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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36화 (1,793/2,000)

2036화. 태세부(太歲府)

*

두 사람이 사라지고 노란 장포를 입은 뚱뚱하고 못생긴 부인이 나타났다.

“남원자 저 쓸모없는 놈. 감천경을 갖고도 한립을 못 찾아서 나까지 고생을 시키고. 허나 여긴 살펴볼만 하겠구나. 한립이 있든 없든 비경 주인이 대라급 이상인 것은 틀림없을 테니.”

황포 추녀가 중얼거리다 사라졌다.

그곳에 모여 있던 이들 중 금포 사내가 황포 추녀가 사라진 것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웅산을 데리고 다니는 기마자였다.

“허허, 아주 다 몰려드는구나.”

“대인, 저들은 누구인지요?”

웅산이 기마자의 시선을 따라 황포 추녀를 보고 호기심을 드러냈다.

“구원관의 늙은 두꺼비, 사섬이다. 암습이나 하고 다니는 녀석이지.”

“사섬 대인!”

기마자의 대답에 웅산은 깜짝 놀라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기마자 눈에나 우습지 대라경 존재를 그가 어찌 함부로 거론하겠는가.

“줄곧 구원관에서 폐관 수련 중인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여길 다 오셨을까요? 곧 나타날 비경을 위해서 오셨을까요?”

웅산의 질문에 기마자가 눈썹만 끌어올렸다.

“저……. 대인, 한립이 정말 저 안에 있겠습니까?”

“십중팔구는 그럴 것이다. 추혼술로 2백 년 전에 한 씨 성의 사내가 인근 마을에 머물렀고 변신을 하기는 했지만 그자가 맞다는 것을 확인했다. 백수곡에 다녀온 뒤로 실종되었다는 것을 보면 이번 선부의 출현과 연관이 있을 것이야.”

“듣고 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쿠르릉,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빛기둥에 땅이 부풀어 오르는 중이었다.

쩍쩍 갈라진 땅을 뚫고 거대한 금빛 바위가 찬란하게 빛나며 솟아올랐는데 그 아래 고풍스러운 석문이 달려있었다.

‘태세선부(太歲仙府)’라고 적힌 문이었다.

* * *

비경 협곡 안쪽.

빠르게 물러나는 회색 안개를 따라 한립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얼마를 날아갔을까, 눈앞이 확 트이면서 드디어 협곡의 끝이 눈에 들어왔다.

회색 안개가 걷히고 나타난 광활한 영역에는 하얀 구름이 둥실 뜬 푸른 하늘과 풀냄새 가득한 평원이 있었고, 그 끝에는 희미하게 산들이 보였다.

불어오는 맑은 바람에 마음이 편안해지려는 찰나, 한립은 정신을 집중했다.

협곡 깊은 곳 공간 입구에서 파동이 점점 강렬해지고 점점 개방되려는 기미가 보였기 때문이다.

안에만 있어 밖에 벌떼처럼 모여든 이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으리란 건 알 수 있었다.

흡, 숨을 들이마신 그는 의식을 퍼트렸다가 뇌전 빛을 남기고 사라졌다.

평원 끝 어느 산 위에 모습을 드러낸 그의 앞에 옥으로 만든 것 같은 하얀 건물들과 그 주변의 비범해 보이는 하얀 보호막이 나타났다.

촤악!

손을 들어 허공을 베자 금색 검빛이 빠져나와 보호막을 갈랐다.

허공이 웅웅 떨릴 정도로 강한 검빛이었지만 보호막은 흔들리면서도 버텨냈다.

“단단한데…….”

한립이 앞으로 튀어 나가 주먹으로 직접 보호막을 내리쳤다.

퍽!

종이처럼 뚫린 보호막을 뒤로하고 바람처럼 건물로 접근하는 그의 얼굴에 설렘이 어렸다.

* * *

비경 바깥.

“태세선부!”

다들 지하에서 솟아오른 석문을 보고 이름을 중얼거렸다.

소안천, 근류, 뇌옥채 등도 격동한 얼굴이었고 기마자조차 군중들 사이에서 몸을 떨었다.

“태세, 네 동부가 여기 있었구나! 그래, 여기까지 헛걸음을 하진 않은 거야!”

땅과 하늘을 잇던 금색 빛기둥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석문의 금빛이 흐릿해졌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빛기둥을 바라보았다. 향을 한 개 태울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빛기둥의 빛이 점점 수축하다 사라졌다.

