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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50화 (1,807/2,000)

2050화. 대라 귀왕(鬼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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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오오-!

귀물들이 백 장 가까이 다가왔을 때 용울음 소리와 함께 다섯 사람의 몸에서 푸른빛이 퍼져 보호막을 이루었다.

키하아악! 키에엑!

귀물들이 푸른 보호막에 부딪혀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눈처럼 녹아 검은 연기로 흩어졌다.

하지만 귀물들은 계속해서 몸을 던져 보호막을 공격했다.

한립은 귀물들이 달려드는데도 표정이 한결같았다.

“뭐 하는 것인가! 돕지 않고!”

“…….”

그걸 본 부 곡주가 노호성을 터트렸음에도 한립은 못 들은 것처럼 그들이 펼친 진법 안에서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고공의 천수종 수사들도 홍포 귀장들과 싸움을 시작했다.

귀장들은 파도처럼 밀려드는 귀물들과 달리 수행이 높아서 대부분이 금선 최고봉의 수행을 지닌 데다 괴이한 공격 방법을 사용했다.

게다가 태을경 중기 수사와 맞먹는 실력의 백면서생이 입은 선홍색 관포는 뭔가 심상치 않았다.

마치 천지를 품은 듯한 왼쪽 소매가 펄럭이자 만장 검은빛이 소안천을 향해 날아들었다.

진작 물로 이루어진 팔보선(八寶扇)을 들고 있던 여인은 부채로 허공을 가르는 비취색 강줄기를 흘려보냈다.

솨아아.

번득 사라진 강줄기가 백면사내 위에서 허공을 찢고 나타나 콸콸 쏟아져 내렸다.

백면사내는 조소하며 소매의 검은빛을 더욱 키워 소용돌이를 이루고 강물을 흡수해나갔는데, 떨어져 내리는 강줄기도 끝이 없고 사내의 소용돌이도 바닥이 없는 심연 같아서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었다.

콰릉!

이때 왼쪽 소매 속으로 흘러 들어간 강물이 사내의 오른 소매에서 빠져나와 소안천을 향해 분출되었다.

맑은 남색 물이 어느새 시체가 둥둥 뜬 썩은 핏물이 되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날아들고 있었다.

놀란 소안천이 부채를 뒤집어 허공 균열에서 강물을 쏟아붓는 대신 혼탁한 물을 흡수했다.

잠시 후 균열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녀가 들고 있던 부채에 강물이 돌아왔는데, 물이 이전처럼 맑지 않고 구정물처럼 색이 이상해져 있었다.

동시에 음산한 검은 안개가 부채에서 흘러나오자 안색이 변한 소안천은 하얀 한기를 방출해 얼음으로 봉인을 해버렸다.

“끌끌, 제법 괜찮은 보물이구나. 내가 거둬서 십만 음혼들을 풀어 놓고 삼도천으로 만들면 딱 좋겠어. 네년은 본 군의 시녀로 삼으면 되겠고…….”

백면사내가 음험한 웃음을 흘렸다.

그 소리를 들은 소안천은 눈빛에 살의가 짙어져 다른 손으로 물의 파동을 응결해 남색 장검을 만들어냈다.

“부채가 마음에 든다니 네 소원대로 해주마. 얼음 속 만장 빙산에 깔려 영원히 바깥세상 구경을 못 하게 해줄 것이다!”

백면사내는 그녀가 달려들자 큰소리로 웃으며 소매를 펄럭여 싸움을 계속했다.

사람의 몸에 소머리를 한 귀장은 핏빛 깃발을 깃대에 둘둘 감고 상대의 혼백의 힘을 빨아들였다.

말머리를 지닌 귀장은 사악한 기운이 어린 새까만 사슬을 손에 감고 녹색 불길을 일으켜 적의 뼈와 살을 부식시키며 싸우고 있었다.

태을경 초기의 두 귀장은 각각 원거리, 근거리 공격에 능해서 근류도 다른 데 신경 쓸 틈 없이 간신히 상대하는 중이었다.

3층은 음살귀물들의 영역 안이나 마찬가지라 근류와 소안천의 싸움이 쉽지 않았고 다른 천수종 수사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청룡혼원진 안의 한립은 여전히 주저하는 얼굴이었다.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지만, 장기전으로 갈수록 그들에게 불리할 거란 사실은 분명했다. 사실 처음부터 고공의 검은 구름 속에서 누군가가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눈앞의 홍포 귀장들은 자신을 십전염라라 칭했지만 이곳의 주인은 아니었고 더 무서운 존재가 숨어서 그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가 아직까지 나서지 않은 것도 상황을 지켜보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때 문 쪽의 천왕전에서 쿠쿵, 하는 소리가 들리고 거대 천왕상들이 천천히 깨어나 벽을 부수고 이곳으로 걸어왔다.

