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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31화 (1,788/2,000)

2031화. 평정(平定)

*

기합을 넣은 한립은 주먹으로 검은 대문을 내리쳤다.

“주인님, 안 돼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재료 중에 하나라는 신물 석주(石鑄)로 만든 건물이라 대라급도 격파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고, 대문에 펼쳐놓은 금제도 무척 강해서 강제로 부수기보다는 파훼할 방법을 찾는 게…….”

그의 행동에 제혼이 말렸지만 이미 한립의 두 주먹은 대문에 닿아 있었다.

둥!

금색 대전은 물론 방원 백 리가 흔들려 산이 무너져 내리고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랐다.

그 충격으로 웅웅, 하는 소리와 함께 거센 바람이 치고 대문은 갈라져 균열이 커지는 중이었다.

쉬쉬쉭!

금빛들이 대문에서 만발해 거대한 검진을 이루고 한립을 향해 달려들었는데, 수백 리까지 위압감을 떨치는 검진의 위력은 청죽봉운검으로 만든 검진보다 강했다.

그런데 한립이 입에서 녹색빛을 뿜어 금색 검기들을 모조리 휘감아서 마치 모든 게 꿈이었던 것처럼 검진이 붕괴되었다.

녹색빛이 한립의 입안으로 돌아 들어가고, 은빛을 머금은 그의 주먹 여섯 개가 다시 대문을 강타했다.

쾅!

안 그래도 금이 가 있던 대문이 산산조각이 나서 터져나갔다.

“뭐라고 했느냐?”

“아니에요…….”

그제야 자신을 부른 것을 알았다는 듯 돌아보는 한립을 향해 제혼이 멍한 얼굴로 대답했다.

눈썹을 끌어올린 한립은 그대로 대전으로 뛰어 들어갔다.

광장만 한 원형 공간 안에 지붕을 받치고 있는 수십 개의 하얀 돌기둥과 거대한 금색 진법이 보였다.

진법은 복잡한 문양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주변 12개 은색 돌기둥에는 용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

동방백은 바삐 움직이며 은색 광물을 12개의 돌기둥에 박아 넣는 중이었다.

이미 절반 가까이 은색 광물이 들어찬 돌기둥에서 은은하게 빛이 흐르고 용 조각들이 입을 벌려 중앙의 진법을 향해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쿵!

거마로 변신한 한립이 묵직하게 대전 안으로 떨어져 바닥에 깊은 구멍을 남겼다.

“어떻게 벌써……. 석문에 천정 비전의 천절지멸검진(天絶地滅劍陣)을 펼쳐 두었는데!”

“이제 그만 죽거라, 동방백!”

동방백이 놀라든 말든 등 뒤에 금빛 고리를 불러낸 한립은 먼지 속에서 뛰어올랐다.

기겁한 동방백이 진법도 뒤로하고 괴이하게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피식 웃음을 흘린 한립이 진언보륜을 발동했다.

웅!

수많은 금빛 파동이 진언보륜에서 퍼져나가 자욱하게 대전 안을 채웠다.

그러자 대문 인근 허공에서 동방백이 나타나 진언보륜 금제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마 변신을 거둔 한립은 손가락을 튕겨 그의 단전을 향해 금색 검 그림자를 쏘아 보냈다.

커다란 구멍이 뚫린 단전 안에서 동방백의 원영도 산산조각이 났음이 분명했다.

안심한 한립이 수결을 펼쳐 진언보륜의 금색 파동을 없앤 순간, 작은 녹색 빛구슬이 쏜살같이 동방백의 몸속에서 빠져나와 대전 바깥으로 달아났다.

“제혼!”

한립은 쫓지 않고 담담히 제혼을 불렀다.

귀신처럼 혼백의 앞을 막아선 제혼이 손에서 핏빛을 뿜어 녹색 빛구슬을 잡아챘다.

녹색 빛구슬은 태을경 노인들의 혼백보다 훨씬 강하게 저항했지만 그녀의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좌우로 늘어났다 줄었다를 반복하던 녹색 빛구슬에서 동방백의 얼굴이 떠올라 애원했다.

“제가 귀한 분들을 몰라보고 죄를 지었습니다! 살려주시기만 하시면 그간 모아둔, 아니 금원선궁 전체의 보물을 가져다 바치겠습니다!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거예요.”

한립은 웃음을 흘리며 말이 없었고, 엽소소와 가깝게 지냈던 제혼은 증오의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한 수사! 그럼 제가 귀도(鬼道)로 길을 돌려 평생 수사에게 충성을 다하면 어떻겠습니까? 귀도로 전환해도 수행은 크게 떨어지지 않아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또 구원관에서 고수들을 보내 수사를 잡으려 한다는 정보도 가지고 있으니까 달아날 때 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테고요!”