빛기둥에 가려져 있던 석문이 드러난 순간 소안천, 뇌옥책 등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펑!

그러나 석문에서 투명한 파동이 일어 그들을 날려버렸다.

가장 성질 급한 근류가 제일 먼저 달려들었다가 머리를 박고는 큰소리로 욕지거리를 하자 나머지 사람들은 분분히 멈춰 섰다.

석문에는 투명한 빛의 장막이 남아 있었다.

“금제!”

소안천 등이 난색을 표했고, 뇌옥책은 석문 쪽 허공을 갈라보았다.

쉬쉬쉭!

다섯 개의 손가락에서 금빛들이 빠져나와 태양처럼 석문에 떨어졌는데 투명한 빛의 장막은 미세하게 진동하다 회복되었다.

“단단하기는 해도 불가능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있으니 힘을 합쳐 깨면 금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손을 거둔 뇌옥책이 말했다.

“그럼 어서 금제를 깹시다! 청소곡은 청소대진(靑素大陣)을, 영소문은 영소열양술(靈霄列陽術)을, 능월관은…….”

근류가 그 말을 듣고 청소곡을 비롯한 거대 종문을 향해 소리쳤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의 아랫사람을 부르는 것 같았다.

종문 사람들은 화가 났지만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비경에 들어가려면 힘을 보태야 하는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곧 종문들이 힘을 합쳐 공격을 쏟아붓기 시작했는데 석문의 투명한 보호막은 잠자리 날개처럼 얇으면서도 이상하게 뚫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쉬지 말고 공격해라!”

뇌옥책이 그걸 보고 큰소리로 외쳤고, 기마자는 군중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기운을 금선경까지 억제해 놓은 그는 그리 튀지 않았고 지금 나선 것은 통천검파, 천수종 등 7대 세력이었다.

“대인, 이런 식으로 저들이 금제를 열 수 있을까요? 도와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옆에서 웅산이 물었다

“무식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금제를 여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아직 신분을 드러낸 때가 아니야.”

기마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하루가 꼬박 지나고 통천검파, 천수종 등의 맹공에 석문 금제가 드디어 변하기 시작했다.

“금제가 약해진다, 다들 더 힘을 내라!”

눈을 번득인 뇌옥책이 재촉했다.

그 결과 반나절 뒤 석문 금제가 드디어 펑, 하고 터져 사라졌다.

대량의 금빛이 석문에서 흘러나와 소용돌이를 이루고 그 안에서 금색 별빛이 반짝거려 무한한 밤하늘을 응축해 놓은 것 같았다.

* * *

그때 비경 깊은 곳에 있던 한립은 어느 궁전 금제를 뚫다 안색이 달라져 비경 입구 쪽을 돌아보았다.

강렬한 공간 파동이 전해지고 있었다.

“결국 비경 입구를 들켰구나……. 그나저나 몇 사람이나 들이닥칠지.”

인상을 찌푸린 그는 전신에 금빛을 일으켜 산악거원으로 변신한 다음 쾅! 궁전 금제를 내리쳤다.

한 주먹에 금제가 허물어져 내리고 남은 여파로 궁전 일부가 훼손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을 살필 여유는 없었다.

한립은 빠르게 날아들었다.

* * *

석문 바깥, 청사요.

“갑시다!”

희색을 드러낸 뇌옥책이 먼저 금색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졌다.

태을경 수사들이 1, 20명은 모여있었지만, 그중에서 신분이나 실력으로 가장 손에 꼽히는 게 그였다.

다른 태을경 수사들이 분분히 그를 따라 들어가자 몇몇 종문들이 앞서고 나머지 세력들이 뒤따라 소용돌이 안으로 날아들었다.

남 씨 오누이, 기마자 등 군중 속에 몸을 숨긴 이들도 자연스럽게 대열에 합류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한립이 비경에 들어왔을 때 처음 나타났던 협곡 안이었다. 이제는 금색 소용돌이 바깥에서도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기마자가 안의 풍경을 보더니 눈을 반짝였다.

“웅산, 저들을 따라 다니며 기연을 찾아보거라. 난 먼저 가보겠다.”

웅산에게 이 말만을 남긴 채 그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 말에 웅산은 걱정하기보다는 기뻐했다.

드디어 사사건건 기마자의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섬, 남 씨 오누이도 혼란한 틈을 타서 협곡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군중 무리 구석에 흑포 남녀도 끼어 있었다.

