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4화. 고검(古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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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빛과 몽둥이의 빛들이 허공을 갈기갈기 찢고 연달아 쿵쿵쿵쿵!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렬한 기운이 파도처럼 사방으로 빠져나가 금룡과 곤붕 등의 허상을 만들고 낭아봉이 응결한 산만한 허상들을 부수고 있었다.

“이건 말이 안 돼…….”

사섬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손에 든 낭아봉이 콰직, 깨졌다.

뇌전을 품고 떨어지는 검 끝에 어깨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그녀는 뒤로 밀려나면서도 상처 부위에서 퍼지는 금색 뇌전 때문에 괴로워했다.

사섬의 겉 피부는 대라 초기 수사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단단했지만 내장은 그렇지 않아 이렇게 뇌전이 난동을 부리게 놔두면 앞으로의 수행에 불리했다.

이에 사섬은 이해타산을 따져보고는, 늪지 쪽으로 하강하며 달아날 생각을 했다.

그 모습에 근류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깨닫고 떠나려 했으나 붉은빛이 번뜩이고 교삼이 그를 따라붙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호삼도 그의 퇴로를 차단하고 나타났다.

한립은 급히 추격하는 대신 삼두육비의 거마의 모습으로 공중에 떠서 노기 어린 눈으로 지면을 훑었다.

이때 땅속에서 앓는 소리가 들리고 온몸에 은색 불길이 붙은 사섬이 날아올랐다.

의복이 형편없이 타버리고 머리를 산발한 이는 사섬이었다. 그 뒤로 은색 화염으로 이뤄진 거대 불새가 날개를 펼치고 계속 추격 중이었다.

산악거원 머리를 하고 씩 웃은 한립은 허둥지둥 날아오르는 사섬을 쫓아가 검을 휘둘렀다.

뇌전빛을 만발하는 거대 검기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걸 본 남원자 오누이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그들과 사섬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목숨을 잃을 지경에 이르면 방관할 수 없어서였다.

두 사람이 고민하다 어쩔 수 없이 나서려는데 사섬이 증오를 담아 외쳤다.

“오늘 일은 기필코 갚아줄 것이다!”

그녀의 미간이 갈라져 용 눈알만 한 새하얀 구슬이 날아오르더니 떨어지는 검기를 강타했다.

“제길, 요단을 폭발하려나 봅니다!”

뇌옥책이 놀라 무의식중에 소안천을 보호하듯 옆으로 다가섰다.

“아니에요, 저건 섬월주(蟾月珠)예요!”

막 걸음을 떼려던 남원자 오누이가 놀라 소리를 높였다.

그 소리에 교삼은 관련 정보를 떠올렸다.

월궁종(月宮種)인 특수한 두꺼비 요물은 본명 요단 말고 체내에 섬월주라는 보물을 지녀 달의 정기를 흡수함으로써 빠르게 수행을 높일 수 있다고 들었다.

그 중요성은 원영과 요단 바로 다음이었다.

사섬이 바로 월궁종 두꺼비로 대라경까지 이르는 동안 섬월주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달의 정기를 담아놓았을 것이니 그게 터지면 얼마나 위력이 강할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이 놀라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수행이 가장 약한 웅산이 제일 먼저 달아났고, 나머지 사람들도 뒤를 이었다.

한립도 불길한 마음에 검을 거두려 했지만 늦고 말았다.

쨍강!

섬월주는 검의 뇌전이 닿자 깨져버렸다.

고공의 하늘이 새하얗게 변했다가 새까맣게 변해 갑자기 밤이 도래한 듯 청량한 달빛이 천 리를 감싸고 은색 광채를 내뿜었다.

짙은 달빛이 순식간에 응결해 맑은 소리를 내며 깨져나가고 있었다.

거대한 은색 거울이 갈라지고, 시커먼 공간균열 속에서 오색 광채와 공간 폭풍이 밀려 나오자 그 무시무시한 공간 법칙의 힘에 모두 간담이 서늘해졌다.

교삼 등도 그걸 보고 각자 신통을 발휘해 도처에 퍼진 균열을 피했다.

크고 작은 공간균열이 어찌나 많은지 다들 허겁지겁 피하느라 난장판이었다.

소안천은 방심하다 뒤쪽에 갑자기 발생한 균열에 빨려 들어갈 뻔했지만 뇌옥책이 부상도 돌보지 않고 힘을 써 그녀를 구해냈다.

두 번이나 자신을 구해주자 소안천의 심장이 만년빙하로 이루어졌다 해도 녹을 수밖에 없었고 전혀 마음이 가지 않던 뇌옥책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근류는 그런 운도 따라주지 않았는지 중앙에 포위되어 있다가 가장 늦게 달아나 허공에 횡으로 생겨난 거대 균열에 빨려들고 말았다.

