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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29화 (1,786/2,000)

2029화. 홀로 쳐들어가다

*

“정말 조화정립일 수도 있겠어! 드디어 장천병이 진선계에 나타났구나!”

묘법선존은 크게 기뻐하다 갑자기 표정이 싸늘해졌다.

“……진작부터 알고 있던 일을 왜 이제야 보고한 것이지?”

“모두 제 잘못입니다. 공을 세우고 싶은 욕심에 한립을 잡아다 장천병을 선존께 바치려 했는데 상대가 생각보다 강해 금원선궁의 힘으로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벌을 내려주십시오!”

동방백이 털썩 바닥에 꿇어앉아 겁먹은 얼굴로 비는데 그의 눈빛만은 냉담했다.

어차피 들킬 것 인정할 건 빨리 인정하고 한립이 얼마나 천정과 선궁을 깔보고 적대시하는지 말해 묘법선존을 화나게 하는 게 벌을 최소화할 수는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직 금원선역에 있는 한립을 잡으려면 그의 도움이 필요할 테니 묘법선존이 큰 벌을 내리지 않을 거란 계산도 있었다.

“그래서 그 한립이라는 자는 어디 있느냐?”

“아직 정확한 위치는 파악하지 못했으나 금원선역의 모든 전송진법을 막아달라 일렀으니 이곳을 떠나지는 못했을 겁니다.”

“잘했다. 조화정립의 소식을 알아낸 공이 있으니 한립만 잡아 오면 죄를 사하겠다. 물론 금원선역을 빠져나가게 두면 어찌 될지는 알겠지?”

“선존의 말씀을 명심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런데 상대의 실력이 너무 강해 금원선궁의 힘만으로는…….”

긴장한 동방백이 도움을 청했다.

“내 금한선궁의 남 씨 오누이를 보내 너를 돕게 할 테니 즉시 한립을 추격하거라. 절대 놈이 미리 눈치채고 달아나게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

금한선궁의 남 씨 오누이라면 유명한 이들이었다.

태을경 후기의 수행을 지녔지만 합격비술을 익혀 한 몸으로 융합해 대라경 실력을 낼 수 있는 데다, 실제로 윤회전의 대라경 수사와 3일 밤낮을 싸우고도 밀리지 않은 일로 더욱 유명해졌다.

보고를 마친 동방백은 한숨을 돌리고 보라색 영패를 거두었다.

* * *

천궁 모처의 분홍 궁전 안.

분홍빛이 가득한 침실에 동방백과 대화를 마친 묘법선존이 천으로 얼굴을 가린 채 앉아 있었다.

그녀가 앉은 우아한 침상 옆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두꺼비 한 마리 앉아 있었는데, 두 뺨에 눈이 여섯 개나 달리고 피부가 울퉁불퉁했는데 묘법선존과 거의 비슷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주인님. 장천병만 되찾아오면 구원조사께서도 주인님을 달리 보시겠지요. 줄곧 비어있는 부관주 자리가 코앞입니다.”

황토 두꺼비가 여섯 개의 눈을 깜빡이면서 사람의 말을 했다.

“부관주 자리는 탐낼 것도 없다. 그저 관주께서 순조롭게 두 번째 삼시를 베어낼 수 있게 지도를 해주시길 바랄 뿐이지.”

“맞는 말씀입니다. 언제든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지요.”

“사섬, 금한선궁에 내 명을 전달하고 네가 금원선역에 한번 다녀와야겠다.”

“남 씨 오누이가 가는데, 태을경 수사인 한립이란 자를 잡기 위해 저까지 가란 말입니까?”

“그렇다고 해도 3대 지존법칙 중 하나인 시간법칙을 익힌 자다. 방심해선 안 돼. 남 씨 오누이로는 안심이 되지 않는다. 누구도 이 일을 알게 하지 말고 꼭 단번에 성사시켜야 한다.”

묘법선존의 말에 사섬의 눈에 내키지 않는 기색이 떠올랐다.

태을경 수사를 잡기 위해 대라경 수사인 자신더러 가서 몰래 기습하고 오라니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중요한 일이니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면 네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묘법선존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사섬이 일어나 커다란 몸을 수축해 뚱뚱하고 누런 피부를 지닌 부인으로 변했다.

추한 부인이 사라지고 묘법선존 역시 몸을 움직여 사라졌다.

* * *

금원선궁의 동방백은 마음이 가벼워져서 자신의 대전으로 돌아왔다.

“여봐라!”

“찾으셨습니까, 궁주님?”

멀리서 빛이 번쩍 날아들어 날카로운 검처럼 예리한 느낌의 청년이 나타났다.

“흑도와 려운은 임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한아, 네가 오늘부터 암검(暗劍) 대장이니 암검의 모든 인원을 파견해 한립의 행방을 알아내거라.”

