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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48화 (1,805/2,000)
  • 2048화. 일망타진(一網打盡)

    *

    삑!

    그때 한립 쪽을 바라본 거대 화세형충이 분노에 차 소리치고는 동굴 지붕을 박차고 그대로 떨어져 내려 구레나룻 거한이 소환한 석인의 머리를 할퀴었다.

    강렬한 시간법칙 파동을 뿜는 반월형의 붉은 빛의 칼날들이 거대 화세형충의 다리들을 빠져나와 석인을 난도질했다.

    콰르르.

    석인의 몸이 허물어져 돌조각으로 돌아가자 세 개의 벌집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갔고, 거대 화세형충은 그 앞에 내려서서 한립 무리를 향해 흉흉한 눈빛을 보냈다.

    “화세충왕(火歲蟲王)인가 봅니다. 시간법칙을 다루는 데 능해서 바깥의 화세형충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강할 거예요!”

    눈을 가늘게 뜬 소안천이 소리 높여 이를 알렸다.

    화세충왕은 마치 그녀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적홍색 환영으로 변해 소안천 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충왕의 두 앞발이 반월형의 붉은 빛을 날렸는데, 하나는 소안천을 향해 다른 하나는 한립을 향해 날아갔다.

    속도가 엄청나서 번득한 순간 이미 두 사람 앞에 이르렀다.

    이에 한립은 좌우로 신형이 흔들리는 듯하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져 백여 장 밖에서 나타나 화세충왕을 멈칫하게 했으나, 소안천은 그러지는 못하고 발끝으로 바닥을 박차 거리를 벌리면서 손을 뻗었다.

    촤악!

    남색 물빛이 소용돌이치며 빠져나와 그녀를 보호했다.

    붉은빛은 남색 소용돌이에 잠시 멈췄다가 뚫고 들어갔다.

    다행히 그 과정에서 붉은빛의 방향이 틀어져 소안천을 스치면서 바닥에 파고들었고, 바닥에는 칼날 모양의 검은 구멍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파였다.

    다른 수사들도 그걸 보고 흩어져 화세충왕과 멀어졌다.

    “숨 돌릴 틈도 없게 다 같이 공격을 퍼부어야 합니다!”

    그때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 소안천이 소리쳤다.

    퇴로는 막혔고 충왕을 해결하지 못하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다들 선기 등을 꺼내 충왕을 공격했다.

    한립도 열두 자루의 남색 비도를 불러내 음살(陰煞)의 기운을 방출했다.

    한 벌로 된 남악비도(藍惡飛刀)는 동방백의 저물법기에서 찾아내 쓸만하기에 제련을 해둔 것이었다.

    화세충왕이 비웃는 눈빛으로 전신에서 적홍색 화염, 즉 세월화염을 분출했다.

    일대가 불바다로 변하고 수사들의 안색이 달라져 선기를 거두려 했지만 이미 의식연계가 끊겨 버린 후였다.

    소안천과 근류는 시선을 마주치고 달아나려 했다.

    벌집들의 가치가 아무리 높아도 그들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남에게 팔아 재산을 늘릴 뿐이었다.

    여기서 화세충왕과 목숨을 걸고 겨루느니 기회가 있을 때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나았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립과 금발 청년만이 굳은 의지를 보였다.

    이때 적홍색 화염이 집채만 한 불구슬로 뭉쳐 유성처럼 어딘가로 날아갔다.

    눈을 반짝인 한립은 불구슬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것 같았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고 다른 이들은 영문을 알지 못했다.

    불구슬은 그들을 지나 용암 위의 통로로 날아들고 있었다.

    “이런, 통로를 막으려는 거야!”

    소안천의 외침대로 불구슬이 터져 입구를 막는 불의 장막이 되었다.

    그곳은 그들이 동굴로 들어올 때 지나온 통로도 있지만, 그 앞은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화세형충이 진을 치고 있어 막힌 것과 다름이 없었다.

    화세충왕은 잔인한 눈빛으로 그들의 반응을 지켜보며 마치 쥐를 갖고 노는 늙은 고양이 같았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겁많은 이들은 벌써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벌레 따위가 우리를 일망타진하겠다? 그럴 실력이 되는지 확인해 봅시다! 우리가 아직 수적으로는 우세합니다!”

    그때 구레나룻 거한이 발로 바닥을 쿵, 구르며 노란빛을 일으켜 영역을 퍼트렸다. 노란 영역 안에서 화세충왕도 몸이 묵직해져 발들이 오므라들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모두가 협력에 법칙을 중첩하면 충왕이라고 죽이지 못할 이유가 없지요!”

    근류도 소리를 지르며 남색 영역을 퍼트렸다.

    그러자 화세충왕 주위의 세월화염에 파문이 생겼는데 근류의 영역이 영향을 미친 듯 보였다.

    이에 다른 이들도 힘을 내서 각자의 영역신통을 발휘했다.

