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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005화 (1,762/2,000)

2005화. 해 도인의 주인

*

한편, 바닥에서 기절한 척하고 있던 석천공은 석참풍의 시체를 보고 눈빛이 흔들렸고 육화부인은 석참풍의 머리를 꿰뚫은 백골 장창을 보고 표정이 달라졌다.

“누구냐!”

한립은 살기를 드러내며 소리쳤다.

“하하, 접니다. 그렇게 노려보시니 무서워 살 수가 있나요.”

백의 여인이 빙긋 웃으며 나타났는데 바로 골천심이었다.

“여긴 어떻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우연히 오게 된 것이지 절대 려 수사의 뒤를 밟은 것은 아닙니다. 그나저나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골천심이 그의 뜻을 알아듣고 웃으며 답했다. 가볍게 혀를 찬 한립은 그녀의 말에 대해 따지지 않았다.

골천심이 석참풍을 죽이게 둔 건 그에게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야양왕조 대황자를 직접 죽이면 앞으로 무슨 화가 미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천심아!”

육화부인이 골천심을 보고 반색하며 달려왔다. 그걸 본 한립은 번득 사라져 석천공 옆에 나타났다.

“잠깐!”

육화부인이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멈췄지만 한립이 하얀빛이 어린 손으로 석천공을 친 다음이었다.

파앗.

하얀빛이 반짝인 석천공의 몸 곳곳에서 웅웅 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가 몸을 일으켰다.

“또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려 수사.”

석천공은 공수를 했고, 한립은 됐다는 듯 손을 저었다.

걸음을 멈춘 육화부인은 짐짓 화가 난 얼굴을 했지만 눈빛에는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립도 슬쩍 그런 그를 훑고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삼색 빛이 완전히 흩어진 다음 자소가 나타났는데, 괴뢰들을 이용해 공격하던 것을 잊기라도 한 듯 우두커니 제 자리에 서 있었다.

한립이 눈을 번득이고 무언가를 하려는데 품속 심장이 불현듯 쉭! 날아올라 골천심 쪽으로 날아갔다.

안색이 달라진 한립이 쫓아가고 석천공도 그 뒤를 따라갔다.

골천심도 놀란 듯 머리를 굴리다가 재빨리 옆으로 피해 심장은 건들지도 않았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심장은 그녀를 스쳐 구덩이 안에 있던 석참풍 시체 속으로 스며들었다.

한립도 생각이 많아졌다.

‘석참풍이 죽지 않고 비술을 써서 누워있다 심장을 훔친 걸까?’

이런 생각에 조급해진 그는 속도를 높여 석참풍 시체를 향해 달려들었다.

쾅!

그의 손날이 바람처럼 날아가 석참풍 머리를 박살내려는 데 눈부신 핏빛이 시체 안에서 터져 그와 석천공까지 날려버렸다.

십여 장 밖에서 착지한 한립은 난색을 표했다.

두근두근.

핏빛은 마치 심장의 화신처럼 박동했는데, 석참풍의 시체는 그의 예상과 달리 되살아나지 않고 오히려 빠르게 말라붙었다.

‘뭐지?’

심장이 바싹 마른 시체에서 고요히 떠올라 밝은 핏빛을 발산했다. 눈을 반짝인 한립이 달려들고 석천공도 달려가며 손을 뻗었다.

곁의 자소는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자소, 뭐 하는 것이냐? 어서 심장을 가져와!”

멀리서 사심이 노호성을 터트렸다.

그 소리에 자소가 재빨리 괴뢰들을 움직이려다 고통스러워하며 쓰러졌다.

석천공보다 더 먼저 심장을 손에 넣은 한립이 번득 그녀 옆으로 다가섰다.

“흥!”

사심도 그걸 보았던지 다시 수결을 맺어 자소의 미간에 금색 문양을 반짝이게 했다.

표정이 다시 싸늘해진 자소가 한 손에 장창을 횡으로 가르면서 다른 손을 까닥였다. 그러자 겹겹이 금색 창 그림자들이 한립을 덮치고 괴뢰들도 다시 움직이려 했다.

인상을 찡그린 한립은 창 그림자를 피하고 두 괴뢰와 맞붙으려 몸을 돌렸다.

“그만, 두 사람 더이상 싸울 필요 없습니다.”

그 순간, 한립의 머릿속에 해 도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한립은 바로 물러섰고 두 괴뢰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의 목소리에 한립이 자소와 사심의 안색을 살피는데, 자소는 여전히 멍한 눈빛이었고 사심은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해 수사, 드디어 나타나셨군요. 그래서 지금 어디 계신 겁니까?”

한립은 의식연계를 통해 물었다.

“수정관 안에 있습니다. 괴뢰 심장이 혈맥의 힘을 흡수한 덕에 잠시 정신이 들었고요. 시간이 많지 않으니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급해보이는 해 도인의 전음에 한립은 의문이 가득했지만 말없이 듣기만 했다.

