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화.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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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백은 천지영기의 흐름이 멎으며 술법을 쓸 수 없게 된 것을 알았지만 나무 속성 법칙을 익혔기에 자신의 영역을 만들고 체내의 선령력만으로도 충분히 싸울 수 있었다.
그때 눈을 번득인 그가 옆으로 백여 장을 피했다.
쾅!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그가 서 있던 자리에 새까만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거울을 든 남색 괴수가 공중에서 태양과 같은 하얀빛을 쏜 것이었다. 평범한 선인이었으면 일격에 뼈가 부러지고 경맥이 끝장났을 공격이었다.
검을 든 붉은 괴수와 새까만 구렁이를 조종하는 괴수도 움직였다.
검에서 오색 화염이 빠져나와 비처럼 쏟아지고 거대 구렁이는 비늘 사이에서 푸른 뇌전과 보라색을 터트렸다.
“이런 잡다한 공격으로 뭘 어쩌자는 것인지.”
코웃음을 친 동방백이 활화산처럼 전신에서 푸른 빛을 일으켜 거대한 나무 허상을 만들어 모든 공격을 막았다.
쏟아지는 화염과 뇌전에 고목의 이파리에도 불이 붙었지만 타고난 줄기와 이파리는 빠른 속도로 다시 자라나 더욱 선명한 빛을 발했다.
“한 수사, 이걸 준비해둔 거라면 나야말로 실망입니다.”
피식 실소한 동방백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미간 앞에서 수정빛이 번득이고 수정검 한 자루가 파고들었다.
머리가 깨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낀 동방백은 의식세계에 파랑이 일어 몸의 푸른 기운마저 흔들렸다.
고목 허상이 사라지고 하늘을 뒤덮은 화염 비와 뇌전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콰콰콰쾅…….
엄청난 소리와 빛이 조사당 광장을 가득 채웠다.
“궁주님…….”
려운과 힘을 합쳐 제혼이 변한 형수와 싸우던 도기가 놀라 그쪽을 보았다.
“도 장로, 우리가 맡은 일에 집중하시죠. 궁주님은 장로가 걱정할 필요 없는 분입니다.”
려운이 붉은 쇠 깃발 18개를 부단히 조종해 제혼을 포위하며 말했다.
광장의 화염과 뇌전이 가시고 동방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거들먹거리던 평소 모습과 달리 새까맣게 피부가 타서 검은 연기를 풀풀 뿜는 꼴이 우스웠다.
그러나 석탄처럼 변한 그의 가슴에서 녹색 빛이 반짝반짝한 뒤 몸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녹색 빛이 지나가자 피부가 재생되고 말라붙은 몸에 생명이 깃들었다.
그때 한립이 다가가 손날을 칼처럼 휘둘렀다.
서걱.
동방백의 머리가 데구루루 떨어져 구르다 가루가 되었다.
파치칙!
동시에 청죽봉운검이 검은 시체의 가슴을 찌르고 금색 뇌전을 흘려보내 녹색 빛으로 소생되던 몸을 태워버렸다.
청죽봉운검을 뽑아 든 한립은 속이 시원하기는커녕 인상을 찡그리고 바닥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바닥 틈에 새싹이 자라나 바람에 흔들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무성하게 자라나 사람의 형상으로 뭉쳐졌다.
복색이며 얼굴이 동방백이었다.
“나무 법칙이 꽤 흥미롭구나…….”
눈을 반짝인 한립은 얼굴을 폈다.
“네 재주는 잘 구경했다. 이제 죽어라.”
동방백이 냉랭하게 말하고 두 손을 합장해 초록 영역을 퍼트렸다. 눈을 가늘게 뜬 한립이 나무 속성 법칙의 힘을 피해 뒤로 물러섰다.
“삼라……. 만, 상!”
동방백의 외침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굵직한 덩굴 가지들이 초록 장막 안에 나타나 조사당 전체로 퍼졌다.
호수 바닥이 갑자기 울창한 수풀이 된 것 같았다.
산을 지키던 네 마리의 괴수들은 푸른 이끼에 덥혀 자취를 감추었고, 한립과의 연계도 끊겼다.
형수로 변신한 제혼도 금색 문양을 지닌 특수한 덩굴에 감겨서 갇혀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자마자 수백 장을 벗어난 한립도 언제부턴가 푸른 이끼가 발을 타고 올라 땅에 뿌리를 박은 나무처럼 꼼짝 못 하게 되었다.
“조물경 영역은 몇 번 보지 못했는데, 감탄스럽군.”
식물 감옥에 갇힌 한립은 슬쩍 제혼이 아직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는 안심했다.
