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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25화 (1,782/2,000)

2025화. 고발

*

“뭐라고 고발하던 선궁에서는 사실인지 확인할 텐데, 우릴 추적하는데 유용한 정보가 섞여 있어야 청호족을 더이상 괴롭히지 않을 것이야.”

한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의도를 깨달은 엽소소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감사합니다. 청호족을 여러 번 도와주시고 떠날 때까지 저희를 세심하게 챙겨주시니, 일전에 제 옹졸한 태도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구 장로가 그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이럴 것 없습니다. 그간 이곳에서 잘 지내다 가니 내가 고맙다고 인사해야 마땅하지요.”

한립이 이 말을 할 때 제혼이 정리를 마치고 나와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엽소소는 그들이 당장 떠나려는 것을 알고는 마음이 좋지 않은지 아쉬운 얼굴을 했다.

“선배님을 다시 뵐 날이 있을까요?”

“나처럼 탈이 많은 인물은 다시 안 만나는 게 좋다.”

한립은 표정 변화 없이 답하고 제혼과 둔광을 연결해 고공으로 사라졌다.

“…….”

엽소소는 텅 빈 별채를 바라보며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소주,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겁니다.”

구 장로가 그런 소녀를 보다 다가와 위로했고, 그 말을 들은 엽소소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 * *

북쪽으로 수 천리를 지나 둔광이 어느 산봉우리에 내려섰다.

“주인님, 너무 가까운 것 아닐까요?”

“청호족이 고발을 하고 선궁에서 사람을 보내 조사했을 때, 우리가 너무 멀리까지 달아나 있으면 흔적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 청호족이 곤란해질 게 아니냐.”

“생각이 깊으세요.”

“청호족이 세력은 약하다만, 족인들의 심성이 순하고 맑아 이전에 보았던 호족과는 완전히 다르더구나.”

한립은 잠시 추억에 잠겼다.

그와 동고동락했던 ‘어린 여우’는 만황에서 어찌 지내고 있을지 궁금했다.

“청호족에게 필요한 자원을 남겨준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세력이 강해져야 금마종 같은 무리에게 당하지 않을 텐데요.”

“선궁에 쫓겨 떠나는 마당에 무엇을 남겨줘 봐야 청호족에 멸문지화를 부를 뿐이다. 살날이 기니 성가신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찾아와 봐야겠다.”

한립도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기운을 남기려 일부러 잠시 쉬다가 벽옥비차를 꺼내 타고 북쪽으로 날아갔다.

* * *

이틀 뒤, 청호성 상공에 수십 척의 금색 거대 선박들이 나타났다. 갑판에 수천 명이나 되는 무장병사들이 빼곡하게 서 있는 풍경이 무척 위풍당당해 보였다.

청호성 절반이 선박 그림자에 가려져 족인들이 덜덜 떨었다.

그때 성안 별채에는 9명이 모여 있었다.

하얀 비단 장포를 걸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인이 탁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고, 화려한 복색의 소년과 악귀 머리 거검을 멘 흑포 거한이 그 뒤에 서 있었다.

동방백과 그를 따라나선 도기, 흑도였다.

“그놈이 여기 숨어 있었다고?”

인상을 찡그린 도기의 말에 청호족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사님께 아룁니다. 그 사람은 여기에 머무는 동안 폐관 수련을 하며 문밖출입을 하지 않다가 이틀 전 어쩐 일인지 급히 청호성을 떠났습니다. 후에야 금서성에서 수배령이 전해져 보고한 것입니다.”

푸른 치마를 입은 엽라가 먼저 나서서 허리를 숙이고 말했다. 뾰로통한 얼굴의 엽소소는 구 장로 옆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네가 그자를 청호성으로 데리고 왔다고?”

도기의 시선이 소녀에게 닿았다.

“네, 저를 구해주어서 은혜를 갚고자 잠시 청호성에 머물러 가시라 청했습니다. 당시에는, 선궁의 수배를 당하는 자인 줄은 전혀 몰랐고요…….”

엽소소는 속으로 좀 떨리기는 했지만 차분하게 답했다.

“이틀 전에 떠났는데 왜 어제 고발한 것이야? 그자를 비호하려던 것이 아니냐?”

도기가 서늘하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청호족이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런 짓을 벌이겠습니까. 금서성에서 소식을 듣고 즉시 고발을 한 것입니다.”