어렵사리 몸을 비틀어 균열을 비켜 지나가려 했으나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거센 흡입력에 원영도 달아날 틈 없이 집어 삼켜졌다.

섬월주가 붕괴된 중심에는 당연히 공간균열이 밀집해 있었는데 사섬은 온데간데없고 한립만이 등 뒤에서 금색 보륜을 띄우고 떠 있었다.

다른 수사들이 보니 그는 비취색 호리병박을 들고 앞쪽 허공으로 입구를 기울이고 있었다.

호리병박 입구에서 녹색 소용돌이가 회전하며 주위에 흩어진 은백색 가루들을 모아 작은 구슬을 응결하는 중이었다.

바로 섬월주였다.

사섬이 오랫동안 모은 달의 정화는 그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시간법칙의 힘으로 주변 균열들을 멈춰놓고 모으고 있었다.

정염 불새까지 거둔 그는 공간균열을 요리조리 피해 지면으로 내려왔다.

긴박감 넘치는 전투가 끝났지만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각자 단약을 꺼내 요양을 하기 시작했다.

“모두 정말 감사드립니다.”

휴식을 마친 한립이 먼저 일어나 일행을 향해 손을 모아 인사했다.

사섬이 그들에게 나서라고 했을 때 그러지 않은 데는 각자의 이유가 있었겠으나 결국에는 그를 도운 셈이었다.

“한 수사가 출중한 실력으로 해낸 일이고, 저희와는 무관합니다.”

뇌옥책도 훨씬 나아진 얼굴로 일어섰다.

“홀로 대라경 수사를 쫓아 보내고 오늘 딴 세상을 알게 된 기분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칭찬하는 웅산의 눈빛에 만감이 교차했다.

눈썹을 끌어올린 교삼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이 없었다.

“시간이 적잖이 지체되었으니 어서 가지요.”

한립은 이렇게 말하고 드디어 석문의 빛의 장막으로 들어갔다.

눈앞이 환해진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회색 굴속이었다.

널찍한 굴은 멀리 이어져 있어 끝이 보이지 않았으나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검은 서리가 맺혔다.

뇌옥책 등도 도착해 주변을 살폈다.

미리 와있던 곡린은 보이지 않았다.

한립을 시작으로 그걸 눈치챈 이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는데 특히 뇌옥책, 호삼, 교삼 등은 초조한 기색을 보였다.

“가보시지요. 안전한 곳은 아닐 테니 다들 조심하면서 이동해야 합니다.”

한립이 일행을 이끌었다.

그의 실력을 본 터라 아무도 불만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7층은 의식 제약이 한층 강해져 의식으로 2, 30리를 살피는 게 고작이어서 날아가기보다는 걸어가는 게 더 빨랐다.

여기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수행이 높아 걸어가도 그 속도가 느리지 않았다.

반각 후, 굴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조심!”

맨 앞에서 걸음을 멈춘 한립이 낮게 경고했다.

음풍(陰風) 속에서 사람의 얼굴을 한 검은 늑대 괴물 여덟 마리가 튀어나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속도도 무척 빠르고 괴물의 발톱이 가른 동굴의 벽은 새까맣게 변하며 부식되었다.

“이게 다 뭐란 말입니까?”

뇌옥책 등이 놀라면서도 차분하게 검기며 물길, 뇌전들을 뿜어 늑대 괴물들에게 반격을 가했다

크항!

늑대 괴물들도 그들의 실력을 깨닫고, 입에서 검붉은 화염을 뿜어 원거리에서 공격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뇌옥책 등의 공격이 이런 괴물들에게 막힐 리 없었다.

검기, 물길, 뇌전 등이 앞다투어 검붉은 화염을 뚫고 괴물들을 가루로 만들었다.

괴물 시체가 검은 연기를 흩날리며 사라진 자리에 검붉은 구슬들만 남아 은은한 빛을 발했다.

“이게 뭘까요?”

문중이 관심을 보이며 구슬을 가져오려고 금빛을 날렸다.

“잠깐, 만지면 안 됩니다!”

한립이 급히 외쳤으나 문중의 금빛이 먼저였다.

콰콰쾅!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폭발에 검붉은 빛이 굴을 잠식하고 산 전체가 무너질 듯 흔들렸다.

우수수 무너져 내린 굴속에 매몰된 한립 일행은 몇몇 토둔술을 익힌 이들의 도움을 받아 그곳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때 어디선가 낄낄거리는 괴상한 웃음소리가 들려 일행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집채만 한 검은 발톱이 땅을 뚫고 날아들었다. 발톱의 주인은 도마뱀이라 하기에는 몸이 너무 비대한 거대 괴수였다.

