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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30화 (1,787/2,000)

2030화. 오악(五惡)

*

금빛을 방출해 몸을 휘감고 있던 덩굴을 치운 한립은 앞에 떠오른 금색 나무를 보았다.

고생해서 만들어낸 태을신목이 현란하게 금빛을 머금고 영역 내의 녹색 식물들을 녹여 흡수하는 중이었다.

빨려 나갔던 선령력이 급속도로 채워지고 녹색 영역은 흐릿하게 변해갔다.

“말도 안 돼! 내 목신영역(木神靈域)은 계속 재생이 되는데 어떻게 흡수될 수가…….”

겁에 질린 동방백이 무언가를 하려는데 한립이 변한 거마가 먼저 공격을 해왔다.

거마는 나머지 네 팔을 들어 올려 주먹 끝의 은빛으로 문양 진법을 만들어냈다.

쿠쿵!

네 개의 주먹에서 눈부신 금빛이 터져 나오고, 거마의 머리가 노호성을 터트렸다.

수미금산이 떨어질 때보다 더 커다란 폭음과 함께 거대한 산봉우리가 앞으로 날아가 열댓 개의 산봉우리를 부수고서야 멈춰 섰다.

그러는 동안 산 정상에 앉아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튕겨 나가고, 실력이 강한 이들만 겨우 남아 겁에 질린 얼굴로 버티고 있었다.

헉, 숨을 들이마신 동방백은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면서 당장 영역을 거두고 녹색 빛으로 변해 선궁 안쪽으로 달아났다.

“어딜!”

한립이 변한 거마가 그 뒤를 쫓는데 검은 구름이 몰려들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다섯 명의 태을경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각각 검은 깃발을 들고 전력으로 휘저어 집채만 한 검은 용발톱 8개를 불러내 한립을 공격하고 있었다.

다섯 명이 힘을 합쳐 한립을 가로막기는 했으나 속으로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처음 맞붙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립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명명백백했는데, 금원선궁 장로로서 궁주의 명을 거스르면 어차피 죽은 목숨이었다.

이 오룡어천기(五龍御天旗)가 상대를 잠시라도 막는 동안 다른 궁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죽고 싶구나.”

코웃음을 친 한립은 소매를 펄럭여 72자루의 청죽봉운검을 내보냈다.

치칙거리는 소리를 내며 72개의 검빛이 호선을 그리며 검은 용발톱들을 향해 날아갔다.

강렬한 뇌전법칙이 느껴지는 공격에 단단해 보이던 용발톱들이 맥없이 잘려나가 검은 구름 속의 깃발들도 빛을 잃었다.

대경실색한 노인들이 물러나려 했으나 72개의 검빛은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검은 구름을 갈랐다.

다섯 명의 태을경 노인들은 각자 보물을 불러내 보호막을 펼치고 검은 구름을 강화했다.

서로 부딪치는 순간 검은 구름은 눈 녹듯이 흩어지고, 다섯 노인의 보호막도 펑펑, 터져나갔다.

이제야 노인들은 한립과 그들의 실력이 천양지차라라는 것을 깨닫고 급히 둔술을 펼쳐 달아나려 했다.

금빛이 반짝이고 노인들의 목에 서늘한 검기가 겨누어졌다.

주변의 다른 수사들은 동방백이 달아나는 순간, 대부분 전의를 상실하고 달아나 남은 이들은 태을경 노인들의 직계 수하들뿐이었다.

그들은 한립을 향해 달려들다가 노인들이 제압당하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위풍당당하게 몰려들었던 이들이 갑자기 허겁지겁 달아나는 꼴이 마치 원숭이 떼처럼 보였다.

“너희가 천음오자(天陰五子)인가? 각자 이름을 대라.”

한립은 서늘하게 물었다.

“저는 음천호라 합니다. 저희는 동방 궁주의 명에 따랐을 뿐 수사와 아무 원한이 없으니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시선을 교환하던 중 가장 왼쪽에 있는 노인이 간사하게 웃으며 한립을 향해 공수를 해보였다.

다섯 명은 용모는 똑같았으나 손가락에 낀 흑옥 반지에 각각 호(虎), 녹(鹿), 웅(熊), 원(猿), 응(鷹) 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저는 음천녹입니다, 한 수사.”

‘녹’자 반지를 낀 노인도 비굴한 낯으로 인사를 했다.

“음천웅입니다.”

음천녹 옆 노인은 눈을 번뜩이고 무표정하게 말했다.

“노부는 음천원입니다. 실력이 부족해 이 꼴이 되었으나 살려달라 애원할 마음은 없으니 죽이든 살리든 알아서 하세요.”

가장 오른쪽에 선 노인이 오만한 얼굴로 소리쳤다.

“넷째야, 그 무슨 소리냐!”

음천호가 놀라 아우를 꾸짖었다.

팟!

그때 아직 이름을 밝히지 않은 노인이 핏빛을 일으켜 체형을 수축해 목에 겨눠진 검기를 피하더니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 속도가 기가 막히게 빨랐으나 검기가 달아나는 내내 옆에 붙어 있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그를 베어 버렸다.