“예!”

청년이 명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멀리서 진동이 들리고 땅이 흔들렸다.

“무슨 일이냐?”

“제가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미간을 좁힌 동방백을 보고 청년이 얼른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

그때 붉은 둔광이 먼저 날아들어 옷이 피로 물든 호위병으로 변했다.

“궁주님께 아룁니다! 누군가 쳐들어와 저희 힘으로 막을 수가 없습니다!”

상당히 당황한 모습이었다.

“감히 누가 금원선궁에!”

대노한 동방백이 당장 튀어 나가려다 멈칫했다. 그는 얼른 의식을 퍼트려 금원선궁 입구를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 * *

화려하던 선궁 입구가 폐허가 되고 십여 개의 궁전이 무너져 있었다.

공중에 백여 명의 선궁 수사들이 검은 장포를 입은 다섯 명의 노인들의 명을 받아 반원형의 진열을 이루었다.

기운이며 용모가 똑같은 노인들은 태을경 존재였고, 나머지 수사들은 진선경 후기에서 금선 경지를 지닌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과 마주하고 있는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푸른 장포를 입고 4, 50자루의 금색 비검을 띄운 청년이 공격할 때마다 하늘에 기다란 하얀 궤적이 나타났다.

안색이 달라진 태을경 노인들이 십(十) 자 형태로 서서 입에서 검은 깃발을 불러냈다.

휘이잉…….

무섭게 생긴 검은 용 문양이 새겨진 깃발에서 새까만 기운이 퍼져 나와 강한 부식성을 드러냈다.

곁의 금선 수사들이 끔찍한 벌레라도 본 듯 뒤로 물러났다.

“마기!”

청포 사내는 열 손가락을 튕겨 비검에서 금색 검기를 방출했다.

치지직!

검은 연기들이 순식간에 타들어가고 금색 검기가 그 뒤의 태을경 노인들을 갈랐다.

급히 주변의 까만 기운을 수축한 노인들은 키가 줄어들어 난쟁이처럼 변한 채 검기를 피했고, 결국 그 뒤에 있던 진선 및 금선들이 공격을 당해 죽어 나갔다.

진선경 수사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조각났고, 금선 수사들도 3분의 1이 죽어 나머지 수사들은 기겁해 사방팔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립의 수행이 늘어남에 따라 청죽봉운검도 엄청나게 강해졌다.

으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체형이 원래대로 돌아온 노인들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여기 모여 있던 금선 수사들은 금원선궁의 저력이었는데 삽시간에 3분의 1을 잃은 것이다.

“대체 누군데 금원선궁 수사들을 학살하는 겁니까! 천정이 끝까지 당신을 추격해 잡아들일 겁니다.”

다섯 명의 노인 중 한 명이 소리쳤다.

한립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것처럼 무표정하게 손을 까딱였다.

그러자 열댓 개의 검기가 환영으로 변해 나머지 금선 수사들을 추격해 한 명씩 목숨을 거두었다.

태을경 노인들은 초조하게 선궁 깊은 곳을 바라보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악!”

“큭!”

비명이 터져 나오고, 또 금선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참다못한 노인들이 달려들려는데 열댓 개의 화려한 녹색 빛이 떨어져 거대 뱀으로 변했다.

녹색 뱀들은 신속하게 금색 검기를 막아섰다.

부르르 진동한 금색 검기에서 뇌전이 튀어나와 녹색 뱀들을 터트렸으나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녹색 실들이 뿜어져 나왔다.

녹색 실들이 거대한 고치를 이루고 검기를 가두었다.

눈을 반짝인 한립이 수결을 맺자, 녹색 고치 속에서 작게 변한 금색 비검들이 뚫고 나와 그의 곁으로 돌아갔다.

동방백이 하늘에서 떨어져 녹색 뱀들이 변한 푸른 고리 열댓 개를 연결해 띄우고 그 가운데 섰다.

그의 등장에 선궁 수사들도 기운을 차렸다.

“궁주께서 오셨다!”

“네 놈은 죽었다!”

“궁주님, 저놈이 수많은 성궁 수사들을 도륙했습니다. 반드시 잡아 죽여주십시오!”

선궁 사람들은 그 뒤로 날아들며 소리쳤다.

“한립, 실력이 강한 것은 알았지만 홀로 금원선궁에 쳐들어오다니 담도 크구나!”

동방백은 그들에게 대꾸해 주지 않고 씩 웃음 지었다.

“직접 여기까지 나오다니 수고를 덜었다. 청호족 5만7천3백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죗값을 받게 될 것이다!”

한립도 음산한 어투로 대꾸하며 그를 마주 보았다. 그 말에 몰려든 이들이 놀라 동방백을 쳐다보았다.