기운이 주변 흙더미와 유사해 기습하기 전까지는 전혀 알아챌 수 없었다.

땅속에 이런 괴수가 숨어 있는 줄 몰랐던 뇌옥책 등은 속수무책으로 발톱에 맞기 직전이었다.

그때 차갑게 눈을 빛낸 한립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휙!

눈부신 금빛 뇌전이 날아갔다.

거대한 짐승의 발톱에 비해 너무 작은 뇌전이 발톱을 종잇장처럼 뚫고 거대 괴수의 가슴에까지 구멍을 내버렸다.

도마뱀 괴수는 절규하다 몸을 돌려 다시 땅속으로 숨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뇌옥책 등이 수많은 공격을 날리고 있던 터라 괴수는 구멍이 뻥뻥 뚫린 시체처럼 변해서 숨이 끊겼다.

도마뱀 괴수의 시체도 늑대 괴수들처럼 훅, 검은 연기를 뿜어 안 그래도 무너져 협소해진 지하 굴을 새까맣게 물들였다.

이에 지척에 있던 한립 일행은 급히 보호막을 펼쳐 검은 기운을 밀어냈고, 그들 중간에 있던 웅산도 금빛을 일으켰다.

사납게 몰려드는 검은 기운 속에서 미세한 빛이 갈라져 나와 소리없이 웅산의 금색 보호막을 뚫고 체내로 들어갔는데 경황이 없던 터라 웅산 본인은 물론 아무도 알아챈 사람이 없었다.

일행은 한참을 토둔술을 펼쳐 무너진 지역을 벗어나고서야 지면으로 올라왔다.

“저 때문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문중이 사과했다.

“자책하지 마세요. 늑대 괴물의 정체를 아무도 몰라 그 구슬들을 건들면 안 된다는 걸 몰랐잖아요. 그런데, 한 수사께서는 그 괴물들을 정체를 아시나요?”

그를 위로한 소안천이 한립에게 물었다.

“시마랑(尸魔狼)이라는 마역의 마수이니 다들 모르실 만도 하지요. 체내에 품고 있는 시화주(尸火柱)는 다른 기운이 닿으면 폭발을 일으킵니다.”

“마역의 마수요? 그랬군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한립이 마역의 마수를 안다니 마역에도 가봤던 것일까?

궁금하기는 해도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은 없었고 의문을 품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굴을 따라 걸어갔다.

다시 일각이 지나 눈앞이 밝아지고 처음 도착한 동굴보다 백 배 이상 큰 공간이 나타났다.

공터에는 크기가 제각각인 금색 광석이 쌓여 있었는데, 어떤 것은 언덕만 하고 어떤 것은 사람만 했으나 묘하게 진법을 이루고 있었다.

신중한 얼굴로 안으로 들어선 일행은 아무 일이 없자 조금 마음을 놓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십여 리를 걸어 광석 더미를 빠져나가니 작은 광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반짝반짝 빛나는 금색 벽돌이 깔린 광장에는 백 장 높이의 3층으로 된 금색 제단이 세워져 있었다.

동일한 금황색 재료로 만들어진 제단은 마치 자연적으로 형성된 듯 이음새가 없었다.

제단 맨 위에 금색 태극문양이 새겨져 있고, 그 한쪽에 꽂힌 어둑한 금색 고검(古劍)이 보였다.

검신은 삼각형이었는데 한 면에는 해와 달 별 문양, 다른 면에는 산과 강, 초목 문양 그리고 마지막 면에는 용과 봉황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고검에서 발산되는 금빛에는 법칙 파동이 실려 있어 한립 일행은 칼에 피부가 베이는 듯한 따끔한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태극문양 다른 쪽에는 사람 머리통만 한 금색 불길이 떠서 강렬한 시간법칙 파동을 내뿜었다.

금빛 주술문자들이 태극문양 중심에서 퍼져 제단을 타고 우리 형태의 진법을 형성했다.

금속 법칙과 시간 법칙이 충돌하지도 않고 기이하게 합쳐져 제단 전체를 둘러싼 것이다.

그리고 제단 위로 갈라진 거대한 틈 속에서 음산한 검은 바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게 뭘까요? 봉인 같아 보이는데…….”

소안천이 눈을 크게 떴다.

호삼과 교삼은 금색 제단을 보고 놀란 듯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고검의 재료가 아까 본 천금첩이 아닌가! 강렬한 기운이라니. 그리고 저 화염은 시간법칙의 힘을 품고 있기는 하지만 대오행환세결의 오행법칙과 달리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느낌이 들어.’

한립도 제단에 있는 물건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러나 뇌옥책과 문중의 표정은 침착했고 시선을 마주친 그들은 희색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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