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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45화 (1,802/2,000)

2045화. 괴이한 탑

*

한립은 남 씨 오누이에 대해 오래 생각하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처음 붉은 사막에 들어올 때와 달리 붉은 모래가 쌓인 언덕에 빨간 가시나무들이 자라고 있었고 도마뱀 같은 작은 짐승이나 곤충도 보였다.

요수나 요충이 아닌 평범한 생명체였다.

제혼도 그를 따라 두리번거리다 탄성을 내뱉었다.

“뭔가 발견한 것이냐?”

“죽음의 기운이 무척 강한 곳이에요. 게다가 강한 원한(怨恨)이 어려 있고요. 조심하셔야겠어요, 주인님.”

“나도 위험한 곳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입구에서 본 비석에 이(二) 자가 적혀 있던 것을 보면 세월탑의 2층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싶구나.”

“그럴 거예요. 바깥에서는 층의 구분이 되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7층까지 있는 것 같았거든요. 태세선존은 무얼 위해 이런 탑을 지었을까요?”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제혼의 물음에 고개를 저은 한립은 푸른 빛을 내뿜어 전투 흔적을 지우고 방향을 정해 날아갔다.

제혼도 화지 공간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의 옆에서 날아갔다.

반나절 뒤, 아직도 붉은 사막에 있었지만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한립이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제혼이 방향을 틀어 아래로 향했다.

쉭!

그녀를 따라 어느 언덕으로 내려간 한립은 제혼이 손에서 검은빛을 방출해 모래 언덕을 반으로 가르는 것을 보았다.

거목 크기의 회백색 유골이 드러났는데 거대 도마뱀의 것으로 보이는 뼈는 풍화가 되어 갈라져 있었다.

“이상한 점이 있더냐?”

진작 의식으로 모래 밑에 묻힌 도마뱀 유골을 파악하고 있던 한립은 의문을 표했다.

“주인님, 이 유골이 여기 묻힌 지 얼마나 된 것 같으세요?”

제혼이 뽀얀 손을 뻗어 심하게 풍화된 유골을 가리켰다.

“요수는 아니지만 변이종으로 일반적인 도마뱀보다 튼튼할 테니 이렇게 풍화되려면 적어도 수백 년은 걸렸겠지.”

“이 도마뱀은 죽은 지 10년도 안 되었어요.”

“뭐라? 그걸 어찌 안 것이냐?”

한립은 깜짝 놀랐다.

“살아 있는 생물이라면 무엇이든 혼백을 지니고 있는데 죽으면 혼백 자체는 흩어져도 혼백에 남아 있는 소량의 힘은 오랜 세월이 지나야 사라져요. 그걸로 언제 죽었는지 파악할 수 있고요. 유골에 남은 혼백의 힘이 아직 짙은 것으로 보아 죽은 지 10년이 넘었을 리 없어요.”

“그런 식으로 죽은 시기를 알 수 있다니……. 그렇다면 죽은 지 10년도 되지 않은 도마뱀 유골이 어찌 이 지경이 된 것이지?”

“그걸 저도 몰라 주인님께 보여드린 거예요.”

제혼이 고개를 저었다.

말없이 도마뱀 유골을 살피던 한립은 돌연 고개를 들어 뒤쪽을 쳐다보았다.

“소안천, 근류 등이 접근하고 있다. 제혼 너는 화지공간에 숨거라.”

눈을 반짝인 한립이 화지공간을 열어 제혼을 들여보내고 즉시 다른 방향으로 날아올랐다.

잠시 후, 뒤쪽에서 그가 왔던 방향과는 약간 다른 경로로 여러 둔광들이 날아들었다.

한립은 그들을 기다리다 만나러 가고, 둔광들도 그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둔광을 멈추고 모습을 드러낸 소안천, 근류 무리는 이전보다 수가 훨씬 줄어 있었지만 부 곡주 등 태을경 존재들은 아직 남아 있었다.

곳곳에 상처가 가득한 것을 보니 꽤나 고생한 게 분명했다.

“우 수사와 동행하던 석 수사가 아닌가. 다른 이들은 어디 있지?”

소안천이 그를 알아보고 물었다.

“금색 대문 뒤에서 금속수들의 기습을 당해 우활해 수사와 다른 이들은 목숨을 잃었고, 저를 비롯한 몇몇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해 달아났는데 이동하는 도중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소 수사, 근 수사를 뵙게 되어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모릅니다!”

