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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54화 (1,811/2,000)

2054화. 나서다

*

그들은 가면 갈수록 강해지는 모래바람이 시야를 가려 어둑한 공간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한립이 문득 멈춰 서서 전방의 모래폭풍 속을 응시했다.

“왜 그러세요?”

“자연적으로 형성된 모래폭풍이 아닙니다. 누군가 조종을 하고 있어요.”

소안천의 물음에 한립이 눈썹을 끌어올리고 답했다.

그 말에 흠칫 놀란 소안천과 근류가 의식으로 그가 쳐다보는 곳을 훑고 바람 속에서 희미한 원기파동을 감지했다.

“이번에는 4층처럼 그냥 통과할 수는 없으려나 봅니다. 어떻게 가보시겠습니까?”

근류가 작게 물었다.

이런 대규모 모래폭풍을 일으킬 정도면 실력자가 틀림없었다.

“이전 층의 구조를 보았을 때 공간의 문은 각층의 죄수가 갇혀 있는 곳에 있었어요. 여길 벗어나려면 가보는 수밖에 없어요.”

“맞습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 호랑이를 잡을 수야 없는 일이니까요.”

소안천의 말에 한립이 동의했다.

근류는 머뭇거리다 크게 반대하지 않고 함께 원기파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바람과 원기파동은 심해졌고, 흙산들도 많아져 거의 산맥을 이루게 되었다.

반 시진을 날아간 그들은 바람 속의 원기파동 근원지를 찾아냈다.

수백 리 규모의 협곡을 앞두고 각자 은신술을 펼친 그들은 몸을 숨기고 상황을 살폈다.

협곡에서 수십 개의 하얀 바람기둥이 용처럼 솟아올라 구름 속으로 치솟고 있었다.

그 안에 담긴 법칙 파동이 난동을 부리는 촉수처럼 닿는 모든 것을 부수고 집어삼켜 하늘과 땅이 크게 울렸다.

그중 가장 큰 바람기둥 안에 흐릿하게 하얀 신영이 보였다.

어떻게 생겼는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수십 개의 바람기둥 앞에 대여섯 명의 수사들이 모여 대치 중이었다.

‘저들은…….’

한립은 그들을 알아보았다.

1층에서 보았던 뇌옥책, 문중, 흑의 청년과 여인 그리고 기마자와 함께 나타났던 청년 그리고 그에게서 달아났던 남안까지 총 여섯이었다!

소안천과 근류도 그들을 보고 놀란 기색이었다.

수십 개의 하얀 바람기둥은 위력이 대단해서 뇌옥책 일행 여섯이 전력을 다해 선기와 신통을 발휘하는데도 밀리고만 있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하얀 바람기둥 안의 존재는 전력을 다하지 않고 그들을 갖고 노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껄껄, 이 실력으로 6층으로 가겠다고? 그러지 말고 여기서 나와 실컷 놀아보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리고 바람기둥들이 하나로 합쳐져 이제는 기둥이라고 부르기에도 뭐한 거대 바람기둥이 되어 여섯 명을 덮쳤다.

선기가 통제를 잃어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고, 뇌옥책 무리도 바람기둥에 갇혀 벗어나지 못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소안천과 근류의 안색이 달라졌다.

금원선역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단 한 명의 장난에 놀아나고 있었다.

한립은 하얀 바람기둥이 함유한 바람 속성 법칙의 힘이 강한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음?”

눈동자에서 보랏빛을 번뜩인 그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5층의 금제가 의식을 과하게 억제해 미처 몰랐는데 구유마동으로 보니 바람기둥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

두 가지 다른 속성의 바람의 법칙이 완벽하게 맞물려 섞여 있었다.

‘두 종류의 법칙의 힘을 융합해 이런 엄청난 위력을 낸 것이었어.’

법칙 융합은 각각의 법칙의 힘을 증폭할 수 있었다.

그저 법칙 융합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 진선계에 올라와 오랜 세월 동안 몇 번 본적이 없었고, 공수천과 그의 감찰선사 동료 그리고 남안과 남원자, 또 명한선부에서 태을단을 두고 천정, 북한선궁 무리들과 교전할 때 한립 자신의 시간법칙과 교삼의 윤회법칙이 공명했던 것을 본 게 다였다.

눈앞의 바람기둥은 이전에 보았던 어떤 법칙융합보다 경지가 높았다.

눈을 반짝인 한립은 자세히 뜯어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스승 없이 홀로 수행을 하다 보니 여러 진귀한 고대 경적을 찾아도 법칙 융합에 대해 별로 파악하고 있는 게 없었다.

이곳을 떠나는 대로 법칙과 영역에 대해 제대로 파봐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윤회전의 윤회자 신분이 있으니 선원석만 충분히 지불하면 분명 도움을 줄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다인 것이냐? 오랜만에 제대로 놀아보려고 했는데 너무 실망스럽구나!”

그때 바람기둥 안에서 실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뇌옥책 등이 그 말을 듣고 분분히 얼굴을 붉히며 각자 영역 신통을 방출해 중첩시켰다.