그녀의 눈빛을 본 동방백은 제혼은 포기하고 한립만을 쳐다보며 속사포처럼 조건을 제시했다.

“주인님, 엽소소를 죽인 이 자를 절대 용서해 주시면 안 돼요! 게다가 어차피 혼백을 손에 넣었는데 추혼술을 펼치면 다 알 수 있게 될 정보고요.”

제혼은 한립이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보고 급히 나섰다.

“추혼술? 난 비술을 익히 누군가 추혼술을 펼치면 혼백이 흩어지게 되어있다. 내 기억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어.”

동방백은 한립이 결정권자라는 것을 파악하고 제혼에게는 평소의 오만한 태도를 유지했다.

“주인님, 제가 익힌 법칙이 혼백에 관한 것임을 아시잖아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될 거…….”

“뭐라 떠들든 마음 쓸 것 없다. 단 한 번도 이 자를 살려둘 생각을 한 적은 없으니. 청호족을 대신해 복수하러 왔는데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없애야지. 마음껏 추혼술을 펼치거라. 실패해서 아무 정보도 얻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네! 감사합니다, 주인님!”

한립의 말에 제혼은 뛸 듯이 기뻐하며 손바닥에서 대량의 검은 빛을 방출했다.

검은빛에서 빠져나온 수많은 핏빛 주술문자가 녹색 구슬을 파고들고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한립은 동방백의 혼백이 처절하게 괴성을 지르면서도 터지지 않는 것을 보고 과연 제혼의 신통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다.

제혼이 열심히 추혼술을 펼치는 동안, 그는 동방백 시체로 가서 저물반지를 취해 의식을 불어넣었다.

팟.

한립은 전송진을 살피고는 은색 수정돌들을 꺼내 남은 돌기둥에 끼워 넣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은색 수정돌을 전부 끼우자 빛이 퍼진 진법이 웅웅거렸다.

이때 밝은 얼굴의 제혼이 검은빛을 거둬 동방백 혼백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는지 눈이 풀려 있었다.

“다 끝났어요. 이 전송진과 연결된 곳은 네 곳인데, 가장 가까운 게 금한선궁, 중토선궁이고 나머지 두 곳은…….”

후웅!

그런데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 굵직한 은색 빛기둥이 진법에서 솟아올라 대전 전체를 밝혔다.

안색이 달라진 한립이 몸을 날려 돌기둥 중 하나의 은색 수정돌을 뽑아내려 했지만 진법의 광채가 퍼져 빛의 장막을 이루고 그를 튕겨냈다.

은색 빛기둥이 사라진 자리에는 낯선 사람들이 서 있었다.

불타오르는 듯한 새빨간 머리카락을 지니고 팔과 다리가 유난히 긴 거구와 감찰선사 복장인 금색 장포를 입은 청년이었다.

“……!”

그들을 본 한립은 당장 제혼을 잡아 바깥쪽으로 튀어 나갔다.

홍발(紅髮) 사내가 미라 노조의 제자였던 기마자란 것을 알아본 것이다.

방대한 기운을 지닌 그는 대라경 수사였고, 그 옆의 금포 청년은 수행이 그리 높지 않아 금선 후기였다.

평범한 대라경 수사를 마주쳤으면 어떻게든 붙어 보겠으나 기마자는 시간법칙을 익히고 있는 대라경 존재였다.

대전의 상황을 보고 놀라던 기마자가 달아나는 한립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저 자입니다!”

그의 시선을 받은 금포 청년이 눈을 번뜩이고 단호하게 답했다.

희색을 드러낸 기마자가 진법을 빠져나가려는데, 주위의 빛의 장막이 괴이한 구속력을 지녀 진법 내부의 공간을 폐쇄했다.

수행이 강한 기마자도 바로 전송진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시각 제혼을 데리고 대전을 벗어난 한립은 아직 진법에 남아 있는 두 사람, 특히 금포 청년을 돌아보고 소매를 크게 펄럭였다.

콰릉!

금색 뇌전 빛이 흘러나와 한립과 제혼을 감싸고 사라졌다.

화륵.

코웃음을 친 기마자가 금색 횃불을 불러냈다.

금색 횃불은 다름 아닌 단시류화(斷時流火)였다.

한립의 단시류화와 달리 기마자의 금색 횃불은 몇 배는 크고 밑의 손잡이 부분까지 실체화되어 있었다.

2천여 개의 시간도문이 반짝이는 기마자의 단시횃불이 거대한 시간법칙 파동을 만들어 주변 허공이 버티지 못하고 들끓었다.

순식간에 백여 장을 불꽃 모양의 금빛으로 채운 기마자 때문에 빛의 장막 내 영기의 흐름도 거의 멈추었고 금포 사내도 움직이지 못했다.

손을 저어 강력한 빛의 장막을 물방울처럼 터트린 기마자는 금빛과 단시횃불을 거두고 모든 것을 정상으로 되돌렸다.