    열댓 개의 영역이 덮쳐오자 화세충왕도 비웃음 대신 분노를 표하며 붉은 그림자로 변해 구레나룻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수많은 영역의 중첩에도 화세충왕은 여전히 빨랐지만 아까처럼 귀신같이 움직이지는 못했다.

    “모래 감옥!”

    구레나룻 거한이 급히 피하며 두 손을 뻗었다.

    동굴 안 바닥이 콰직 깨지면서 돌과 모래들이 날아들어 충왕을 가두고 모래 감옥을 만들었다.

    동시에 몇 개의 선기가 모래 감옥을 뚫고 충왕에게 날아들었다.

    채챙챙!

    그러나 선기들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튕겨 나왔고, 충왕의 몸에는 작은 상처하나 남지 않았다.

    이때 사람 머리통만 한 남색 종이학이 모래 감옥으로 날아들어 화세충왕을 부리로 쪼았다.

    멀리서 기이한 수결을 맺은 소안천 옆에서 남색 종이학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푹!

    화세충왕의 몸이 부리에 뚫려 새빨간 피가 터져 나왔다.

    삐이익!

    날카롭게 울부짖은 충왕의 두 눈이 충혈되고 핏빛으로 물든 몸이 부풀었다.

    앞발로 반원형의 빛들을 날려 모래 감옥을 두부처럼 떨쳐버린 충왕은 자유를 되찾자마자 날개를 펄럭여 핏빛 잔영으로 변했는데, 그 속도가 이전의 전성기 때보다도 빨라 마치 영역들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것처럼 소안천 앞에 나타났다.

    놀란 소안천이 뒤로 물러나며 종이학들을 모조리 날려 보냈다.

    남색 종이학도 속도가 느리지 않았지만 화세충왕은 그것보다 훨씬 빨라 번쩍번쩍 피하면서 소안천을 향해 두 앞발을 휘두르려 했다.

    그 순간, 충왕 옆 허공에 파문이 일고 금색 주먹이 떨어졌다.

    퍽!

    화세충왕의 몸이 허공을 구르면서 날아갔다.

    멀지 않은 곳에서 한립이 소리 없이 주먹을 거두고 있었다.

    “고맙네!”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던 소안천이 전음으로 한립에 인사를 하고 남색 종이학들과 함께 그 자리를 피했다.

    핏빛을 반짝이며 몸을 가눈 화세충왕은 더없이 열 받은 눈빛으로 한립을 향해 덤벼들었다.

    한립은 영역을 펼치지도 물러서지도 않고 온몸의 현규들을 밝힌 채 두 주먹을 그러쥐었다.

    삐익!

    그때 화세충왕이 분노에 찬 소리를 지르고는 별안간 방향을 틀어 세 벌집을 향해 날아갔다.

    화세충왕이 한립 등을 공격하는 틈을 타 수사 둘이 살금살금 보물을 훔치려 한 것이다.

    그들은 보양신목 목패를 든 금발 청년과 다른 금선 산수였다.

    두 사람은 급히 물러서려 했으나 벌집을 훔치려는 그들의 행동에 자극을 받은 충왕은 껍데기와 세월화염이 핏빛으로 변해 더 빠르게 움직였다.

    흐릿하게 그들 사이에 나타난 충왕이 앞발 2개를 움직이자 금선 하나는 머리부터 다리까지 수직으로 절단되어 원영도 달아나지 못했고, 금발 청년은 보양신목 목패로 간신히 핏빛을 막았지만 그 대신 목패가 두 동강이 났다.

    청년은 목패가 아까워 죽을 것 같았지만 급히 뒤로 물러나 두 쪽으로 갈라지지 않은 대신 가슴이 길게 잘려 비틀거렸다.

    훅!

    충왕이 그의 가슴을 향해 핏빛 화염을 분출해 청년의 몸을 재로 만들어버렸다.

    촤르릉.

    화세충왕이 금발 청년과 금선을 죽이는 사이, 위쪽에서 눈부신 남색빛이 드리웠다.

    굵직한 남색 사슬 3개가 충왕을 포박하고 색깔은 같지만 각기 다른 법칙의 힘을 발휘했다.

    멀리서 천수종 수사 셋이 품(品)자 형태로 서서 주문을 외며 남색 사슬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삑!

    화세충왕은 세월화염을 크게 일으켜 세 개의 사슬을 태우려 했지만 사슬들은 표면이 울퉁불퉁 침식할 때마다 법칙의 힘으로 회복하며 균형을 이루었다.

    “저걸 어서 죽여야 해요! 우리도 얼마 버티지 못합니다!”

    소안천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수결을 맺고 급히 외쳤다. 그 말에 나머지 수사들은 서둘러 다양한 공격을 퍼부었다.

    일순 당황한 기색을 보인 화세충왕은 세월화염을 왕성하게 분출해 온몸에 두르고 날카롭게 울어댔다.

    그 소리에 바깥에 있던 화세형충들이 곧바로 동굴 안으로 날아들려 했다.