“궁주께서 영역 수련에 매진하시지 않았다면 진작 태을경 최고봉의 경계를 넘어서셨을 것이다. 금원선역에서 궁주님을 그저 태을경 최고봉 수사로 생각하는 우둔한 자가 있을 줄이야!”
려운이 그걸 보고 웃음을 흘렸고, 도기도 안색이 변해 동방백을 더욱 무서워하게 되었다.
“한 수사, 솔직히 그 물건을 내게 넘겼든 아니든 당신은 이렇게 됐을 겁니다.”
동방백이 천천히 다가오며 조롱하듯 말했다.
“나도 솔직해져 볼까요? 그건 진작 알고 있던 사실입니다.”
한립은 덤덤하게 말하면서 선령력을 발동했으나 그를 둘러싼 금색 무늬 덩굴이 깨끗하게 흡수해 버렸다.
진언보륜조차 소환할 수 없었고, 성신지력도 조금 느리기는 했지만 덩굴이 흡수해갔다.
“영역 안의 모든 것은 내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괜히 힘 빼지 마세요. 흠……. 선령력을 쫙 뽑아내서 단단한 육신은 영역 안에서 배양하고, 원영은 노복으로 부리면 딱 좋겠습니다.”
가까이 다가선 동방백이 손을 뻗어 한립의 앞섶으로 손을 뻗었다.
“감히 내 것을 건들려는 것이냐!”
그 순간 핏빛으로 물든 한립은 <천살진옥공>을 운용해 삼두육비의 거마 형상으로 변신했다.
괴상한 기운을 느낀 동방백이 흠칫 놀라 뒤로 피하면서 영역의 수많은 덩굴을 미친 듯이 한립에게 보내 그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한립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덩굴들이 북북 뜯기며 그를 막지 못했고, 그걸 본 동방백은 두 팔을 펼쳐 영역 안에 용 모양 지팡이를 든 목갑 거인 18마리를 불러내 달려들게 했다.
쾅쾅쾅!
한립의 여섯 개의 팔이 주먹을 뻗거나 손바닥으로 허공을 가르면서 목갑 거인 여덟 마리를 쳐부수고 포위를 벗어나 동방백을 향해 펄쩍 뛰어올랐다.
진작 멈춰선 동방백은 주변의 푸른 덩굴들을 불러 모아 스스로 거대한 목갑 거인으로 변한 다음 농염한 나무 속성 법칙의 힘과 생명력을 드러냈다.
그는 한 손에 금색 무늬가 들어간 채찍을 꺼내 달려드는 한립의 허리를 감고, 다른 손으로는 금색 무늬 나무 지팡이로 심장을 찔렀다.
허리가 묶인 한립은 기운이 대량으로 유실되어 지금처럼 강력한 신체 능력을 지니지 못했으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진룡화된 거대 손을 뻗어 지팡이의 경로를 막았지만 푸른 빛을 뿜는 지팡이의 힘은 상상을 초월해서 그걸 밀어내고 가슴으로 다가왔다.
콰콰쾅!
방대한 선령력을 품은 금문(金紋) 지팡이에서 눈부신 푸른빛과 금빛이 터져 나와 사방으로 퍼졌다.
려운과 도기가 멀리서 그걸 보고 깜짝 놀랐고, 금문 덩굴에 갇힌 제혼은 선령력을 대부분 빨려 창백한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와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파랑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우뚝 선 한립은 가슴으로 금문 지팡이를 막고 있었다.
“어, 어떻게?”
“동방 궁주, 당신이 진짜 대라경 수행을 지녔다고 해도 내 적수는 아니란 뜻입니다.”
한립의 금색 거원 머리가 흉흉하게 웃음을 흘렸다.
혈맥의 힘과 천살진옥공을 동시에 발동한 그는 평범한 대라경 수사 이상의 힘을 지녔다.
금문 지팡이를 잡아 구부려 버린 그는 허리에 감겨 있는 금문 채찍을 박박 뜯어내고 목갑 거인으로 변한 동방백으로 향해 여섯 개의 주먹을 마구 날렸다.
퍼퍼퍼퍼퍼펑!
경천동지할 폭음이 푸른 영역을 뒤흔들었다.
쏟아지는 주먹에 동방백의 몰골이 말이 아니게 망가지고 있었다.
그때 려우과 도기가 겁에 질려 시선을 마주쳤다. 그들의 실력에 저런 주먹을 맞았으면 금방 고깃덩이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바깥에 붙은 나무줄기들을 부수고, 그 안에서 동방백을 끄집어낸 한립의 세 개의 진령 머리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넌, 절대, 청호족을 멸해서는 안 됐다! 그런 짓을 저지른 널, 내가 살려둘 줄 알았느냐?”
꽝꽝. 거대한 종을 울리는 것 같은 엄청나게 큰 목소리였다.
“겨우 그런 버러지 같은 것들 때문에…….”
