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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51화 (1,808/2,000)

2051화. 재대결

*

오소귀왕은 손을 들어 36자루의 청죽봉운검이 갇힌 검은 우리를 들어 올렸다.

비검들이 미친 듯이 사방으로 날아가 부딪쳐도 검은 우리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제야 나서시고 인내심이 대단하십니다.”

“역겨운 기운이 느껴져서 뭔가 하고 있었지. 저들이 지닌 것인 줄 알았더니 네 놈에게 있는 것 같구나?”

“벽사신뢰를 말하는 것이면 이미 당신의 손에 있지 않습니까?”

한립은 오소귀왕에 말에 놀란 척 반문했다.

“이것도 짜증은 나지만……. 내가 신경 쓸 정도는 아니지. 지금의 수행이 이르기까지 겪어보지 못한 일이 없고, 내가 죽인 감찰선사만 해도 몇 명인지 헤아릴 수가 없으니 말이다.”

오소귀왕이 말을 하는 사이, 한립의 뒤 허공에 기다란 틈이 생기더니 진한 검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수많은 악귀의 손들이 뻗어 나와 날카로운 손톱을 드러냈다.

한립은 그 자리에서 금빛 뇌전을 일으켜 갑옷처럼 몸을 감싸고 가까이 다가오는 악귀들의 손을 검은 연기로 태워버렸다. 그리고 몸을 돌려 주먹에서 찬란한 별빛을 방출했다.

새하얀 성신지력에 닿은 악귀 손들은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안개 속으로 몸을 숨겼다.

청죽봉운검이 갇힌 우리를 들고 있던 오소귀왕은 나머지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허공의 틈이 벌어져 새까만 안개가 퍼지기 시작하자 오소귀왕의 신영이 허상화되어 사라졌다.

한립은 시야가 어둑하게 변했고 천수종 수사들과 홍포 귀장들이 싸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썹을 꿈틀한 그는 급히 연신술을 발동해 의식을 퍼트렸다.

“오, 벽사신뢰에 연신술까지 꽤 높은 수준까지 익혔다만 내게는 소용이 없을 것이다.”

오소귀왕의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리다 사라졌다.

‘어떻게 된 거지?’

연신술을 발동해도 오소귀왕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때 주변에 기이한 파동들이 떠올라 핏빛 서생으로 변했다.

눈을 가늘게 뜬 한립은 수십 명의 오소귀왕이 대라급 기운을 품고 있는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그들은 그를 가운데 놓고 주문을 외고 있었다.

소리가 높아질수록 핏빛들이 떠올라 문자 혹은 문양으로 변했다가 악귀 머리로 변해 모여들었다.

그러자 한립은 마치 피가 얼어붙은 듯 갑자기 몸이 굳어 선령력과 성신지력도 끌어올릴 수 없게 되었고, 동시에 의식세계에 핏빛 파도가 치고 서생의 모습을 응결했다.

연신술을 수련한 이래 이렇게 쉽게 누군가가 의식세계에 침입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혼백은 전력을 다해 연신술을 운용해 핏빛 서생과 자신 사이에 의식의 힘으로 벽을 쌓고 있었다.

“무의미한 저항은 하지 말거라. 본 왕의 추혼술은 평범한 대라경 수사도 막지 못하는데 네가 이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지? 어차피 죽을 것 즐겁게 죽어 귀물이 되면 좋지 않더냐.”

핏빛 서생의 탁한 목소리가 의식세계에 울렸다.

“오소귀왕, 이해가 안 가는 일이 있는데 알려주신다면 억울함 없이 죽을 것 같습니다.”

한립의 혼백이 입을 열었다.

“다른 녀석들이었으면 귀찮아서 그냥 죽였겠지만……. 네 녀석의 강한 혼백은 내가 더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게 해줄 테니 예외적으로 답해주겠다, 말해보거라.”

걸음을 멈춘 핏빛 서생이 말했다.

“원래 천정 선옥에 갇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어찌 여기에 계신 겁니까?”

“연신술로 본 왕의 추혼술을 막지 못하는 이유를 물을 줄 알았더니 별걸 다 묻는구나. ……그래, 알려줘도 상관은 없지. 선옥의 주인이었던 태세선존에 의해 천만 년간 갇혀 있다가 그가 천정을 배반하고 달아나면서 나를 속여 여기다 데려다 놨다.”

“세월탑 안의 기관들이 겹겹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은 보물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었군요. 이 안에 들어온 우리가 화를 자초한 것이었습니다.”

의문이 풀린 한립 혼백은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부단히 수결을 맺었다.

“보물을 찾기 바빠 죽을 자리를 찾아온 것도 몰랐을 테지. 본 왕이 오랜 세월 속수무책으로 갇혀 있던 이곳에서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내가 널 죽이지 않아도 평생 탑을 빠져나가지 못할 테니 본 왕이 자비를 베풀어 윤회의 길에라도 들 수 있게 죽여주겠다.”

