입안으로 쏙 사라지고, 나머지 작은 고리는 금빛 파문에 갇혀 호리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크하학!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동사마수가 괴성을 내지르자 동굴이 쩌렁쩌렁 울렸다.
냉소를 흘린 한립이 금빛 그림자로 변해 그를 향해 다가가자 시간법칙이 그를 포위하려 했다.
“네 놈, 기억해 두겠다!”
몇 번이나 한립의 시간법칙에 공격에 당한 동사마수는 거구의 몸을 검은 뇌전 빛으로 변화시켜 쏜살같이 사라졌다.
동굴 안 다른 마족들은 동사마수가 달아나는 것을 보고 더는 싸우지 않고 서둘러 달아났다.
한립은 그들을 쫓지 않고 시간영역과 진언보륜 등을 거두었다.
시간영역이 사라지고 금색 화염도 줄어들어 작아져 있었다. 뇌룡을 공격하느라 힘을 썼는지 처음보다도 크기가 작아져 있었다.
한립이 미간을 좁혔다.
화세형충과 비슷한 신통을 지닌 것 같아 좋아했는데, 소모성인지 앞으로 한 번 밖에는 더 쓰지 못할 것 같았다.
아쉽기는 했지만 한립은 수결을 맺어 화염을 법칙정사로 감싸 꽃 모양 봉인을 해두고 넣어 두었다.
한편 부상을 당했던 뇌옥책, 남원자 등이 간신히 수십 명의 태을경 마족들을 상대하고 있었기에 한립은 달아나는 마족들을 추적하지 않았다.
뇌옥책등은 마족들이 사라지자마자 급히 몸을 회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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