한립은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답했다.

진작 그럴 거라 짐작했지만 그래도 소안천 무리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자넨 운도 좋구만.”

벌벌 떠는 한립을 보고 근류의 눈에 멸시의 빛이 어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운이라도 좋지 않았으면 벌써 금속수 뱃속에 들어가 있었겠지요.”

한립은 그가 비꼬는 것을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 안쪽에 금속수들이 지키던 보물이 있었을 테지? 그건 누구에게 있나?”

근류의 질문에 다른 이들도 눈빛이 뜨거워졌다.

“어휴, 그 텅 빈 곳에 보물은요. 들어가자마자 금속수들의 공격을 받아 달아나느라 바빠 제대로 찾아본 사람도 없었을 겁니다.”

“그게 사실인가?”

한립의 대답에 근류는 눈썹을 치켜뜨고 의심스러워했다.

“근 수사, 금문 안으로 먼저 들어간 선발대가 먼저 보물을 취하기로 했는데 이제 와 살아남은 석 수사를 추궁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닌 줄 압니다.”

그때 부 곡주가 입을 열었다.

“하하, 그런 오해 마세요. 보물을 빼앗으려는 게 아니라 석 수사가 감당 못 할 물건을 지니고 있으면 거래를 하려 했던 겁니다. 뭐,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니 어쩔 수 없고요.”

근류가 웃음을 터트렸다.

“거래를 하든 추궁을 하든 일단 세월탑부터 떠나고 하시지요. 석 수사, 자네가 우리보다 먼저 2층에 이른 것 같던데 뭔가 발견한 게 있는가?”

소근천이 그런 근류를 한 번 보고 한립을 향해 물었다.

“글쎄요. 반나절을 헤맸지만 모래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계속 가보세나.”

소안천의 말에 다들 이견 없이 전방으로 날아갔다.

다시 반나절이 더 지나갔다.

드디어 모래사막에 굵은 돌멩이와 야트막한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풍화된 유골들도 많아졌다.

무리 뒤쪽에서 날아가고 있던 한립은 그걸 보고 마음이 조금 불안해졌다.

소안천 등도 바닥의 짐승 뼈를 보았지만,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콰콰콰!

돌연 전방 하늘에서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굉음이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소안천 등이 멈춰 서서 의식으로 앞을 살피고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하늘 끝에 쌀알 크기의 암홍색 벌레들이 붉은 구름을 이루고 이쪽으로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짝거리는 붉은 화염을 두른 벌레들은 파악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화세형충!’

단번에 붉은 구름의 정체가 진언문 유적에서 보았던 무시무시한 반딧불이라는 것을 알아본 한립은 이제야 유골들이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오래 고민할 것 없이 바로 몸을 돌린 그는 당장 금빛 빛줄기로 변해 달아났다.

치융이 방출한 화세형충 만 마리를 상대하는데도 고생을 했는데 붉은 구름 안의 곤충들은 그 몇 배인지 파악도 안 되었다.

화세형충을 알아보지 못한 다른 이들도 붉은 곤충 떼의 위세에 기가 질려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근류는 가장 끝에서 이동하다 제일 먼저 달아나는 한립의 모습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화세형충 떼도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삑삑 울어대며 흥분해 속도를 높였다.

그 속도가 엄청나서 시간금제의 영향도 받지 않고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가장 마지막에서 달아나던 금선 산수 몇 명이 곧 따라잡힐 것 같았다.

“겨우 요충 따위가!”

금선 산수 중 붉은 얼굴 거한이 노호성을 터트리고 멈춰 섰다.

화륵!

전신에 적금색 화염을 일으킨 그는 수백 장을 불바다로 만들어 붉은 곤충들을 금방 태워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화세형충 수천 마리가 불바다에 말려들어 대열이 흐트러지자 홍안(紅顔) 사내가 희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단 몇 초후에 그의 얼굴이 다시 굳어지기 시작했다.

적금색 불바다에서 데굴데굴 구르던 화세형충들이 다시 날개를 팔락이고 멀쩡하게 달려든 것이다.

놀란 홍안 사내는 새빨간 두루마리 족자를 불러내 무시무시한 화염의 영력 파동을 발산했다.

품계가 있는 선기였다.

휘릭.