찬란한 불빛으로 변해 훌쩍 대전을 떠난 기마자는 수많은 금색 그림자들을 몸에서 퍼트려 사방팔방으로 보냈다.

팟.

그 즉시 눈을 번득인 기마자가 두 손으로 수결을 맺어 불꽃무늬 주술문자들로 금빛 찬란한 진법을 이루고 사라졌다.

헐레벌떡 쫓아온 금포 청년은 한립과 제혼은 물론 기마자도 볼 수 없어 실망한 기색으로 금빛으로 변해 어딘가로 날아갔다.

콰릉.

금원선궁에서 십여 만리 떨어진 어느 산 정상에 금빛이 번쩍이고 한립과 제혼이 나타났다.

“휴! 방금 그 사람들은 누구였어요?”

주위를 휙휙 둘러본 제혼이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천정 선옥의 인물이다. 선옥의 주인이라 불러도 되겠지.”

“선옥의 주인!”

“그보다 아직 안전하다 할 수 없으니 어서 떠나야 한다.”

두 손으로 수결을 맺은 한립이 금빛 뇌전들로 커다란 진법을 만들 때 주변 허공에서 금색 불빛이 보이고 공간의 힘이 퍼졌다.

동공을 수축한 한립의 손길이 빨라졌다. 금색 진법이 내뿜은 빛에 제혼과 한립의 신형이 흐릿해지다 사라졌다.

금색 불빛이 흩어진 자리에 나타난 기마자는 아직 완전히 자취를 감추지 못한 뇌전 진법을 보고 조소했다.

눈을 감고 잠시 무언가를 감응한 그는 수결을 맺어 금색 불꽃 진법으로 사라졌다.

금원산맥 모처에 콰릉, 하는 뇌전 소리가 들리고 한립과 제혼이 도착했다.

“기마자도 전송술에 능통한 줄 몰랐어요. 어쩌면 좋을까요?”

제혼이 조급히 물었다.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 한립은 대답 대신 몸을 가누자마자 수결을 맺어 뇌전 진법을 펼치려 했다.

그때 또 멀지 않은 곳에 금색 불꽃이 일었다.

“가자.”

즉시 뇌전 전송진을 발동한 한립과 제혼이 사라지자마자 기마자도 도착해 공간 전송진을 펼쳤다.

이렇게 술래잡기를 하듯 금원선궁에서 아주 멀리까지 이동한 그들은 아직 한립이 조금 앞서가고는 있지만, 기마자가 점점 상대의 뇌전 진법을 파악하며 거리를 좁혀오는 중이었다.

금원산맥 어느 절벽 위에 뇌전이 번득이고 한립과 제혼이 나타났다.

제혼을 화지공간으로 들여보내고 홀로 이동하면 더 편하겠으나 물건이 아닌 그녀를 들여보내려면 공간의 문을 열어야 했는데 기마자가 바짝 추격해 그럴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한립은 다시 수결을 맺었다.

“주인님, 이렇게 가다가는 곧 따라잡힐 것 같은데 방법이 있으세요?”

침음하던 제혼이 물었다.

“그자의 공간전송술은 화염의 힘에 공간의 힘을 결합해 내 뇌전전송술과 근본적으로 비슷하다. 일정 거리 이상으로 벗어나면 쫓아오지 못할 것이야.”

“하하, 억만리를 달아나지 않는 한 내 추종술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뇌전진법이 형성되기 전 멀지않은 허공에서 금색 불꽃이 보이고 기마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불꽃이 검은 천처럼 번져 아직 완성되지 못한 뇌전 진법이 쾅! 터져나갔다.

흠칫 놀란 한립이 제혼을 붙들고 뒤로 물러나는데 검은 천이 멈추지 않고 그들을 쫓아왔다.

인상을 찡그린 한립은 전력으로 날아가면서 <천살진옥공>을 운용해 주먹을 내질렀다.

금색 주먹 허상과 검은 천이 충돌했다.

촥!

금색 주먹 허상은 둘로 갈라져 터졌지만 검은 천은 잠시 흔들리고 계속 뒤따라 왔다.

안색이 달라진 한립은 제혼을 아예 품으로 끌어들여 조그맣게 ‘단단히 붙들어라’라고 속삭인 뒤 두 주먹을 연타했다.

퍼퍼퍼퍼펑…….

금색 주먹 허상들이 부서질 때마다 검은 천도 희미해져 셀 수없이 많은 주먹 허상들이 사라진 후에는 드디어 종적을 감추었다.

멈춰선 한립이 숨이 가쁜 듯 가슴을 들썩였다.

방금 거마 변신을 해 동방백과 싸운 탓에 육신의 힘을 꽤 소모했는데, 천여 번의 주먹질을 하고 났더니 확실히 더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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