“제 주인을 위해 중요한 일을 한 가지 해주어야 한다고 약속했었지요? 사실……. 그 주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납니다. 제 이전 신분은 적린공경의 주인으로,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 누군가의 모략에 당해 사경을 헤매다 선괴뢰를 만들어 거기에 기억을 봉인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여러 가지 변고를 거쳐 하계까지 내려가 수사를 만나게 된 것이고요.”

해 도인은 그간의 사정을 빠르게 압축해 설명했다.

마원해에서 처음 황금 게 괴뢰를 마주쳤던 때를 회상한 한립은 이제야 여러 가지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수사 덕에 여기까지 와서 부활의 희망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어서 저 괴뢰의 심장과 본명수정을 제 유골과 융합해 이곳의 방대한 기혈의 힘으로 새로운 육신을 생성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융합은 시간이 걸릴 테니 누군가 방해하지 못하게 호법을 서주세요…….”

해 도인의 목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잦아들다 결국 사라졌다.

한립은 잠시 멍해졌으나 고개를 젓고 호수 중앙의 수정관을 향해 날아올랐다. 석천공은 한립이 심장을 든 것을 보고 뭐라 말하려다 길게 탄식했다.

멀리서 액회가 한립과 사심 사이의 눈짓이 오가는 것을 발견한 뒤 소리쳤다.

“육화 수사, 어서 려비우를 막게!”

그런데 육화부인은 그를 올려다만 보고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눈에 쌍심지를 켠 액회가 핏빛을 방출하면서 무언가 비술을 준비했다.

후앙!

손에 든 만룡검의 검은빛이 몇 배로 커지고 용울음 소리 같은 진동이 울렸다.

액회가 만룡검을 휘두르려는데 자소가 조종하는 괴뢰 두 마리가 빠르게 접근해 그를 향해 거검을 내리쳤다.

인상을 찌푸린 액회는 손목을 돌려 만룡검에서 뿜은 검은 그림자로 두 괴뢰를 갈랐다. 그러나 괴뢰들도 반응이 빨라 거검으로 그를 겨누면서 방패를 횡으로 휘둘러 만룡검을 막았다.

깡! 깡!

만룡검이 두 방패를 가르고 두 괴뢰의 몸에 깊이 파고들면서 위력을 거의 소진했다.

괴뢰들은 몸이 만룡검에 찍혔음에도 힘을 잃지 않아 부서진 방패를 던져 버리고 양손으로 만룡검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으면서 폭풍 같은 파동을 퍼트렸다.

놀란 액회가 다급히 만룡검의 칼자루를 놓고 피했다.

쿠쿵! 쿠콰쾅!

경천동지할 굉음과 함께 두 개의 금빛 태양이 떠올라 허공을 갈기갈기 찢었다.

지하 공간이 쿠르릉, 진동하며 수많은 바위가 혈허로 떨어져 핏빛 파도가 솟구쳤다.

몇백 장 밖에서 번득 나타난 액회의 표정은 퍽 좋지 못했다.

그러나 무표정하게 호수 중앙의 수정관과 그 옆에 선 한립을 보고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 사상전괴가 쫓아와 액회를 포위했는데 자소도 괴뢰 위에 타고 있었다.

“액회, 옳은 일을 하면 사람들이 절로 따르고, 악행을 일삼으면 주변에 사람이 남아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늘로 당신의 악행도 끝입니다!”

사심이 한 손을 들어 올리자 네 마리 전투용 괴뢰들이 뛰어들어 그를 둘러싸고 공격을 퍼부었다.

그때 수정관 옆에 도착한 한립은 심장을 조심스럽게 유골의 가슴 속에 넣어주고 있었다.

웅웅!

심장이 핏빛으로 반짝이자 유골이 호응하며 요란한 빛을 발산했다. 한립은 금색 구슬을 꺼내 들고 머뭇거렸다.

‘심장은 당연히 가슴 속에 넣으면 되지만 이 구슬은 어디에 두면 좋을까?’

‘머리? 아니면, 단전?’

“려 수사, 유골의 본명 정핵이라면 심장과 융합해야 할 걸세.”

뜻밖에도 육화부인이 전음을 보내왔다.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친 한립은 침음하다 구슬을 심장 위에 두었다.

금빛이 반짝이더니 구슬이 정말 심장 속으로 녹아들었다.

두근두근.

요란한 금빛에 휩싸인 새빨간 심장이 유골과 완벽하게 결합해 갔다.

쏴아아-

이어서 거대한 금빛 빛기둥이 유골에서 솟아올라 엄청난 소리를 냈는데 마치 몇천 년을 참아온 환호성을 터트리는 것 같았다.

웅장한 별빛의 기운이 빛기둥에서 빠져나와 공간을 뒤흔들었다.

