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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983화 (1,740/2,000)

1983화. 핏빛 열쇠

*

한편 석천공은 역사 괴뢰들이 좌우에서 물샐틈없는 공격을 가해 연못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두 괴뢰의 창이 십(十) 자를 이루고 가슴 앞에 포개진 석천공의 팔을 밀어붙여 점점 더 뒤로 물러나게 했다.

나머지 한 괴뢰가 과감히 돌다리를 박차고 뛰어올라 두 손으로 창을 잡고 힘차게 석천공의 가슴을 찔렀다.

부상을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석천공은 두 괴뢰를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기합을 넣은 한립은 발의 현규를 밝혀 허공을 박차고 날아들어 곡도를 그었다.

역사 괴뢰는 뒤에서 곡도가 다가오는 것을 감지하고 창을 급히 회수해 등 뒤로 공격을 막았다.

그사이 번득 다가온 한립이 천살진옥공을 운용해 두 팔의 현규를 퍼퍼펑, 깨우고 주먹을 박아 넣었다.

괴뢰의 얼굴 반쪽이 한립의 주먹에 깨져나갔다.

“조심!”

그때 석천공의 외침이 들려왔다.

후웅.

불길한 예감에 한립은 무의식중에 몸을 낮추고 바람이 뒤통수를 스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바위에 깔린 듯 어깨가 묵직해지면서 지면으로 떨어졌다.

신전의 연못이 순식간에 갈라졌다.

한립은 자신을 공격한 대상도 확실히 보지 못하고 서둘러 바닥의 틈으로 몸을 숨겼다.

다른 쪽 지면에서 솟아오른 그는 인상을 찡그리고 원래 서 있던 곳을 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곤봉을 들고 있던 마족 사내 석상도 실종된 채였다.

팟!

눈을 번득인 그가 성월화를 극성으로 발동해 튀어나왔다.

간발의 차로 흑자색 곤봉이 그가 있던 자리를 갈랐다. 바닥이 울리고 돌덩이가 마구 튀었다.

몸을 휙 돌린 한립은 입이 툭 튀어나온 마족 사내가 흑자색 곤봉을 들고 뇌전의 신처럼 검은 깃털 날개를 펄럭이면서 공중에 있는 것을 보았다.

지능이 높은지 뇌공 괴뢰는 한립이 자신의 일격을 피한 것에 분노를 드러냈다.

깃털 날개가 펄럭이고 돌개바람에 휩싸인 마족 괴뢰는 한립이 성월화를 발동한 것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한립은 한 손에 곡도를 쥐고 정면으로 휘둘렀다.

그걸 본 뇌신 괴뢰는 사람처럼 희열을 드러내더니 두 손으로 곤봉을 쥐고 하얀빛을 드리웠다.

곤봉은 놀랍게도 성보였던 것이다.

곤봉과 곡도가 충돌했다.

쩌정!

파도처럼 기운이 폭발하고 한립은 떨리는 손으로 곡도를 붙들었다. 두 손으로 곡도를 쥐고서야 상대의 일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한립은 두 발이 바닥에 깊게 파고든 것을 보고, 뇌공 괴뢰가 속도만 빠른 게 아니라 힘도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치칙!

급기야 성규를 밝힌 흑자색 곤봉이 굵직한 하얀 뇌전을 방출해 한립의 미간을 노렸다.

이마에 타는 듯한 고통을 느낀 한립은 머리가 어질해졌다.

그 때문에 두 손에 힘이 빠져 곤봉이 곡도를 내리치고 어깨로 떨어졌다.

한립의 무릎이 꺾이면서 뒤로 쓰러지려 하자 뇌신 괴뢰는 냉정한 얼굴로 곤봉을 움직였다.

머리가 곤봉에 맞기 직전, 연신술을 발동해 정신이 맑아진 한립은 품에서 급히 하얀 방패를 꺼내 성신지력을 주입했다.

화앗!

방패 표면에서 별빛이 흘러나와 하얀 보호막을 이루고 그를 보호했다.

쿠아앙!

대량의 뇌전이 흘러든 별빛 보호막이 웅웅 울어댔고, 수많은 뇌전이 사방으로 튀어 불꽃이 일었다.

뇌전도 오래 유지되지는 못했지만 별빛 보호막도 힘을 다해 한립의 전신을 가리지 못할 만큼 수축했다.

그 틈을 노려 뇌신 괴뢰는 곤봉으로 방패를 쳐내고 발로 한립을 걷어찼다.

뻑!

괴력에 오장육부가 뒤집힌 한립은 남아 있던 다리를 부서트리면서 연못 벽에 부딪혀 파고들었다.

곧장 두 손으로 벽을 밀어낸 한립이 솟아오르자 뇌전 괴뢰는 두 날개를 펄럭이며 쇄도했다.