엽라가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부디 믿어주십시오, 선사님!”

구 장로 등 다른 이들도 안색이 변해 고개를 숙였다.

엽소소도 고개를 숙였지만 속으로는 불퉁거리고 있었다.

선궁 사람들은 겉보기만 번듯하지 한 선배님처럼 속이 따뜻한 분과는 천양지차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너희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는 그들이 향한 북쪽으로 가보면 금방 밝혀지게 될 것이다. 만일 거짓을 고했다면 너희도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야!”

도기의 경고에 구 장로 등이 긴장했다.

다들 엽소소처럼 한립을 완전히 믿는 것이 아니라서 그가 북쪽으로 가겠다고 해놓고 다른 곳으로 달아났거나 아니면 흔적도 없이 떠났을까 봐 마음이 불안했다.

“은인이라면서 고발은 왜 한 것이냐? 그거야말로 배은망덕한 짓 아닌가?”

동방백이 돌연 고개를 돌려 엽소소를 직시했다.

눈을 마주친 엽소소는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밀려들었다.

“서, 선사께 아룁니다. 저, 저희는…….”

입술이 덜덜 떨려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때 고운 손이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잡아 주었다.

돌아볼 것도 없이 어미인 엽라의 손이었다.

“선사께 아룁니다. 그자가 청호족의 은인이라 해도 청호성에서 백 년간 머물게 해주었으니 충분히 은혜는 갚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선역의 율법을 어긴 자인데 어찌 비호를 하겠습니까. 선궁의 수배범을 감춰주는 것이야말로 불충, 불의한 짓이지요. 저희 청호족은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힌 엽소소가 미리 생각해둔 대답을 했다.

동방백은 그녀의 말에서 빈틈을 찾고자 조용히 엽소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엽소소는 더는 당황하지 않고 담백하게 그를 마주 보았다.

그녀는 한립이 떠나기 전 일러준 말들이 다 맞는 것을 보고 탄복하고 있었다.

쉭!

파공음이 들리고 둔광이 떨어져 회색 머리 노인이 나타났다.

“려 장로, 어떤가?”

“수천 리 밖의 산봉우리에서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기운을 발견했습니다. 한립은 그곳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선박류의 선기를 타고 북쪽으로 수만 리를 이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흔적을 없애 더는 추격하지 않고 급히 돌아와 보고를 드립니다.”

“잘했네.”

동방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의 말이 사실이었군요. 참으로 교활한 자입니다!”

도기가 듣고 있다 씩씩거렸다.

“가지.”

엽소소를 힐끗 본 동방백이 무표정하게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도기 등도 그를 따라 날아올라 정원에는 청호족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손이 땀으로 흠뻑 젖은 엽소소는 곁의 어미를 살핀 뒤 고공에 빼곡하게 뜬 선박들을 올려다보았다.

‘한 선배는 대체 정체가 무엇이기에 선궁이 이런 대규모 병력을 꾸려 쫓는단 말인가?’

동방백은 선박을 출발시키기 전 한 마디를 남겼다.

“멸하라.”

“예?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닌데…….”

싸늘하게 청호족을 대하던 도기가 오히려 안색이 달라져 반문하다 입을 다물었다.

“존명!”

흑도가 두말할 것 없이 명을 받들었다.

“깨끗이 처리해서 선옥이 조사를 나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야.”

“예!”

“대군을 이끌고 이동하면 시간이 너무 걸리니 도 장로와 려 장로는 나를 따르게.”

“예!”

려운도 공손히 답했다.

머뭇거리던 도기는 하려던 말을 삼키고 ‘예’라고 답했다.

* * *

시간이 흘러 반년 후.

금원선역 북부 모처에는 용강(龍江), 원강(沅江) 그리고 수양강(水瀁江) 세 개의 물줄기가 모여들어 소비산(梳篦山) 아래 수천 리에 달하는 삼강호(三江湖)를 이루었다.

금원산맥 북쪽으로 이어진 산줄기 위로 예전에는 꽤 규모가 있는 선가 종문이 들어서 있었는데, 전쟁으로 멸문을 당해 지금은 모든 것이 땅속에 묻힌 지 오래였다.