“그런가요? 당신의 혼백도 벽사신뢰에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만.”

순간 입꼬리를 끌어올린 한립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방에서 금빛이 번뜩이고 뇌전들이 밀려들었다.

파치치칙.

금색 뇌전이 한립의 의식세계를 완전히 채워, 핏빛 서생과 그가 몰고 온 핏빛 기운이 종적을 감추었다.

의식세계를 뇌전으로 쓸어버린 격이라 한립도 극심한 두통을 느껴야 했다. 의식손상을 피할 수 없을 듯했다.

콰르릉!

의식세계가 뇌전에 잠식되었을 때 그의 몸 주변으로도 뇌전이 퍼져나가 악귀들을 펑펑 터트렸고, 한립은 고통을 참으며 은색 빛의 문을 열어 제혼을 불러냈다.

제혼은 곧장 형수로 변해 핏빛 눈에 거구의 검은 원숭이로 변했다.

강철 침 같은 털들을 세우고 머리에는 뿔이 입안에서는 송곳니가 무섭게 자라난 형수의 미간이 갈라지면서 제3의 요목이 나타난 뒤, 등 뒤로 세 개의 뼈 가시가 솟아올랐다.

의식세계에서 한립의 벽사신뢰에 당한 귀왕은 대노했다.

비검 뿐 아니라 체내에도 이렇게 엄청난 양의 벽사신뢰를 품고 있을 줄은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다.

‘혀, 형수!’

겨우 정신을 차린 귀왕은 천적을 발견하고 당황하고 말았다.

한립은 그 틈에 수결을 맺었다.

콰릉!

오소귀왕이 붙들어둔 청죽봉운검 36자루가 맑게 울고는 찬란한 금빛으로 변해 한립에게 돌아왔다.

한립은 빛이 조금 어둑해진 비검들을 얼른 현천호리병 안에 담아 보양을 시작했다.

그는 귀왕과 맞붙기 시작한 제혼을 힐끗 보고는 거의 쓰러질 것처럼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의식손상이 생각했던 것 이상이구나.”

그는 탄식하며 얼른 혼백을 치유하는 단약을 꺼내 삼키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제혼은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라서 대라급 귀왕과의 승부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힘들었다.

그들이 있는 공간은 오소귀왕의 영역일 테니 제혼이 유리하다고 볼 수도 없었다.

한립이 이런 걱정을 잠시 잊고 전력을 다해 단약을 연화시킬 때, 머지않은 곳에서는 제혼과 오소귀왕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크하아앙!

그녀는 대량의 발톱 허상들을 피해, 경천동지할 만한 포효 소리를 냈다. 그리고 몸을 부풀려 금은색 주술문자와 강대한 파동을 발산했다.

동시에 미간의 제3요목에서 굵은 핏빛 빛기둥이 번득이며 오소귀왕에게 날아갔다.

이에 오소귀왕은 두 손을 움직여 주위에서 수십 개의 인영을 불러들여 하나가 되었다.

스스스.

펄럭이는 그의 장포자락에서 음산한 뼈 발톱들을 품은 대량의 검은 안개가 나타났다.

뼈 발톱들 중간에는 핏빛 악귀 얼굴들이 나타나 입을 벌려 검은 소용돌이를 내보였다.

제혼의 미간에서 뻗어 나간 핏빛 빛기둥이 그 검은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며 대치했다.

쉭!

오소귀왕의 다른 손이 수결을 맺고 지면 쪽으로 향하자 핏빛 인장이 빠져나와 땅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더니 곧바로 제혼 아래쪽에서 핏빛이 올라와 피의 연못을 이루고 사방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제혼이 몸을 피하려 했을 때는 이미 아래쪽에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흡인력이 발생해 그녀의 두 발을 묶어 놓았다.

그 찰나의 순간, 핏물이 출렁여 그녀의 다리를 적셨다.

고약한 냄새가 나고 부글부글 기포가 올라오는 혈지(血池)는 순식간에 그의 하반신을 잠식했다.

귀곡성이 들리고 수천수만 마리의 핏빛 악귀들이 제혼의 몸을 타고 기어 올라와 살을 태우려고 검은 연기를 뿜어댔다.

형수로 변한 제혼의 몸은 굉장히 단단해서 얼마간은 무리가 없겠지만 혈지와 악귀들의 공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한립이 번쩍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웅!

그가 다시 청죽봉운검 36자루를 불러내 지면을 박차고 튀어 나갔을 때 측면에서 격렬한 파동이 느껴졌다.

그를 뒤덮은 검은 밤의 장막에 틈이 갈라지고 누군가 나타나 그를 향해 손을 뻗은 것이다.

검은 장막 안에서 일어난 돌발 사태라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던 한립은 동공을 수축하고 진언보륜을 급속도로 역회전시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공간의 틈에서 나타난 자의 손은 여전히 귀신처럼 그를 따라붙어 작열하는 금빛 화염을 분출했다.