둘이 충돌하려는 찰나 한립은 두 발의 현규를 밝혀 허공을 밝으면서 괴신 괴뢰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쿠쿠쿠…….

괴뢰를 향해 착지하는 한립의 몸에서 폭음이 들리고 현규들이 방대한 파동을 발산했다.

골천심과 싸울 때보다 더 강한 기운이었다.

창을 든 다른 두 역사 괴뢰가 접근하려다 하얀 파동에 부서졌다.

뇌전 괴뢰는 몸이 튼튼해서 엄청난 압력에 고개도 숙이지 않았으나 날개만은 그리 강하지 않은지 파동에 찢겨나갔다.

결국 한립이 두 발로 뇌신 괴뢰의 어깨를 내리찍자 괴뢰가 떨어지면서 바닥이 쩍 갈라졌다.

공격에 성공한 한립은 멈추지 않고 천살진옥공을 미친 듯이 발동해 두 팔의 현규를 밝히고 주먹을 괴뢰의 머리로 떨구었다.

퍼퍽!

대량의 성신지력이 뇌신 괴뢰의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몸이 압축된 괴뢰의 눈빛이 어둑해졌다.

한숨을 돌린 한립이 괴뢰의 어깨에서 뛰어내려 석천공 쪽을 살폈다.

그와 싸우던 창을 든 괴뢰는 한 마리만 있었고 석천공이 이미 신전 문까지 쫓아가 싸우고 있어 금방 정리가 될 것 같았다.

“그나마 하나는 얌전하구나.”

한립은 신전 안쪽에 유일하게 남은 여인 조각상을 보며 중얼거렸다.

웅.

그가 여인 조각상이 든 핏빛 열쇠를 보고 다가가려 하자 허공에 하얀 금제가 나타나 가로막았다.

걸음을 멈춘 한립은 여인 조각상 주위로 하얀 빛기둥 금제가 솟아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말 재미있네…….”

그가 입꼬리를 끌어올릴 때 쿵, 소리가 들리고 마지막 역사 괴뢰를 해치운 석천공이 다가왔다.

그는 한립이 놓친 백골 곡도와 흑자색 곤봉도 주워왔다.

“뭐라도 있습니까?”

“금제 아래 문양이 눈에 익지 않습니까?”

한립이 돌아보며 물었다.

석천공이 성신문자를 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

“맞습니다. 복잡해 보여도 성준금제와 비슷하지요.”

“파훼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든 없든 시도는 해보려 합니다.”

미소를 머금은 한립은 성준비주의 성신문자를 새겨넣을 때 챙겨두었던 성란필을 꺼내 진법 바깥에 새로운 진법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업 속도가 상당히 빨라 반 시진이 지나자 외부의 진법이 완성되었다.

“된 겁니까?”

석천공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한립이 입술을 달싹여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손끝을 타고 하얀 성신지력이 빠져나와 진법으로 흘러 들어갔다.

우웅!

외부 진법이 발동하기 시작하고 하얀빛이 내부 진법의 빛기둥을 교란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웃음이 짙어진 한립은 성큼성큼 걸어가 여인 조각상의 수중에서 핏빛 열쇠를 꺼내 들었다.

“반나절을 고생해서 열쇠 하나를 찾았는데, 어디다 쓰는 것인지는 모르겠군요.”

특별해 보이지 않는 열쇠를 본 석천공이 씁쓸하게 말했다.

“이렇게 열심히 지키고 있던 것을 보면 뭔가 내막이 있기는 할 겁니다. 적린성해와 연관 있을지도 모르고요.”

한립은 이렇게 말하면서 열쇠를 석천공에게 주려 했다.

“감촉이 좀 특이하기는 한데 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수사가 안전하게 보관해 두세요.”

석천공이 거절하자 한립은 별말 없이 품에 넣으려 했다.

두근, 두근, 두근…….

그 순간 갑자기 심장이 크게 뛰면서 핏빛 열쇠 표면에 흐릿하게 빛이 어렸다.

심장박동 소리를 따라 어떤 열기가 열쇠에서 빠져나와 체내로 주입되는 중이었다.

온천에 몸을 담근 듯 편안해진 한립은 기혈의 흐름이 빨라진 것을 느꼈다.

그뿐 아니라 곧 뚫릴 것 같던 새로운 현규가 진동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석천공은 그의 표정이 달라진 것을 보고 물었다. 한립이 대답하려는 찰나 신전 전체가 크게 휘청였다.

벌써 벽이 쩍쩍 갈라지고 건물 자재가 떨어지고 있었다.

“신전이 무너지려 합니다!”

놀란 한립은 성월화를 발동하고 땅을 박차면서 석천공을 붙들고 날아올랐다.

거북 등딱지처럼 갈라진 바닥에서 희미하게 남색 빛이 새어 나왔는데 뭔지 알 수 없었다.