크하앙!
동방백이 말을 마치기 전에 한립이 손에 불끈 힘을 주어 그를 으깨버렸다. 손가락 사이로 피와 살이 줄줄 흐르는데 원영은 보이지 않았다.
뭉개버린 시체를 휙 던진 삼두육비의 거마는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도기와 려운 쪽을 돌아보았다.
그들 옆으로 푸른 새싹이 자라나 순식간에 또 다른 동방백으로 변했다.
“한 수사, 오늘은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봅시다.”
음산한 얼굴로 동방백이 입을 열었다.
“간다고? 웃기는 소리.”
푸른 영역 안에서 금색 빛의 장막이 눈 깜짝할 사이에 퍼져 더욱 휘황찬란한 영역을 만들었다.
“시간영역!”
동방백은 당장 푸른 영역을 거두고 양손으로 도기와 려운을 낚아채 위쪽으로 솟구쳤다.
솨아아-.
영역 금제가 사라지자 호수의 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들을 둘러싼 푸른 기류가 금빛 영역에 저항해 시간법칙의 힘을 대부분 밀어내며 빠른 속도로 날아갈 수 있었다.
“너희 누구도 떠나지 못할 것이다!”
진언보륜을 역전한 한립이 번득 사라져 그들 머리 위로 이동했다.
겁에 질린 동방백이 뜻밖에도 도기와 려운의 등을 밀어 그들을 한립과 아래쪽 제혼에게 날려 보냈다.
도기와 려운은 입도 뻥끗할 수 없게 단단히 몸이 마비된 것을 알고 대경실색했다.
한립은 달려드는 도기를 향해 손바닥을 날렸다.
하얗게 질린 도기는 그제야 자신의 배에 푸른 새싹이 자라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쾅!
한립의 손이 닿기 전에 도기의 복부가 팽창하면서 단전 안의 원영이 폭발해 한립의 손을 피범벅으로 만들었다.
한립은 부상을 살필 겨를도 없이 전력으로 역전진륜의 신통을 씀과 동시에 뇌붕의 힘을 일으켰다.
려운이 제혼을 향해 날아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호숫물을 뚫고 힘껏 제혼을 끌어당겨 안은 한립이 솟구치기 전에 등 뒤로 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삼강호가 격동하며 호수 아래 산봉우리들과 수부들이 연달아 폭발하고, 천 장에 이르는 호숫물이 파도처럼 인근의 소비산을 덮쳤다.
잠시 후, 두 사람이 하늘 위로 떠올랐다.
“진짜 악독한 놈이에요! 살기 위해 자기 수하들까지 죽였잖아요.”
제혼은 창백한 얼굴로 동방백을 욕했다.
“선역을 다스리는 궁주란 자가 이런 성품을 지녔다니 천정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허나 언젠가 그날의 빚을 갚게 하고야 말 것이야.”
“그 말씀은…….”
“내 알아서 할 것이니 일단 쉬거라.”
한립은 화지동천을 열어 제혼을 들여보내고 둔광을 일으켜 어딘가로 사라졌다.
* * *
금원선역 서쪽 끝, 궁전들이 산 아래에서부터 산 정상 심지어 공중까지 이어져 있었다.
무지개다리 같은 빛의 다리가 각 궁전을 연결하고, 그 사이를 학과 구름이 노니는 풍경이 정말 선경 같았다.
바로 금원선궁이 위치한 곳이었다.
녹색 둔광이 놀라운 속도로 날아들어 동방백의 모습으로 변했다.
먹구름이 낀 듯 어두운 얼굴을 한 동방백을 본 선궁 사람들은 깜짝 놀라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연신 허리만 숙였다.
그는 곧장 선궁 깊은 곳의 대전으로 들어가 금색 진법 원반과 보라색 영패를 꺼내 놓고 수결을 맺었다.
영패의 보라색 빛이 금색 진법 원반으로 스며들어 깜빡거리자 곧 녹색 머리카락을 지닌 여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열예닐곱 살로 보이는 창백한 얼굴의 소녀는 규방에서 곱게 자란 귀한 아가씨 같아 보였지만 눈빛만은 위엄있었다.
“동방백 무슨 일이기에 구원관 천라진법을 사용해 내게 연락을 취한 것이지? 흠천감(欽天監)에 발각되면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묘법선존을 뵙습니다. 방금 조화정립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 한 시도 지체할 수 없어 구원령을 사용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동방백은 공손히 답했다.
“뭐라? 조화정립! 어서 무엇을 알아낸 것인지 말해보거라.”
“예!”
묘법선존의 말에 동방백은 한립과 장천병에 관한 일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어차피 증인들은 다 죽었겠다, 그가 먼저 장천병을 얻으려 했던 일은 이제 알려지지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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