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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61화 (1,818/2,000)

2061화. 주먹질

*

청년은 다 계획이 세워져 있다는 한립의 태도를 보고 잠시 머뭇거렸다.

이 빌어먹을 세월탑을 누군들 벗어나고 싶지 않겠는가!

수백만 년 동안 할 일이 없어서 같은 층에 갇힌 다른 짐승과 이종족들을 도륙하고 나니 그들의 뼛가루가 사막을 이루었다.

흥분해서 자제하지 못한 탓에 이제 남은 건 겨우 금몽석 한 마리가 전부라 지루해 미칠 것 같았다.

“곱게 올려보내봤자 위층 미치광이 손에 죽을 텐데, 나를 구할 실력이 되는지 어찌 증명할 것이냐? 피하지 않고 내 일격을 받아낼 수 있겠느냐?”

청년이 눈알을 굴렸고, 교삼 등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립의 무덤덤한 답이 들려왔다.

“해보죠.”

“한 형! 대라급 서금선의 일격은 장난삼아 맞을 것이 못 됩니다. 실력이 출중한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제안에 응하다니요.”

교삼이 전음으로 만류했다.

“한 형, 상대는 피하지 말라고 했지 법보나 선기를 사용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제 천호화혈도를 빌려 쓰세요. 그래야 승산이 높아질 겁니다.”

호삼도 바로 전음을 보냈다.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제게 다 계획이 있습니다.”

한립은 미소를 지으며 둘에게 같은 대답을 했다.

“법보나 보물 같은 게 있으면 쓰고 싶은 만큼 써도 좋다. 피하지만 말고 뭐든 준비해서 내 공격을 막아 보거라.”

청년이 이를 드러내고 웃음 지었다.

“됐습니다.”

한립은 고개를 젓고 교삼 등에게 더 멀찍이 물러나 있으라고 말했다.

그들은 서둘러 수십 리를 벗어나 아주 멀리서 사태를 지켜보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정말 서금선의 전력을 다한 일격을 막을 수 있는 걸까요?”

호삼은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저라고 알겠습니까……. 확신이 없는 내기를 할 사람은 아니니까 지켜봐야지요.”

교삼도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 중에서 가장 안심하고 있는 게 웅산이었다.

대라급 서금선이든 아니든 간에 한립이 저렇게 나오는 것을 보면 한 방 먹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세 사람이 충분히 멀어진 것을 확인한 한립은 천여 장 규모의 원형 영역을 방출했다.

“시간영역으로 나를 막겠다?”

청년이 눈썹을 꿈틀했다.

“이제 공격하시지요.”

한립은 뒤로 한 발은 물리고 반대편 주먹은 뻗는 자세를 취한 뒤 <천살진옥공>과 <대오행환세결을> 동시에 운용했다.

“이거 좀 재미있겠는데…….”

청년은 흥미가 일었는지 금빛을 방출해 장포 자락을 펄럭였다.

금색 빛의 고리들이 호수처럼 퍼져 수백 리를 가득 채웠다.

샤샤샤샥.

거대한 충격에 대량의 모래들이 참새 떼처럼 들썩였다.

멀리서 그 힘을 감지한 교삼 등은 걱정스럽게 한립을 쳐다보았다.

청년을 근거리에 둔 한립도 긴장이 되기는 했으나 내색하지 않고 선령력을 급격히 끌어올렸다.

“준비되었느냐?”

청년이 활짝 웃으며 한 발을 뒤로 물리고 허리를 비틀어 주먹에 힘을 모았다.

한립은 소리 없이 전신에서 더욱 진한 금빛을 방출하고 있었다.

등 뒤로 떠오른 금색보륜이 시간영역과 융합되어 밝은 달처럼 떠오르고 환진사루에서 쏟아져 나온 모래알갱이들이 금색 사막과 하나가 되어 산맥을 이루었다.

이어서 동일신목이 빼곡한 나무들을 만들어 숲을 이루고, 광음정병의 광음의 물이 하늘에서 떨어져 굽이굽이 산과 숲을 감싸 도는 강이 되었다.

금색 횃불에서 떨어져 나온 불꽃들이 하늘로 올라가 밤하늘을 수놓는 별이 되고 있었다.

“뭐냐…….”