그 엄청난 기운에 한립도 뒷걸음질 쳤다.

혈호의 핏물들이 수정관을 향해 밀려들어 유골 안 심장으로 빨려 들어갔다. 뼈만 남았던 시체에 새싹처럼 새살이 돋아 빠르게 결합하고 있었다…….

혈호의 핏물이 줄어들며 바닥이 드러나고, 천장이 날아간 지하 공간에서 밤하늘의 별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려비우, 이 죽일 놈이!”

누군가의 목소리가 어두운 밤공기를 찢었다.

미간을 좁힌 한립이 고개를 돌리자 눈이 뒤집힌 액회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반대로 사심은 이보다 기쁜 일이 없다는 듯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야! 주인님을 방해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예!”

곤옥과 자소가 답하고 양손으로 수결을 맺은 채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무엇을 하려는지 그들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핏기가 가셨다.

뻥 뚫린 천장 아래, 천강사상전괴들이 동서남북에 자리를 잡았다.

크오오오-!

크항!

용은 동쪽, 호랑이는 서쪽, 거북 같은 현무는 북쪽, 주작과 비슷한 새는 남쪽을 맡아 각각 안개와 바람 푸른 물, 붉은 화염을 내뿜어 필살(必殺)의 진법을 이룬 것이다.

액회는 사심이 두 수하의 힘을 빌려 이런 위력적인 절진을 펼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상진법의 끊임없는 공격으로 피부가 핏빛으로 물든 액회가 괴성을 지르면서 위로 뛰어올랐다.

동서남북을 뚫을 수 없자 위쪽으로 피하려 한 것이다.

그가 뛰어오르자마자 현무가 내뿜는 푸른 물이 배가 되고, 주작의 붉은 화염도 맹렬히 따라붙어 오장육부를 불태울 기세로 타올랐다.

밀려드는 고통에 얼굴을 구긴 액회는 어떻게든 빨리 진법을 벗어나 유골의 부활을 막을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럴 거라 예상했던 사심은 무언가를 던져 뇌전이 타오르는 금갑 괴뢰를 불러냈다.

괴뢰는 평범한 체구에 얼굴까지 가린 전신 갑옷에는 복잡한 문양이 가득하고 공격용 무기 대신에 거대한 방패만 들고 있었다.

금갑 방패 괴뢰는 펄쩍 뛰어올라 태산과 같은 압력으로 주작의 붉은 화염에 발이 묶여 있는 액회를 찍으려 했다.

“썩 꺼지지 못할까!”

액회는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뻗어 괴뢰가 든 방패를 힘껏 내리쳤다.

퉁…….

거대한 종소리와 같은 울림과 함께 기괴한 음파가 방패에서 퍼져 나와 액회는 자신의 힘을 고스란히 되돌려 맞은 듯 부르르 몸을 떨면서 추락했다.

방패 괴뢰도 액회의 괴력에 허공에서 연신 비틀거렸다.

팟!

이때, 사상전괴의 필살진 안에서 금색 잔영이 나타나 어떤 진법의 구속도 받지 않고 액회의 곁으로 접근했다.

아래로 떨어지던 액회가 주먹을 뻗어 쾅, 소리가 들렸는데도 금색 잔영은 번득 사라져 그의 머리 위로 이동했다.

속도가 줄어들자 금빛 잔영은 금색 갑옷을 입은 괴뢰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방패 괴뢰보다 작은 난쟁이 괴뢰는 자신보다 더 큰 거검을 들고 액회의 머리를 갈랐다.

쿵.

빙글 몸을 돌려 주먹을 뻗은 액회가 주먹 끝에서 성신지력을 방출하자 주변에서 밀려들던 안개와 바람 그리고 물과 화염이 밀려났다.

검을 든 난쟁이 괴뢰가 충격에 밀려나자 방패 괴뢰가 돌아와 등을 밀어주었다.

난쟁이 괴뢰는 그 힘으로 펄쩍 뛰어올라 아래위에서 두 괴뢰와 협공했다.

“날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액회가 차갑게 외치고 두 손가락을 모아 미간에 대고 화염 모양의 표식을 불러냈다.

“연혈술(燃血術)을 발동하려 한다! 전력을 다해 진법을 발동해야 해!”

사심이 목소리를 높이고 그 소리를 들은 한립이 도움을 주러 올라가려다 멈추었다.

옆구리에 살이 차오른 시체는 열심히 혈호의 핏물을 빨아들이는 중이었다.

그가 전투에 참여해야할 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이변이 발생했다!

콰쾅! 쾅!

전신의 현규에서 새하얀 별빛 대신 핏빛을 방출한 액회가 급격하게 늘어난 힘으로 사상절살진의 위력을 압도하고 사상전뢰들을 향해 발길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힘과 속도에 사상전괴들도 피하지 못하고 몇 초 만에 뻥뻥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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