특히 뇌옥책의 금색 영역이 가장 웅장해서 그 안에 금색 산봉우리들이 칼날처럼 검의 기운을 방출했다.

영역을 중첩한 여섯 명은 더이상 바람기둥에 휘말리지 않고 몸을 가눌 수 있게 되었다.

진지한 얼굴로 주문을 왼 뇌옥책의 두 손이 빠르게 검결을 맺어 5, 60가닥의 금색 수정실을 내뿜었다.

강렬한 법칙 파동이 실린 법칙정사가 영역 안의 금색 산들을 소환해 흡수하고 거검으로 변했다.

각각이 대검, 가느다란 바늘 혹은 용이나 호랑이 등의 모양을 취한 거검들은 방대한 기운을 방출하며 기이한 검진을 형성해 허공을 매서운 검기로 가득 메웠다.

“가라!”

검진이 휘리릭 회전하며 그 안의 5, 60자루 거검들이 파도처럼 사방의 하얀 바람기둥을 갈랐다.

샤샤샥.

기다란 천을 가위로 찢는 것처럼 하얀 바람기둥이 견디지 못하고 갈라졌다.

이때 멀리서 검진의 위력을 본 한립의 눈빛이 뜨거워졌다.

그가 익힌 청반검진, 규룡검진도 상등급의 검진이었지만 뇌옥책의 검진과 비교하면 훨씬 급이 떨어졌다.

금원선역 제일 종파라는 통천검파의 검진은 역시 비범했다.

거기다 한립은 뇌옥책이 따로 비검을 방출하지 않고 법칙정사를 검으로 만들어 검진을 펼치는 수법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

뇌옥책이 펼치는 검진을 보며 부러운 눈빛을 보낸 문중도 빠르게 손을 놀려 수결을 맺었다.

웅!

거대한 금색 검기 네 개가 그의 영역 안에서 뻗어나갔다.

각각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도안이 새겨진 검기는 뇌옥책의 검진과 비교하면 위력이 한참 부족했지만 거의 동시에 하얀 바람기둥을 공격했다.

남색 영역을 펼친 남안은 기다란 남색 낫을 방출해 수원참 신통으로 단번에 수십 개의 남색 호선을 바람기둥으로 날려 보냈다.

역시 영역을 펼친 웅산도 목숨이 걸린 마당에 실력을 숨기지 않고 백 자루의 비검으로 동그란 금색 검진을 이루었다.

크오!

포효소리와 함께 금색 검진 속에서 검룡이 날아올라 날카롭게 발톱을 세우고 바람기둥을 향해 달려들었다.

흑포 남녀는 영역 신통을 익히지 못한 것인지 각자 선기를 방출해 싸우고 있었다.

흑포 여인은 커다란 금색 문양이 들어간 하얀 구슬로 법칙의 힘을 방출하고, 흑포 사내는 나뭇가지 모양의 선기에서 피비린내 나는 검은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두 선기가 그들의 손을 떠나 검은색과 하얀색 유성처럼 바람기둥을 타격했다.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닌 수사들이 협공하자 하얀 바람기둥도 곧 갈라질 것 같았다.

“쯧쯧, 통천검진(通天劍陣)은 봐줄 만한데 네놈의 실력이 부족하구나. 법칙의 실이 그리 부족해서야 제대로 검진을 완성해 내 천손풍주(天巽風柱)를 부술 수 있겠더냐?”

날카로운 목소리가 비웃음을 흘리고 하얀빛을 번뜩인 바람기둥에서 영역이 빠져나와 사방팔방으로 펴졌다.

드넓은 하얀 영역 안에서 억압된 여섯 사람은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대면서 체내의 혼란스러운 기운을 다스려야 했다.

이와 동시에 하얀 수정실 백여 가닥이 흘러들어 부서지려던 바람기둥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멀리서 그걸 지켜보던 세 사람 중, 특히 소안천이 긴장해 입술을 달싹였다.

걱정 가득한 그녀가 신경 쓰는 사람이 여섯 명 중 누구인지는 그녀만이 알 것이다.

“적이 강해 뇌옥책 무리로는 상대할 수 없겠습니다. 우리가 나서야겠습니까?”

근류가 사매 소안천과 한립의 의사를 물었다.

“깊은 교분은 없지만 그래도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인데 도와주는 게 옳지 않을까요. 이대로 저들이 죽고 나면 우리끼리 적을 상대해야 하기도 하고요.”

소안천은 한립의 얼굴을 살폈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실력과 판단력에 탄복해 말은 안 했지만 그를 결정권자로 여긴지 오래였다.

근류는 그것이 기분 좋지는 않았으나 역시 한립만 바라보고 있었다.

“소 수사의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 한배를 탄 처지인데 복이든 화든 함께 견뎌야겠지요.”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결정을 내린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때 하얀 바람기둥 속에서 난색을 표하던 뇌옥책이 핏기가 오른 뺨으로 기합을 터트렸다.

그의 정수리에서 팔뚝 크기의 금색 원영이 빠져나와 본체와 똑같은 수결을 맺고 입을 벌려 법칙의 힘이 담긴 금빛 정혈을 자신의 영역에 흡수시켰다.