기이한 현상에 청년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기마자가 아닌 이상 <대오행환세결>의 현묘함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크크큭, 이런 허상들로 어쩌려고?”

주변의 시간 흐름이 점점 느려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청년은 기고만장하게 외쳤다.

쿠쿠쿵!

주먹에서 천둥소리가 들리고 어마어마한 힘이 축적된 금색 주먹 허상이 시간법칙의 구속도 뚫고 허공을 겹겹이 주름잡으며 한립을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주먹 허상이 빠져나가는 순간, 청년의 표정이 묘해졌다.

멀리 그를 마주하고 선 한립은 시간정사들을 제련해 모은 시간의 힘을 대부분 써버리자 속 쓰려 하며 급히 오행환세의 범위를 줄였다.

그 때문에 청년의 주먹 허상은 속도가 빨라졌지만 진작 준비를 하고 있던 한립은 <천살진옥공>을 극성으로 발휘해 똑같이 금색 주먹 허상을 내뿜었다.

쿠콰콰쾅!

휘오오오-

금색 주먹 허상들은 충돌해 새하얀 빛을 터트리면서 주변 백 리에 혼란스러운 기류가 수많은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괴력의 여파에 금색 모래를 뚫고 수백 장 아래까지 박힌 한립은 온몸이 아프고 쓰려왔다.

형형하게 눈을 빛낸 그는 두 팔로 쾅, 모래를 박차고 솟아올라 다시 청년을 마주하고 공중에 떠올랐다.

“일격을 받아낸 것 같군요?”

한립은 죽은 피를 뱉어내고 말했다.

“어떻게……. 방금 그 영역은…….”

청년은 자신의 주먹을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수행이 수백만 년 전 수준으로 떨어진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회복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대수롭지 않은 한립의 설명에 청년은 머리가 띵했다.

어쩐지 자신의 일격이 낯설다 했더니 수행 자체가 퇴보한 것이었다.

“어찌 되었든 멀쩡하게 내 공격을 받아냈으니 너희들을 막지 않겠다. 7층으로 안내해주지. 그러니 넌 날 꼭 탑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줘야 해.”

“당신이 이런 시험을 하지 않고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그렇게 했을 겁니다. 하지만 힘을 허비해 능력을 증명했으니 다른 조건이 생겼습니다.”

“조건이 뭐냐?”

청년은 원래 인내심이 있는 성격이 아니라 불처럼 올라오는 화를 삼키고 말했다.

“세월탑에 들어온 이들 중 저를 죽이려 하는 대라 수사가 있습니다. 저를 도와 그를 처리해 주세요. 물론, 그자가 탑을 빠져나가기 전에 찾아올지 말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가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따로 찾아 나서지도 않을 것이고요. 세월탑을 나간 후에는 이 약속은 없던 것이 됩니다.”

한립은 교삼 등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전음으로 바꿔 뜻을 전했다.

“그게 다라고?”

“네, 그게 다 입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교삼이 다가왔으나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몰라 이상하다는 얼굴을 했다.

오행환세를 사용했을 때 농염한 시간법칙을 느끼기는 했지만 영역 바깥에 있어 내부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 한 가지 더 드릴 정보가 있는데. 제가 여러 선역을 유람하다 다른 태을경 서금선을 두 번이나 본 적이 있습니다. 수사와 동족이니…….”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자 한립은 은근슬쩍 미끼를 던졌다.

“자네, 서금선들을 어디서 본 겐가?”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청년이 물었다.

“북한선역과 금원선역입니다. 한 명은 어린아이이고, 다른 한 명은 한 성격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한립은 대충 이야기를 꾸며냈다.

“나를 도와 그들을 찾아주겠다면 세월탑을 나가서도 내 철저히 보호해주지! 아까 말한 그 녀석이 나타나면 전력을 다해 제거해 주겠어.”

“약속하신 겁니다.”

청년의 전음에 한립이 웃음 지었다.

한립은 그가 그 말을 믿을 수 있도록 금동과의 의식연계를 격발해 기운을 흘렸다.

그걸 감지한 청년은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청년은 한립을 이용해 금동을 찾을 속셈이고, 한립은 그를 유인해 금동에게 데려갈 생각이었으니 딴마음을 품기는 했어도 마음이 잘 맞는다고 볼 수 있었다.