쿵. 쿵. 쿵. 쿵…….

천왕상들은 육중한 걸음 소리를 내며 들고 있던 사람 머리통을 제일 먼저 투척했다.

공성포(攻城砲)처럼 청룡혼원진에 떨어진 머리통에 푸른 보호막은 붕괴할 듯 흔들리고 진법을 유지하던 이들은 휘청거리며 피를 뿜었다.

몇몇이 부상을 당해 진법이 불안정해지자 귀물들은 더욱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검은 안개에 뒤덮이자 청룡혼원진은 빠르게 녹아내려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한립은 두 천왕상이 가까이 다가와 손에든 금강저마저 던지려는 듯 높이 들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저 공격까지 맞으면 청룡혼원진이 부서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 충격으로 수행이 낮은 이들은 숨이 끊길 터였다.

“아직도 나서지 않겠다면, 내가 나서게 만들어 주는 수밖에.”

한립은 탄식하며 더는 기다리지 않고 한쪽 팔에 빛을 일으켜 손을 뻗었다. 그러자 18가닥의 푸른빛이 보호막을 빠져나가 비처럼 떨어졌다.

채채채챙.

청죽봉운검 18자루가 청룡혼원진 가장자리 바닥에 팍팍 꽂혀 진법과 그 안의 사람들을 둘러쌌다.

“이게…….”

부 곡주는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몰라 의아한 얼굴을 했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귀물들은 비검들이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청죽봉운검을 둘러싼 채로 진법을 에워쌌다.

푸른 보호막의 빛은 악귀들이 산처럼 쌓인 탓에 이미 살상력을 잃어 바깥으로 새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저들은 끝났군요…….”

“저들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소안천이 탄식하자 근류가 진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는데, 그 순간 광장에 이변이 발생했다.

쿠콰쾅! 콰르르릉!

고막이 터질 듯한 천둥소리와 함께 18개의 금색 뇌전 기둥이 바닥에서 솟아올라 광장을 금빛으로 물들인 것이다.

파지지지직.

금색 뇌전이 대량의 검은 안개와 그 안의 악귀들을 휩쓸고 있었다.

“저건…… 벽사신뢰!”

소안천의 눈이 번득였다.

키에엑!

청룡혼원진에 악귀들이 타죽는 것을 보고도 두려움 없이 몰려들던 나머지 악귀들은 벽사신뢰를 보고는 본능적인 공포에 휩싸여 달아나기 바빴다.

하지만 금빛 뇌전의 속도가 너무 빨라 거의 절반의 귀물들이 파치칙, 하고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귀물에 매몰되어 있다시피 했던 몇 사람은 갑자기 해가 뜬 것처럼 주위가 밝아지자 격동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부 곡주는 한립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 수행을 숨긴 태을경 수사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치기 어려웠다.

소안천과 근류도 서로의 눈빛에서 놀람을 읽어냈다.

악귀들에게 한 방을 먹인 한립은 여전히 고공에 흩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구름을 쳐다보고 있었다.

소안천이 그가 고공에 신경을 쓰는 것을 보고 의문을 품다 돌연 소리쳤다.

“석 수사, 조심하게!”

한립의 머리 위로 거대한 금장저가 떨어지고 있었다.

음산한 검은 연기를 내뿜는 금장저 끝에는 그윽한 녹색 불길이 반짝였다.

두 다리로 쿵, 바닥을 박찬 한립은 피하지 않고 그대로 금강저를 향해 솟구쳤다.

그 속도가 매우 빨라 번뜩 금강저에 접근한 한립이 그걸 쳐내거나 없애려 들지 않고 두 팔로 감아 비틀었다.

막을 수 없어 보이던 금강저가 놀랍게도 그가 이끄는 대로 방향을 틀어 천왕상을 향해 떨어졌다.

쿵쿵쿵!

그 위에서 한립이 발을 구르자 금강저의 추락 속도가 몇 배로 빨라졌고 그걸 본 천왕상이 급히 주먹을 뻗었다.

한립도 <천살진옥공>을 발동한 채 달려들었다.

쾅!

금강저는 천왕상의 주먹을 부순 뒤 가슴을 뚫고 들어갔고, 그 안에서 새하얀 별빛이 터져 나와 천왕상을 가루로 만들었다.

나머지 천왕상이 달려와 한립을 향해 손에 든 금강저를 횡으로 휘둘렀지만 한립은 가볍게 날아든 금강저를 타고 올라가 천왕상의 어깨에 도달했다.

퍽!

그는 투구를 쓴 얼굴을 일격에 박살내고 머리에 뚫린 구멍에 손을 집어넣어 천왕성 속에 숨어 있던 귀물을 끄집어냈다.

“하하하, 참으로 인내심이 대단하십니다.”