천정은 규율이 엄격해서 무고한 약자들을 도륙하면 엄한 벌을 받게 되었다.

“청호족은 수배자인 너를 숨겨 준 사실이 발각되어 벌을 받은 것이다.”

인상을 찡그린 동방백이 반박했다.

“네 목숨으로 청호족 망혼들을 위로할 것이다.”

한립은 곧장 수결을 맺었고, 5, 60자루로 늘어난 청죽봉운검은 동방백을 향해 곧장 쇄도했다.

동방백도 수결을 맺어 녹색 고리들을 다시 열댓 마리의 거대 뱀으로 변하게 했다.

“모두 물러가 있거라!”

동방백이 크게 소리쳤다.

다섯 명의 태을경 노인들은 눈빛을 교환한 뒤 다른 수사들을 이끌고 선궁 안쪽으로 날아갔다.

한립은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고 수결의 모양을 바꾸었다.

금색 뇌전을 머금은 5, 60개의 비검들이 빼곡하게 검기를 발산해 하늘 가득 섬뜩한 빛이 드리웠다.

검기의 위력이 강해져 녹색 뱀들은 접근하지 못하고 갈라져 떨어져 내렸다.

“터져라!”

수결을 맺은 동방백이 소리쳤다.

퍼퍼펑……!

구렁이 잔해가 부풀어 올라 터지면서 녹색 태양들이 떠오르고 사방으로 돌풍이 휘몰아쳤다.

이에 허공이 웅웅 떨리고 검기들도 폭발해 주변이 무척 혼란스러워졌다.

그 틈에 동방백은 녹색 구름으로 변해 선궁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싸움을 시작하자마자 도망을 치다니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뜬 한립은 전신에 금빛 뇌전을 일으키고, 역전진륜 신통을 발휘해 사라졌다가 순식간에 동방백 앞에 나타났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동방백도 움찔했다.

한립은 즉시 수많은 금색 파문을 발산해 동방백을 감쌌다. 일련의 행동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너무 빨랐다.

녹색 빛을 두른 동방백은 금빛 속에 고정되어 마치 호박에 갇힌 파리 같아 보였다.

살기를 드러낸 한립이 손을 까딱여 금빛으로 동방백의 아랫배를 꿰뚫었다.

그러나 공격을 마친 그는 곧장 수결을 맺어 금색 파문을 거두었고, 동방백의 시체는 하얀빛을 발하다 괴뢰로 돌아갔다.

괴뢰는 하얀 짐승의 뼈로 제련되어 있었고, 현묘한 하얀 문양이 들어간 부적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체신괴뢰(替身傀儡)였어…….’

해 도인의 서고에서 이 하얀 괴뢰에 대한 기록을 본 적이 있었다.

천정의 능력자가 만든 특수한 괴뢰는 선령력은 물론 법칙의 힘까지 주입이 가능해서 본체와 거의 같은 분신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바로 그때 녹색 빛들이 떠올라 영역을 이루고 한립을 포위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굵직한 초록 덩굴들이 그의 몸을 타고 올라와 체내의 선령력을 빠르게 흡수했다.

이와 동시에 한립 머리 위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금색 산봉우리가 나타나 하늘을 절반은 가리고 떨어져 내렸다.

주술문자와 문양들이 빼곡하게 새겨진 선기였다.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람 중에는 동방백과 태을경 노인들 그리고 금선 수사들이 있었다.

쿠쿠쿠…….

금색 산봉우리가 떨어져 방원 수만 리에 지진이 일고 금원선궁 인근의 산들은 땅속으로 내려앉아 높이가 삼 척은 줄었다.

동방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이 수미금산(須彌金山)은 금원산맥의 금원석(金元石)을 비롯한 막대한 양의 재료를 들여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 제련한 보물로 그 위력은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무게가 엄청나 한 사람의 선령력으로는 조종할 수도 없었고, 금원선궁의 진법의 보조를 받아야 만 발동이 가능했다.

태을경 노인들과 다른 수사들도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궁주가 이런 보물을 이용해 적을 처치한 것을 보면 얼마나 위험한 자였는지 알 수 있었다.

쿠쿠쿵!

그런데 다음 순간, 동방백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시고 다른 이들도 숨이 턱 막혀 왔다.

산봉우리 아래에 삼두육비의 거마(巨魔)가 몸을 일으킨 탓에 금색 거산이 흔들려 점점 위쪽으로 밀려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천살진옥공을 펼친 한립이었다.

한립이 두 팔로 번쩍 들어 올리자 거대한 수미금산이 평범한 바위처럼 느껴졌다.

“맨몸으로 수미금산을!”

동방백의 목소리에 경악스러움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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