“하하, 이제 어찌 부르면 좋을지 알려주시지요.”

“곡린.”

“저는 한립이라 합니다.”

한립이 먼저 포권을 했다.

“한 수사, 이야기도 잘 마무리됐으니 이제 7층으로 데려다줌세.”

이제는 오히려 곡린이 안달이 나서 재촉했다.

“그리 급할 것 있나요. 힘이 들어서 잠시만 쉬겠습니다.”

한립은 천천히 손을 저었다.

시간을 되돌려 수행을 낮추었음에도 곡린의 일격은 너무 강해서 부상을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적당한 자리를 찾아 단약을 삼키고 가부좌를 틀었다.

* * *

그 시각, 한립과 반대로 이동한 일행 6명은 다갈색 석문에 빙 둘러 서 있었다.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문 안에서 은은하게 금빛이 반짝이고, 암홍색 빛의 장막 위를 금색 사슬 9개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금색 사슬에는 물고기 비늘처럼 빼곡하게 문양이 들어가 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강력한 금제로 보였다.

“뇌 수사, 어떻습니까? 구룡쇄신금진(九龍鎖神禁陣)을 풀 수 있겠습니까?”

근류가 신중하게 금제를 살피는 뇌옥책을 보고 물었다.

“안 그래도 복잡한 구룡쇄신금진을 누군가 변형해 놓아서 파훼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습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소안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용린색(龍鱗索)이라 불리는 사슬을 하나만 건드려도 진법이 배는 난해해지는데 적어도 네 개 이상의 사슬이 병행되어 있습니다. 아마 이삼일은 걸릴 듯싶어요.”

“그렇게나 오래 걸린단 말입니까!”

뇌옥책의 말에 근류가 소리쳤다.

“근 수사에게 다른 방도가 있으면 어디 스스로 금제를 풀어 보시지요.”

문중이 이를 불쾌하게 여겨 눈을 치켜떴다. 그 말에 대답할 말이 없어진 근류는 짜증스러웠으나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그가 구룡쇄신금진을 단시간에 파훼할 만큼 진법에 능했으면 성궁대치금진(星宮對峙禁陣)을 음양폐쇄진이라 착각했을 리도 없었다.

남원자 오누이도 이번 금제에 대해서는 잘 몰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뇌옥책이 소안천의 안색을 살피고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지요. 제게 방법이 하나 있으니 시도나 해봐야겠습니다. 성공할 거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요.”

“방법이 있으면 무조건 해봐야 할 겁니다. 시간을 끌어 좋을 게 없으니까요.”

근류가 인상을 찡그리고 재촉했다.

“말은 잘하십니다. 뇌 사형은 강제로 진법을 제거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다가 다치면 그건 누가 책임진단 말입니까?”

문중이 이번에는 정말 화가 났는지 그를 향해 따져 물었다.

소안천이 시선을 돌려 뇌옥책을 보고 눈빛이 약간 흔들렸다.

“그렇다고 그냥 기다릴 수도…….”

“뇌 수사, 너무 위험하면 그냥 며칠 지체되더라도 안전한 방법을 쓰세요.”

근류가 말을 끝맺기 전에 소안천이 뇌옥책을 향해 말했다.

“소 선자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도나 해보자는 것이니까요.”

그녀의 관심에 뇌옥책이 기뻐하며 결정을 내렸다.

문중은 말리고 싶었지만 통하지 않을 걸 알기에 입을 달싹이다 말았다.

“가장 빠르게 해결을 보려면 진법의 힘으로 금제를 상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육합벽야진(六合壁野陣)으로 구룡쇄신금진에 강제로 통로를 만들어 보일 테니 모두 도와주세요.”

“육합벽야진에 대해서는 저도 압니다만 이 구룡쇄신금진보다는 그 위력이 훨씬 못할 텐데 어떻게 안정적인 통로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근류가 의문을 제기했다.

“진법의 힘만으로는 부족하겠으나 구룡주(九龍珠)을 진법의 중추로 삼아 위력을 증폭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협조가 필요한 것이고요.”

“구룡주 같은 보물이 있다면 영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습니다.”

뇌옥책의 답에 근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오누이도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겠습니다.”

남원자가 포권을 해보였고 소안천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뇌옥책이 깃발과 돌 같은 진법 도구들을 꺼내 석문 주위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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