    그때 한립이 번뜩 나타나 두 손을 펼쳤고, 남색 옥판이 날아가 거대한 석문으로 변해 쿵, 입구를 빈틈없이 막아버렸다.

    이것도 동방백의 저물법기에서 찾은 곤람정옥(坤藍晶玉)으로 만든 선기였다.

    바깥에서 화세형충들이 남색 석문을 때리는 소리가 웅웅 울렸다.

    그걸 본 한립이 얼른 두 손을 석판에 대고 금빛을 한 겹 입혔지만 더 많은 화세형충들이 몰려들고 있는지 떨림이 그치지 않았다.

    “여긴 내게 맡기고 석 수사는 천수종 수사들 쪽으로 가보게.”

    부 곡주가 그의 옆으로 날아들어 대신 석문을 받치고 말했다.

    “그럼 부 곡주만 믿겠습니다.”

    한립은 그런 그를 힐끗 보고 석문에서 손을 떼 화세충왕 쪽으로 몸을 날렸다.

    충왕은 구레나룻 거한 등의 공격을 거의 세월화염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화세충왕 위쪽으로 이동한 한립이 신속히 수결을 맺어 무언가를 하려 했다.

    “석 수사, 내가 돕겠네!”

    구레나룻 거한도 비술을 준비했는지 충왕 쪽으로 접근하며 수결을 맺었다.

    “오지 마세요!”

    한립이 급히 소리쳤을 때 충왕 표면의 세월화염이 휘리릭 돌면서 태양처럼 변해 수많은 불똥을 사방팔방으로 분사했다.

    구레나룻 거한은 물러나려다 불똥에 맞고 화륵! 불덩이가 되고 말았다.

    ‘이놈!’

    그 모습에 눈빛이 서늘해진 한립은 몸에 금빛을 일으키고 속도를 높이더니 마치 뼈가 없는 사람처럼 괴이한 각도로 몸을 틀며 모든 불똥을 피해 충왕 앞까지 도달했다.

    당황한 충왕이 다른 수를 내려는데 귓가에 서늘한 코웃음 소리가 들리고 끔찍한 두통이 밀려들었다.

    한립은 시간법칙 정사가 감겨 무시무시한 시간법칙의 힘을 발산하는 금색 장검을 들고 횡으로 그었다.

    천지원기가 웅웅 떨리고 금색 실선이 화세충왕의 세월화염을 가른 후 충왕의 목으로 날아들었다.

    쉭!

    충왕의 목이 똑 떨어져 내렸다.

    근류는 화세충왕이 죽자 안심하곤 즉시 진법에서 벗어나 벌집을 향해 돌진했다.

    금색 장검을 거두던 한립도 그걸 보고 흐릿하게 사라져 역시 벌집 쪽으로 쇄도했다.

    휘휙.

    그가 먼저 벌집 하나를 금빛으로 거두고 근류가 다른 벌집을 차지했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세 번째 벌집을 향해 빛을 날렸지만, 혹시 벌집이 상할까 격렬하게 경쟁하지는 못했다.

    “석 수사, 벌집 하나를 취하고도 이러는 건 과욕일세.”

    근류가 서늘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저도 같은 말을 하려던 참입니다. 조금 전 전투에서 누가 충왕을 죽였는데 수사가 벌집을 두 개나 챙기려 한단 말입니까?”

    “우리 천수종에서 비술로 충왕을 붙들어 두지 않았으면 겨우 금선인 자네가 충왕을 죽일 수 있었겠나! 그리고 난 소 수사를 대신해 두 번째 벌집을 거두려 한 걸세. 그녀의 공로라면 나머지 벌집을 가져가도 이의 없겠지?”

    “그럼 소 선자께서 직접 가져가라 하시지요. 당신이 가져다 내놓지 않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한립은 상대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웃음을 흘렸다.

    “뭐라는 것이냐!”

    얼굴에 새빨갛게 변한 근류가 눈을 부릅떴다.

    “근 사형, 그냥 석 수사에게 마지막 벌집을 내주세요.”

    그때 소안천이 멀리서 말했다.

    “뭐라고? 어째서…….”

    인상을 찡그린 근류는 무척 불만스러워 보였다.

    “충왕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벌집 두 개를 지닐만한데 석 수사는 아까 제 목숨을 구해줬어요. 그 은혜를 갚는 셈 치겠어요.”

    소안천의 말에 한립이 고개를 들고 슬쩍 그녀를 보았다.

    “흥, 운 좋은 줄 알게!”

    소안천이 이렇게 말하자 근류가 손을 거두었다.

    거절하지 않고 세 번째 벌집을 거둔 한립은 번득 동굴 입구로 이동해서 수결을 맺었다.

    금빛이 남색 석문으로 흘러들어 봉인 문양을 품은 두꺼운 장벽으로 변해 시간 파동을 내뿜었다.

    아까 소안천이 펼친 비술과 더해져 더이상 석문이 흔들리지 않았다.

    “가죠!”

    소안천은 그런 한립을 보고 먼저 용암 호수 위로 날아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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