천왕상 머리에 올라가 웃음을 터트린 한립은 손아귀에 금빛 뇌전을 일으켜 귀물을 태워 죽였다.

고공의 구름은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으나 홍포 귀장들은 안색이 변해 분노한 얼굴로 쫓아오려 했다.

그러나 천수종 수사들도 괜히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기지는 못해도 붙잡아 두기는 했다.

“이래도 얼굴을 보이시지 않겠다면야…….”

눈빛이 서늘해진 한립이 수결을 맺은 손을 뻗었다.

후웅!

바닥에 꽂힌 청죽봉운검 18자루가 공명하며 그에게 돌아왔는데 금빛이 반짝이며 수가 늘어 36자루가 되었다.

“가라!”

한립의 명에 36자루의 청죽봉운검이 금빛 뇌전을 모으고 고공의 먹구름을 향해 수직으로 쏘아져 나갔다.

찬란한 빛을 머금은 비검들은 수많은 그림자를 만들어내 푸른 용의 모양을 이루고 구름을 꿰뚫고 있었다.

크하앙-!

마치 용울음 소리 같은 비검의 울림이 짙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경천동지할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르릉!

요란한 금빛 뇌전의 바닷속에서 뇌전들이 거대한 채찍처럼 사방팔방을 후려쳤다.

광장의 혼백들이 겁에 질려 고공을 바라보며 구슬프게 울어대고 홍포 귀장들도 드디어 겁먹은 기색을 드러냈다.

벽사신뢰가 그들과 같은 귀물들의 천적인 것을 알아본 것이다.

한립을 보는 소안천의 눈빛이 흔들리고 근류의 표정도 시시각각 달라졌다.

그저 실력 좋은 금선 수사인 줄 알았던 ‘석 수사’의 신통은 이미 평범한 태을옥선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때 고공을 올려다보던 한립이 인상을 찌푸렸다.

“크크큭.”

고공의 구름 속에서 섬뜩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대전 안의 악귀들이 흥분해 안절부절못한 것이다.

“오소귀왕(鬼王)을 뵙습니다.”

홍포 귀장들이 외치는 소리에 소안천과 근류가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어떻게 오소귀왕이!”

그 말에 천수종 수사들은 물론 다른 이들도 의아한 얼굴을 했다.

금원선역에 오소귀왕이라는 귀물이 있었단 말인가?

‘선옥에 있지 않고 어찌 여기에?’

한립은 오소귀왕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기마자가 선옥을 장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윤회전을 통해 관련 정보를 수집할 때 알게 되었다. 그는 선옥에 갇혀 있는 수감자 중 한 명이었다.

고공의 구름이 출렁이다 수축해 결국에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했다.

검은 안개는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데다 한참을 보고 있자니 마치 그 안으로 잠식당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한립은 급히 연신술을 발동해 금방 그런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네 녀석이 죽기만 했으면 본 왕이 십전염라 자리를 하나 내주는 것인데 아쉽구나. 하긴 세상일은 모르는 거라 곧 죽게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검은 구름 안에서 탁한 목소리가 들리며 누군가 걸어 나왔다.

유생 복장을 하고 머리에 방건(方巾)을 쓴 중년 서생이었다.

평범한 외모에 귀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닭 한 마리 비틀어 죽일 힘도 없는 문인으로 보였으나 한립은 상대가 자신이 아는 오소귀왕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오소귀왕은 살아 있을 때, 속세의 유가 학자로서 누차 과거에 도전했다가 실패해 왕조에 원한이 깊어졌다고 했다.

재해가 거듭되면서 왕조가 쇠퇴했을 때 오소는 무장봉기를 했는데 거의 반란이 성공할 무렵 반란군의 수가 늘면서 군량미가 부족해졌다.

오소는 어디서 그런 방법을 알게 되었는지 미친 사람처럼 인육을 먹는 방법을 택했고, 결국 반란군의 식량이 된 사람들의 유해가 몇 개의 성을 가득 채웠다.

주변의 선가 종문들이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속세 왕조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깨고 나서지 않았으면 성 몇 개가 아니라 주변 나라의 백성들도 전부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오소의 반란은 실패했지만 죽은 뒤에도 혼백이 흩어지지 않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잔혼들을 잡아먹어 강력한 악귀로 거듭났다.

그렇게 결단, 원영, 화신을 거쳐 무슨 수를 썼는지 크고 작은 천겁을 이겨내며 연허, 합체 심지어 대승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 후로 각종 기연 조화를 얻어 귀선이 된 그는 대라경에 이르러 대라귀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 잔혹하고 살육을 좋아하는 습성 때문에 선계에 피바람을 몰고 온 탓에 결국에는 천정에 잡혀가 선옥에 갇힌 것으로 알려졌다.

오소귀왕이 여기 나타난 것을 보면 진작에 천정 선옥은 탈출한 것 같은데 어째서 여기에 잡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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