화염은 동그란 감옥을 만들어 그를 가두려 했다.

“기마자!”

한립은 기습한 상대를 알아보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줄곧 홀로 이동하던 기마자가 여기 나타난 것이다.

시간 유속의 변화를 느낀 한립은 모골이 송연해져 등 뒤로 금색보륜을 띄우고 금색 광선을 터트렸다.

금색 광선과 화염이 서로 밀어내며 중간에 공백이 생겨났고, 그 구역의 시간 유속이 거의 멈춘 상태로 광선은 빠르게 흩어졌는데 화염은 얼마 녹지 않았다.

하반신이 혈지에 잠긴 제혼은 허리 쪽에 검은빛을 일으켜 핏물이 더는 올라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그녀는 기마자가 나타나자마자 급히 도와주러 가려 했으나 귀왕에서 붙들려 몸을 빼낼 수가 없었다.

“네 녀석, 지난번보다 수행이 폭증했구나. 오늘 네 놈을 죽이지 못하면 큰 화를 불러오겠어.”

기마자는 다섯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굽히고 전력으로 단시류화를 조종하면서 냉랭히 말했다.

왕성한 금색 화염이 광선을 밀어내면서 한립을 노렸다.

기합을 터트린 한립의 몸에 9백여 개의 현규가 빛을 발하고 천살진옥공의 힘이 담긴 주먹이 전방으로 뻗어 나갔다.

주먹 끝에 찬란한 별빛이 모여 공간에 단층을 만들면서 기마자를 향해 날아갔다.

쿠쿠쿵.

폭음 속에서 공간이 갈라져 금색 화염이 그 안으로 흡수되자 광선이 받는 압력이 줄어들었다.

그것을 기회 삼아 한립의 청죽봉운검들이 뒤쪽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청죽봉운검들은 어둠의 장막 위쪽을 돌아 기마자의 등을 노리고 뇌전을 치지직 거렸다.

그러나 기마자 등 뒤에서 금색 화염이 나타나 순식간에 비검들을 허공에 고정시켜 버렸다.

기합을 넣은 기마자의 손에 활활 타오르는 횃불이 들렸다.

“이런!”

놀란 한립은 얼른 진언보륜을 체내로 돌려놓았다.

횃불의 불꽃들이 빠르게 확산되어 공중의 모든 것을 정지시키고 있었다.

그럴 거라 예상한 한립은 시간영역을 펼치는 동시에 진언보륜을 거두어 역전시켰지만 여전히 불빛의 추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두 호흡 만에 따라잡혔다.

움직임이 느려진 그는 예전처럼 손가락도 까딱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마자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것은 똑같았다.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뇌전을 펼쳐 놓은 것도 아니라 어떻게든 여기서 달아난다고 해도 멀리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그간 수행이 는 탓에 의식까지는 속박당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화르륵!

은빛이 번쩍이며 그의 몸에서 은색 화염이 퍼져 갑옷을 이루고 선명한 불 속성 법칙의 힘을 내뿜었다.

모든 것이 멈춘 것만 같았던 공간이 다시 이글이글 왜곡되면서 타올랐다.

“이럴 수가, 겨우 오행법칙이 어찌 지존법칙을 밀어낸단 말인가!”

기마자는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검은 도끼를 불러내 한립을 향해 투척했다.

진언보륜이 뿜어낸 금색 파문이 막지 못한 검은 도끼는 겹겹이 둘러싼 화염을 뚫고 한립을 향해 떨어졌다.

은색 화염이 도끼의 강렬한 기운에 갈라져 한립을 찍으려 할 때, 금색 모래 알갱이들이 응결해 모래시계를 이루고 그 앞을 막아섰다.

동시에 한립의 머리 위로 금색 액체가 찰랑거리는 병이 떠올라 입구에서 금빛을 물처럼 쏟아냈다.

도끼의 날은 모래시계를 뚫지 못했고, 도끼 손잡이는 광음정병이 흘려보낸 광음의 물에 표면이 부식되어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자신의 선기가 붙들린 것을 본 기마자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그는 훌쩍 뛰어올라 직접 한립에게 다가왔는데 한립의 영역이 그에게 미치는 영향은 미미해 보였다.

그가 허공답보를 해 다가올수록 금색 횃불도 가까워져 불빛의 압박도 강해졌다.

한립을 둘러싼 은색 화염이 단시류화와 저항하며 점점 얇아지고 있었다.

“크…….”

한립은 목구멍 깊은 곳에서 소리를 쥐어짜며 체내의 선령력을 전력으로 일으켜 <대오행환세결>을 찰나의 순간 극성으로 발동했다.

주변으로 진언보륜, 단시류화 그리고 동을신목까지 떠올라 총 5개의 시간보물들이 각자 독자적인 파동을 방출했고, 이전과 달리 서로 호응하며 금색 고리를 만드는 대신 다섯 가지 역량을 이용해 기마자의 접근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그때 기마자와 한립 모두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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