콰릉!

달아나던 노인은 몸이 터져 핏물로 사라졌다.

“다섯째 아우!”

“한 수사, 살려주십시오!”

나머지 넷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대답 없는 한립 뒤로 은빛이 반짝이고 제혼이 나타났다.

두 손을 뻗은 그녀는 핏빛으로 두 개의 고리를 만들고 죽은 노인의 잔해를 흡수했는데 ‘응’자가 적힌 흑옥반지도 함께 빨려 들어왔다.

네 노인이 그걸 보고 표정이 달라졌을 때 검기가 바짝 목으로 다가왔다.

“수선하는 사람으로서 살아오면서 적잖은 생명을 해친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난 약자를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부류를 끔찍이 싫어한다. 너희 천음오자의 악명은 진작 들어 알고 있었다. 너희의 이름을 물은 것은 그자들이 맞는지 확실히 하기 위해서였고.”

한립의 말에 겁에 질린 노인들은 달아나지도 못하고 침만 꿀꺽 삼켰다.

“방금 달아나려던 자가 음천응이겠지? 혈도(血道) 선기를 제련하기 위해 범인들이 사는 성 백 개를 도륙하고 억만 생령으로 혈제를 치른 죄, 죽어 마땅하다.”

그 말을 들은 네 사람은 흠칫 놀랐다.

‘음천응이 범인들로 혈제를 치른 것은 단단히 비밀에 부쳤는데 어찌 알고 있단 말인가?’

“음천호, 너는 창운산맥에 흐르는 음기를 이용해 수련의 고비를 넘기 위해 그곳에 있는 금봉종(金峰宗) 2천여 명의 사람을 해친 일이 있다. 맞더냐?”

“수사, 오해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저는…….”

한립의 추궁에 낯빛이 하얗게 질린 음천호가 제대로 해명을 하지 못했다.

“음천녹, 너는 자모추혼번(子母追魂幡)이란 사악한 보물을 제련하기 위해 속세에서 아이를 가진지 반년이 넘은 여인만을 잡아 혈제를 치렀다. 인정하겠지?”

음천호를 상대하지 않고 한립이 음천녹을 쳐다보았다. 음천녹도 깜짝 놀라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음천웅, 넌 성인군자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음양합환결(陰陽合歡訣)>이라는 사공을 익히기 위해 그간 금원선역 각지에서 실종된 대승기 이상 여제자 수백 명을 잡아다 추악한 짓을 한 것을 알고 있다.”

음천웅은 사시나무 떨듯 떨며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음천원, 너는 다른 형제들처럼 자신의 사욕을 위해 살인을 일삼지는 않았으나 동방백의 충실한 개로 그의 명을 받아 적잖은 종문을 도륙해 백번을 죽여도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

한립이 마지막으로 음천원의 죄목을 밝혔다.

“잘도 알아냈구나. 그래, 그간 내가 없앤 종문이 백 개는 못 되어도 몇십 개는 충분히 될 것이다. 죽일 테면 죽여라!”

눈썹을 끌어올린 음천원은 두려움이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끼끼끽!

냉소를 흘린 한립이 네 사람을 죽이려는데 얼굴에 핏빛이 돈 음천원의 웃음소리가 가냘파지면서 원숭이 울음소리로 변했다.

그 소리에 기이한 법칙의 힘이 실려 한립의 두 귀를 파고들었고, 놀랍게도 엄청난 극통에 수결을 맺는 그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그 사이 음천호, 음천녹, 음천웅 세 사람의 몸을 비틀어 검기에서 벗어나 물러났다.

음천원도 검기에서 떨어져 나와 물러서지 않고 반대로 한립에게 달려들었다.

“실력이 강한 잡니다! 제가 시간을 끌 테니 다들 달아나요!”

괴성을 지른 음천원의 피부가 혈홍색으로 물들어 부풀어 올랐다.

“넷째 아우!”

그걸 보고 눈시울이 붉어진 음천웅이 몸을 돌려 돌아가려는데 음천호가 팔을 붙들었다.

“이미 홍련단멸대법(紅蓮斷滅大法)을 써서 돌이킬 수 없다! 지금 가봤자 넷째를 구하기는커녕 너까지 휘말려 죽고 말거야. 어서 달아나자!”

음천호는 음천웅을 끌고 멀리 날아갔고 뒤쪽에서 펑, 하는 폭음이 들려왔다.

핏빛 돌풍이 불고 묵묵히 주먹을 거둔 한립의 몸에는 수정막이 한 겹 덧씌워져 있었다.

음천원의 자폭에도 진극막이 가뿐하게 막아 티끌만 한 상처도 남지 않은 것이다.

이에 다른 세 노인은 화들짝 놀랐고, 음천웅도 더이상 돌아갈 생각을 버리고 흩어져 달아났다.

