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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984화 (1,741/2,000)
  • 1984화. 탈출

    *

    늑대 머리와 호랑이 머리를 지닌 괴뢰들이 분분히 뛰어올라 그들을 향해 달려들고 다른 곳에서도 괴뢰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괴성을 지른 석천공이 춤을 추듯 곤봉을 움직여 다가오는 괴뢰들을 막았지만 늑대 머리, 호랑이 머리 괴뢰들의 육탄 공격에 수시로 쏟아지는 화살까지 막다 보니 어느덧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이곳을 벗어나는 데만 집중하던 한립이 그 모습에 긴장했다.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석천공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 뻔했다.

    인상을 찡그린 한립은 쉼 없이 날아드는 공격을 막으며 앞으로 나아갔으나 아직도 곳곳에서 괴뢰들이 기어 나오고 있어 망망대해에서 출렁이는 파도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크앙!

    거의 백여 마리의 늑대 머리, 호랑이 머리 괴뢰들이 펄쩍 뛰어올라 손에 든 병장기를 그물망처럼 교차해 그들 주위를 맴돌았다.

    종잇장처럼 핏기가 사라진 석천공은 흑자색 곤봉으로 돌풍을 만들어냈다.

    퍼퍼펑…….

    연달아 굉음이 울리고 달려드는 괴뢰들이 조각나 나가떨어졌다. 동시에 석천공도 울컥 피를 토했다.

    피부의 진극막이 어른거리기 시작한 그는 흑자색 곤봉을 쥐고 있을 힘도 없어 보였다.

    “이렇게는 안 되겠습니다, 석 수사.”

    “부상이 다시 도졌을 뿐입니다. 겨우 이런 것으로는 안 죽어요.”

    한립의 말에 석천공이 애써 힘차게 답했다.

    쉬쉬쉬쉭.

    이전보다 훨씬 많은 화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 쉬면서 기력을 회복하세요. 이제부터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한립이 왼팔을 움직여 석천공을 옆구리에 끼고 오른손에 든 곡도에서 좌, 우, 그리고 전방을 향해 검빛을 발산했다.

    유일하게 뒤쪽에서 날아드는 화살들만 남겨두었다.

    퍼퍼퍼펑!

    후방의 화살 열댓 개가 그의 등에 명중했지만 진극막에 막혔다.

    격렬하게 떨리던 진극막이 원상태로 돌아오고 한립은 화살의 힘을 추진력으로 삼아 더욱 빠르게 엄청난 거리를 이동했다.

    석천공은 한립의 지략에 감탄하면서 서둘러 단약을 꺼내 삼켰다.

    화살 비가 쏟아지고 아래쪽에서는 수백 마리의 괴뢰들이 펄쩍펄쩍 뛰어올라 그들을 공격했다. 그 속에서 석천공은 눈을 감고 기운을 다스렸다.

    두 다리에서 하얀빛을 번뜩인 한립이 앞으로 내달리면서 뛰어오른 괴뢰들 틈에서 곡도를 횡으로 베었다.

    새하얀 도광이 괴뢰 수십 마리의 허리를 잘라냈고, 발아래 잔영들이 좌우에서 달려드는 괴뢰들을 퍽퍽 차버렸다.

    퍼퍼펑!

    이번에도 뒤쪽은 비워 놓은 한립은 괴뢰들의 병장기를 진극막으로 덮인 등으로 받아냈다.

    괴력에 앞으로 빠르게 튀어 나갔는데 일순 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끙 앓으며 <천살진옥공>을 발동한 그는 번개처럼 하늘을 갈라 단숨에 수십 마리의 괴뢰를 뒤로하고 포위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막 수백 장을 벗어났을 때 쉬쉬쉭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곡도가 빛을 뿜고 수많은 화살이 부서졌다.

    이렇게 반나절이 지나갔다.

    괴뢰들의 공격을 계속 막다 보니 한립의 수행에도 고되다는 느낌이 들었고 피부 표면의 진극막도 어둑해져 있었다.

    부상이 덧난 석천공은 단약을 먹고 기운을 다스려 안색이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폐허의 규모는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어서 아직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고 거의 수만 마리의 괴뢰들이 그들을 공격했다.

    게다가 힘이 아주 세고 민첩한 거대한 낭아봉 원숭이 괴뢰가 공격해 와 이전보다 상대하기가 더 힘들었다.

    쉬쉬쉬쉭.

    수많은 남색 화살들이 날아드는데 그 사이사이에 원숭이 괴뢰들이 투척한 검은 돌멩이가 섞여 있었다.