“남원자 등이 비경 깊은 곳으로 향했어요. 선수를 빼앗길 수 없으니 우리도 갑시다.”

흑포 소녀가 전음으로 하는 말에 흑포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은신술은 하나같이 대단해서 이곳에서 가장 수행이 높은 뇌옥책도 전혀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콰르릉!

그때 비경 하늘이 심상치 않더니 하얀 뇌전 줄기들이 속속들이 나타나 위압감을 발산했다.

다들 깜짝 놀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콰쾅!

비경 전체가 진동하고 하늘에 검은 균열이 생기더니 돌연 허공의 금색 소용돌이가 줄어들어 펑, 하고 터져버렸다.

그제야 진동이 가라앉고 이상한 현상들이 잠잠해졌다.

“무슨 일이지?”

한립은 아까 그 궁전 안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있던 궁전 곳곳은 도처에 구멍이 뚫리고 지붕까지 뚫려 있었다.

미간을 좁힌 그는 시선을 거두고 비경 탐색을 계속했다.

그 시각, 막 비경에 들어온 뇌옥책 등은 갑자기 외부와의 통로가 끊기자 불안해져 얼굴이 어두워졌다.

“뇌 수사, 소 수사 이곳 동부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는 것 같던데 어찌 된 일인지 좀 알려 주십시오.”

넙데데한 얼굴의 능소문이 뇌옥책, 소안천에게 물었다.

“태세선존이라는 대라경 고수가 3대 지존법칙 중 하나라는 시간법칙을 익혔는데, 오직 수련에만 전념하느라 바깥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실종되어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고요. 우연히 이런 내용을 경전을 통해 읽은 바 있어 ‘태세선부’라는 이름을 보았을 때 태세선존께서 남기신 동부가 아닐까 짐작했을 뿐 다른 것은 모릅니다.”

소안천과 시선을 교환한 뇌옥책이 소리 높여 말했다. 그 말에 다들 얼굴이 밝아졌고 불안감도 옅어졌다.

대라경 선존이 남긴 동부면 얼마나 많은 진귀한 보물들이 남아 있겠는가!

“이제 어쩌면 좋을까요? 생각이 있으십니까?”

넙데데한 얼굴 사내가 또 물었다.

“확실한 것은 아니나 조금 전 천기현상은 선부가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다가 우리가 강제로 입구의 금제를 깨는 바람에 충격을 받아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곧 비경 자체가 무너질 조짐으로 보이니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이지요.”

그 말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이미 안으로 들어왔는데 출구는 사라지고 비경은 붕괴 직전이라니 이곳에 갇혀 죽을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너무 걱정할 것 없습니다. 대라경 수사의 동부인데 반드시 나갈 방법이 있을 거예요. 게다가 비경이 아무리 약해져 있어도 제 생각에는 아직 한 달 정도는 무리 없이 버틸 것 같으니 그때까지 출구를 찾으면 될 겁니다.”

뇌옥책이 당황한 이들을 살피고 대책을 제시했다.

웅성거리던 이들이 조금 조용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겁에 질린 이들이 많았다.

“제가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뇌옥책 옆에서 문중이 한 걸음 나섰다.

“동부 비경이 실로 괴이하고 탐색할 시간이 충분치 않으니 각 세력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보물을 찾다가는 원하는 것을 얻지도 못하고 목숨만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러지 말고 연맹을 맺어 함께 움직이면 위험도 줄이고 빠르게 난관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떠신지요?”

문중이 웃음을 머금었다.

“좋은 생각입니다. 여기에 모인 이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수행과 지위가 있는 이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소리소문도 없이 목숨을 잃어서야 쓰겠습니까.”

천수종 근류도 거들었다.

연맹을 맺자는 말에 다들 눈치를 살피느라 바로 답하는 이가 없었다.

일단 각 세력이 힘을 합치면 누군가의 명에 따라야 하는데 대라경 선부라는 기연을 앞두고 그러고 싶은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선부 비경의 상황을 몰라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고, 통천검파가 연맹 제안을 하고 천수종이 찬성한 사안이라 함부로 거절하기도 쉽지 않았다.

“다들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압니다. 연맹은 일시적이고 비경 안의 보물은 찾는 사람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하지요. 그저 비경 안에서 어떻게 움직일지만 연맹의 결정에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문중이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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