소비산에 남아 있던 유적에 수십 만년이 안 된 소류종(梳流宗)이 들어서자 그제야 새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간 소류종은 잔해 속에 남아 있던 선가의 보물들을 종종 찾아냈는데, 아직 금제에 비호를 받는 보물이 삼강호 유적에 남아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소류종은 삼강호를 자신들의 세력범위에 포함했지만 봉인금제를 독점하지 않고 유적을 보수해 수사들이 수련할만한 용궁(龍宮) 수부(水府)를 세우고 수련하려는 수사들에게 대가를 받고 수련장소를 제공했다.

수행이 월등히 높은 수사들은 수부의 천지영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도 진선급 수사들, 특히 물 속성 공법을 익힌 이들은 이곳을 빌려 장기거주하고는 했다.

이곳에서 나오는 자금으로 소류종은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었다.

어느 날 소류산의 손님을 맞이하는 치풍전(致風殿)에 키가 크고 평범한 용모를 지닌 청년이 찾아와서 집사 장로에게 수부 한 곳을 빌려 수련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립이었다.

통통하고 동글동글한 얼굴을 지닌 집사 장로는 청년의 평범한 용모와 기운을 보고 온화하게 웃음 지었다.

“손님, 수부를 빌리려 하신다고요? 그럼 때마침 잘 찾아주셨습니다. 삼강호에 남은 수부가 세 곳인데 지도를 가져다드릴 테니 어디를 원하시는지 골라보시지요.”

“삼강호에 아직 개방되지 않은 수부가 십여 곳 있다는 데, 그중 한 곳을 빌릴 생각입니다.”

한립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삼강호 아래 수부에는 수만 년이 흘렀음에도 아직 금제를 뚫지 못해 개방되지 않은 수부가 여럿 있었다.

소류종은 힘들여 그곳을 정비하기보다는 대외적으로 다른 수부와 같은 값을 내는 사람에게 아직 개방되지 않은 수부에 들어갈 자격을 준다고 알리고 있었다.

돈을 내고 빌려주되 금제를 파훼해 들어갈 수 있고 없고는 개개인의 능력에 달린 것이다.

그 대신 새로 개방된 수부에서 나오는 물건은 앞으로의 수부 대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빌린 사람의 몫이었다.

오랜 세월 이런 규칙에 따라 미개방 수부를 빌린 이들은 대부분 고배를 마시고 손에 꼽히는 몇 사람만 강력한 금제를 뚫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곳들은 정말 들어가기 어려운 곳들이었다.

또 역사상 운 좋게 새로운 수부를 개척한 이들은 물건이 가득한 저물대를 지니고 떠나다 수많은 수사의 협공에 당해 죽임을 당하거나 물건을 뺏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소류종은 이런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자신들의 세력범위만 벗어나면 이런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선계에 기연을 노리는 이들이 많아 그럭저럭 공돈을 버는 일이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남은 미개방 수부도 많지 않고 그걸 빌리겠다고 나서는 한립 같은 사람도 적어졌다.

“허허허, 좋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미개방 수부의 위치가 담긴 지도로 보여드리지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둥근 얼굴 노인이 한립을 편전에 데려다 놓고 지도를 찾으려 몸을 돌렸다.

“아, 그런데 아직 귀빈의 성함도 듣지 못했습니다?”

“한립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한 수사.”

노인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져 삼강호 아래 지도를 가져와 탁자에 펼쳐 보였다.

“여기도 미개방 수부군요?”

설명을 듣던 한립이 맨 아래쪽 구역을 가리켰다.

“그렇지요. 허나 보통 이곳은 도전하지 마시라고 권해드립니다. 의미가 없는 곳이라서요.”

“그렇습니까?”

“진선 수사들은 물론 금선 후기 수사도 몇 번이나 찾아와 도전했던 곳인데, 어떻게 되었는 줄 아십니까? 금제를 파훼하는 데 전부 실패한 것은 물론 그중 운이 없는 두 명은 뭘 잘못 건드렸는지 중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원영도 빠져나오지 못했고요.”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금제 진법을 오래 연구한 터라 수부를 열지는 못해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안심하시고 이곳을 내주시지요.”

“아……. 그러시다면 비용을 내시면 바로 사람을 시켜 안내해 드리라 하겠습니다.”

한립의 말에 둥근 얼굴 노인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종문을 대표해 금제의 위험성을 알린 것으로 도리는 다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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