몸에서 검은 화염이 일으킨 음천호가 새까만 불구슬로 변해 튀어 나갔고, 푸른 단약을 삼킨 음천녹은 거대 사슴 허상을 불러내 네 발로 달려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물결처럼 출렁이는 검은 빛을 두른 음천웅은 전신이 투명하게 변해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그걸 본 한립은 왼손으로 허공을 치며 오른손으로 수결을 맺는 동시에 미간에서 수정빛을 반짝였다.

그러나 수천 장을 벗어난 음천호 뒤로 파동이 일더니 집채만 한 금색 주먹 허상이 나타났다.

펑!

음천호와 그가 두른 까만 불구슬이 터져 피가 흩날렸다.

같은 시각, 음천녹 앞쪽에 금빛 뇌전을 품은 검기가 쏘아져 나와 그를 베었다.

뒤쪽만 살피던 음천녹은 상상도 못 한 공격에 피할 겨를도 없이 두 조각이 나버렸다.

땅속 모처, 전력을 다해 둔술을 펼치던 음천웅 옆에 수정빛이 반짝이고 투명한 검 그림자가 그를 스쳤다.

참혹한 비명이 땅속에서 울리다가 곧 정적이 흘렀다.

제혼이 기다리고 있다 두 손을 들어 손바닥에서 핏빛을 방출했다.

슉!

혼백 네 개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날아들어 그녀의 손바닥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기억을 확인해 봐야 하니 잠깐 기다리거라.”

한립은 제혼이 혼백들을 삼키기 전에 한마디 했다.

이번에 금원선궁으로 쳐들어온 이유는 동방백 등을 죽여 청호족과 다른 이들의 원한을 풀어 주려는 것도 있었지만, 이곳의 전송진법을 이용해 금원산맥을 떠나려는 목적도 있었다.

“이런 악인들은 그냥 죽여주는 것도 아까워요. 추혼술을 끝내면 어디 가둬놓고 영원히 괴롭게 만들어 주겠어요.”

혼백들을 손에 쥔 제혼이 싸늘하게 말하고 추혼술을 펼쳤다.

한립은 대답 없이 금빛 뇌전으로 제혼을 감싸고 동방백을 쫓았다.

천음오자를 잡고 그들의 죄명을 말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몇십 초에 불과해 동방백은 아직 그의 의식 범위 내에 있었다.

의식으로 동방백의 종적을 포착한 한립이 전력으로 날아 수백 리까지 거리를 좁혔다.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으냐!”

한립의 소매 속에서 72개의 비검들이 빠져나와 한 자루로 합쳐지더니 속도가 몇 배는 빨라졌다.

콰릉, 하는 굉음과 함께 거대 비검이 동방백을 내리쳤다.

훅.

고개를 돌린 동방백이 입을 벌려 푸른 거대 깃발을 뱉어냈고, 펄럭거리는 깃발에서 수많은 녹색 꽃들이 피어올라 덤불을 이룬 채 굵직한 뇌전을 막았다.

짙은 풀 향기에 보통 수사는 맡기만 해도 몸에 힘이 빠지는 특수한 법칙의 힘이 실려 거대 비검 조차 매서움이 한풀 꺾여 녹색 꽃 덤불로 파고들었다.

미친 듯이 반짝거린 꽃 덤불은 절반 넘게 잘려나가기는 했지만 공격을 막아냈다.

동방백의 신영이 녹색 그림자로 변해 아래쪽에 있는 거대한 금색 대전으로 사라졌다.

콰릉, 천둥소리와 함께 나타난 한립이 급히 그 뒤를 쫓으며 수결을 맺었다.

굵직한 뇌전들이 남은 녹색 꽃 덤불을 찢어 그 안에 숨겨진 깃발마저 두 동강을 내버렸다.

한립이 뇌전들을 회수하고 대전으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쿠르릉! 하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열려 있던 대문이 닫히고 검은빛을 머금은 건물 전체에서 웅장한 기운이 느껴졌다.

크고 작은 고풍스러운 검 문양이 빼곡하게 새겨진 대문에는 강력한 금제가 펼쳐져 있었다.

인상을 찡그린 한립이 그 앞에 내려서 주위를 살피고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제혼, 알아보았느냐? 이곳은 뭐 하는 곳이지?”

“잠깐만요. 네 사람의 혼백이 지닌 기억의 양이 워낙 방대해서……. 큰일이에요! 여기가 바로 금원선역의 전송대전이자 선역 간 전송진이 있는 장소였어요!”

손에서 검은 빛줄기들을 뻗어 네 노인의 혼백을 감고 있던 제혼이 안색이 달라져 소리쳤다.

“달아날 셈이로구나!”

그 소리를 듣자마자 한립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거마로 변신한 그의 머리가 또렷해져서 각각 산악거원, 천룡, 유천곤붕의 모습을 드러내고 갑자기 배로 불어난 몸뚱이에는 9백여 개의 현규들이 별빛을 머금었다.

세 가지 진령혈맥의 기운이 몸 안에서 격동하면서 천지를 뒤흔드는 기운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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