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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977화 (1,734/2,000)

1977화. 위기

*

“당황할 것 없다. 선박의 힘만으로 공간 폭풍을 지날 수 없어 성신지력을 끌어와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다.”

육화부인의 말에 다들 안심했는지 성준비주는 차차 진동이 줄어들다 안정을 되찾았다.

화아앗.

선박에 각인된 수많은 성신문자들이 샘물처럼 성신지력을 내뿜어 서로 교차하면서 새하얀 별빛 보호막을 이루고 선박을 보호했다.

그렇다고 해도 육화부인을 포함한 누구도 완전히 안전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

휭!

선박이 천천히 협곡으로 진입하고 날카로운 남색 바람이 좌현으로 들이쳤다.

선박의 별빛 보호막은 부드러운 탄성을 지니고 있어 칼날과 같은 바람에 움푹 들어갔던 부분이 금방 다시 회복되었다.

다른 쪽에서는 협곡의 화염이 내뿜는 고열 때문에 별빛 보호막이 붉게 물들었지만 당장 타서 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보호막 너머로 전해지는 한기와 열기에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수백 장을 더 들어가자 남색 바람과 붉은 화염이 교차하며 돌풍이 몰아쳤다.

악귀들이 괴성을 지르는 것 같은 돌풍 소리를 듣고 있자니 소름이 돋았다.

그때 사고가 발생했다.

쿵!

돌풍 한 줄기가 정확히 뱃머리에 떨어져 성준비주가 좌측의 남색 빙벽에 충돌할 정도로 경로를 틀어버린 것이다.

이대로라면 뱃머리는 빙벽과 충돌하면서 선박 좌측 손상이 너무 심해져 성준비주가 부서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별빛 보호막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는 한기와 화염이 교차하고 공간 폭풍이 영향을 미치는 협곡 안에서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들 당황하고 있을 때 액회가 번득 좌측으로 쇄도해 빙벽을 향해 열 손가락을 펼쳤다.

그의 손바닥과 팔뚝에 빼곡하게 현규가 빛을 발해 무시무시한 힘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의 두 팔을 본 한립은 깜짝 놀랐다.

팔에 뚫은 현규의 수만 해도 2백 개가 넘어 남들이 전신에 뚫는 현규보다 훨씬 많았다.

신양이 말했듯 액회가 천여 개의 현규를 지녔다는 소문은 거짓이 아닌 듯했다.

두 팔에 어린 하얀빛은 별빛 보호막과 융합되어 그 위로 거대한 원형의 파동들을 만들어냈다.

굵직한 하얀 빛기둥 열 개가 보호막에서 불쑥 튀어나와 먼저 좌측의 빙벽에 먼저 닿았다.

쿠쿠쿵…….

남색 빙벽이 무너지며 대량의 암석 떨어져 성준비주는 엄청나게 요동쳤지만 다행히 다시 뱃머리를 정면으로 돌렸다.

선박이 정상 궤도로 돌아오자 현성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립은 액회가 두 손을 거두고 빛기둥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그 강대한 힘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현성의 1인자는 역시 달랐다.

한 번의 위기가 지나자 모두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성준비주에 힘을 실었다.

선박의 방향을 이리저리 틀며 조종하는 육화부인도 익숙해져 가는지 빙벽과 화염 절벽 사이에서 돌풍을 피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휘이잉. 휘잉…….

한기가 별빛 보호막에 의해 일차적으로 차단되기는 했지만 현성 사람들은 여전히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덜덜 떨었고 동상을 입기도 했다.

반대로 우현의 괴성 사람들은 피부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전신에서 땀을 흘리며 그것마저 바로 증발되었다.

“곧 통로에 진입한다. 정신 바짝 차려라!”

그때 뱃머리에서 육화부인이 소리쳤다.

다들 깜짝 놀라 정신을 집중했고, 한립은 삭풍과 화염 위쪽의 공간 폭풍이 모여들어 전방 협곡이 뿌옇게 변한 것을 보았다.

콰르르르.

성준비주가 극심하게 떨리며 이곳저곳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박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하얀 돌풍 속으로 진입했다.

휘이잉!

바로 그 순간, 성준비주 뱃머리가 꺾이면서 돌풍에 휘말렸다.

좌석에 앉은 수사들은 엉덩이가 붕 뜨고 선실에서 거의 떨어질 듯했으나 각자 실력을 발휘해 자리에 안착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진법을 유지해야 한다. 돌풍 중앙에 이르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야!”