    기합을 넣은 한립은 곡도를 이용해 화살과 돌멩이들을 파괴하는 한편 요리조리 신형을 움직여 공격을 피했다.

    진극막이 많이 약해져서 더는 괴뢰들의 공격을 맨몸으로 맞을 수가 없었다.

    슉!

    이때, 거대한 파란 신형이 아래쪽에서 달려들었다.

    남색 갑옷을 걸친 거대 원숭이 괴뢰는 다른 괴뢰들보다 몸집이 두 배나 컸다.

    원숭이 괴뢰는 주변의 화살과 돌멩이도 두려워 않고 낭아봉을 힘껏 휘둘러 한립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진작 원숭이 괴뢰의 공격을 예상한 한립은 두 다리의 현규를 번득이며 옆으로 물러나 낭아봉을 피했다.

    그의 곡도에서 빠져나온 하얀빛이 원숭이 괴뢰의 목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서걱!

    거대한 원숭이 머리가 떨어져 나간 뒤 몸통도 추락했다.

    일격에 괴뢰를 참살한 한립도 미처 다른 공격은 피하지 못해 화살 몇 대와 커다란 돌멩이를 맞아 진극막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화살들은 그렇다 치고 돌멩이가 품은 힘이 강해서 몸 안의 기혈이 들끓고 있었다.

    심호흡을 한 그는 그 반동으로 다시 전방으로 쇄도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폐허와 계속해서 나타나는 괴뢰를 보며 한립도 어쩔 수 없이 절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무리 힘이 강해도 이런 1대 다수의 싸움이 계속되면 언젠가는 이곳에서 목숨을 잃으리라.

    “절 두고 가면 수사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가세요!”

    석천공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한립은 그에게 답할 틈도 없이 전력으로 곡도를 움직여 날아다니는 화살을 거둬내고 있었다.

    화살 비를 겨우 피한 뒤에는 괴뢰들이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한립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괴뢰들을 베어버렸다.

    그동안 괴뢰들을 상대하면서 쉽게 죽이는 법을 터득해서 하얀 검빛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괴뢰의 목이나 허리가 서걱서걱 잘려나갔다.

    그런데 주변 괴뢰 무리에서 원숭이 괴뢰 두 마리가 튀어나와 거대한 낭아봉을 들고 좌우에서 달려들고 전방과 후방에서도 한 마리씩 나타나 퇴로를 끊어버렸다.

    얼굴이 굳은 한립은 잔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팔을 움직여 수많은 검빛을 터트렸다.

    퍼퍼퍼펑!

    낭아봉 네 자루가 튕겨서 날아가고 원숭이 괴뢰들도 밀려났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한립도 별빛이 깜빡거리면서 바닥으로 추락할 것만 같았다.

    파앗!

    바로 그때 품속의 핏빛 열쇠가 반짝이더니 혈홍색 수정빛을 그의 몸속으로 주입했다.

    핏빛이 뜨거운 기류로 변해 그의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뜨거운 기류는 기혈의 힘 같기도 하고 성신지력 같기도 했는데, 중요한 것은 그 양이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반나절의 전투로 쌓인 피로감이 싹 사라진 한립은 다시 현규에서 밝은 빛을 방출하고 두꺼운 진극막을 갖게 되었다.

    깜짝 놀란 한립은 뜻밖의 행운에 기뻐하며 곡도에서 눈부신 빛을 뿜어 포위하고 달려드는 괴뢰들을 쓸어버렸다.

    “려 수사…….”

    석천공은 힘이 넘치는 한립을 보고 크게 놀라 입을 벌렸다.

    “일단 빠져나가서 이야기하시지요.”

    원기를 회복한 한립은 속도를 내 두, 세 시진을 한 방향으로만 질주했다.

    드디어 붉은 모래가 가득한 땅이 나타나며 땅이 꺼진 폐허가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 왔어!”

    한립의 눈에 기쁨이 어렸다.

    크오오!

    크항!

    아래쪽 괴뢰들은 열을 받아 포효하며 미친 듯이 그들을 공격했다.

    뱀머리 괴뢰들이 계속해서 화살을 날려도 다른 괴뢰들은 화살에 맞아 다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함께 뛰어오르고 있었다.

    힘을 끌어올린 한립은 하얀 환영처럼 변해 괴뢰 대군을 물리치며 결코 멈추지 않고 질주했다.

    그런데 한립과 석천공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괴뢰를 지나 붉은 모래지대에 도착하자 신기하게도 괴뢰들은 그 언저리에 멈춰 울부짖다 흩어졌다.