한립에게 끌려가는 석천공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흑자색 곤봉을 열심히 휘둘러 떨어지는 돌덩이나 건물 잔해들을 퍽퍽 쳐냈다.

신전을 빠져나오니 검은 제단을 중심으로 주변 십여 리가 내려앉아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그 사이로 솟아오른 두 사람은 아직 무너지지 않은 건물 위에 올라 먼지 가득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땅이 왜 갑자기 내려앉은 걸까요? 려 형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셨습니까?”

“우리가 열쇠를 취한 것과 연관이 있을 듯싶습니다.”

“그렇다면 확실히 대단한 물건이겠네요.”

“어서 이곳을 떠나죠. 이유는 모르겠지만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한립은 오래 떠들지 않고 신중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어서…….”

석천공이 말을 하다말고 표정이 달라졌고, 얼굴을 굳힌 한립도 다시 그를 낚아채 더 먼 곳으로 날아올랐다.

그들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래쪽 폐허 지하에서 파파팍!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폐허에 쌓인 흙들이 들썩이면서 괴이하게 생긴 머리통들이 연달아 뚫고 나오고 있었다.

땅속에서 기어 나온 괴뢰들은 보통 사람보다 조금 큰 키에 하반신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상반신은 세 종류의 모양으로 나뉘었다.

늑대 머리 괴뢰들은 양손에 검신이 휘어진 남색 장검을 쥐고 있었고, 호랑이 머리 괴뢰들은 굵직한 팔로 한 손에 거대한 장도를 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뱀 머리를 한 괴뢰들은 갑옷 대신 전신이 조밀한 비늘에 뒤덮여 뱀 형태의 장궁을 들고 있었다.

장검, 장도, 장궁 모두 성신지력 파동을 발산하는 무기들이었다.

괴뢰의 수가 엄청나서 그들 주변뿐 아니라 사방에서 괴뢰들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본 한립도 어쩔 수 없이 안색이 어두워졌다.

개개의 실력은 약해 보이지만 한눈에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수가 많았으니 맞붙었다가는 죽은 목숨이었다.

재빨리 머리를 굴린 한립은 전신의 현규를 밝히고 두 발로 힘차게 허공을 박찼다.

그러나 <우화비승공>과 성월화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석천공을 데리고 낼 수 있는 속도에는 한계가 있었다.

괴뢰들은 땅속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허공을 질주하는 한립과 석천공을 원수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크오오!

머리가 가장 큰 뱀 머리 괴뢰가 포효하자 나머지 뱀 머리 괴뢰들이 궁에 화살을 걸었다.

쉬쉬쉬쉬.

남색 화살들이 사방팔방에서 날아올라 포물선을 그리며 두 사람을 향해 떨어져 피할 곳이 없었다.

한립은 전신의 현규에서 발산한 별빛으로 피부에 막을 씌우고 왼손으로 하얀 곡도를 들어 도광으로 날아드는 남색 화살들을 쳐냈다.

석천공도 피부에 수정 빛을 반짝이고 진극막을 만들어 급히 곤봉을 휘둘렀다.

피피파팟!

도광이 겹쳐 보호막을 이루고 남색 화살들을 조각냈지만, 괴뢰들이 쏘아 올린 화살도 보통이 아니라 금방 팔이 저릿해졌다.

흑자색 곤봉을 붕붕 휘두르는 석천공의 팔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화살 공격으로 두 사람이 속도가 줄었을 때, 인근의 늑대 머리 괴뢰와 호랑이 머리 괴뢰 수십 마리가 펄쩍 뛰어올라 그들이 숨 돌릴 틈도 주지 않았다.

연달아 금속성의 충돌음이 울리고 대량의 괴뢰 잔해가 떨어져 뛰어오른 괴뢰들을 처리했다.

한립과 석천공이 다시 움직이려는데 쉬쉬쉭! 하는 소리가 들리고 하늘이 남색 화살들로 뒤덮였다.

이에 한립은 곡도로 화살들을 쳐내면서 연달아 두 다리로 허공답보를 해서 더 높은 곳으로 떠올랐다.

그러자 하늘에 자욱하게 낀 노란 구름이 가까워졌다.

“노란 구름과 닿으면 안 됩니다. 공격은 제가 막을 테니, 려 수사는 전력을 다해 이곳을 벗어나세요!”

석천공이 급히 한립을 말리고 흑자색 곤봉의 성규에서 빛을 내뿜었다.

빠르게 허공을 가르는 곤봉에서 흑자색 돌풍이 나타나 남색 화살들을 휘감고 부숴버렸다.

한립은 어째서 그래야 하는지 궁금했지만 심각한 석천공의 표정에 더는 위로 올라가지 않고 두 다리의 현규를 밝혀 전방으로 질주했다.

그 모습에 지면의 괴뢰들은 화가나 으르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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