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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62화 (1,819/2,000)

2062화. 중죄인

*

문중이 옆에서 도와 오래지 않아 육각형 모양의 진법이 완성되었다.

“완성되었습니다. 자리를 찾아 서주시지요.”

검사를 마친 뇌옥책의 말에 일행들은 육각형의 여섯 모서리로 가서 수결을 맺고 기다렸다.

석문에서 가장 가까운 모서리에 선 뇌옥책이 곁의 소안천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그의 손을 떠난 보라색 구슬이 천천히 진법 중앙으로 떠오르고, 표면에서 9개의 용 문양들이 노닐며 희미하게 쿠쿠쿵, 하는 소리를 방출했다.

구룡주가 제 위치로 간 뒤 뇌옥책의 주문 소리가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서둘러 주문을 외며 수결을 맺은 손을 뻗어 보라색 구슬을 가리켰다.

우웅.

여섯 개의 손에서 각기 다른 영기의 빛이 빠져나와 구슬로 모여들었다.

구룡주에서 홍수처럼 터져 나온 보라색 뇌전이 빛의 장막을 이루어 육합벽야진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쿠오오-!

구슬 속에서 9마리의 용 허상들이 날아올라 거대한 보랏빛 뇌전용으로 변해 석문으로 쇄도했다.

쿠콰쾅!

석문과 붉은빛의 장막이 용들의 공격에 정신없이 흔들렸다.

그 모습에 다들 정신을 집중해 진법에 체내의 선령력을 마구 불어넣었다.

파치치칙.

뇌전이 타고 흐르는 소리가 들린 뒤, 암홍색 빛의 장막 중간에 사람 머리통만 한 구멍이 뚫리고 뒤쪽의 또 다른 공간이 희미하게 노출되었다.

“열렸습니다! 자, 더 힘을 냅시다!”

마음이 조급해진 근류가 소리쳤다.

“전송문의 일부만 열렸을 뿐 구룡쇄신금진이 파훼된 것은 아니니 모두 조심해야 할 겁니다.”

뇌옥책이 전력을 다해 진법을 운용하며 당부했다.

그의 말을 들은 것처럼 금색 용린색(龍鱗索)들이 빛을 발하며 용비늘 모양의 파동을 일으켰다.

금빛과 보라색 뇌전이 섞여 혼란스러운 기류가 형성되고 주변의 천지원기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밤이 도래한 듯 어둑해진 구멍 안에서 사나운 공간 난류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진법을 유지하던 무리는 그 무시무시한 힘을 감지하고 안색이 달라졌다.

“구룡쇄신금진의 위력을 과소평가한 것 같습니다. 아직 진법이 완전히 격발되지 않았으니 동시에 선령력을 거두면 안전하게 물러날 수 있을 거예요.”

뇌옥책이 낭랑하게 외치자마자 이변이 발생했다.

금색 용린색(龍鱗索)들에서 금룡 허상이 튀어나와 육합벽야진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든 것이다.

형언할 수 없는 힘의 충돌에 근류가 제일 먼저 빠져나갔고, 남 씨 오누이가 그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이 빠져나가자 당연히 진법은 순식간에 흩어졌고 중앙의 구룡주가 통제에서 벗어나 눈을 찌를 듯한 검은 빛을 발산하며 터지려 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문중도 진법에서 서둘러 빠져나왔다.

석문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뇌옥책과 소안천만이 금룡 허상과 구슬이 터져 발산된 검은 뇌전의 목표가 되었다.

두 사람의 수행이 가장 높았으나 워낙 석문에서 가까이 있었기에 펼칠 수 있는 신통이 몇 개 되지 않았다.

“소 선자!”

몸에서 은색 뇌전빛이 반짝인 뇌옥책은 아직 뇌전 갑옷이 완성되지도 않았는데도 망설임 없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콰콰쾅!

뒤이어 금빛과 보라색 뇌전빛을 품은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진작에 멀리 피한 근류 등은 폭발이 일어난 곳을 주시했다.

금색 태양과 흑자색 태양이 동시에 떠올라 연쇄 폭발이 일어났기에 주변 백리의 천지원기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수십 초나 이어진 혼란스러운 상황이 지나가고 연기가 흩어지니 거대한 구덩이가 눈앞에 나타났다.

금색 모래가 뜨거운 열기에 녹았다가 모양이 제각각인 빈대떡처럼 들러붙어 있었는데 석문만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

근류 등이 급히 돌아와 구덩이 깊은 곳을 내려다보았다.

등이 새까맣게 탄 덩치 큰 사내가 가냘픈 여인의 몸을 품에 안고 보호하고 있었다.