두루마리에서 펼쳐진 찬란한 불의 장막이 그를 둘러싸자 수천 마리의 화세형충이 날아들어 그를 포위했다.

곤충 고치처럼 변한 사내의 불의 장막은 빠르게 수축하다 꺼지고 새빨간 두루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잔뜩 구겨지고 찢어진 두루마리는 영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화세형충들이 홍안 사내를 감싸고 모기처럼 달라붙자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탱탱하던 사내의 붉은 얼굴이 삽시간에 쪼글쪼글해지고 머리카락 역시 새하얗게 세어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홍안 사내가 피골이 상접한 시체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의복까지 부식이 되어 떨어졌다.

곤충 떼는 흥미를 잃은 듯 시체는 버려두고 다른 이들을 향해 날갯짓을 했다.

순식간에 다른 금선 수사들도 곤충 떼에 따라잡혀 자취를 감추었다.

“화세형충! 기억났습니다, 저건 화세형충이에요! 태생적으로 시간법칙의 힘을 지니고 세월화염을 분출해 생령의 수명을 불살라 죽입니다. 이곳에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하던 이유가 있었어요!”

근류가 그걸 보고 몸을 떨더니 발작하듯 소리쳤다. 다른 이들도 안색이 변해 비수를 써서 속도를 높였다.

“화세형충은 기혈의 기운에 민감하니 최대한 기운을 숨기고 빙 돌아가면 곤충 떼와 정면충돌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소안천이 나지막하게 외쳤다.

무리의 수사들이 급히 육신의 기운을 감추고 왼쪽 전방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립도 무척 놀란 척하면서 <만규공적술>을 발동해 기운을 숨겼다.

이렇게 되자 곤충 떼들은 그들을 감지하지 못해 원래 날아가던 방향으로 날아가 추적을 계속했다.

이에 무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전력을 다해 그곳을 벗어났다.

* * *

한참을 달아나던 소안천 일행은 화세형충 대군을 따돌리고 인근언덕에 내려섰다.

소안천의 조언으로 육신의 기운을 숨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부는 가장자리에서 떠돌던 화세형충들을 마주쳐 목숨을 잃었다.

도와주고 싶어도 능력이 되지 않으니 다른 이들은 그저 그들이 세월 화염에 불타올라 흙먼지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위기에서 벗어난 무리는 아직도 안색이 좋지 못했다.

한편 한립은 얼른 구석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했고, 소안천은 가장 높은 언덕에서 붉은 곤충 떼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여기서 이렇게 많은 화세형충을 마주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소 선자의 조언이 없었으면 무사히 달아나기 어려웠을 겁니다.”

부 곡주가 길게 숨을 내쉬며 감사를 표했다.

“별말씀을요. 우연히 관련 경전을 본 적이 있어서 알게 된 것입니다.”

소안천이 담담히 말했다.

“탑 안이 정말 괴이하지 않습니까? 앞으로 또 어떤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보다 석 수사는 화세형충 대군을 보자마자 제일 먼저 달아나던데 이전에 화세형충을 본 적이 있는 건가?”

소안천은 부 곡주의 말에 답하는 대신 눈을 반짝이며 한립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말에 다른 이들도 분분히 구석에 자리를 잡은 한립을 향해 멸시의 눈빛을 보냈다.

“석 수사, 뭔가 알면서 아무 소리도 하지 않다니 우릴 모두 죽을 셈이었는가!”

그를 노려본 근류가 추궁을 했고 다른 수사들의 표정도 싸늘해졌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다른 비경에서 비슷한 요충을 만나 애를 먹은 탓에 얼른 피한 겁니다!”

한립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렇단 말이지?”

근류가 콧방귀를 뀌었다.

“둔술에 능하고 또 맨 뒤에서 따라왔으니 위험해지자마자 제일 먼저 달아날 수 있었던 것일 테지요.”

부 곡주의 별일 아니란 소리에 다른 사람들도 한립에게 신경을 껐다.

지긋이 한립을 쳐다보던 소안천도 시선을 거두었다.

탑 안의 상황이 심상치 않은데 저런 겁쟁이를 상대하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한립은 주변 사람들의 생각을 알면서도 실실 웃음을 흘렸다.

화세형충 때문에 무리와 떨어져 홀로 다닐 좋은 기회였지만 그도 탑에 무엇이 있을지 몰랐기에 한동안 함께 이동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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