    그들은 한참을 더 달아나다 괴뢰 대군이 쫓아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멈춰 섰다. 지하에서 열기가 올라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괴뢰들이 여기는 못 오나 봅니다. 뜨겁기는 해도 괴뢰들에게 크게 해를 끼칠만한 온도는 아닌데 왜 추격을 멈춘 걸까요?”

    석천공이 폐허를 돌아보며 의문을 표했다.

    “못 오는 게 아니라 안 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긴 그럴 가능성이 크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하늘의 노란 구름에 접근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구름 속에 강력한 금제가 숨어 있어 접촉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게 되어있었습니다.”

    석천공을 단도를 하나 꺼냈다.

    성신문자가 새겨진 한립의 곡도 못지않은 무기였다.

    쉭!

    단도가 하얀빛을 남기며 하늘 높이 솟아오르니 노란 구름이 출렁이면서 번득이던 하얀빛을 모아 굵직한 벼락을 내리쳤다.

    콰르릉!

    단도는 그 자리에서 터져 사라져 버렸고, 하얀 뇌전은 빠르게 흩어져 노란 구름 속으로 스며들었다.

    한립도 노란 구름이 뭔지 알아보려 했으나 그럴 시간이 없었었다.

    만일 무턱대고 고공으로 날아올랐다면 죽지는 않았더라도 부상을 당했을 것이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셋째 형님이 준 자료에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석천공은 조금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3황자는 대허 상황에 익숙한 것 같은데 이전에 직접 와봤던 걸까요?”

    눈썹을 끌어올린 한립이 중얼거렸다.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는 그나마 안전한 것 같은데 조금 쉬었다 가시죠.”

    창백한 얼굴로 피로에 젖어 있는 석천공의 제안에 한립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각자 단약을 복용하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사흘 뒤.

    “몸은 어떻습니까?”

    “이제 큰 이상은 없습니다. 제대로 회복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다행입니다. 이후 적을 만나게 되면 석 수사는 나서지 말고 요양에 힘쓰세요.”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상의를 했다.

    붉은 모래지대에 대해 잘 모르면서 깊이 들어가는 것은 화를 부를 수 있었으나 그렇다고 폐허 쪽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계속해서 붉은 모래지대를 살펴보기로 했다.

    * * *

    두 달 후, 여전히 모래지대 안.

    별다른 위험도 보물도 없이 그저 붉은 색깔이 시야를 꽉 채우고 있었다.

    “대허 안에 이렇게 광활한 지대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앞으로 내달리는 한립 뒤로 붉은 모래 먼지가 일고 있었다.

    “방향을 잘못 잡아 대허 외곽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그 뒤를 바짝 쫓으며 석천공이 미간을 좁혔다.

    대허 안의 짙은 성신지력은 부상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어서 2달 동안 내상을 거의 회복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성신지력이 전방으로 갈수록 농염해지는 것을 보면 대허 중심부로 가고 있는 게 맞을 거예요. 그리고 이제 방향을 트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닐 테니 그냥 가보는 수밖에요.”

    “그렇긴 합니다.”

    “흠?”

    이야기를 나누던 한립이 뜀박질을 멈추었다.

    “뭐가 있습니까?”

    “이쪽으로 가시죠!”

    석천공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한립이 속도를 높여 일각 정도 더 달려갔다.

    모래지대의 끝에 거대한 강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폭이 십여 리에 달하는 강에는 붉은 물이 흐르고 용암처럼 열기가 그득했다.

    “갑자기 강이라니……. 물길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런 게 아무 의미도 없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요.”

    “제 생각도 같습니다.”

    석천공의 말에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고 방향을 틀어 붉은 강줄기를 따라 닷새 정도를 이동했다.

    곧 거대한 녹초지대가 나타났다.

    말이 녹초지대지 식물은 대부분 붉은색이었고, 나머지는 흰색 수정빛을 반짝여 아주 화려해 보였다.

    그들은 일단 기운을 숨기고 그 안을 살폈다.

    “려 수사, 저길 보세요!”

    석천공이 갑자기 작은 목소리로 한립을 불러 무성한 수풀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얼마 전에 생긴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 먼저 와있나 봅니다. 적인지 아닌지 모르니 조심해야겠습니다.”

    한립이 전음으로 답하고 석천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발밑을 신경 쓰며 걷다 보니 비슷한 발자국이 점점 더 많아졌다.

    한 네 사람 정도가 무리를 이루어 이동한 듯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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