육화부인의 말이 끝나자 선박 위에서 펑펑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현성과 괴성 수사들이 분분히 공법을 발동해 일신의 현규를 밝히는 소리였다.

성준비주가 그들이 내뿜는 하얀빛에 휩싸여 하나의 거대한 별처럼 반짝였다.

선박의 성준금제가 성신지력에 호응해 두 날개 부분의 빛이 더욱 진해지고 있었다.

웅!

성준비주 날개에 새겨진 문양에서 하얀빛이 길게 뻗어 나가 날개가 길어졌고, 그 덕에 선박도 안정적으로 돌풍 중앙에 진입했다.

태풍의 눈처럼 돌풍 한가운데는 바람이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위험요소가 가득했다.

성준비주는 거대한 흡입력에 의해 아래쪽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한립이 인상을 찡그리며 아래쪽을 살피니 수백 장 밑에 남색 빛과 붉은 화염이 교차하며 그 아래로 악마의 눈 같은 검은 소용돌이가 치고 있었다.

흡입력은 바로 그 소용돌이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성준비주가 아래로 빨려 들어가 남색 빛과 붉은 화염이 교차하는 곳에 이르렀을 때, 성준비주 뱃머리에서 여인의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우측에서 금색 괴뢰 네 마리가 배에서 심연으로 뛰어내렸다.

쾅! 쾅! 쾅! 쾅!

사방에서 굉음이 들리고 선박은 마치 무언가에 들어 올려진 것처럼 추락 속도가 줄어들었다.

의아한 마음에 아래쪽을 본 한립은 선미에 금색 괴뢰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상반신과 하반신에 열댓 개의 요핵을 박아 넣은 괴뢰들이 선박을 어깨로 받치고 있었다.

하반신이 사라진 괴뢰들은 아래쪽으로 성신지력을 방출하면서 그 힘으로 선박이 아래로 추락하지 않게 막았다.

얼굴에 핏발이 솟은 금색 괴뢰 사내는 어깨가 부들부들 떨려 오래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그때 뱃머리에서 새하얀 빛기둥 다섯 줄기가 밤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하늘에서 반짝이던 별들이 낚싯줄처럼 별빛을 드리워 선박의 별빛 보호막에 고리를 걸고 끌어당겼다.

성준비주는 빠르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 일정 높이에서 하방의 흡입력과 상방의 끌어당기는 힘이 균형을 이루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선박 아래쪽에서 힘을 쓰던 금색 괴뢰들은 요핵이 어둑하게 변해 추락하고 있었다.

별빛의 인도로 성준비주는 무사히 돌풍 한가운데를 벗어나 다른 쪽 돌풍으로 들어갔다.

이미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더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하얀빛이 있는 대륙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한립의 눈에 돌풍에 섞인 조각난 공간균열이 들어왔다.

그가 경고하기 전에 육화부인이 미리 상황을 알고 뱃머리를 우측으로 약간 틀고 있었다.

크하항!

갑자기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후방에서 괴력이 가해졌다.

충격을 받은 성준비주의 별빛 보호막이 거의 붕괴할 뻔하다 되살아났지만 밀집한 공간균열들을 피할 수는 없었다.

흔들리는 선박 안에서 일어난 한립은 난간을 단단히 붙들고, 다른 손으로는 곁의 골천심이 튕겨 나가지 않게 붙잡아준 다음 뒤를 돌아보았다.

허공에 교룡의 머리에 날카로운 가시가 가득한 거대하기 이를 데 없는 새까만 머리통이 떠서 섬뜩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각진 비늘들이 솟아있는 구렁이의 몸이 구불구불 흑연의 검은 소용돌이까지 이어져 있었다.

검은 소용돌이의 강력한 흡입력도 통하지 않는 듯, 거대한 교룡 괴물은 다시금 머리로 성준비주를 박으려 해다.

“이런…….”

엄청난 충격에 성준비주의 별빛 보호막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흩어지기 직전이었다.

괴물의 출현에 여기저기서 겁먹은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안심하고 금제를 유지하면 된다. 저건 나와 사심 수사가 상대할 것이다.”

뱃머리에서 액회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리고 두 사람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네 이놈, 그만두지 못할까!”

선미에서 사심과 동시에 등장한 액회가 괴물을 향해 일갈했다.

주먹을 그러쥔 그의 몸이 괴이하게 비틀리면서 두 팔이 춤을 추듯 움직였다.

현규들이 하나씩 빛을 발할 때마다 기괴한 기운이 발사되며 액회의 장포가 바람도 없이 펄럭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그걸 본 사심은 눈썹을 꿈틀하고 소매 속에서 한 손을 맹렬히 뻗었다. 그녀의 소매를 빠져나온 검은빛은 주먹 크기의 구슬로 변해 괴물의 머리로 떨어졌다.