은색 갑옷이 형편없이 녹아 줄줄 흘러내리고 의복이 타들어간 사내는 당연히 뇌옥책이었고, 그의 품에 안겨 작은 상처 하나 없는 여인은 소안천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구덩이 밑의 뇌옥책과 소안천이 움직이질 않자 문중이 급히 그들을 부르며 뛰어 내려갔다.

근류도 몸을 날려 뇌옥책의 품에서 소안천을 끌어당겨 빼냈기에 문중은 비틀거리는 뇌옥책을 붙잡아 주어야 했다.

“괜찮은 것이냐?”

근류가 소안천의 안색이 이상한 것을 보고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몸을 비틀어 그의 손을 떼어낸 소안천이 뇌옥책 쪽을 살폈다.

문중의 부축을 받으며 단약을 삼킨 뇌옥책은 중상을 입은 몸으로 가슴이 들썩이고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을 느끼고 부드럽게 고개를 저어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곧 시선을 거두기는 했지만 소안천은 분명히 알았다.

자신을 보호하려 무리하지 않았으면 뇌옥책이 저렇게까지 다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면 뇌옥책은 실망하는 기색도 없이 익숙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고 문중의 도움을 받아 가부좌를 튼 다음 몸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운공을 하자 상처에 남아 있던 보라색 뇌전과 금빛이 빠져나가면서 파칙파칙, 하는 요란한 소리를 냈지만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앓는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남원자 오누이도 그것을 보고 약간의 호감을 느꼈고, 소안천은 말할 것도 없었다.

참다못해 뇌옥책에게 다가간 그녀는 물빛 작은 병을 꺼내 건넸다.

“천수종의 수일단(水一丹)이에요. 원기를 회복하는 데 뛰어난 효과를 지니니 부상을 치유할 수 있는 다른 단약과 함께 복용하면 더 빨리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소 선자…….”

두 손으로 병을 받아든 뇌옥책은 감동한 얼굴이었다.

“괜히 힘만 빼고 금제를 뚫는 건 실패했습니다. 이제 어쩌면 좋습니까?”

근류가 못마땅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물었다.

“하!”

문중은 헛바람을 내뱉고 아예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고, 남안이 한마디 하려는 것을 남원자가 막았다.

한립과 겨룬 후 신중해진 남원자가 남안에게 괜한 일을 벌이지 말라는 눈짓을 했다.

그때 무언가를 느낀 그들은 고개를 들어 멀리 고공에서 한립 일행이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한립은 참상이 벌어진 전송문 주변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그들이 내려서고 눈을 뜬 뇌옥책이 곡린을 발견하고 표정이 달라졌다.

“다른 길로 가더니 여기는 어떻게 찾아온 것입니까?”

“하하, 세월탑이 수사의 것도 아닌데 우리가 어디로 가든 무슨 상관입니까?”

대놓고 인상을 찡그리는 근류를 보고 호삼이 불만을 드러냈다.

“당신…….”

근류는 기가 차 할 말을 잃었다.

“석 수사, 그분은?”

그때 뇌옥책이 곡린을 보며 물었다.

“여기는 곡린 수사십니다. 세월탑 6층에 오랜 세월 갇혀 계셨던 분인데 저희를 도와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한립은 간략하게 소개를 했다.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으나, 이 탑에 갇힌 이들은 악인들입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지도 모르니 상대의 수에 당하지 않게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뇌옥책은 말로 답하지 않고 전음으로 말했다.

“충고 감사드립니다. 조심하겠습니다.”

한립은 그가 따로 경고하는 이유를 정확히 몰랐기에 이렇게 답했다.

“저건 구룡쇄신금진 아닙니까?”

돌연 교삼이 앞으로 나섰다.

“이 진법을 아는 것입니까?”

“누군가 변형을 해놓았네요.”

“맞습니다. 정식으로 파훼를 하려면 적어도 이틀은 걸릴 것 같아 강제로 뚫어보려다 부상을 입은 겁니다.”

뇌옥책이 탄식했다.

그 말에 진법을 살핀 한립은 반나절이면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가 나서기 전에 곡린이 성큼성큼 걸어가 주술문자가 새겨진 석문으로 손을 뻗었다.

“뭐 하는 겁니까! 함부로 만져선 안 됩니다!”

뇌옥책이 놀라 말렸지만 부상이 심해서 직접 앞을 막아설 수는 없었다.

“시끄럽기는. 뭐 하는지 안 보이는 것이냐? 금제를 풀려는 것이다.”

무표정한 얼굴의 곡린은 멈추지 않았다.