뇌옥책은 핏빛의 돌던 뺨이 파리하게 변하고 심지어 피부는 쪼글쪼글 나이가 들어갔다.

비술을 펼친 대가로 금색 영역이 하얀 영역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은 순간, 통천검진도 밝은 빛을 터트리면서 그를 중심에 두고 미친 듯이 회전했다.

쿠쿵!

무시무시한 힘이 담긴, 양면에 복잡한 문자가 조각된 거검 허상이 자욱한 빛에 휩싸여 떠올랐다.

“베어라!”

뇌옥책의 명에 거검 허상이 하얀 바람기둥을 마치 얇은 종이처럼 찢고 있었다!

“통천검진을 이 정도까지 익히다니, 네 수행이 너무 약한 게 안타깝구나!”

갈라지던 바람기둥 안에서 히히힝 하는 울음소리가 들리고 집채만 한 말굽 허상이 나타났다.

그 뒤로 하얀 법칙정사 백여 가닥이 떠올라 허상으로 스며들었다. 법칙 정사를 흡수하자 실체화된 하얀 말굽이 떨어지고 있었다.

콰콰콰!

하얀 말굽이 공간에 파문을 일으키면서 거대한 구멍을 뚫고 있었다.

말굽은 그 공간균열을 지나 거검 허상 위에 떨어졌다.

쿠아아앙…….

경천동지할 굉음과 격렬한 지진이 지나고 말굽이 거검 허상을 관통하는 것이 보였다.

바람기둥도 말굽과 거검의 충돌에 금이 가고 있었다.

백여 가닥의 법칙 정사가 돌아와 바람기둥을 보완하려는데, 두 개의 남색 영역이 느닷없이 떠올라 모든 것을 뒤덮었다.

동시에 영역 안에서 산만한 남색 빙검과 남색 주먹이 나타나 하얀 바람기둥 측면을 노렸다.

쿠쿵!

하얀 바람기둥은 극심하게 흔들리고 균열이 벌어졌으나 끝내 부서지지는 않았다.

“으하하, 너희들이 몰래 숨어 있던 것을 모를 줄 알았더냐? 그 실력으로 무엇을 하겠다고. 어서 나오거라!”

날카로운 목소리가 웃음을 터트리며 하얀 영역을 조종해 거대 손을 만들고 허공을 낚아챘다.

콰쾅.

눈부신 남색 빛이 튀고 소안천과 근류가 비틀거리며 거대 손에 의해 붙들려 나왔다.

콰르릉! 콰쾅!

그런데 이때 하얀 바람기둥의 다른 쪽에서 물항아리 굵기의 금색 손가락 허상이 나타나 뇌전을 뿜었다.

뇌전의 힘에 공간이 일그러지고 불꽃이 튀며 바람기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정신없이 번쩍거리던 바람기둥이 쾅, 터져 흩날렸다.

뇌옥책 등은 깜짝 놀라며 힘을 합쳐 하얀 영역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시간법칙! 누구냐, 누가 끼어든 것이야? 숨어 있지 말고 나오거라.”

날카로운 목소리는 달아나는 뇌옥책 무리를 신경 쓰는 대신 주위를 경계했다.

“내내 여기 있었는데 당신이 발견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하얀 영역 바깥에서 금빛이 반짝이고 미소를 띤 한립이 나타났다.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한 덕에 진언보륜 등의 신통이 일부 회복되었다.

거기에 <만규공적술>과 <대오행환세결>의 은신술을 활용해 다른 이들이 시선을 끄는 틈에 일격에 하얀 바람기둥을 부술 수 있었다.

하얀 신영은 한립이 자신의 의식에도 걸리지 않고 접근한 것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칫!”

마음이 산란해진 그가 소안천과 근류에게 더는 신경을 쓰지 않자 그들은 남색 빛으로 허공을 비틀고 하얀 거대 손에서 벗어나 한립 쪽으로 날아갔다.

이에 신영은 실수를 깨닫고 거대 손으로 그들을 추격했으나 산만한 금색 주먹 허상이 날아들었다.

쿠콰쾅!

거대 손과 주먹 허상이 깨져 날리고 멀리 한립이 몸을 떨다 한 걸음 물러섰다.

바람기둥 속 하얀 신영도 살짝 비틀거렸다.

소안천과 근류가 급히 한립 옆에 서고, 뇌옥책 무리도 그들과 합류했다.

“소 수사, 근 수사, 석 수사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창백한 얼굴의 뇌옥책이 약간의 혈색을 회복하고 그들을 향해 공수했다.

심각한 순간에도 소안천을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부드러웠다.

“실질적으로 도움을 드린 것은 저나 근 사형이 아니라 석 수사입니다. 감사를 표하고 싶다면 석 수사에게 하세요.”

소안천은 그의 뜨거운 시선을 피하며 담담히 말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뇌옥책이 그 말에 놀라 다시 한번 인사를 했고, 다른 사람들도 한립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남안만이 그의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놀라는 기색 대신 분노와 당황 그리고 원망만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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