카착 카착 카착.

허공을 가르는 검은 구슬 속에서 무언가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오래지 않아 갈라진 구슬은 백 장 크기의 머리 둘에 팔이 넷 달린 원숭이를 닮은 괴뢰로 변했다.

촤릉!

원숭이 괴뢰도 아래쪽 소용돌이의 영향에 쑥 밑으로 꺼지는 듯했지만, 한 손바닥이 갈라지며 굵은 검은 사슬이 나와 바람을 가르고 교룡 머리의 가시를 감았다.

사슬을 붙들고 펄쩍 뛰어오른 원숭이 괴뢰는 괴물의 머리 위에 쿵, 떨어지며 어디서 났는지 쇠 곤봉 같은 것을 들고 괴물의 정수리를 찍었다.

크오오!

거대 원숭이 괴뢰가 떨어지는 힘과 곤봉의 충격이 더해서 교룡의 머리가 아래로 홱! 꺾였다.

이때, 전신의 현규에 불을 밝힌 액회의 팔에 안개처럼 뿌옇게 별빛이 맴돌았다.

쿠아아앙.

힘이 최대로 축적된 주먹을 뻗는 순간 별이 폭발한 것처럼 무시무시한 힘이 공간을 찢어 새까만 공간구멍이 꺾인 교룡의 머리를 덮쳤다.

별빛이 가시며 구멍도 사라졌을 때, 교룡의 머리는 그 안에 잠식되어 없어지고 피투성이의 몸만 남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이 십여 초 만에 지나갔다.

그동안 균형을 잃은 성준비주가 전방의 공간균열과 충돌하려 하고 있었다.

이에 눈을 부릅뜬 육화부인은 양손을 갑판 위에 얹고, 몸을 최대한 오른쪽으로 비틀면서 선박의 방향을 틀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의 이마에 솟은 푸른 힘줄만 보아도 얼마나 다급한지 알 수 있었다.

성준비주가 겨우 공간균열을 간발의 차로 비켜서며 충돌은 막았지만, 좌측으로 펼쳐진 날개 끝이 공간균열에 뜯겨나가면서 선박이 크게 기우뚱했다.

“안 된다, 천심아!”

깜짝 놀란 육화부인은 선박이야 어찌 되든 말든 갑판에서 두 손을 떼고 좌현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뱃머리에 있는 그가 지금 움직인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좌현의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있던 한립과 골천심은 균형을 잃은 선박 때문에 엄청난 속도로 공간균열 쪽으로 튕겨 나가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 눈을 번득인 한립이 기합을 넣었다.

화앗.

허리춤에 쥐고 있던 오른 주먹을 향해 팔의 현규들이 별빛을 뿜어 흐릿하게 성신지력을 모아주고 있었다.

액회가 썼던 방법과 비슷하지만 위력은 훨씬 약해 보였다.

그럼에도 주먹 끝에 별빛을 응결한 한립은 거대 주먹 허상을 공간균열로 날렸다.

쿠웅!

주먹 허상이 터지면서 발생한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성준비주가 우측으로 약간 밀려났고, 그걸 기회 삼아 두 다리의 현규를 밝힌 한립이 골천심 옆으로 접근해 팔로 그녀의 허리를 휘감고 뱃머리 쪽으로 몸을 날렸다.

콰카카칵.

완전히 공간균열을 벗어나지 못해 성준비주의 왼쪽 부분이 마찰로 부서져 나갔지만 한립의 일격으로 간신히 방향을 더 틀어 손상이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한립과 골천심이 무사한 것을 본 육화부인이 한시름을 놓았을 때, 액회와 사심이 번득 뱃머리로 돌아왔다.

“방금 그건 뭐였을까요…….”

육화부인은 다시 생각해도 식은땀이 났다.

“처음 보는 괴물이니 흑연 특유의 인수일지도 모르네. 그리 강하지는 않았지만 하마터면 선박이 박살나 모두 몰살당할 뻔했어.”

고개를 저은 액회가 답했다.

“그래도 버텨냈으니 다행입니다. 이대로만 가면 곧 도착할 수 있을 거…….”

사심이 말을 하다말고 인상을 찌푸렸고 다른 이들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맹수의 포효소리가 크게 울리고 거대한 머리통들이 도처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성준비주를 둘러쌌다.

가시가 있는 교룡 괴물들이 한 마리도 아니고 여덟 마리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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