“괜히 만졌다가 또 용린색(龍鱗索)에 변화가 생기면 더 처리하기 힘들어질 거란 말입니다! 아무렇게나 건들지 마세요.”

뇌옥책이 언성을 높였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문중은 직접 가서 말리려 했고, 근류는 소안천을 붙들고 물러서려고 준비 중이었다.

눈을 반짝인 한립은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

촤르릉.

이때, 곡린의 손끝이 석문 몇 군데에 닿자 빛의 장막을 속박하고 있던 아홉 개의 사슬들이 풀렸다.

뇌옥책 무리를 힘들게 했던 구룡쇄신금진이 이렇게 해결된 것이다.

“구룡쇄신금진을 변형시킨 것이 당신이었군요.”

한립은 전음을 보내 물었다.

“그렇네. 나도 7층에만 올라가면 이곳을 떠날 수 있을 줄 알고 전송문 금제를 열었었거든. 7층에 가서 거기에 갇혀 있던 미치광이를 만나 죽도록 두들겨 맞고 겨우 돌아왔지만! 그 뒤로 금제를 더 단단하게 봉해 두었지.”

곡린은 민망한 기색도 없이 답했다.

“같은 문을 이용해 6층으로 돌아온 겁니까?”

“내가 영리하게 7층에 올라간 뒤 그쪽의 혼원구궁진(混元九宮陣)을 미리 열어 둔 게 행운이었지. 퇴로를 확보해 둔 셈이었으니까.”

“진법에 정통한 곡 수사께서 금제를 풀어주셨으니 7층으로 올라가시지요.”

전음으로 대화를 마친 한립은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뇌옥책은 어찌 된 일인지 자세히 물으려다 한립의 이야기에 말을 삼켰다.

근류 등이 선뜻 문으로 들어서지 않자 한립은 교삼 등과 시선을 주고받았는데 그들도 망설여지기는 매한가지였다.

“다들 들어갈 생각이 없으면 내가 먼저 가겠다.”

곡린이 그들을 비웃으며 석문 안의 암홍색 빛의 문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문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한립도 보호막을 일으키고 암홍색 장막을 걸어가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화아앗!

그가 발을 내딛자 바닥에 노란 광채가 일어나 소용돌이를 이루고 강력한 흡입력을 발휘한 것이다.

어떤 조짐도 없이 일어난 일이라 한립은 한 발이 그대로 쑥 밑으로 꺼졌다.

소용돌이에 떨어지기 직전 <천살진옥공>을 운영한 그가 성신지력을 세차게 일으켜 발밑으로 펑펑, 기운을 터트렸다.

그 반동으로 소용돌이에서 발을 뺀 한립은 발에 감각이 없는 것을 느끼고 놀라 아래를 쳐다보았고 신발과 발이 회백색으로 변한 것을 발견했다.

땅에서 진흙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발끝에서 금빛 뇌전을 방출해 칼날처럼 진흙을 자라낸 한립은 펄쩍 뛰어올라 검은 구덩이 끝까지 물러났다.

진흙이 솟아오른 소용돌이 속에서 노란 신영이 떠올라 황포 추녀로 변하고 있었다.

“사섬 장로님께서 어떻게 여기에…….”

남원자 오누이가 그녀를 알아보고 깜짝 놀라 외쳤다.

“내가 왜 여기 있냐고? 이 변변치 못한 것들! 이리 오래 추격하고도 저놈을 잡지 못하고 내가 안 나섰으면 언제까지 따라다니려 했더냐.”

황포 추녀가 그들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장로님, 저희도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게…….”

남원자가 변명을 하려다 멈췄다.

시선을 교환한 교삼과 호삼은 경거망동하지 않았고, 뇌옥책 소안천 등도 ‘사섬’이라는 이름을 들어봤기에 표정이 싹 달라졌다.

고민스러운 듯 얼굴을 굳힌 웅산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한립은 사섬을 주시하면서 석화(石化)된 왼발을 움직여 보았다. 감각은 돌아왔는데 아직 피가 통하지 않는 것처럼 저릿했다.

“여기 모인 이들은 잘 듣게. 저자의 이름은 한립, 천정이 오래전에 추포령을 내린 윤회전 죄인일세. 각 선역에서 수많은 죄를 범했고, 금원선궁 궁주 동방백을 죽인 일은 모르는 이가 없겠지? 내가 저자를 잡도록 돕는 이와 그 종문에는 적잖은 보상이 주어질 것이네. 어떻게 할 것인가?”

사섬이 모인 이들을 죽 훑었다.

그 말에 뇌옥책 등이 화들짝 놀라 멍한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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